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장이의 딸 - 상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박현주 옮김 / 아고라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조이스 캐럴 오츠는 [악몽]이나 [소녀 수집하는 노인]으로 들어본 작가였다. 옛날에 [악몽]을 사두긴 했는데 읽지 않고 있다가, 어쩌다 보니 [사토장이의 딸]을 먼저 집어 들고는 몇 달 걸려 다 읽었다. 작은 판형이긴 하지만 상권 512쪽, 하권 464쪽으로 1000쪽에 육박하는 분량이다. 게다가 이게 무려 36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하니 정말 창작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작가인 듯하다. 그렇게 다작을 하면서도 25년 넘게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된다고 하니 또 놀랍다.


두꺼운 책이다 보니 띄엄띄엄 쉬엄쉬엄 읽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의 온도가 높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소설의 1부는 1959년을 배경으로 시작해 화자가 남편 티그너와 뭔가 원만치 않은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 곧 1936년 유대인인 화자 가족이 홀로코스트를 피해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 오던 당시부터 회상이 시작된다. 화자의 가족은 낯선 땅에서 사토장이(묘지 관리인)의 가족으로 어렵게 살아간다.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정신과 육체는 무너져가고, 마침내 1949년 화자의 아버지 제이콥 슈워트는 면식도 없는 묘지 방문객을 ‘적’으로 간주해 총으로 쏴 죽인다. 이어서 화자의 어머니 안나도 죽이고 화자마저 쏘려 하다 포기하고는 자신의 턱에 방아쇠를 당긴다(안나는 작가 자신의 할머니가 모델로, 그녀의 아버지도 자살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상권의 절반.


1부의 나머지는 화자가 후견인 가정에 입양되고 호텔 일을 하다 티그너를 만나 결혼하고 출산하고, 그리고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는 과정을 1959년까지 그린다. 1부 끄트머리가 하권의 앞부분으로 들어가 있고, 여기서 마침내 화자는 아들 잭과 함께 집을 탈출한다. 2부는 이 모자가 티그너를 피해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다. 그러다 마침내 뉴욕 주 북쪽 끝에서 미디어 그룹 재벌가 갤러허를 만나 정착하고, 피아노에 재능이 있던 잭은 갤러허의 후원으로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게 된다. 3부는 짧다. 1974년으로 시작한다. 잭은 성장하며 콩쿠르를 휩쓸고 화자는 성인의 문턱에 접어든 아들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끝.


플롯을 정리한다고 적긴 했는데, 재미는 없고 길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쓸 수밖에 없는 건, 소설이 실제로 이러한 개인 서사를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축약한 것만 읽어도 화자가 겪은 고난이 절절히 느껴지지 않는가. 여기에 인물(주로 화자) 내면 심리에 대한 직접적이고 때로는 장황하기까지 한 묘사가 섞여 들어간다.


사실 시대의 굴곡을 겪은 개인사(작가 자신 혹은 작가의 선조)를 엮어 소설로 승화한 작품은 많다. 가령 내가 읽었던 책 중 떠오르는 여성 작가가 쓴 소설로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는 [접골사의 딸]이나, 세대 수를 늘리면 [영혼의 집]이나 박완서의 [미망]도 있다. 그 형상화 방식 또한 여러 가지가 가능할 텐데, 오츠의 방식은 오히려 심리 묘사에 조금 더 치중하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긴 소설 내내 마치 주관을 주관이 아니라 객관으로 보이게 하며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한다. 재미는 없지만 결과는 탄탄하고, 이게 작가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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