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남미 하위주체 연구’ 권위 美 존 베벌리 교수

“지금 세계가 직면한 신자유주의적 모델의 위기를 남미는 이미 10년 전에 경험했습니다. 남미의 좌파 정부들은 그 같은 경험의 산물이며 새로운 변화를 대변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존 베벌리 미 피츠버그대 교수(65)는 14일 “지금 남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모델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역적인 협력을 돈독히 하는 등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베벌리 교수는 남미 하위주체(subaltern·서발턴)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최근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지난 13일 ‘라틴아메리카니즘이라는 ‘사건’-인식지도 그리기’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그는 1992년 결성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의 핵심 멤버다. 이들은 하층민이나 소외 계층의 구체적 삶에 주목하는 인도의 하위주체 연구를 수용, 90년대 남미 좌파의 실패 원인을 진단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이들의 이론은 볼리비아 좌파 운동 등 현실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계급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국가, 인종, 민족, 젠더 등 다양한 범주에서 지배·종속 관계가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포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촛불시위와 관련해선 “남미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소개했다.

“92년 베네수엘라에서는 누가 조직한 것도 아닌데 빈곤층이 들고 일어난 ‘카라카소’가 있었고, 94년 멕시코에서는 사파티스타 봉기가 일어나는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운동들이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이는 기존 틀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사건입니다.”

베벌리 교수는 최근 10년간 남미에 좌파 정권이 잇달아 들어선 현상을 두고 ‘분홍색 물결’ 이라고 표현했다. 이들이 ‘붉은색’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혁명적 좌파와 다르다는 의미다.

“이들 정권은 극단적인 계급투쟁이나 이념투쟁이 아닌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는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원동력이 되어 탄생했습니다. 좀더 다원적이고 다문화적인 걸 허용한다는 점에서 이전 좌파들과 달라요.”

이들 소위 ‘좌파’ 정권들이 스스로 ‘사회주의 정권’이라고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남미의 좌파 정권들을 ‘좋은 좌파’와 ‘나쁜 좌파’로 나누는 시각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했다. 남미 각국들의 상황이 다르기도 하거니와 이들 국가가 미국이나 우파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이들을 둘로 나누는 시각은 남미 좌파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로 “남미 내부가 아니라 미국 측 시각”이라는 설명이다. 베벌리 교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같은 이분법에 빠지기보다는 남미를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남미 좌파의 ‘신보수주의적 전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60년대 급진적이었던 미국의 자유주의적 좌파가 80년대를 지나면서 보수주의자가 된 것과 비슷한 일이 남미 좌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는 “80년대 남미에서 좌파 혁명을 꿈꾸었던 지식인들은 지금처럼 새로운 형태의 정치상황이나 다문화주의, 하위주체 등에 대해서는 못마땅해 한다”고 설명했다. 베벌리 교수는 남미의 상황이 고정된 틀로는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계속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구좌파들은 자신들의 틀로 해석하려다보니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베벌리 교수는 “새로운 후기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아시아와 남미는 새로운 연결 고리를 가질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와 남미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글 김진우·사진 정지윤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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