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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 Like You Know It A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이 작품이 3번째 인가 보다. 아마도 이 영화는 내용보다, 나의 역사적, 생활적 이유로 어떤 영화보다 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이 영화를 혹 다른 곳에서 만난다면 이 영화의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아도 이 영화를 본 날 (2009년 5월 23일)은 뚜렸하게 기억 날 것이란 얘기다.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날이고 정말 몇십년만에 혼자 조조영화를 본날이다. 이 사실은 이영화와 함께 나의 기억속에 끝임없이 되뇌여질 것이고 그것만으로 이 영화는 이미 내 인생의 영화가 되어버린 것 같다.


사실 비틀려져 있는 인간관계의 비루함이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고 있다. 적당한 허세와 적당한 가식, 적당한 허영, 적당한 정의감이 버무려져 있어, 일상의 비루함이 그대로 투영된다고나 할까? "뜨겁지도 차지도 않아" 뱉어 버리고 싶은 물처럼 영화는 미적거리며 진행해 나간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밉지만은 않은 것이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은 지방도시에서 친한 후배의 부부와 존경하는 선배의 부부를 만난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상대방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은 사람들이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보기에는 자신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거나 자신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제천에 사는 후배의 부부는 자의식이 과잉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세계에 갇혀 사는 애벌래 같은 존재들이고, 제주에 사는 선배 부부는 서로의 불륜에 대해 모르는척 무시하고 사는 사이다. 이런 사람들과 만나면서 주인공은 선배의 아내이자 이전에 사랑했던 자신의 후배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마치 선배와 사는 것이 그녀의 불행인 것처럼, 완전한 짝을 만나야 인생이 온전해 지는 것처럼 (이 대목은 자의식이 과잉되어 주인공에게 떠들던 후배의 말이기도 하다.) 그녀의 인생을 통채로 재단하고 간섭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간섭한다고 비웃음만사게 된다.


주인공이 구했던 것은 진정 사랑이었나? 나는 홍상수 영화에서 나타나는 사랑이 무언지 모르겠다. 그냥 감정의 과잉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육체에서 꿈틀 거리는 욕구 자체를 사랑으로 간주하고 살아가는게 우리들 현실이라는 것인지... 어디서든 사랑을 추구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감정의 과잉이거나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합리화 하기 위한 변명으로서의 사랑일 뿐 그 어디서도 사랑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비루한 일상만 보일 뿐....
이 영화가 비루해도 비천해 보이지 않는 건 숭고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조차 비루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진실은 때로 일상 속에서 번득이는 법이고 때때로 우린 "인생 머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있나"라고 외치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 예전 영화보다 많이 약해졌다고 한다. 예전 영화를 전부 보지 못했으니 뭐라 평하진 못하겠지만. 영화 마지막까지 하루 일정을 마치지 못하고 무언가를 다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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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나서 일상의 비루함이 비천함으로 까지 추락해버리면 사람은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숭고함을 위해 싸우다 패배하고 퇴임 후 자신을 변호하다 지쳐 쓰러진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