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주인은 누구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부터 경찰이 서울광장을 전경 버스로 폐쇄하고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광장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이 문을 열었던 2004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문화행사와 축제를 열기 위한 장소로 광장을 조성했다. 2002년 시청 앞에서 월드컵 거리응원전을 치른 이후 광장을 만들자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드높았던 때였다. 발빠르게 여론을 수렴해 일사천리로 완공한 서울광장은 서울시의 치적을 자랑하는 전시행정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서울시가 정해 놓은 규범 내부에 머물지 않았다. 일단 시민들에게 개방된 광장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됐다. 시민들은 서울시가 조성한 광장에서 서울시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특히 2008년 촛불집회는 서울광장의 성격을 권력의 공간에서 저항의 공간으로 변모시킨 결정적 사건이었다. 촛불집회를 경험하며 서울광장은 정치적 상징을 부여받았다. 민주 시민들이 모여 공론을 형성하는 공간이 ‘광장’이라면 우리는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광장, 오프라인의 ‘아고라’를 갖게 된 것이다. 서울광장은 ‘거리응원의 메카’에서 ‘거리정치 1번지’로 도약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불거진 서울광장 논란은 이 같은 서울광장의 상징을 놓고 정치권력과 시민사회가 벌이는 싸움이기도 하다. 정부는 광장을 순응의 장소로 묶어두려 하고 시민들은 민주정치의 성지로 끌어올리려 한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대형 사건을 계기로 서울광장은 이명박 정권과 시민들의 불화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 되고 있다.

잔디를 위한, 잔디에 의한 광장

30여개 시민단체와 4대 종단이 모여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추모위원회’는 지난달 26일 “노 전 대통령 시민추모제를 27일 서울광장에서 열겠다”며 서울광장 사용허가 신청서를 서울시에 냈다. 추모위원회 대표단은 이튿날인 27일 오전 11시 오세훈 서울시장, 오후 5시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을 면담했으나 정부는 광장 사용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사용 신청서를 제출했던 오광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팀장은 “오 시장과 이 장관에게 추모제 프로그램을 보여주면서 평화적으로 행사를 치르겠다고 거듭 약속했는데도 허가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시민추모제는 많은 추모객들을 수용하기엔 협소한 덕수궁 돌담길에서 열렸다.

민주당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 추모행사를 열기 위해 추모위원회보다 먼저 서울시에 광장 사용 신청서를 냈지만 허가를 받지 못했다. “광장 조성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게 불허 이유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수많은 국민들이 놀라고 슬퍼한 사건이다. 이처럼 전 국민적인 중대사에조차 쓸 수 없는 광장이라면, 이 광장은 대체 언제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정답은 ‘서울시가 빌려주고 싶을 때’다. 서울광장은 서울시민의 광장이 아니라 사실상 서울시의 광장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였다. 월드컵 기간 동안 붉은 티셔츠의 물결은 자동차가 질주하던 도심 한복판을 축제의 난장으로 변화시켰다. 광장에 모여 서로 뜨겁게 소통했던 경험은 쉽게 잊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후보는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해 서울광장 조성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2004년 5월1일,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시장 취임 1년10개월 만에 서울광장을 개장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서울광장은 시민사회가 꿈꾸던 자유로운 ‘아고라’가 아니었다. 서울시는 개장과 함께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광장 사용을 통제했다 

 

조례에 따르면 광장을 사용하려는 사람은 적어도 7일 전까지 사용허가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서울시는 신청서를 심사해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을 지원한다’는 조성 목적에 위배되면 광장 사용을 불허할 수 있다. 사용 허가를 얻어도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잔디를 훼손할 경우 서울시가 손해배상을 청구해 올 수 있어서다.

당초 공모제를 거쳐 선정된 ‘빛의 광장’ 설계안을 보면 서울광장 바닥에는 잔디가 아니라 돌을 깔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서울시가 설계 공모안을 폐기하고 잔디광장을 만들었다. 서울시는 잔디 보호를 이유로 광장 통행을 수시로 금지했는데 개장 후 첫 1년 동안은 무려 210일간 출입을 막았다. 시청 앞을 시민들이 아니라 잔디에 내준 꼴이다. 서울광장은 그 출발부터 사람의 보행을 언제든지 차단할 수 있는 반쪽짜리 광장이었던 셈이다.

권력과 시민이 대립하는 저항의 공간

명분은 시민을 위한 광장이었지만 수도 중심부에 위치한 서울광장은 기실 정치권력과 자본이 지배하는 곳이다. 서울시청과 서울시의회가 코앞에 있고 청와대도 멀지 않다. 조례에서 드러나듯이 서울시는 광장을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시민들이 광장을 점유할 때만큼은 광장은 시민의 것이 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점유의 성격이다. 누가 어떻게 광장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따라 공간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민들은 서울광장에서 잔디를 감상하고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정부 정책에 항의하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규범에서 일탈하는 언어와 행동이 터져나오는 순간, 권력의 공간이었던 서울광장은 저항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광장 터는 유구한 저항의 역사를 갖고 있다. 1919년 3월 독립 만세의 함성이 거리를 메웠고, 87년 6월엔 독재 타도를 외치는 민주시민 140여만명이 이 자리에 운집했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 2명의 1주기를 추모하는 집회도 2003년 시청 앞에서 열렸다. 무엇보다 2008년 촛불집회는 서울광장이 정치적 상징을 오롯이 획득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100일이 넘도록 촛불을 밝히며 서울광장을 민주정치의 공론장으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되면 권력의 견제도 함께 시작된다.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일은 경찰의 보호를 받지만 촛불을 켜면 경찰의 물대포를 맞는 식이다. 시민과 권력 간의 힘겨루기 양상은 특히 ‘누가 공간을 점유할 것인가’의 문제로 가시화된다. 시민들은 광장을 장악하려 하고 정부는 이를 막아선다.

일례로 개장 초기 서울광장을 둘러싼 비판 여론 중 한 가지는 서울시가 보수단체에만 사용 허가를 내준다는 것이었다.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들의 출입은 금하고, 입맛에 맞는 단체들에만 광장 사용을 허가한다는 지적이었다. 개장 첫 해인 2004년 6월 민주화기념사업회가 광장에서 전시회를 열겠다고 했을 때 서울시는 잔디가 상한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불허 통지가 반복되면서 진보단체들은 광장 사용을 포기하고 다른 장소를 물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반면 보수단체들은 집회 허가를 쉽게 받아냈다. 같은해 10월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던 우익단체의 경우, 참가자가 10만여명에 달하고 인공기를 불태우는 등 폭력 시위를 했는데도 서울시는 잔디 피해에 대한 변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이서울 페스티벌’처럼 서울시가 주최하는 행사도 잔디가 많이 훼손되지만 이와 관계없이 매년 개최된다. 광장 사용의 허가 여부를 심사할 때 잔디 보호는 핑계에 불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광화문 광장도 전경 버스로 막을까

지난해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정부는 서울광장을 시민들한테 섣불리 내줬을 때 어떤 ‘봉변’을 당할 수 있는지 배웠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달 23일 경찰은 전경 버스를 동원해 서울광장 둘레에 ‘차벽’부터 세웠다. 시민 분향소가 마련된 덕수궁 대한문 앞도 버스로 에워쌌다. 명색이 경찰력을 보유한 정부가 시민들을 겁낸다는 게 다소 ‘스타일 구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추모객들이 서울광장을 점거하고 정부에 저항할 여지를 차단하는 일이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는 이 정부엔 더욱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상의 지리학> 저자인 박승규 춘천교육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서울광장의 용도를 ‘전경 전용 주차장’으로 변경해도 좋을 듯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광장은 본래 열려 있는 곳이지만 이명박 정권에서의 광장은 ‘닫힌 공간’으로 정의되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닫힌 광장이 ‘광장’일 수 있을까. 그리스의 아고라, 로마의 포럼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광장은 단순히 사람들이 모이는 시설물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었다. 광장은 시민들이 모여 공론을 형성하고 이를 정치에 반영하는 공간으로,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였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광장은 국가의 것도 개인의 것도 아닌, 공민적 권리를 가지고 더불어 사는 주체인 ‘시민’의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의 민주화가 필요하듯이 광장과 같은 ‘공간의 민주화’는 사회 전체의 민주화를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정부나 서울시가 서울광장을 제도권력의 공간으로 착각하고 독점·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현 집권세력이 그만큼 반민주적이라는 사실을 공간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서울광장 폐쇄는 현 정부의 부도덕성과 정치적 비겁함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여 ‘속좁은’ 정부를 비판하든 말든, 정부는 노제가 열린 지난달 29일을 제외하고는 장례기간 내내 서울광장을 성공리에 사수했다. 시민사회는 현재 공사 중인 광화문 광장도 서울광장과 비슷한 처지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도 정부에 위협이 되지 않는 축제만 허가하고 집회·시위는 불허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광화문 광장이 진정한 광장으로 조성되려면 시작부터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난해 촛불집회 때 광화문 네거리에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만들었던 ‘명박산성’의 재림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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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5 18: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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