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뒷표지
가을 방학이 지나고 어제부터 아이들이 학교에 나갔다.
학교 책읽기 봉사 모임을 하고 도서관에 들러 책 반납하고 혼자 밥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큰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고가의 팽이를 잃어버렸다고 집 안을 헤집고 난리였다.
그러더니 학교에서 분명히 누가 자기 가방을 열고 가져간 것 같다고 한다.
평소 물건 관리 잘 못하고 해서 아침에도 가져가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가져가더니 사달이 났다.
학원 가기 전에 울고 난리라
앞으로 생일이 다가오니 생일 선물로 당겨서 사준다고 진정시켜 보냈다.
울고 난리고 누가 가져갔다고 해서
증거도 없이 친구들 의심하지 말고
앞으로 귀중품은 절대 가져가지 않기로 다짐받았다.
(또 몰래 가져가겠지만, 훗)
원칙이야
잃어버린 건 안 사준다였지만
지금 내 정신건강이 별로라 일단 우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
동생이랑 집앞 둘마트에 보냈다.
정말 누가 가져간 것일까.
슈터까지 세트로 없어지고
가지고 다니는 많은 팽이들 중 그것만 없어졌다.
인기 모델이라 마트에서도 품절이었나보다.
딸애가 난감해하며 오빠 속상해하니 어쩌지 하길래
다른 모델이라도 사서 데려오라고 했다.
아주 딸애가 누나다, 그냥.
옆에서 오빠라는 게 장탄식하는 소리만 들리고
야무진 딸은 어느새 마트에 전화까지 챙겨가
불의의 상황을 수습하고 있다.
자녀는 타인 중에 특별히 친한 타인이다.
자녀는 철저하게 타인이다. 타인 중에 특별히 친한 타인이다. 특별히 친하다는 예를 찾아본다면 교도소를 출소한 그 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집으로 데려와 목욕을 시키고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이다. 자녀가 아닌 다른 누구를 위해 이처럼 정성들여 대접하는 타인이 또 있을까.
<약간의 거리를 둔다>, 122쪽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쩐지 위안이 된다.
육아의 부담이 극에 달할 때는 '그래, 감옥에만 가지 않게 키워보자'
이렇게 마음을 진정시켜야겠다.
나와 분리시켜 아이를 타인이라고 생각하고
타인의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응원해줘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저런 상황이 생기면
상당히 괴롭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에서도 기꺼이 안아주고 접대할 수 있어야겠지.
거의 열흘간 삼시세끼 챙기고 투닥거리는 애들 틈에서 점점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는데
딱 한계일 때 다시 학교에 가서 감사하다.
<온화하게 심플하게>
주말에 애들 놀게 해주려 아시아문화전당 갔다가 거기에서 마저 다 읽었다.
<오늘, 마음 맑음>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 빌려왔다.
표지도 예쁘고 내용도 무난하다.
요즘 시중에 이런 류의 책이 많은듯하다.
호흡이 길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하는 책보다는 감정 자기 계발서라고나 할까.
냉난자지(冷暖自知) 물이 찬지 뜨거운지는 마신 사람만이 안다.
무슨 일이든 경험해 봐야 알게 됩니다. <온화하게 심플하게>46-47쪽
물론 쓰신 분들이야 오래 수양해서 정제된 생각을 주는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자기가 실제로 느끼지 않으면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
연휴 내내 미처 못 보고 밀린 영화들 밀정, 터널, 라라랜드, 럭키 같은
(내 기준) 최근 영화를 보았는데
심히 피로하다.
감정을 너무 써버렸다.
의외로 <럭키>가 제일 편했다.
유해진이 다 살린 편한 팝콘무비. 84년생이라 해도 나는 믿을란다. 이발소 아저씨가 잘생겼다 할 때도 믿었다. 역시 킬러(신분세탁업자)도 부지런하고 심지가 굳어야 한다. 먼지 하나 없는 집을 단 하루만에 개판 만든 이준을 보고 어찌나 한심하던지.
터널 진짜 망.
자다가 땅속 깊이 갇힌 꿈도 꾸고 그냥 그런 상황 자체를 희화화한 게 마음에 안 든다. 세월호 이후였으면 보다 정교하게 다루어야 하는데 너무 거칠고 산만하다. 배두나가 맡은 최악의 배역이다. 너무 안 어울리고 이질적이다.
<무심하게 산다>는 <종이달>을 전에 잘 보아 선택한 작가의 에세이집이다.
사노 요코 에세이같이 나이듦과 그에 따른 변화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다.
돈이 많은 부자가 오히려 돈을 덜 쓰려 하는 것처럼 젊은이들은 체력이 많기 때문에 운동을 그리 많이 하지 않는다는 발상이 신기했다.
20대들이 피트니트 센터에서 죽어라 운동하는 30-40대를 의아하게 본다는 것.
만화를 읽기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
건강검진에 열중하고 그 과정을 즐기게 된다는 것
나이들어 성숙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이 가진 단점들이 점점 부각되기 시작한다는 것
의외로 나이들수록 감기에 덜 걸린다는 것(대신 한번 걸리면 호되게 오래 앓는다) 이건 젊은이들과 달리 외부세계와 별로 접촉이 없어 바이러스에 덜 노출되기 때문이라나.
흥미로운 관찰이었다. 계속 응 마저마저 하면서 읽었다.
<아주 오래된 서점>은 다행히 도서관에 있어 나중에 읽어야겠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소장 접수가 많아진다는 뉴스가 요즘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 차례문화가 변했다느니 시댁 친정 구분이 없어졌다느니 하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어제 학교 모임에 가서 엄마들 이야기 듣다보니 아직 멀었다. 특히 다들 전 지지는 데에 한이 맺혀 있었다. 먹지도 않을 걸 왜 그리 많이 하는지.
서로 다른 살림방식, 오래간만에 만나 의사소통에 적응이 안 되는 친척들.
이도 저도 아니고 사실 물리적 피로.
<당신, 힘들었겠다>는 흔한 감정 자기계발서인가 하고 도서관에서 집어들었다가 우연히 건진 책이다. 저자분이 부부상담을 오래 하셨고 EBS 상담도 하셨다는데 난 이제야 본다.
인간은 소중한 사람과 정서적으로 깊이 연결될 때 성장한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다가와서 안아주면 우울, 분노, 짜증 등 부정적인 정서에서 벗어나 성장의 동력을 갖게 된다. 관계가 안정될 때 개인은 정보를 긍정적으로 처리하고 인내심이 늘어나 상대방의 입장을 더 많이 고려하게 된다.
가족치료의 권위자인 버지니아 사티어는 “사람은 서로의 공통점 때문에 친해지고 차이점 때문에 성장한다”고 했다.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당신, 힘들었겠다> 169쪽
서로 긴 말이 필요하겠는가
딱 책 제목만큼만 이야기해도 어딘지.
EBS는 부모자식 관계든 부부관계든 -구나 방송이구나 할 정도로 공감을 강조하는데
잘못하면 무한도전 그랬구나같이 부아만 돋울 수도 있다. ㅋ
존 가트맨 책은 전에 사둔 건데 좀더 무겁게 접근하고 있고 정독하지 못했다. 책을 읽을 시간에 좀더 대화할 시간을 내는 것이 좋겠지.
명절 갈등의 원인은 사실 서로 이해하기 부족한 시간과 바닥난 체력 때문이 아닐까.
화목한? 집안을 보면 일정 부분은 구성원들 체력에 빚지고 있다. 언젠가 대가족이 모두 단체로 티맞춰입고 가족여행 떠난 사진을 보았는데 칠순 노모부터 아들딸 손자손녀 모두 에너지 뿜뿜.
반면 우리집은 애들이나 어른이나 전체적으로 그렇게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집에서 다들 딩굴거리면서 보고 싶은 책 보다가 간단히 먹고 근교 산책이나 가야 적당할 듯하다.
실제로 나들이는 집 근처 30분에서 한시간 거리(나주, 화순, 담양이 제일 만만하다)를 이동해 네다섯 시간 머물다 오는 게 제일 이상적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변화를 무심히 받아들이고
이제 내 나이가 쌓이는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 볼 테다.
<무심하게 산다>, 1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