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분쟁 원인이 돼온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 유대인 정착촌 동결 문제를 놓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을 사실상 묵인해 온 미국의 외교정책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달라졌다. 그러나 지난 2월 출범한 이스라엘의 강경 보수파 정부는 국내 지지 기반을 의식,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국가 공존을 요체로 하는 ‘두 국가 해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이 미묘하게 엇갈리면서 정착촌 동결을 둘러싼 힘겨루기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일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두 나라 사이의 갈라진 틈은 쉽게 메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1월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이스라엘은 서안지역 내 모든 정착촌 활동을 동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이집트 카이로대 연설에서도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같은 입장을 확인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강경 무장정파 하마스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새로운 토지를 점유하고 정착촌을 건설하지는 않겠지만, 기존 정착촌의 ‘자연적 성장’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 등으로 새로운 가구를 구성한 이들이 살아갈 집도 마련하지 못하게 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2003년 합의된 중동평화 로드맵에 담긴 ‘모든 정착촌 활동 동결’ 이행 의무를 어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와 “자연적 성장은 허용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했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 고위관계자는 “전임 행정부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가 없다”며 “이스라엘은 문서화된 오슬로 협정과 중동평화로드맵 등은 무시하면서 미 행정부가 들어본 적도 없는 구두 합의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제3차 중동전에서 비롯된 정착촌

서안 지역에 처음 유대인 정착촌이 들어선 것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의 일이다. 시온주의(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민족주의) 열기를 타고 전 세계에서 이주해온 유대인들이 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자 인근 아랍 국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제1차 중동전을 일으킨다. 이듬해 정전협정을 거쳐 이스라엘은 독립을 얻고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골란고원은 각각 아랍 국가인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다.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차지한 것은 3차 중동전에서 승리하면서다. 요르단 치하에 있던 동 예루살렘도 무력으로 병합한다.

48년 이전까지 이들 지역에 살다 떠난 유대인들은 이때부터 자신들의 땅을 되찾는다는 명분 아래 정착촌 건설에 나선다. 해외로부터 계속 이주해온 유대인들은 정착촌 확대를 더욱 앞당겼다. 정착촌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폭력에 노출됐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유대인 정착촌 건설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유린이 저질러지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정착촌은 팽창을 거듭했다. 이런 가운데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서안과 가자지구를 관할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출범했다.

유대인 정착촌 확장을 주도하던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2005년 “정착촌을 없애겠다”고 선언한 것은 정착촌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정착촌을 철거하는 대신 서안에 분리장벽을 지어 이스라엘에 유리한 국경선을 이끌어내겠다는 샤론의 정책은 우파 리쿠드당의 반발을 샀다. 결국 그는 리쿠드당을 떠나 카디마당을 창당하고 가자지구 정착촌 20여곳을 철거했다. 하지만 샤론이 2006년 1월 갑자기 뇌졸중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면서 상황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부시 미 행정부는 정착촌 확장을 눈감았고 올초 가자지구 공습 때도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줬다.

정착촌 건설은 국제법 위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446호, 452호, 465호 등이 일관되게 이스라엘의 행위를 불법이라고 비난했다. 전쟁 피해자 보호를 위해 체결된 제네바 협약 49조도 “점령국 정부는 자국 주민을 피점령지로 이주시킬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측은 팔레스타인이 1967년 이전에 독립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네바 협약 적용 대상이 아니며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정착한 것이기 때문에 49조 위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차갑다.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 등 인권단체들은 유대인 정착촌 건설 및 유지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가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족한 물은 유대인 정착민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일부 도로에 대한 팔레스타인 주민의 접근도 통제하고 있다. 돌을 던지고 올리브나무를 꺾는 등의 물리적, 경제적 폭력도 자주 발생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 군과 경찰이 일방적으로 유대인 편을 들기 때문에 저항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소연한다. 이스라엘은 소유자가 없거나 팔레스타인 주민들로부터 정당하게 사들인 땅에 정착촌을 건설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펴왔지만 이스라엘 정부 내부 문건을 통해 상당한 지역의 토지를 강탈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관건은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 여부

오바마 행정부와 네타냐후 내각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나라가 오랜 동맹국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는 만큼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정착민들의 땅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에 이끌려 네타냐후를 선택했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레츠가 전했다. 네타냐후가 유대인 극단주의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부 허가 없이 건설된 일부 정착촌의 철거에 나선 것은 이스라엘이 오바마의 압박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스라엘이 정착촌을 확대하고 분리장벽을 건설하려 하는 것은 ‘두 국가 해법’을 사실상 거부하는 것으로 비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지역을 조금씩 점령해가면서 동시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립을 지지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 의사를 수차례 표명한 오바마는 유대인 정착촌의 완전 동결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방침이다.

이스라엘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면 ‘오슬로 정신’의 복구가 필요하다.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꾀함으로써 역내 평화를 보장하고 경제적으로도 호혜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오슬로 협정의 정신이 이스라엘의 궁극적 입장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줄곧 비난해온 팔레스타인의 대 이스라엘 공격이 중단될 것이라는 신뢰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타와 하마스 등으로 분열돼 혼란스러운 팔레스타인 내부 역학구도가 정리돼야 한다. 
 

■ 제발, 올리브 나무만은… 

‘슬픈 올리브나무 이야기를 아시나요?’

‘우골탑’이라는 말처럼 지난날 가진 것 없는 농민에게 소는 소중한 생계 수단이었다. 단순한 가축을 넘어 유일한 자금원이었다.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주민에게는 올리브나무가 그런 존재다.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것이 사실상 금지돼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올리브유를 팔아 생활을 꾸린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1987년 인티파다 이후 4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12만그루의 올리브나무를 잘라냈다.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철망이나 정착촌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망을 건설해야 한다는 이유로 올리브나무를 베어내지만 많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 때문에 삶의 기반을 잃고 있다.

지난 1일 팔레스타인의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 유대인 정착민들이 소요를 일으켰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유대인 극단주의자 수십명은 나블루스에서 도로를 봉쇄한 후 장애물을 치우려고 차에서 내린 팔레스타인 운전자들에게 돌을 던지고 들판에 불을 질렀다. 일부 정착민은 숨어있다 총을 쏴대는 바람에 최소 4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부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힌 6명의 유대인 중에는 의회 의원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또 인근 주택에 난입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재배하는 올리브나무를 베어냈다.

밀밭이 불타고 올리브나무가 잘려나가는 광경을 목격한 팔레스타인 주민 샤헤르 타위는 “내 삶의 전부를 잃었다”고 울부짖었다. 당시 이스라엘 군 순찰차량 3대가 주위에 있었지만 폭력행위를 제지하기는커녕 오히려 팔레스타인 소방차의 접근을 막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유대 극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난동을 부릴 때 빼놓지 않는 일이 올리브나무를 베는 것이다. 심지어 이스라엘 군이나 경찰이 직접 올리브나무를 베는 작업에 나서기도 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위협으로부터 유대인 정착민을 보호하기 위해 철망을 건설해야 한다는 게 명분이다.

잘 자란 로마종 올리브나무에서는 1년에 20~30ℓ의 기름을 얻을 수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올리브유를 요리할 때 넣고, 남은 것은 내다 판다. 올리브나무는 최소 6~7년 이상 성장해야 제대로 소출이 나온다. 때문에 한 집에서 기르는 올리브나무 10여 그루를 한 번에 베어내면 이들의 생계는 무너지고 만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인들도 우리에게 올리브나무가 자식과 같다는 것을 잘 안다”고 이야기한다. 나블루스에서의 난동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자 이스라엘 당국은 올리브나무를 잃은 주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대인 정착민들이 나블루스에서 폭력을 행사한 것은 이스라엘 정부가 불법적인 전초 정착촌을 철거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기존 정착촌의 ‘자연적 확대’는 용인하되 정부 허가 없이 건설된 불법 정착촌은 사라져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올리브나무를 벤 유대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저항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항변했다.   

유대인 정착촌의 역사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제1차 중동전쟁 발발, 정전협정으로 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동 예루살렘 등 아랍 국가 통치권에 편입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발발, 이스라엘 승리로 요르단강 서안·가자지구·동 예루살렘 등 점령, 유대인 정착촌 건설 시작

1987년 제1차 인티파다(봉기) 발생

1993년 두 국가 해법에 기초한 오슬로 협정 타결

2000년 이스라엘 강경파 아리엘 샤론 이슬람 알 아크사 모스크 방문 제2차 인티파다 촉발

2003년 중동평화 로드맵(유대인 정착촌 동결 조항 포함) 발표

2005년 아리엘 샤론 총리 정착촌 철거 선언, 가자지구 정착촌 전면 철거, 극우파 리쿠드당 반발

2006년 아리엘 샤론 뇌졸중으로 총리 임무 수행 중단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 정착촌의 완전한 동결 요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취임, 정착촌의 ‘자연적 성장’ 용인 의사 표명

<이청솔기자 ta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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