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1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읽는 이외수 씨의 소설이었다.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채 작품을 읽는 것은 때로는 하나의 축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괴물>을 처음으로 읽은 내게 있어 이외수 씨의 다른 작품들까지도 그다지 기대되거나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문장은 참으로 좋다.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때때로 등장하는 동물학 식물학 심리학 화학 용어들에 대해서 작가는 현학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 독자층을 의식해서가 아니다. 작가는 소탈하다. 더 좋게 말하면 진실하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참 좋다.

옴니버스의 형식을 차용한 점에서도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같은 내용이라도 일대기 형식으로 죽 써내려갔다면 지루했을 것이다.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충분히 완결성을 띠며 이외수 씨의 진솔미가 드러나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아무래도 각 에피소드들이 다루고 있는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들이다. 절도, 살인, 섹스, 네크로필리아, 사기, 전생 등. 이것들이 결국에는 분리되지 않고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를 전달하는 구성이다.

그러나 그 전체적인 주제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도입부는 물론 작품의 중반까지 이 작품을 피카레스크로 보는데 아무 무리도 없다. 그리고 초생일류라 자처하는 주인공 전진철의 야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악'은 패배한다. 그것도 불교의 힘에 의해서다. 이것은 톨스토이만큼 교훈적인 결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이외수 씨가 전하고 싶었던 주제를 톨스토이로 치환해버리고 나면 이 소설에서 남는 것은 충격적인 소재와 유연한 언어를 빌린 현대사회, 더 구체적으로는 도시문명의 비판이다. 동양적인 것 그리고 자연적인 것에 대한 경도가 때때로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역시 개인적으로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종평점은 별 3개반.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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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바이야트 민음사 세계시인선 12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지음 / 민음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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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영문학도에게는 잘 알려진 작품이라 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원작자는 오마르 카이얌이라는 11세기의 페르시아 수학자라는 점이다. 이것을 19세기에 영국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재발견하여 번역한 것이 당대 사회 분위기에 딱 맞아 히트를 쳤고 그렇게 영문학사에 있어 고전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피츠제럴드가 원전에 충실해 번역을 하지 않은 것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한글 번역본을 읽으면서 페르시아 원전을 너무 많이 훼손했다고 따질 수도 없는 일이고 오마르의 루바이(4행시)가 아닌 작자미상의 루바이를 끼워넣었다고 따질 수도 없는 일이다. 어디까지나 2차 창작으로서 이것은 피츠제럴드의 창작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 피츠제럴드의 영어 원문으로 이 작품을 감상하는게 오히려 예의라고 할 수도 있겠다.

19세기 말엽 유럽은 이른바 세기말 사조에 휩쓸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극한 현세주의 혹은 carpe diem을 노래하고 있는 [루바이야트]가 인기를 얻었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얼마전까지 20세기초에 서있던 우리에게도 이는 전혀 먹히지 않을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조상도 노래했다고 하지 않던가, '풍류'라는 것을. 실제로 이 책은 읽는 재미가 있다. 동시에 헤도니즘이라기보다는 에피쿠리어니즘을 배경으로 깔고 있기에 천박하게만 보이지도 않는다. 일상의 소중함을 자극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 '자 이제 열심히 살아야지?'하며 은근슬쩍 퓨리터니즘을 강요하는 다른 수많은 책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삶에 지쳤을 때, 달리는 것을 멈추고 다른 책이 아닌 이 책을 손에 들도록 하자. 끝으로 영어 원문을 읽을 수 있는 사이트를 하나 소개한다. 민음사의 이 책은 피츠제럴드의 [루바이야트] 초판에 들어있던 삽화가 들어있지만 이 사이트에서는 다른 삽화를 만날 수 있다. by f.y.

사이트주소 http://www.arabiannights.org/rubaiy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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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일신서적 세계명작100선 82
오스카 와일드 지음 / 일신서적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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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스카 와일드의 이름을 들어봤다면, 그리고 조금의 관심을 느꼈다면 일단 이 단 하나뿐인 장편을 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그런 것을 차치해보자. 그럼에도 이 작품은 완벽하다. 어쩌면 당연하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철학을 가진 자가 쓴 이 소설 역시 하나의 '예술을 위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생략하자. 이 소설의 가치는 첫째로 소설 안에서 헨리 경의 이름을 빌려 말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사상을 접할 수 있다는데 있다. 사실 플롯이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은 소설이다. 그렇다고 문장력이 뛰어난가 하면, 물론 뛰어나긴 하지만, 완벽할 정도는 못 된다(이것은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11장과 같이 별다른 플롯이나 대화도 없는 부분에서 이 책의 번역은 상당히 독자를 애먹인다).

수식과 묘사로 부드럽게 흐른다기보다 대화와 설명으로 차 있는 소설이다(그의 단편은 특히 간결한 문체로 인해 영국보다도 유럽에서 더 유명하며 교재로도 잘 쓰인다). 헨리 경의 입을 빌려 대화체로 풀려나가는 오스카 와일드의 사상과 독설, 기지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만큼 매혹적이다.

둘째로 인간의 영혼을 대신 반영하는 초상화라는 환상적인 소재와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포라면 이러한 소재로 심리, 괴기 소설을 쓸 수 있었겠지만 와일드는 대신에 유미주의와 헤도니즘의 경전 - 당위적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美이자 쾌락인 - 을 써버리고 말았다. 도리안 그레이는 바로 이 경전을 찾은 선택된 독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와일드의 분신인 헨리 경의 영향으로 악(혹은 쾌락)에 빠져들고 파국을 맞이하지만 와일드는 여기에 일말의 교훈도 비판도 남기지 않는다. 아니 최소한의 책임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 도리안이 많은 사람들을 파국으로 몰고 갔을 때처럼. 자신에게 영원한 젊음을 안겨준 초상화를 스스로 파괴한 도리안이 초상화 대신 죽는 결말조차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결코 한 가지 결론만은 아니다. 당신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끝으로 'All art is quite useless'라는 이 책에 등장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격언을 상기한다. 이 '잘 쓰여진' 한 권의 예술은 분명히 지극히 無用하다. 더 말해 무엇하리, 나는 이 무용함에 열광한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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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akuta 가라쿠타 - 요네하라 히데유키 걸작 단편집
요네하라 히데유키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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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풀 어헤드! 코코](이하 코코)로 뜬 작가의 이름세를 타고 발매된 또하나의 초기 단편집이다([초콜렛 블루스] 리뷰 참고-_-). 4개의 작품이 들어있는데 한결같이 깔끔한 단편의 미학에 충실하다. 초기 작품임이 티가 나는 것은 일단 그림체에서다. 혼자 작업했는지 어딘가 엉성하고 나쁘게 말하면 대충 그린듯도 보이지만 코코에서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내용도 코코에 비하면 비교적 어두운 정서가 흐르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퇴물'의 정서를 그리려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하면 현대를 살아가는 10대의 암울한 정서와도 잘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책 분량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책제목과 동명인 '가라쿠타'에 대한 이야기이며 다른 단편들도 역시 10대의 일상을 다루고는 있지만 아주 우울한 작품들은 아니다. 다만 전작품에 코코에서와 같은 소년만화적 '어쨌거나 낙관주의'의 정서가 흐르지 않음은 오히려 상당히 신선한 시도로 느껴진다. 10대의 이야기지만 오히려 20대가 보아야 적절한 그런 이야기들이다. 특히 설사에 고생하는 주인공과 왕따 당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다른 소년만화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소재라서 더 그렇다. 일인 영웅화 혹은 집단 영웅화되는 주인공들에 식상한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반적인 퀄리티는 초기작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만 작가의 팬이라면 역시 소장해야 될만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대가의 아직 다듬어지기 전 작품들이 더 매력적인 경우가 가끔 있는데 바로 [가라쿠타]의 경우라 할 수 있겠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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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 Noise 1
니헤이 츠토무 지음 / 세주문화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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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브레임](이하 블레임) 작가의 단편 아니 사실은 블레임의 외전격인 작품으로, 블레임의 세계관과 동일선상에서 블레임 이전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작가는 블레임을 읽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 같다. 만은, 사실 그다지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

블레임이 디스토피아 속에서 실낱 같은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내용인데 반해, 본작 [노이즈]는 아포칼립스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어째 둘다 디스토피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동일하다. 본작에서의 아포칼립스란 바로 일개 '교단'으로 인해 전인류(?)의 넷단말 유전자 제거가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넷스피어가 무한 증식하게 되면서 비인간(통상적인 의미로서의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의 개체수가 인간의 수를 압도하게 된다는 설정인 듯싶다.

이 과정에서 넷스피어의 안정을 꾀하는 세력인 세이프가드의 존재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블레임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으로는 배후 세계관이 베일에 묻혀있어 독자로 하여금 이해를 어렵게 한다. 이것은 워낙 대사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주문화측의 블레임 날림 번역도 한몫을 한다.

블레임을 연재하는 중간에 쓴 작품인지 작/화풍은 블레임과 똑같다.(맨뒤에 부록격으로 수록된 초기작을 제외하면.) 어두운 배경과, 무거운 스크린톤, 거친 그림체와 절제된 대사, 그리고 수족이 떨어져나가도 표정조차 변하지 않는 인물들의 무표정, 무감정까지. 또한 '악당'격으로 등장하는 교단의 '비인간'들의 디자인 역시 블레임에서와 마찬가지로 수준급의 그로테스크를 자랑한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맨 뒤에 수록된 초기작인데, 아직 자기 스타일을 성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블레임으로 가기 전의 과도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필살무기' 분위기의 마지막 한 방을 아끼는 부분(이것은 블레임에서도 등장하지만 차이점은 블레임에서는 카타르시스가 없다는 점이다.)과 엔딩에서 주인공의 쓸쓸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등은 작가의 아직 하드보일드하지 못한 풋풋함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작가가 지금 블레임에서 드러내는 정서는 참을 수 없으리만큼 건조하다. 최소한의 육체적 고통이나 냉소조차도 억제되어 있다. 타 SF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어디까지가 인간이냐'하는 정체성의 질문에 대한 대답조차 블레임에서는 부재한다. 이러한 하드보일드를 넘어선 건조함에 나는 열광한다. [지뢰진]과 마찬가지로.

본작 [노이즈]는 블레임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블레임을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독자적인 평가는 어렵다. 본 리뷰가 거의 블레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완결이 나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는 리뷰를 쓰지 않는 주의인고로 블레임에 대한 리뷰는 유보하고 있는데, 이는 유쾌한 기다림에 다름아니다. 앞으로의 블레임에 많은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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