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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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지루한) 장편소설을 읽는 대신 2시간 동안 앉아만 있으면 되는 영화를 한 번 보는 건 참 편리한 일이다. SF야 거의 무조건 영화가 낫고, 반대로 스티븐 킹이나 러브크래프트 원작은 거의 무조건 피하면 된다(영상화 난이도 극악). 성공적이었던 경험을 꼽아보면 [테스][속죄](영화 개봉명은 [어톤먼트])가 있었다.

 

[셔터 아일랜드]로 영화화된 이 책 [살인자들의 섬] 같은 심리 스릴러원작 영화는 애매한 것 같다([독거미]를 영화화한 [내가 사는 피부] [시계태엽 오렌지]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딱 맞는 예는 아니라 추측형). 활자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영역이 필연적으로 몽타주와 미장센에 갇히게 되니까. 중의적인 해석이 발붙일 여지도 없다.

 

다만 적어도 이 소설은 영화를 보고 난 뒤 내용을 더 명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둘 다 마지막까지 현실과 망상이 구분되지 않고 끊임없이 독자(관객)에게 의문을 던지지만, 원작이 그 안에서 종종 정말로 길을 잃는 반면 영화는 다 보고 난 뒤 돌아보면 모두 (나중에 회수할) 떡밥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테디의 유년 시절로 시작되는 소설의 지루한 초입을 과감히 건너뛰는 대담함도 좋았다. 이게 다 텔레비전의 폐해다하지만 [컨택트][디스커넥트]에서 심금을 울렸던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를 들을 수 있다는 건 또 영화만의 축복이겠지.

 

후반부에서 모든 게 테디의 정교한 망상이었음이 밝혀지면서부터 오늘날 독자(관객)가 볼 때 이야기는 급속도로 힘을 잃는다. 작품의 주된 매력이 미친 사람은 자기가 미쳤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로 시작되는 순환논증에서 비롯되는 이야기의 힘인 것은 분명하고, 따라서 반전이 밝혀지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서사에만 집중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식스 센스]처럼 반전 하나에만 목숨을 건 작품은 아니다. 당시 매카시즘에 빠져 있던 미국을 꼬집고(작가의 사실주의 경향), 나아가 로보토미(전두엽 절제술)로 대유되는 정신병에 대한 폭압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이 주제는 물론 푸코의 [광기의 역사]로 연결된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화자인 테디가 트라우마를 겪고 조현병을 앓게 되었다라는 게 국내에서는 주된 해석으로 보인다. 구글에서 셔터 아일랜드 조현병으로 치면 나무위키에 링크된 한의원 글을 필두로 수많은 글이 뜬다. 하지만 조현병에서 나타나는 망상은 테디가 보이는 정교한 망상(망상장애)과는 달리 기괴한망상이라는 점이 주지의 사실이다. ‘shutter island teddy delusional disorder’로 검색해보면 테디는 조현병이 아니라 망상장애에 속한다는 의견을 여럿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정신병 하면 내용도 뭣도 모르고 정신분열증’(심지어 조현병도 아니다)이라는 말부터 떠올리는 한국의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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