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 - [할인행사]
20세기폭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스틸이미지 

-난 매일밤 죽었고, 매일밤 다시 태어났다. .. .. 새로운 부활 -

still #4  

- 기름 넣어주고 웨이터생활을 하면서, 먹물들의 노예로 살고 있지. 우린 필요도 없는 고급차나 비싼 옷을 사겠다고

   개처럼 일한다. 우린 목적을 상실한 역사의 고아야. 2차대전도 공황도 겪지 않았지만 정신적 공황에 고통받고 있다.

   tv를 통해 우리는 누구나 백만장자나 슈퍼스타가 될수 있다고 상상하지,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는걸

   깨달았을때, 우리는 분노할수밖에 없다.
still #9 

 돈이 다가 아니야, 직업이 다가 아니야, 무슨 차를 타는지, 지갑이 얼마나 두둑한지, 그딴건 상관없어. 우린 움직이는 쓰레기다.   

자기가 사는 일상이 지겨운 사람이 있고 그 일상을 극복해 내기 위해 야생으로 복귀한다. 파이트클럽은 야생으로 복귀한 지킬박사의 이야기 이다. '지킬과 하이드'의 배경이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였다면 '파이트클럽'은 사회적 본성에 대한 탐구일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이 있다.  

자본주의적 물질문명에 대한 냉소, 자기개발에 대한 조소, 직업이나 일상에 대한 거부...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받은 자들의 맹목적 헌신성....하나의 싸움 클럽이 테러리스트화 되어가는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단, 그들의 목표가 뚜렸하지 않고 '쓰레기'스럽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저항의 맥락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단지 담대해지고 내부적으로 강함을 느끼는 원시적 승리감에서 사회에 대한 조직적 테러로 진행한다 하더라도, 사회에 대한 분노에는 일정한 배경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 바로 배경에 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하이드'의 악함을 반성하는 '지킬'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영화는 하나의 부르조아적 휴머니즘으로 회귀한다. 

마지막 자신이 막으려는 테러가 실현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치지만....그것은 테러를 계획하고 실행했던 주체가 원했으면서도 막으려는 것이였고, 결국 원하지 않은 결말이기에 영화의 이중성이 드러난다고 봐야 한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에 대한 하나의 성찰로 봐야 하는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폭력의 사회적 맥락으로서는 이 영화는 분명한 한계를 보이는 것 같다.  

단,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에드워드 노튼과 브레드 피트의 연기는 압권 그 자체라는 것...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