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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레시브 록 명반 가이드북 - 탐미주의자를 현혹하는 예술적인 음악 ㅣ 레코드 가이드북 2
이진욱.정철.제해용 지음 / 안나푸르나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 2017년에 이런 책이 나왔다.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대책 없이 낭만적인 필진과 출판사인가. 이
안나푸르나라는 출판사의 포트폴리오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기쁜 마음으로 월급을 타자마자 질렀다.
어느 정도 요즘 출판물 수준에 맞춰 교정 상태가 (비교적) 좋은 게 인상적이었다. 밴드 이름을 외래어표기법에 맞춰 한국어로
표기한 것도, 이 대책 없이 낭만적인 출판사가 정말로 대책 없이 책을 내는 건 아니라는 증거일 테고(딱 한 가지 아쉬운 건 판형이 작다는 정도. 일러스트레이션 중심이
아니라 앨범 소개에 치중한 책이니 감수해야겠지).
당장 미디어아르떼(구 M2U)나
시완의 라이너 노트를 떠올려보라. 라이너 노트에 출판물의 기준을 적용하는 건 다소 공정하지는 않지만, 단순히 표기나 맞춤법만을 얘기하는 게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미국에는 [Mountains Come Out of the Sky] 같은 훌륭한 책들이 즐비하다(덧붙여 나는 영국(!) 출판사에서 나온 [Krautrock: Cosmic Rock and Its
Legacy]도 가지고 있다). 우리도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제대로 활자화한 이런 책이
필요했다. 팬들이 번역한 러브크래프트의 중단편이 웹에 존재했음에도, 제대로
된 전집이 황금가지에서 나오길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가.
이 기쁜 마음은 앞으로 몇 년을 두고 책을 펼쳐보며 만끽하기로 하고, 목록을
먼저 훑었다. 필진 세 명이 총 202개의 음반을 꼽았는데, 중복되는 아티스트가 단 한 항목도 없는 걸 보면 필진끼리 미리 조율을 한 듯싶다. 이 중 거의 정확히 절반은 최소한 들어본 적이 있는 밴드였고, 15~17개(소장 음반 목록의 문서화가 시급하다)는 CD로 가지고 있는 음반이었다. 내 취향이 프로그레시브 록 중에서도
극히 크라우트록에 치우쳐 있음을 감안하면 나름 좋은 성적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이 책이 뻔하게 핑크 플로이드, PFM, 캔 같은 주류(?) 프로그레시브 록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1990년대 말도 아니고, 이쪽 리스너(컬렉터)들의 목록도 그간 확장을 했어야 당연하다. 뻔하게 유명한 고전 명반들 외에도 이 책은 toe(일본의 매스 록
밴드)나 백현진처럼 과거의 프로그레시브 록 리스너들이 오늘날 들어볼 만한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최근의 음반도 소개한다. 나 역시 최근의 밴드를 잘 모르는 만큼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앨범이 많이 있을 듯해(최소 100장이라니!) 거듭
너무나 기쁘다.
다만 toe를 소개한 정철 님은 toe
이야기를 하며 포스트 록 이야기를 잠시 꺼내는데 정작 목록상으로는 포스트 록 음반은 토터스 딱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다(아 이렇게 써놓고 내가 모르는 음반 중에 있었으면 어떡하지). 책의
내용상 선정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겠으나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토터스
항목에서 이 밴드를 언급하긴 한다)의 앨범 정도는 하나 있었어야 구색이 맞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렇게 가면 목록의 외연이 급격히 팽창하는 문제가 있고… 아무래도
1970년대 고전 중심의 선집인 것이 맞기는 하다. 뭐든
좋다. 비슷한 책을 또 내주세요, 안나푸르나. 제 지갑은 당신 것입니다.
*목차에 오탈자 있음. 5쪽 Patrick Bernard – Justine (126)을 Justine –
Justine (126)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