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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고
앨저넌 블랙우드 지음, 이지선 옮김 / 문파랑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이 카피를 보라. ‘캠핑 가기 전날 밤엔 이 책을 읽지 말라!’ 20세기 말 스타일의 ‘나 무서운 책이오’ 하는 표지는 또 어떻고. 책 맨 뒤에는 ‘내가 겪은 무서운 일들’을 적을 수 있게 백면까지 4쪽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 문고판 판형은 캠핑 시 휴대할 목적을 노렸음이 분명하다. 캠핑 하면 무서운 이야기 아니겠는가.
앨저넌 블랙우드는 [세계 호러 걸작선](2004년)과 이 책(2009년)으로 국내에 소개되었을 뿐이었다가, 2015년이 되어서야 [러브크래프트 전집 6]에 또 다른 작품이 실렸다. 러브크래프트가 높게 평가한 작가치고는 국내 인지도는 굉장히 낮은 편인데, 그야 그 러브크래프트조차 국내에 제대로 출판되기까지 지독하게 긴 시간이 필요했음을 생각하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미국에서는 꾸준히 책이 출간되었고, 펭귄 클래식에서 나온 작품집도 있다(이 시리즈는 S. T. 조시의 공로가 크다. 미국은 편집자가 진짜 네임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러운 면이 있다).
소설 자체는 중편 정도 분량에 이렇다 할 사건도 없는 플롯이다. 다만 ‘웬디고’라는 크립티드, 혹은 국내에서 많이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미확인생물(UMA)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걸 다 떠나 하위 장르 팬들에게 특별한 의의가 있는 책이다. 뱀파이어에 비하면 늑대인간이나 예티(사스콰치, 빅풋, 설인), 혹은 트롤 같은 크립티드를 다룬 대중 예술 작품은 정말이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대개는 영화로 만들어져도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최근 본 [장산범]에 큰 기대를 했다가 실망한 것도 그런 이유이기도 하고. 이런 실정에서, 예티보다도 훨씬 더 마이너한 웬디고를 다룬 소설이 국내에서 나왔으니 한 권 사주는 게 마땅하다 하겠다. 또한 사족이지만, 정말 객관적으로 말해 이 책이 만듦새는 좀 유치해 보일지 몰라도 교정 상태는 좋은 편이다.
웬디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크립티드라서 더 그런 면도 있지만 조금 흥미를 끄는 구석이 있다. 주된(즉 다양한 전승 버전에서 공통된) 특징이 식인이라는 점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이런 설명이 있다. ‘웬디고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때마다 잡아먹은 먹이의 양만큼 몸집이 커지기 때문에 웬디고는 절대로 배가 부를 수 없다.’ 이런 특징에는 웬디고 전승의 장소적 배경인 미국 북부 및 캐나다 지역에서 기근 시 식인을 엄격히 금기시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한 듯하다. 근친상간 등 금기의 뿌리를 인류학적으로 밝히려 했던 르네 지라르가 떠오르지 않는가?
다만 정말 이상하게도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웬디고의 특징은 식인이 아니라 냄새(악취)다. 사실 웬디고의 실존 여부조차 뚜렷이 그려지지 않는 작품이다 보니 이런 건 사소한 일일 수도 있겠다만… 그럼에도, 웬디고를 깡마르고 기괴한 외양으로 묘사한 호러 어드벤처 게임 [Until Dawn]의 사례처럼, ‘포스트 러브크래프티언’들이 재창조할 여지는 충분히 있는 존재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어거스트 덜레스가 창조해 크툴루 신화에 편입된 이타콰 역시 웬디고의 영향을 받은 그레이트 올드 원이니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