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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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우리 겨우 ‘고경단녀’에 ‘동남아’일세.

 

우연히 연락이 닿은 대학 동창이 하는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고경단녀? 동남아?

‘고학력 경력단절여성’, ‘동네에 남아 있는 아줌마’를 일컫는 말이란다. ‘맘충’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동남아’라 자조하다니! 외국인 노동자 비하의 의미도 동시에 담고 있는 그 단어 정말 싫고 낯설었다. 그런데 딱히 뭐라고 동창에게 훈계하기도 그렇고 해서 애들이 말을 안 듣네, 집안일이 해도 안 해도 그 타령이네, 언제 보자는 둥 실없는 대화를 이어가다 아이를 핑계로 통화를 마쳤다.

 

그래, 집안일 힘들지, 보람 없지, 노동은 신성하다는데 가사노동은 예외지.

집안일이 힘들고 보람 없는 이유는 대체 뭘까?

 

첫째, 자기 집안일하는 것으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사도우미는 노동의 대가를 돈으로 받지만 전업주부는 그렇지 않다. 주부는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무보수 감정노동 종사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볼 수 없어 힘들다.

 

 

결국 부부 중 한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 씨였다. 정대현 씨의 직장이 더 안정적이고 수입이 많기도 하고, 그런 모든 이유를 떠나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p.143

 

 

둘째, 가사 노동의 가치가 매우 낮게 평가되어 있다. 노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자아 실현할 수 있는 부문도 아니다.

 

살림은 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허드렛일로 치부되고 자아 실현과는 별개의 것으로 되어 있다. 살림이 적성에 맞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회 일과 비교해볼 때 적성에 맞는다는 것이며 살림, 육아는 개별적 성취의 분야가 아니다. 물론 요리, 청소, 정돈, 교육 분야의 파워블로거들이 있으나 처음엔 자기 집안일을 하다가 별도로 요리책 출간이나 서비스를 통해 부를 창출한 것이지 자기 집안일만 하는 것으로 사회적 인정이나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없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 남녀를 불문하고 전업주부에 대한 사회적 위치가 높은 편이 아니다. 전업주부의 경우 남편의 사회 경제적 위치를 따라갈 뿐 주부로 사회적 성취나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기 마련인데 유독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p. 149

 

 

셋째, 일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시간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일을 계획하여 주도적으로 할 수 없다. 또한 일을 함께 할 동료가 없이 고립되어 있다. 물론 같이 사는 가족이 조력자가 되어야 하나 실제적으로 그렇지 않다.

 

가사노동은 미취학 아이들 육아, 청소, 요리, 집안 수리 혹은 집안에 따라서는 노부모 간병, 취학아동 교육, 관공서, 은행일 등 일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잡다하다. 개별적으로 남에게 맡기려면 모두 비용이 드는 것이나 내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일일이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

 

직장은 출퇴근과 주야간 교대가 명확하지만 가사나 육아는 그렇지 않다. 분절된 시간을 적절히 써가며 여러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종일 동동거려도 집안 꼴이 엉망인 경우가 많다. 회사원 A씨에게 2시간이나 혹은 30분씩 분야가 다른 여러 프로젝트를 던져준다면 그가 일에 전념할 수 있겠는가? 특히나 미취학 아동엄마는 아이 컨디션에 따라 시간을 쪼개가며 써야 한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얼 하고 계획은 있지만 막상 변수가 너무 많고 조력자가 없다. 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거나 하는 가정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업이 많으니 힘들 것 없다고 하고 한때 ‘영유애엄브(아이는 영어유치원 엄마는 브런치)’라는 괴상한 신조어가 유행하던 시기도 있다. 그러나 그건 계급의 문제이지 전체 여성이 처한 현실과 거리가 멀다. 대개 저소득 가정의 주부는 아이 어린이집 보내는 동안만 가능한 계약직인 경우도 있고 취업준비나 건강 문제 등으로 아이를 보내기도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도 종일이냐 오전이냐에 따라 다르고 아이가 한 달 내내 기계적으로 어린이집에 출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가정이 선택한 문제에 대해 남들이 뭐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 보육의 질을 고민해야 하는데 그저 어린이집 보내놓고 엄마는 논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넷째, 가사노동은 육체적, 감정노동이 상당하다. 전형적 그림자 노동이다.

 

4-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미취학 어린애들 들어올려 씻기고 먹이고 그 와중에 집안 청소와 요리를 병행해야 한다.

유시민 작가가 말했듯이 모든 집안일은 위치를 잃은 더러운 것을 깨끗이 만들어 제자리로 돌려놓는 단순 노동과정이다. 창조적인 결과물이 있는 것은 요리나 재봉 정도일 뿐.

 

집안 일이 힘들고 고단한 이유는 엔트로피를 일정수준으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 상태, 화초 관리상태, 비품 구비 수준 등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거의 쉼 없이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특히 집안에 혈기 왕성한 미취학 어린이가 있을 땐 엔트로피는 빛의 속도로 증가할 수밖에 없고(어찌나 어질러대는지...), 게다가 그게 여자 아이라면 대외적인 품위까지 챙겨야 하기에(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디) 고려해야 할 이슈는 산술급수가 아닌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결론은.... 집안 꼴을 유지하면서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는 거 거의 불가능(물론 예외 인정, 몇몇은 알고 있음), 둘이 매달려도 버겁다는 거(남자가 도와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 직접 하든지, 돈 마이 벌어 사람을 고용하든지),www.fb.com/botzzim,

 

미취학, 취학 아동을 돌보는 것, 훈육하는 것은 고도의 정신노동이다.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고 아이가 장시간 우는 소리도 참아내야 한다.

공교육, 사교육이 감당하지 못하는 걸 엄마들이 하는 경우도 많다.(엄마표) 훈육의 경우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 고도의 감정 노동이다. 발달단계에 이르지 않아 설득이 불가능한 미취학 아동의 육아는 고도의 정신적 스트레스, 죄책감, 수치심 등을 안긴다. 특히 육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에서 맘충이라 불리는 스트레스도 크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중략)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다섯째, 가정 내의 자원과 공간이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한 가정에서 생활비 중 주부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쓰는 비용이 얼마나 될까? 주부인 경우 자신만을 위한 비용이나 공간이 충분치 않다. 개인 용돈이나 자신만의 방이 있는 주부는 상위 몇 프로일 것이다.

커피숍이나 찜질방에 나와 있는 주부들 중 매일 그렇게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회사원이라 해도 월급루팡이라 불리는 회사에서 틈틈이 노는 족속이 있듯이 인스타 유명엄마들도 그런 부류일 뿐이다. 대개 아주 잠시 짬을 내어 쉬고 있는 분들인데 회사원들이 보기에 낮시간대에 나와 있어 편하게 보일 뿐. 김구라가 찜질방에 있는 엄마들 부럽다고 하자 양희은 씨가 저 엄마들 밤새 애들 보초 서고 병간호하다 이제 나온 거야.

 

 

 

엄마가 되면서 개인적 관계들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배제돼 가정에 유폐된다. 게다가 아이들을 위한 것만 허락된다. 아이를 위해 시간, 감정, 에너지, 돈을 써야 하고, 아이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자격을 의심받는다.

p.188

 

 

 

여섯째, 현대사회에서는 살림과 양육에 대한 기준이 터무니없이 높게 설정되어 있다. 중상층 이상의 전업주부가 수행하는 살림과 육아가 표준이 되어 많은 여성들을 괴롭게 한다. 전업 주부라고 하면 진짜 ‘업(카르마)’을 진 듯하다. 집안은 미니멀리즘에 맞게 잘 정돈되고 인테리어는 북유럽풍에 맞게 모던해야 한다. 아이는 건강식으로 잘 키워야 하고 여러 엄마표 놀이와 교육으로 감성 있게 커야 하며 인지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 미모관리도 되어서 아름답고 감각 있는 엄마여야 한다.

중상층 전업주부의 이런 고민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생계형 맞벌이의 현실은 더 열악하다. 맞벌이나 파트타임을 한다고 해도 가사노동은 엄마의 몫으로 남는다. 맞벌이는 원해도 맞살림이나 맞밥은 싫은 분들이 많다. 또한 경력단절 여성의 급여는 터무니없이 낮고 노동요건은 열악하다. 그래도 살림살이가 팍팍해 전업주부는 줄어드는 추세이다. 특히 아이들이 중고등 가는 시기에, 즉 40-50대 여성 취업률이 다시 높아진다. 높은 학원비, 치솟는 물가, 노후 대비 등으로 고소득층을 제외하고는 팔자 편한? 전업주부로 있을 시기도 사실 몇 년에 불과하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p.144

 

 

참으로 의미 있는 조사결과이다.

심지어 남성 주부로 있을지라도 취업한 여성보다 가사를 더 많이 하지는 않는다니.

 

이 소설의 마지막은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로 끝을 맺는다.

가사로 인해 회사일에 지장을 주지 않을 노동력을 선호하는 것이다.

 

픽션이 아닌 논픽션 같은 결말이다. 20대 여성 취업률은 그 나이대 남성보다 높다가 출산과 육아하는 시기에 떨어져서 다시 40-50대 중장년층로 가면 높아진다.

 

왜 남자들은 팔자 좋은? 중상층 가상의 전업주부를 설정해두고 전체 여성들을 비난할까.

저임금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현실 세계의 어린 여자아이들,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40-50대 이모님들은 보이지 않는 걸까.

가깝게는 매일 장을 보고 밥을 차리고 청소하는 엄마나 부인, 누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남초 카페나 게시판에서는 개별 케이스를 들어 우리집은 그렇지 않다,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다, 요새 여자들은 이기적이고 드세고 자기 주장만 강하다고 연일 성토한다. 이 소설을 읽은 남자들은 불편해하고 '맘충'이라는 단어도 민폐 끼치는 무개념 진상 엄마들이 있어 나온 것이라며 단순히 커피마신다고 저렇게 말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미취학 아동을 키워본 엄마들은 가끔은 적대적 시선을 마주한 경험이 있다. 특히 아빠를 동반하지 않은 외출에서.  

 

이제 출산과 육아는 보편이 아닌 선택적 현상이 되었다. 비혼 1인가구는 급증하고 자발적, 비자발적 딩크부부가 많아졌다. 따라서 출산과 육아라는 개인의 선택을 무조건 지지하지는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82년생 김지영 씨는 이런 시기에 아이를 낳아 기른 여성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배경을 지녔다. 부부가 같은 공간에 거주하고 아이를 같이 키워도 서로 경험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온전히 그 감정의 결을 이해할 수 없다.

 

개별적 체험은 정말 그 체험의 당사자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이해받을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어 절망한다.

 

한편 이해할 수 없어 조소한다.

이 소설 평점에 유난히 별 하나가 많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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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7-08-1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궁금했는데 아주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뚜유 2017-08-15 08:48   좋아요 1 | URL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먼저 저와 저희 아이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근거해서 작성한 목록임을 밝혀둘게요.

전집은 물려받은 거만 읽혔고 단행본 위주로 읽히는 습관이 있는 엄마에요.

작년에 책 고르는 기준 어쩌고 써서 약간 소란이 있어서

그냥 설명 별로 없이 제목만 나열할게요.


초4남, 초2여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고 이중에서 좋아했던 그림책은 아직도 처분하지 않고 봐요. ^^


책 많이 읽히라는 데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골라야 하는지 막막할 때
마쓰이 다다시가 쓴 <어린이와 그림책>을 먼저 읽어보시고 그림책을 고르는 법을 알아가면 좋아요.

 

 


 

 

 

 

 

 

 

 

 

 

 

 

 

-칼데콧, 뉴베리 등 유명 수상작을 찾아봐도 좋은데 상 받은 책이라고 우리 애들이 다 좋아하지는 않더라고요.

유명 작가들 책 중 인터넷 서점 판매량 순으로 몇 권 보다가 아이랑 작가 취향이 맞으면 더 사줘도 좋고요.

아무리 어려도 아이도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고요 나중엔 그림체만 봐도 알더라고요.

 

 

 

 


 

 

 

 

 

 

 

1. 앤서니 브라운

어린이들도 어른도 모두 좋아하는 작가에요. 애들 아주 어릴 때 3세부터 보기 시작했어요. 그림이 따스하고 스토리도 철학적이라 초 저학년에도 자주 봤어요.

★★돼지책-집안일 안 하는 아이들과 아빠가 점점 돼지가 되어가고 집안 사물도 돼지 모양이 늘어가는 게 재미있음

★★터널-남매가 갈등을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

★동물원

내가 좋아하는 것

★겁쟁이 빌리

우리 아빠가 최고야

고릴라

우리 엄마

기분을 말해 봐

 

 

 

 

 

 


 

 

 

 

 

 

 

2. 존 버닝햄

아이들의 심리를 잘 알고 해방감을 주는 이야기, 아이들의 상상을 담은 이야기가 많아요.

★★지각대장 존-아이가 학교 늦은 데 이유를 대는데 선생님은 믿지 않아요. 아이들 심리를 잘 알고 해방감을 주는 책이에요.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마법침대

내 친구 커트니

★네가 만약

 

 

 

 


 

 

 

 

 

 

 

 

 

 

 

 

3. 토미 웅게러

기발한 착상과 시니컬한 웃음이 넘치는 그림으로 기성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그릇된 가치관이나 선입견을 재미있고 부드럽게 풍자하고 있어요. 신랄한 독설가인 모리스 샌닥까지도 웅게러의 그림을 일러 ‘언어와 예술의 강렬한 결합’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알라딘소개

저희 애들은 모이스 샌닥과 더불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작가에요. 크릭터만 잘 봤어요.

 

★크릭터-보아뱀과 가족의 우정을 담은 책

제랄다와 거인

세 강도 

납작이가 된 스탠리

 

 

 


 

 

 

 

 

 

 

 

 

 

 

 

4. 레이먼드 브릭스

★눈사람 아저씨

작은 사람

산타할아버지

바람이 불 때에

 

 

 

 


 

 

 

 

 

 

 

 

 

 

 

 

5. 모리스 샌닥

서양에서 독보적 작가인데 저희 애들은 단 2권만 즐겨 봤어요.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아들이 한동안 즐겨봤어요.

★괴물들이 사는 나라

깊은 밤 부엌에서

 

 

 


 

 

 

 

 

 

 

 

 

 

 

 

 

6. 윌리엄 스타이그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

★엉망진창섬

슈렉

 

 

 

 


 

 

 

 

 

 

 

 

 

 

 

7. 로버트 맥클로스키

잔잔한 그림체가 좋아요.

★아기오리들한테 길을 비켜주세요

기적의 시간

 

 

 


 

 

 

 

 

 

 

 

 

 

 

 

 

8. 레오 리오니

★프레드릭

★파랑이와 노랑이

 


9-11은 24개월 이상 3-5세경에 많이 본 작가에요.

 


 

 

 

 

 

 

 

 

 

 

 

 

9. 마르쿠스 피스터

★무지개 물고기 시리즈

 

 

 


 

 

 

 

 

 

 

 

 

 

 

10. 히도 반 헤네흐텐

★★우리엄마 어디 있어요?

하양이는 친구가 많아요

 


 

 

 

 

 

 

 

 

 

 

 

 

11. 하야시 아키코

★★달님 안녕 시리즈

 

 

 

 

 


 

 

 

 

 

 

 

12. 나카가와 리에코

말이 필요 없는 구리와 구라 시리즈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13. 나카야 미와

딸이 무지 좋아하는 작가에요.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이야기, 귀여운 그림체가 딱 여아들 취향이에요.

★★누에콩 시리즈

★까만크레파스와 요술기차

★도토리 마을의 시리즈

 


 

 

 

 

 

 

 

 

 

 

14. 시마다 유카

딸이 3살부터 사랑했던 책들이에요. 2학년이 되어서도 봐요. 딸 친구들도 좋아하는 책이에요. 표정이 아기자기 귀엽고 행동이 엉뚱해요. 전 하도 읽어서 외울 지경이에요.

★★바무와 게로 시리즈

바무와 게로 오늘은 시장가는 날

바무와 게로의 일요일

 

 

 


 

 

 

 

 

 

 

 

 

 

 

 

 

 

 

 

 

 

 

 

 

 

15. 미야니시 다쓰야

 

초4인 아들이 한 5년 전에는 애정했던 시리즈에요.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로 너무 유명하죠. 공룡 좋아하던 4-5세에 거의 외우다시피 열심히 읽은 시리즈에요. 아무래도 앞의 4권을 무지 좋아했어요. 널 만나서 다행이야 하고요 한두 권 사보고 좋아하면 더 사는 게 좋아요.

 

★★고 녀석 맛있겠다.

★나는 티라노사우르스다

★넌 정말 멋져

★널 영원히 사랑할거란다

나에게도 사랑을 주세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나를 닮은 당신이 좋아요

★널 만나서 다행이야

모두 다 사랑해

나는 당신을 믿어요

고마워, 사랑해

영원히 함께 해요

 

공룡과 다른 시리즈. 돼지하고 늑대들이 나오는데 상상력이 기발해 좋아해요.

★★찬성

★★우와 신기한 사탕이다

★신기한 씨앗가게

말하면 힘이 세지는 말

 

 

 


 

 

 

 

 

 

 

 

 

 

 

 

 

16. 이와이 도시오

아들, 딸 모두 좋아했던 책이요.

 

장난감 없이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작가는 엄청난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각기 다른 동물들이 살고 있는 100층짜리 건물의 10층씩을 오르며 1에서 100까지 쉽게 익힐 수 있는 그림책. 그림이 아기자기하고 동물들 생태에 맞는 다양한 행동을 보여주어 아이들이 좋아해요. 학교 가져가서 너덜너덜해짐 ㅜ.ㅠ

★★100층짜리 집

★★바다 100층짜리 집

★★지하 100층짜리 집

★어디가 이상해

 

 

 

 

 

 


 

 

 

 

 

 

 

 

 

 

 

17. 요시타케 신스케

 

★이유가 있어요.

★이게 정말 천국일까?

★이게 정말 사과일까?

 

 

 

 


 

 

 

 

 

 

 

 

 

 

 

 

18. 백희나

구름빵

★★장수탕 선녀님

 

 

 

 

 

 

 

 

 

 

 

 

 

19. 최숙희

★모르는 척 공주

★괜찮아

★나도나도

누구 그림자일까

 

 

 

 

 

 


 

 

 

 

 

 

 

20. 고대영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로 유명해요. 아이들 생활에 밀착되는 사건을 많이 다루어요.

★집 안 치우기

★지하철을 타고서

싸워도 돼요?

 


 

 

 

 

 

 

 

 

 

 

 

21. 아이노 하부카이엔

낯선 핀란드 작가인데 발상이 독특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말썽을 자주 피워서 아들이 좋아했어요.

타투와 파투 시리즈

★★타투와 파투 : 기상천외한 기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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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무빙 -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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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서울 가느라 혼자 기차를 타는 일이 잦은데 옆자리 할아버지가 앉으실 때부터 약간 자리 침범해 앉으시고 해서 잘 앉아 달라 부탁드렸다. 그런데도 자꾸 들썩거리다 엉덩이 닿으려 해서 각자 칸에 잘 앉아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그랬더니 내가 언제 닿기라도 했냐 이상한 여자다 소리소리 지르고.


창피해서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하시라 하고 벨도 진동을 못하셔서 자꾸 울리는 것 같길래 바꾸어드렸다. 어르신, 부탁드린 거니 흥분하지 마세요, 하며. 흠. 나도 이젠 차분해져서 다행이야. 진짜 성적인 느낌보다는 불편해서였는데 A로 말해도 B로 듣게 되는 상황이니. 다음에는 애초에 승무원에게 조용히 말해서 자리를 바꾸어가야겠다.

참으로 난감하고 화나는 상황이지만 이 산문집을 읽고 있어서 진정할 수 있었다.

 

1부 이 몸으로 말하자면

 

이 부위를 개발하여 면적을 넓힌 사람에게는 '어깨 깡패'라는 별칭을 부여하며, 다른 폭력은 쓰지도 않은 채 이 부위만으로 사람을 겁주는 부류의 사람들을 '어깨'라고 부른다.

신체의 중요한 부위이지만,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례로 사람들이 '머리 어깨 무릎 발'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머리와 무릎과 발은 정확하게 지칭하는 반면 어깨는 대충 훑고 지나가는 일이 잦다. p.73

 

소설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나는 겨울잠을 자야 할 처지였다. 왼쪽 어깨는 화강암처럼 굳어 있어서 곧바로 잘라 내 비석으로 써도 될 정도였다." p. 82

 

어깨 깡패, 쩍벌남 님이 나이 들면 저렇게 된다. 그 난리를 겪고도 내가 미소 지으며 책을 보니 아까 어깨 할아버님은 책 제목이 알고 싶어 들썩들썩. 이런 식으로 몸에 대한 아재 개그, 아재 감성이 계속 이어진다.

 

종아리

무릎과 발목 사이의 다리 뒤쪽을 가리키는 단어이며, 포유류인 인간의 몸에 유일하게 알이 꽉 차는 부위이기도 하다....종아리 뒤쪽의 살이 볼록한 부분을 장딴지라고 부르는데 이는 '좋은 단지'라는 뜻으로 조상들의 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무처럼 생긴 우리의 다리를 단지에 담긴 무에 비유함으로써, 무처럼 생긴 다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깨워준다. p.75

 

턱 돌아가는 수가 있다는 것은 '너의 아랫니를 모두 뽑히게 만들어서 너의 턱을 유아기 상태로 돌아가게 만들겠다'는 표현인 것이다.  p.77

 

처음에 작가님이 수영을 배우러 가서 벗은 몸에 익숙해지는 것도 힘든데 벗은 몸을 움직이기까지 해야했다, 에서 뿜기 시작해서 자주 들썩거렸다.

 

간단한 문제다.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팔을 흔들면 오른손이 왼손을 믿게 되고 물에 뜰 수 있게 된다......수영이 잘 늘지 않을 때마다 저 말을 생각했다. 오른손이 왼손을 믿도록,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그 말을 생각하면 몸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p. 22-23 

 

나도 요즘 자주 어깨에 힘이 들어가 생활이 뻣뻣해진듯하다. 유연성을 잃고 매사 너무 심각해졌다.

 

스트레칭을 하면 몸이 얼마나 굳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많은 부분들로 연결되어 있는지, 얼마나 뻣뻣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인간은 어쩌면 부드러운 존재로 태어나 점차 딱딱해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p. 84-85

 

원래 이 부분은 삽화가 멋지다. 몸에 대한 설명에도 삽화가 곁들여 있는데 웹툰 작가하셔도 좋을 만큼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져 있다.

 

2부 발뒤꿈치를 아름다운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

 

최근엔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 영화를 통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많이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발에 대한 강박이 복종적인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프로이트의 견해를 제시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발에 집착하는 남성들은 여성에게 굴복당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채찍을 들고 굽 놓은 부츠를 신고 발가벗은 남자 위에 군림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며 남자들은 흥분한다. p.98  

 

작가님은 소심하게 하이힐에 찔리면 아프겠다는 생각을 하신다고 ㅋㅋ 남자의 팔 페티시를 유발하는 데 발냄새가 크게 작용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외에도 발 페티시가 있는 남자들은 구두 디자인과 여성의 성적 경험을 동일시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파인 구두를 통해 보이는 발가락 골이 여성의 가슴골을 닮았다니 참 그쪽으로 상상력이 무궁무진하구나, 남자들은. 물론 일부겠지만.

그야말로 '알쓸신잡'이지만 소개된 영화나 책을 한번쯤은 보고 싶어졌다.

 

3부 아름답고 슬프고 경쾌하게 비틀거린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를 보고 하루에 그 날의 1초씩 찍어 1년치 영상을 만들어본다는 시도가 훌륭했다. 물론 하루의 1초를 선정하기도 쉽지 않고 매일 찍기도 힘들겠지만 그런 노력들이 우리를 좀더 능동적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가 하늘 높이 던진 야구공 같은 존재들이다. 끝도 없이 높이, 아주 높이 하늘로 올라가다 어느 순간 정점에서 잠시 머물곤 곧장 아래로 추락한다. 영화 속 어머니 역할의 퍼트리샤 아퀘트는 아들을 대학으로 떠나보내며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라고 소리지르며 운다. 추락을 앞둔 야구공의 고백이다. 어쩐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누구나 뭔가 더 있을 줄 아니까 사는 거지. p.167

 

이 책에 많은 영화가 소개되지만 이 구절 때문에라도 <보이 후드>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을, 인생을 좀더 이해할 수 있는 영화가 될 듯하다.

 

4부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4부에서 문신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장교는 죄인의 등에 죄목을 12시간 동안 바늘로 찔러가며 새긴다. 판결 내용을 알 수 없지 않냐고 하니 알려줘봐야 소용이 없고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아야 한다고! 영화 <와일드>에서도 남녀가 이혼 기념으로 문신을 새긴다. 철없는 시절에 '아모르 파티'를 새기고 싶었던 적이 잠시 있었는데  요새 노래 아모르 파티가 유행하는 걸 보고 하지 않기를 천만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이효리 영향으로 처자들이 문신을 아무래도 손목이나 발목에 새기는 경우가 많은데 가늘고 예쁘게 새기면 여리여리해 보여서가 아닐까?  

아니면 가장 연약해 보이는 데이니 마음 약해지지 말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걸까?

 

손목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붙잡는 이유는 인체에서 가장 연약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손목을 붙잡는 것은 '내가 당신을 구하겠다'는 상징적인 메시지이기도 한데, 정작 남자들은 여자의 손목을 붙잡은 후에는 '맨스플레인'에 주력한다는 통계가 있다. 자살할 때에도 이 부위에 상처를 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손목이 신체 중에서 흉터를 감추기 가장 힘든 부위이므로 되돌릴 수 없는 일을 감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p.271

 

물론 이치에는 닿지 않는 설명이지만 남자들의 심리를 잘 아는듯하다. 1부-4부 내내 이렇게  간간이 인체 사전이 등장하는데 '아재 감성'이지만 나도 옛날 사람이라 재미 있게 보았다.

 

<바디무빙> 역시 김중혁 작가님은 역시 산문이지, 라고 할 만큼 잡다하고 유익했다. 어떤 순간에 어느 페이지를 펴든 잠시 웃을 수 있다. 자려고 누웠다가 뜬금없이 <내숭고환 자위행위> 이 노래를 유튜브에 검색하기도 하고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들의 발목에 걸린 발찌를 보거나 할 때 발 페티쉬에 대한 주장이 생각나 웃기도 한다.   

 

아직 인생의 비밀 같은 것은

전혀 모를 나이이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지만,

죽을 때까지 팔다리를 흔들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버둥거리기보다

춤을 추며 살고 싶다.

춤을 추며 죽고 싶다.

 

어깨에 힘빼고 가볍게 살 것이다.

나 자신이나 타인의 몸에 대해, 접촉에 대해 좀더 관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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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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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를 힘든 시기에 읽어냈다. 도저히 뭔가가 눈에 들어올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용케도 읽어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5.18.

정말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 것일까?

 

각자가 쌓아온 견고한 일상이 폭압적 국가권력에 의해 한순간에 허물어진다. 그리고 한번 무너진 것은 결코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작가는 잔인하고 폭압적인 상황을 순결하고 정결한 언어로 그려냈다. 각 캐릭터가 품위를 잃지 않도록 언어를 얼마나 고르고 골랐는지 알 수 있었다.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p. 211

 

작가가 광주에서 산 적이 있어 공간에 대한 묘사도 훌륭했다. 다행히 나 역시 금남로, 상무지구 등을 다녀본 적이 있어 머릿속에 그려가며 읽을수 있었다.

 

내 어린시절도 80년대의 폭압적인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고 감히 주장해본다.  

 

전라도 시골 출신인 우리 아버지는 올림픽 열기가 막 시작되려는 86년에 짧은 생을 마감하셨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에 의한 죽음은 아닌, 정말 허망한 사고 때문이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p.99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누가 물어보면 그냥 교통사고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아버지는 범죄의 희생자였다. 초동수사가 허술해 30년 전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최근에 경찰인 친구를 통해 알아보려 했으나 기록이 폐기되었다는 답을 들었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던 그 즈음이었다. 신문에 한 줄로도 나오지 않은 그런 사건이었다.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한 불행한 사내의 죽음과 관련해 순간 배우자를 용의선상에 올려두고 수사를 시작한다. 어떻게든 뭔가 만들어보고자 했으나 결국 증거 미비로 며칠 만에 풀려난다. 허나 아버지 부모형제들은 이로 인해 엄마를 배척하게 된다.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한 형사에게 국밥을 얻어먹으며 엄마는 언제 귀가했고 평소 아빠와 사이는 어떠했는지 집요하게 질문을 받았다. 맞거나 위협적 상황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너무 반복하니 답이 자꾸만 달라졌다.

 

엄마는 00시에 00에서 집을 나갔니?

 

00시에 무슨 문소리를 들었니?

 

22시인지 10시인지 왜 같은지 다른지 10살이 분간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형사는 왜 답이 다르냐고 잘 기억해보라고 중요하다고 다그쳤다. 3학년이 그것도 하나 모르냐고.

 

엄마 어디 데려 갈까봐 무서워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거짓말 하는 아이는 나쁘다고.

 

흰셔츠에, 툭 튀어나온 배, 검정 가죽벨트로 기억되는 아저씨였다. 우리 반 친구 아버지 같았고 내게 다정하게 숟가락을 쥐어 주었다. 깍두기와 뿌연 국물과 알루미늄 오봉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 p. 134

 

엄마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모들은, 외삼촌들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들었다. 당시 여대생이었던 이모는 한 경찰관이랑 노래방(순간 노래방이 그 시기에 있었을까 가라오케였나, 호프였나 잠시 딴생각을 하긴 했다)에 갔고 오토바이를 타고 그자의 등에 매달려 집에 왔다고 한다. 삼촌은 정강이를 딱 한번 맞았는데 죽도록 때린 건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00 경찰서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고 하셨다.

 

다들 격앙된 어조로 때로는 차분한 어조로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어. 다, 잊자 한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p.79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5월에 어떤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엄마의 간곡한 부탁으로 내 결혼식에 친가쪽 사람들을 보고 이후 처음 온 연락이었다. 뜬금없는 안부인사로 시작되었으나 아버지가 남긴 땅을 우리가 제때 등기이전을 안해둔 탓에 지지부진한 다툼이 있었다.  

 

아예 개념 자체가 다른데 말이 통할리가! 그분들의 시계는 엄마가 30대이고 내가 열 살이던 때에 멈춘듯했다. 남편 잡아먹은 여자와 어린 여자애들에게서 자신들의 땅?을 가져가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듯했다. 특히 가장 집요한 분은 이사 간 외가에까지 따라와 엄마 머리채를 잡고 우리에게 모진 말을 했던 친척이라 상대하다보니 거친 말이 오갔다. 전화를 끊고 나서 손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땅을 그냥 달라는 게 아니라며 푼돈?을 제시하고 아버지 산소에도 못갈 거라고 소송해서 땅을 찾을 거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어릴 때 맺힌 걸 아직도 못 잊고 그런다, 사납다 등등

 

이때 내가 정말 생뚱맞게 그리 오래되었는데 오일팔이 잊히던가요? 라고 했다.

 

그분은 그제야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너네 일이 어찌 그거에 비교되냐.

그때는 그냥 그런 시절이었어.

 

고심 끝에 전화를 수신차단했다. 법무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다 수수료가 아까워 물어물어가며 등기 이전을 마쳤다.

 

오일팔 기념식에 갈까 아주 잠시 고민하다 그곳은 어쩐지 너무 멀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일처리를 하다 기념식 생중계는 보지 못했다. 그러다 오후 뉴스를 보았는데 대통령이 유족을 안아주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53년생으로 알고 있던 우리 아버지는 사실은 52년생이고, 나는 유족도 아니다. 그래도 한동안 코끝이 찡해서 서재에서 나오지를 못했다.

 

밥하러 나오니 애들이 또 나쁜 할아버지 전화 받았어 한다.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로 가, 꽃 핀 쪽으로.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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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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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 ‘상실’, 그것도 회복될 수 없는 크나큰 '상실' 그리고 '상실 이후의 삶'을 말하는 이야기들을 꾸준히 읽었다. 아무래도 중년에 접어들어 이제는 잃어갈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인 듯하다. 사회적으로도 세월호 이후 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 읽은 <오직 두 사람>,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도 그랬다.

 

“나는 상실에 대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상실을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가 더 좋다.”(김중혁, <바디무빙>, 41쪽).

<바깥은 여름>의 각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상실’이었다. 김애란은 독자가 상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담담하게 짐작하고 헤아리게 만든다.

 

<입동>에서 부부는 대출을 끼고 정착하려 마련한 집 앞에서 아이를 잃는다. 연식은 있지만 단지 근처에 어린이집이 있고 적당히 리폼만 하면 북유럽풍(?)으로 변신 가능한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그들은 행복했다. 적어도 아들의 차량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어린이집에서 사고 이후 무심하게 발송한 복분자병을 시어머니가 열어보다 병이 폭발해 올리브색 벽지에 흉하게 시뻘건 얼룩이 번진다. 부부는 이 얼룩을 감추려 도배를 새로 하다가 아이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제 막 말을 배우고 손힘을 길러 이름자를 쓰려 애쓰던 그 아이를 다시는 볼 수 없다.

아내는 한 손으로 영우가 직접 쓴, 아니 쓰다 만 이름을 어루만졌다. 순간 어디선가 영우가 다다다다 뛰어와 두 팔로 내 다리를 감싸안을 것 같았다. p.37

 

도배지를 든 채로 벌서듯 서서 두 팔을 바들바들 떠는 주인공을 떠올리며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를 듣는다.

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냐/수없이 많은 나날들 속을/반짝이고 있어 항상 고마웠어/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너 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마음 둘 곳이라곤 없는 이 세상 속에.

 

<노찬성과 에반>은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외롭게 살아가는 소년이 유기견 에반마저 잃게 되는 이야기이다. 일단 아무도 찬성하지 않은 듯한 존재라는 소년의 이름과 소년이 귀하게 여기는 유기견 ‘에반’(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끈 변신미니카 중 최고 인기템. 최근에는 인기 급하락)의 명명에 실망해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을 준, 유기견의 고통을 알고 소년은 안락사를 시키려 전단지 알바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아이다운 욕망에 굴복해 돈도 다 쓰고 에반은 고통만 받다 허망하게 간다. 이남호의 <서사문학의 이해>에 따르면 개연성이 주로 플롯상의 그럴듯함을 가리킨다면, 핍진성(逼眞性)은 서사의 여러 측면에서 그 서사가 실제 현실과 흡사한 느낌을 주는 것을 뜻한다. 이런 정의에 따를 때 <노찬성과 에반>은 개연성은 있으나 하층 소년의 심리 묘사나 상황 면에서 볼 때 핍진성이 결핍되어 있어 아쉬웠다.

 

 

<건너편>은 노량진에서 수험생활을 하며 만났던 커플이 헤어지는 지지부진한 과정을 담았다. 도화는 힘든 수험생활에 결실을 맺어 실패한 이수가 답답하기만 하다. 이수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기회를 주려 같이 살던 집의 전세금까지 빼돌려 몰래 시험을 준비하지만 둘의 관계는 끝나고 만다.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마냥. 이수는 이제 ......어디로 갈까? p. 119   

 

<침묵의 미래>는 외부와 접촉이 제한된 ‘소수언어박물관’에서 천여 명의 화자가 천여 개의 언어를 지키며 산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언어를 잃어간다는 건 존재를 잃는 것이다. 그나마 자신의 언어로 소통할 만한 다른 화자가 있는 사람들은 버티어가겠지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홀로 쓰는 사람은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나날이 닳아갈 것이다.

 

다 죽고 살아남은 건, 오직 자기 자신과 엄청나게 아름답고 어마어마하게 정교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그 ‘말’뿐이라는 걸......결국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이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과 침묵 속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 애썼다. p.128

종군위안부, 게이, 조현병 환자의 언어를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같은 한국어를 쓴다고 해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의 언어 체계에서 같은 것을 보고 겪은 이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소수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하고 무섭고 외롭고 아름다운 것일까. 우주공간에 버려져 지구를 바라보는 ‘악몽 같은 아름다움’일지도 모르겠다.

 

 

<풍경의 쓸모>에서 시간강사 정우는 오래전에 여자와 바람이 나서 가정을 버린 아버지와 연락이 닿게 된다. 아버지와 연락을 피해가며 살아가던 중 같은 대학 정규직교수가 일으킨 교통사고를 자기 것으로 떠맡고도 자리를 얻지 못한다. 새여자를 살리게 돈을 달라던 아버지 부탁을 외면했고 결국 새여자의 부음을 듣게 된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p.173

'전형적인’ 불륜인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자신도 살아가며 ‘불륜’을 저지르고 인상이 미묘하게 변하며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

 

 

<가리는 손>은 다문화가정의 아이가 묻지마 폭행에 가담하여 노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그렸다.

 

불현듯 저 손, 동영상에 나온 손,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재이가 황급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재이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p.220

엄마는 재이에게 외국인 아버지가 여기 일하러 온 게 아니라 공부하러 온 거고 고향집에 하인도 있었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차별을 반대한다지만 차별을 내면화하고 있고 약자를 배제하고 무시한다. 이것에 가장 취약한 것이 자라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쉽게 ‘혐오 발언’에 동화된다. 재이와 그 무리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하층 노인을 ‘틀딱’이라 비하하고 폭력을 가한다. 짧은 생애 동안 차별로 인해 가장 상처받았을 재이는 그 순간 정말 웃었을까. 아니면 경악한 것일까?

 

언젠가 티비를 트니 아일랜드 슬래인캐슬에서 이소라가 <바람이 분다>를 부르고 있었다. 언제 들어도 먹먹하고 힘든 노래. 유희열은 앞에 잡음이 들어가 다시 불렀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이소라는 다시 부르기 힘들다고 거절한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전에 <바람이 분다>를 듣다보면 혈관 아래 진토닉이 흐르는 듯하다고 했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읽는 내내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스며드는 단편이었다.

남편은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다 순직한다. 남겨진 부인은 사촌언니 초청으로 스코틀랜드로 떠나 ‘장미색 비강진’이라는 피부병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고여간다. 에든버러에서 유학중인 친구를 만나지만 남편의 부고를 알릴 수도 없었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온다. 착한 사람인 김애란 작가는 역시나 이 착한 사모님이 안쓰러워 사망한 아이의 누이가 보내는 편지를 굳이 말미에 덧붙였다. 나라면 쓸쓸하게 휴대폰에 이런저런 얘기를 묻고 죽은아이 누나한테 편지를 받게 하느니 옛 썸남이 있는 외국으로 돌려보내련다. 가버린 사람은 무심하게도 기억 속 그대로인데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들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패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의 말>까지 공들여 읽는데 기차 차창 밖으로 여러 풍경이 스쳐지나간다. 풍경이, 계절이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면서 뒤로 스쳐 지나간다. 내가 잡았던 손과 놓았던 손을 생각하기도 하고 하지 못한 말과 해서는 안 되었던 말들을 삼킨다. 영등포 역에서 내려 ‘오직 세 사람’의 언어를 쓰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동인천 급행을 타고 오랫동안 병중인 엄마를 만나러 간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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