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디자인 레벨업 가이드 - 개정2판, 유저가 열광하는 위대한 게임을 만드는 기획
스콧 로저스 지음, 우정은 외 옮김 / 한빛미디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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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화가 그렇듯 게임(비디오게임)은 시각매체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영화의 언어 혹은 문법이 게임에도 적용된다. 당장 오늘날 대작 게임들의 컷신이나 트레일러는 하나의 영화 예고편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우리는 <위처 2> 오프닝을 보며 숨죽였고 <배틀필드 1> 트레일러에 열광했다. 이러한 동영상에는 우리가 흔히 영화를 분석할 때 사용하는 용어들, 예컨대 카메라, 미장센, 움직임, 음향, 스토리 등이 모두 적용된다(루이스 자네티의 고전 『영화의 이해』 목차를 보면 알기 쉽다. 물론 광학, 연기, 몽타주 같은 것들은 예외지만). 오늘날 게임이 아니라도 루카스아츠의 <룸>이나 <원숭이섬의 비밀> 같은 황금시대 어드벤처 게임의 미장센을 떠올려보라. 여기에 <어둠 속에 나홀로>(1992)는 플레이어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카메라 워크와 음향을 선보였다. 호러 어드벤처 게임을 즐긴다면 이 게임이 후대 <바이오하자드> 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잘 알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영화 이론을 공부하듯,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게임 이론을 공부해야 한다. 복잡하고 학술적인 이론이 아니라(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적어도 앞에서 예로 든 카메라, 미장센, 음향 같은 기본적인 요소로 게임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에서 감독은 시각매체로서의 특성을 고려해서 화면을 나누고 카메라나 인물을 움직여 관객에게 자신이 의도한 감정을 전달한다(다시 말하지만 편집은 예외로 하자). 왜 모든 횡스크롤 게임은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할까? 100년 동안 영화 이론가들이 연구했듯 그것이 시각적으로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고전 영화를 예로 들면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의 마지막 ‘죽음의 무도’ 장면에서 인물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고, 이는 관객에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불편해야 한다. ‘죽음’에게 끌려가는 중이니까.

이렇게 100년 동안 우리가 익숙해진 영화의 문법은 같은 시각매체예술인 게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도, 게임에서는 ‘재미’가 가장 중요한 가치다 보니 다른 요소들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국내에 나온 게임 기획 도서 중에 앵글이나 숏, 움직임 같은 것을 다룬 책은 전무했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게임 기획이라는 일 자체가 낯설고 토양도 척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잘해야 재미 이론을 따분하게 설명하거나, 컨셉 및 아이디어 구상법, 시나리오 작법, 게임 디자인 문서 및 프레젠테이션 문서 작성법 같은 걸 다뤘다. 게임 용어나 장르를 설명하거나 게임 회사 취업하는 법 같은 걸 다루는 책도 있긴 했다. 하지만 게임의 시각적 특성까지 다루는 책은 『게임 디자인 레벨업 가이드』가 나오기 전까지는 없었다.

물론 재미가 중요한 것은 몇 번을 강조해도 틀림이 없다. 재미는 모든 게임의 중심이고, 재미를 다루지 않는 게임 기획은 게임 기획이 아니다. 『게임 디자인 레벨업 가이드』의 첫 번째 미덕은 재미에 대한 재미없는 이론 대신 책 전체를 재미있게 쓰고 그렸다는 점에 있다. 두 번째 미덕은 앞에서 언급한 아이디어, 시나리오, 문서 작업, 프레젠테이션 등 기존 책들이 다루는 모든 요소를 다루는 동시에 다른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카메라, 움직임, HUD 등 게임의 시각적 특성도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아마 영화 편집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180도 규칙(186쪽) 같은 용어가 게임 관련 책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도 있겠다.

컨셉 단계에서 일차 목표인 재미를 달성했다면 그다음은 플레이어에게 감각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재미를 전달해야 한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시각, 가장 즉각적이고 강력한 감각이다. 현재 국내 상황에서 게임의 시각적 특성에 대한 고려까지 기획자에게 바라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이를 반대로 말하면 게임의 질을 높이고 차별화할 수 있는 포인트가 남아 있다는 뜻도 된다. 제목처럼 게임 기획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레벨업하고 싶은 모든 기획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16-9-27 교보문고 READ IT 칼럼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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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장이의 딸 - 상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박현주 옮김 / 아고라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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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이스 캐럴 오츠는 [악몽]이나 [소녀 수집하는 노인]으로 들어본 작가였다. 옛날에 [악몽]을 사두긴 했는데 읽지 않고 있다가, 어쩌다 보니 [사토장이의 딸]을 먼저 집어 들고는 몇 달 걸려 다 읽었다. 작은 판형이긴 하지만 상권 512쪽, 하권 464쪽으로 1000쪽에 육박하는 분량이다. 게다가 이게 무려 36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하니 정말 창작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작가인 듯하다. 그렇게 다작을 하면서도 25년 넘게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된다고 하니 또 놀랍다.


두꺼운 책이다 보니 띄엄띄엄 쉬엄쉬엄 읽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의 온도가 높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소설의 1부는 1959년을 배경으로 시작해 화자가 남편 티그너와 뭔가 원만치 않은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 곧 1936년 유대인인 화자 가족이 홀로코스트를 피해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 오던 당시부터 회상이 시작된다. 화자의 가족은 낯선 땅에서 사토장이(묘지 관리인)의 가족으로 어렵게 살아간다.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정신과 육체는 무너져가고, 마침내 1949년 화자의 아버지 제이콥 슈워트는 면식도 없는 묘지 방문객을 ‘적’으로 간주해 총으로 쏴 죽인다. 이어서 화자의 어머니 안나도 죽이고 화자마저 쏘려 하다 포기하고는 자신의 턱에 방아쇠를 당긴다(안나는 작가 자신의 할머니가 모델로, 그녀의 아버지도 자살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상권의 절반.


1부의 나머지는 화자가 후견인 가정에 입양되고 호텔 일을 하다 티그너를 만나 결혼하고 출산하고, 그리고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는 과정을 1959년까지 그린다. 1부 끄트머리가 하권의 앞부분으로 들어가 있고, 여기서 마침내 화자는 아들 잭과 함께 집을 탈출한다. 2부는 이 모자가 티그너를 피해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다. 그러다 마침내 뉴욕 주 북쪽 끝에서 미디어 그룹 재벌가 갤러허를 만나 정착하고, 피아노에 재능이 있던 잭은 갤러허의 후원으로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게 된다. 3부는 짧다. 1974년으로 시작한다. 잭은 성장하며 콩쿠르를 휩쓸고 화자는 성인의 문턱에 접어든 아들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끝.


플롯을 정리한다고 적긴 했는데, 재미는 없고 길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쓸 수밖에 없는 건, 소설이 실제로 이러한 개인 서사를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축약한 것만 읽어도 화자가 겪은 고난이 절절히 느껴지지 않는가. 여기에 인물(주로 화자) 내면 심리에 대한 직접적이고 때로는 장황하기까지 한 묘사가 섞여 들어간다.


사실 시대의 굴곡을 겪은 개인사(작가 자신 혹은 작가의 선조)를 엮어 소설로 승화한 작품은 많다. 가령 내가 읽었던 책 중 떠오르는 여성 작가가 쓴 소설로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는 [접골사의 딸]이나, 세대 수를 늘리면 [영혼의 집]이나 박완서의 [미망]도 있다. 그 형상화 방식 또한 여러 가지가 가능할 텐데, 오츠의 방식은 오히려 심리 묘사에 조금 더 치중하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긴 소설 내내 마치 주관을 주관이 아니라 객관으로 보이게 하며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한다. 재미는 없지만 결과는 탄탄하고, 이게 작가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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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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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면 간혹 보르헤스를 꺼내 읽곤 한다. 제정신으로 읽어도 어려운데 왜 술을 마시고 읽는가 하면… 역시 그냥 술기운을 빌린 지적 허영 때문이겠지. 그나마 15년 전에 읽던 황병하 역을 꺼내진 않는다. 새로 나온 송병선 역 [픽션들]이 아무래도 이럴 때 읽기는 낫다.

(그럼에도 101쪽 각주에 (저자 주) 표시를 빠뜨린 점이라든가(1쇄), 주격 조사를 잘못 사용한 것 같은 부분이 눈에 밟히는 걸 보면 민음사 책도 전에 찬양했던 만큼 완벽한 품질이 유지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특히 후자는 글이 워낙 어렵다 보니 원문이 문제인지 번역문이 문제인지 확신할 수 없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괴롭힌다.)

[픽션들]에서 좋아하는 작품은 딱 두 개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와 {바벨의 도서관}. 둘 다 보르헤스의 소설치고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 그런지 자주 회자되는 듯하다. 후자는 워낙 유명하다 보니 다른 대중예술에서도 흔히 오마주되고, 아예 libraryofbabel.info 같은 사이트까지 있을 정도다. 두 작품 다 내가 경도하는 ‘무한’을 흥미롭게 다룬다.

사실 {바벨의 도서관}은 소설이라기보다 사고실험에 가깝다. 황병하 판본에 비해 2쪽 줄어 단 12쪽에 불과하지만, 익히 알려졌듯 이 작품의 함의와 반향은 너무나도 거대하다. 바벨의 도서관은 “거대하지만 동일한 책이 두 권 존재하지는 않”으며 “모든 언어로 표현 가능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둘 다 102쪽) 위키백과에서는 친절하게 이 도서관에 있는 책의 수를 계산해놨다.

25글자 ^ (410쪽 * 40행 * 80열) = 25 ^ 1,312,000 ≒ 2 * 10 ^ 1834097


우연히도 이 수는 대략 불교에서 말하는 비살라(10 ^ 1835008)에 가깝다. 단, 위키백과에도 주석이 달려 있지만, 이는 제목을 고려하지 않은 수이므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이쯤 되면 확률조차 의미가 없다. 25글자가 아니라 한글이라면 어떨까? 한자라면? 유니코드(…)라면?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게 다른 게 좋은 작품이라지. 오늘 읽으면서는 뭔가 물리학(?)적인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은 무한하지만 주기적이다”(109쪽)라는 화자의 주장은 언뜻 유리수의 정의를 떠올리게 하지만, 무수한 육각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원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게 더 적절하다. 더욱 정확히는 원통일 것이다. 다만 이렇게 기하학적 상상력을 가미해서 평면(x, y축)의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상하(z축)의 무한(또는 순환)을 설명한 방법은 없다는 한계는 있다.

아니 나는 애초에 왜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는 거지… 굳이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세계의 누군가는 여기에 대해서도 분명히 연구하고 가설을 내놨을 텐데. 사실 이미 바벨의 도서관 어딘가에는 이 모든 것을 아주 쉽게 설명하는 책이 있을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동어반복에 빠지는”(108쪽) 일에 불과하지만, 내가 술을 마시고 갈겨쓴 이 졸문조차 그곳 어딘가에는 이미 존재한다. Q.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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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You Need is Kill 2 - 완결
오바타 타케시 지음, 사쿠라자카 히로시 원작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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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연히 코믹스를 접했고, 그다음에는 영화를 봤다. 원작을 읽으면 감동이 더하다고들 하는데, 원작까지는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이런 류의 작품은 설정이 9할이고, 미디어 믹스도 훌륭하게 이뤄졌다는 게 중론이니까(이렇게 귀차니즘을 변명해본다).

단 두 권뿐인 코믹스의 첫 화를 마쳤을 때 내 뇌(아마도 변연계)는 짜릿함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왔다. 정확히는 주인공이 이 세계의 룰을 알아차리고 각성(!)하는 장면. "루프물이다!" 그것도 밀리터리+근미래 SF+외계인 소재가 가미된 루프물이다! 덧붙여 러브스토리까지 있다! 가령 [에이리언 2]나 [프레데터]에 루프와 러브스토리를 가미했다고 상상해보라. 그야말로 심쿵! 작(화)가는 이 종합선물세트 같은 장르적 재미를 단 두 권이라는 간결한 구성 속에 더없이 훌륭하게 녹여냈다. 더 읽고 싶다는 여운이 넘칠 정도로. 정말로.

루프 설정에서 의문을 제기할 곳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 내가 대부분의 타임리프물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인,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주는 메커니즘' 부분. 이 작품에서는 시간을 초월한 타키온 입자라는 매개체로 어떻게 보면 명확하게 이 메커니즘을 설명하려 했는데, 그게 굉장히 납득할 만한가 하면, 글쎄. 사실 일반인의 머리에 썩 와 닿는 건 아니다. 물론 [프리퀀시](나아가 [동감] 그리고 [시그널])처럼 일반인에겐 쉽게 와 닿는 대신 아무런 과학적 설득력도 없는 매개체를 내세운 것보다는 백배 낫다고 본다.

사족이지만, 이걸 그나마 설득력 있게 다룬 예는 시간의 선형성이라는 전제 자체를 부정한 {네 인생의 이야기} 정도다. 물론 이 소설조차 개념의 명징함보다는 서사의 힘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고, 그걸 감안하면 코믹스에서 기대할 사안은 아니다. 그러려니 하고 봐야지. 그런 의미에서 [나인]이나 [시그널]이 꼭 나쁜 작품인 것도 아니다. 전자는 애틋한 러브스토리로서 성공했고, 후자는 형사물로서 가치가 있으니까.

본론으로 돌아와서, 톰 크루즈가 킹왕짱 영웅이 되는 영화 버전은 코믹스(이게 그나마 비교적 원작에 가까운 걸로 알고 있다)와 얼개가 매우 다른데, 좋은 의미에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러브스토리…는 빠졌다고 봐야 할 텐데, 오히려 그 덕분에(…) 해피엔드일 수 있었고, 또 그게 전혀 나쁘지도 않았다. 하위 장르가 이렇게 할리우드 영화가 되는 일은 물론 극소수이겠지만, 그래도 그나마 루프물은 (잘 쓰면 돈이 될) 가능성이 있는 하위 장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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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달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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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다. 내가 읽은 추리소설이라곤 정말 어렸을 때 집에서 굴러다니던 모리무라 세이지 같은 일본 사회파(미야베 미유키가 뜬 후에야 알게 된 용어다) 추리소설들이 전부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몇 권 정도 읽었을 것이다. 그래도 탐정이란 직업 자체에는 굉장히 흥미를 느꼈다. 아… 어렸을 땐 다 그런 거지.

 

어른(…)이 된 후에 읽는 추리소설은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이라든가 [빅 슬립] 정도다(이건 둘 다 하드보일드). 그리고 또 어째서인지 모르게 내 책장에 꽂혀 썩어가던 이 책까지 오게 됐다. 아마 "추리소설의 경계를 넘어선, 사랑과 죽음에 대한 환상적인 노래"라는 단평이 이 책을 사게 한 것 같다. 짧디 짧은 추리소설 독서 경력이지만, 그래도 비추어보건대 나는 적어도 과학수사나 치밀한 트릭 같은 데에는 관심이 없는 게 확실한 듯하다.

 

초반은 시점이 교차하다 보니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게 내 잘못인지 작가 잘못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문장과 문장 구성은 확실히 좀… 뭐랄까, 촌스럽다. 단문, 행갈이, 단문과 단문, 행갈이, 단문, 행갈이. 호흡이 빠르다 못해 가쁘다. 불필요한 행갈이가 지나치게 많다. 왜 근엄한 순문학 비평가들이 으레 아마추어들의 작품을 혹평할 때 이런 면을 보지 않던가. 내가 결코 그들 편인 건 아니지만, 이 책에 한해서는 그들에게 동의할 수 있다.

 

불성실하다.

불성실하고, 촌스럽다.

서사를 단문단의 연속으로 때우려 한다.

 

그렇다. 바로 이런 식의 행갈이다. 감각적인 수사(하루키라든가)나 모종의 정서(뒤라스라든가)로 이어지지 않는 이런 단문의 연속은, 그냥 불성실일 뿐이다. 불성실할뿐더러, 이미 앞 문장에서 쓴 것과 동어반복이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작가의 문장은 유치하다. 내가 이 책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어놓은 곳이 있다.

 

그는 승리의 쾌감에 소리를 질렀다.

노란 두려움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흩어졌다.

그는 불사조였다.

그는 죽음이었다. (167쪽)

 

나는 여기서 비웃음을 터뜨렸다.

 

문장은 그렇다 치고, 일단은 추리소설인 이 소설에서 '사건'(혹은 플롯)보다도 우위에 둔 '심리' 부분은 그나마 흥미로운 면이 있었다. 스포일러 경고. 범인은 자신을 과시하며 연속 살인을 저지르고 그때마다 현장에서 작은 물건을 몇 개 가지고 떠난다. 그러고 이내 자괴감을 느끼고 현장에 돌아와 그 물건들을 원상복구한다. 살인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과시'라든가 '자괴감' 같은 용어는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이건 내가 지나치게 단순화한 탓도 있지만, 애초에 소설 내적으로는 범인의 심리를 이해할 단초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 심리학 전문가가 해석해주면 또 모를까. 그럼에도 이런 이상심리 자체는 대단히 흥미롭다. 현상을 떠나, 해석을 독자에게 떠넘기는 것 또한 소설로서 나쁜 선택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의 심리도 모르는 판에, 같이 사는 사람, 옆자리에서 일하는 사람, 매체에서 접하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형사의 심리는 범인의 심리보다는 직설적으로 서술된다. 그 서술의 친절함은 사별이라는 보편적인 심리적 고통에서 기인하는 바가 커 보인다. 플롯만 놓고 보면 주인공 형사가 사별을 겪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 따라서 이는 병리학적으로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알 수 없는' 범인의 심리와 대조를 이루게 하기 위한 소설적 장치가 아닐까 싶다. 작가가 그렇게까지 계산하고 썼다면 아마추어리시한 문장 구성에서 깎인 점수를 상향할 이유는 있는 셈이다.

 

그 밖에도, 잘 읽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내가 포착하지 못한 장르적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음악이라는 복선이 친절하게 반복되다 보니 범인이 누군지 나 같은 독자도 금방 알 수 있었던 걸 보면, 딱히 장르적 재미를 추구한 것 같지는 않다. 정통 추리소설이 아니라, 인간 심리(혹은 범죄 심리)의 불가해성을 그리고자 했던 시도였다고 본다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해두자. 물론,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다시 읽을 일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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