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여러가지 육체노동을 하고 땀에 쩔은 냄새를 실컷 맡은 뒤에 샤워를 하고 밥을 먹었다. 엄마가 새로 담그신 열무김치는 세상 맛있어서, 점심엔 엄마가 그거 넣고 냉면 해주셔서 천국을 맛봤고, 다시 열심히 육체노동 한 뒤에 저녁엔 열무김치,고추장,콩나물,참기름 넣고 슥슥 비벼 신음소리 내면서 먹었지. 게다가 떠먹는 국물은 삼계탕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땀을 내고는 술 한잔이 얼마나 달콤하겠는가. 나는 와인을 한 잔 가득 따라 아빠가 사온 체리를 씻어서는 거실에 자리잡고 앉아 방송중인 <도전 골든벨>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 아빠는 일요일에 꼭 보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전국 노래자랑>, <동물의 왕국>, <도전 골든벨>이 그것이다.


평소에는 나는 텔레비젼을 보지 않지만, 어제만큼은 휴식이 너무나 간절해 아빠랑 같이 도전 골든벨 보면서 답 맞히고 있는데, 내가 의외로 술술 맞히는거라? 그렇게 36번 문제가 나오는데 철학문제였다. '사르트르'가 주장한 것이고,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한 철학이라고 했다.


아직 문제를 다 얘기하기도 전, 철학문제, '사르트르'라는 단어만 듣고, 나는 아직 [소피의 세계]를 읽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아아, 이거 예전부터 계속 장바구니에 있다가 늘 뒤로 밀렸던 책, 읽으면 철학을 알 수 있는 책, 나는 학교때 공부도 못해서 철학이 뭔지 몰라, 그러니 답을 맞힐 수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얼마전에 나의 친애하는 syo 님도 이 책을 언급한 터라, '이번엔 반드시 질러야지' 해두었지만, 아직 결제 전이었단 말야. 아아, 진작 사서 읽을 걸, 그러면 나는 철학을 맞힐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대학 때 학사경고 받고 다녔던 사람이 철학은 무슨 철학, 아아 그렇지만 사르트르라니, 내가 맞힐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보부아르, 사르트르..아아, 이러면서 자책과 후회를 하던 가운데, 어라? 내가 나도모르게 정답을 말하고 있는거라?


"실존주의!"



이렇게 말하면서 그런데 설마 내가 맞힌 게 답일까, 만약 이게 맞는다면, 이것은 순전히 독서의 힘이다, 공부 못하는 내가, 철학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내가, 그런데 이 답을 맞힌다면.. 그것은 그동안 읽어온 이 책 저 책의 힘이다!!!



최후의1인인 학생은 찬스를 쓰겠다고 했고, 그렇게 다른 아이들은 한 글자씩 적힌 공을 던져줬고, 그 공에는 '실'과 '존'이 들어있었고. 얼라리여, 나는 답을 맞히겠구나, 했는데.... 답을 맞힌 것이다!!


내가

철학 잘알못이던 내가

실존주의를

맞혔어!!


이것은 학교 공부가 아닌, 나의 독서의 힘! 내가 지식을 차곡차곡 쌓기 위해 독서를 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독서는 내 학창시절의 공부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나에게 주었다. 여러분 독서하자!!



그렇게 41번 문제가 나왔는데, 역사문제였다. 나는 아직 문제를 듣기도 전부터 '아아, 역사는 내가 진짜 못하는데', 하였고, 문제는 '왕의 일상을 기록하는 관직이 무엇이야'는 거였고..나는 '서기'라고 답했다. 답은 '사관'이었고...... 똑 떨어졌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골든벨을 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41번에서 똑 떨어졌어...


인생..



역시 독서로 골든벨 까지는 무리였나..아니면 더 많은 독서가 필요한 것인가...



내가 이 일을 기뻐서 얘기하자 친구가 말했다. '보부아르 읽는 네가 실존주의를 못맞힐 리 없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여러분 책,책,책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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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7-16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만화)을 읽으시면 사관도 맞힐 수 있지요ㅎㅎㅎ 역사알못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책이어요~

다락방 2018-07-16 11:51   좋아요 0 | URL
제가 그걸 본다고 맞힐 수 있을까요? 그거 한 권 본다고 맞힐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아마도 숱한 독서가 반복이 되어야 맞힐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무언가 책 한 권 읽고 실존주의를 말할 수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제가 암기는 형편없어서 ㅠㅠ 한 번 본다고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고 반복해서 쌓이고 쌓여야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쨌든! 독서는 좋은 것입니다. 저도 조선왕조실록 읽어봐야겠어요. 역사알못.. 그게 바로 접니다!!

철학알못 역사알못...
그러고보니 제가 잘 아는 건 없네요. -0-

비로그인 2018-07-1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숱한 독서가 있어야 되는 건 맞는 것 같아요ㅠㅠ 한 번 읽는다고 다 기억나는 것도 아니고....크흑
다만 저걸 읽으면 ‘사관’은 맞힐 수 있다고 한 이유가요.... 암기는 반복학습 아니겠습니까? 저 책이 한 권이 아니거든요~~ㅎㅎ 10년 만에 완간된 20권 짜리여요- 물론 읽고 나도 조선 역사가 다 기억에 남진 않지만...(저도 역사알못... 이미 거의 기억이 안나요 ㅠㅠ 왜냐면 기본 배경지식이 적다보니... 더 빨리 휘발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한두 개 정도는 남더라고요 ㅎㅎ 여튼 저 시리즈는 진짜 강추요^^

다락방 2018-07-16 15:37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 검색해보고 20권 셋트가 나와서 화들짝 놀랐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역사를 잘 모르는 저이니만큼 도전!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만화로 되어있다니 좀 더 읽기 수월하지 않을까 싶고.. 1권부터 천천히 사서 결국엔 20권 완독에 이르겠스니다!

아아 세상은 넓고 읽어야할 책은 왜이렇게 많은걸까요 ㅠㅠ 좋은건지 싫은건지 모르겠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18-07-16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아스테릭스>와 더불어 저희집의 애정 만화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전 박시백의 관점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어요. 조선왕조실록을 꼼꼼히 읽고 기존의 해석 또는 당대의 야사도 살짝 정리해주면서도 자신의 판단을 보여주었거든요. 특히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의 그림이라 더더욱 감탄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아~~ 물론 전 내용이 기억난다는게 아니구여. 왕의 얼굴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정조랑 성종이 잘 생겼었다는게 기억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실존주의~~~ 오우~~~!!!

다락방 2018-07-18 11:26   좋아요 0 | URL
아스테릭스는 또 뭐람... 아아, 세상은 왜이렇게 책이 많은건가요. 제가 건드리지 못한 책, 존재도 모르는 책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건가요.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나 많아서 좋으면서 싫으네요. 이렇게나 읽을 게 많다니 너무나 좋구나 했다가 그걸 다 언제 읽는단 말이야 하면서 싫었다가... 아아 변덕스런 독서인의 마음..

조선왕조실록은 이번에 책 살 때 꼭!! 넣겠습니다. 지치지 않고 질리지 않도록 한 권씩 사서 읽어야겠어요. 필승!


(으쓱) 저 실존주의 맞히는 여자에요! (으쓱으쓱)

비연 2018-07-1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책, 책을 읽자..^^

저도 <소피의 선택> 사놓고 아직 안 읽고 있네요. 후회. 읽자. 책장에서 빼둡니다..
그러고 머리맡 탁자에 놓으니... 헉. 읽겠다고 빼둔 책이.. 쌓여... 있... 휘릭 =3 =3

다락방 2018-07-18 11:26   좋아요 1 | URL
비연님은 일단 사두기는 하셨군요. 저도 이번에는 꼭! 사두기는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긴 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사긴 해야죠. 사야 읽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몇 해전에 (아마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한 방청객 여자가 그런 말을 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다가와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결국 우리 언니랑 사귄다, 언니가 좋아서 나에게 접근한거더라, 라고. 마음이 좀 아팠었다는 얘길하는데, 이런 얘기는 사실 무수히 많다. 당장 나폴리 시리즈에만 해도 릴라랑 친해지고 싶어서 레누에게 접근했던 새끼가 있었지.. 쩝..




















물론 '펄'은 '트립'에게 접근하기 위해 '무디'와 친해진 건 아니었다. 무디와 펄이 친해진 건 우연이었고, 그리고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둘이 친하게 지내는 동안 둘은 서로에게 충실했고 딱 붙어 다녔다. 매일같이 펄이 무디의 집에 놀러가서 그집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무디의 형인 '트립'에게 마음이 끌린 건, 처음부터 계획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 혹은 호기심 혹은 욕망..같은 것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버리는 수가 많다.


만약 무디가 펄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친구가 아닌 다른 감정, 이성으로서의 욕망 혹은 끌림 같은 걸 느끼지 않았다면 딱히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디는 펄을 좋아했고, 더 가까워지고 싶어했다. 이렇게 늘상 붙어다니고 펄이 무얼 좋아하는지 알고 펄이 여가시간에 뭘 하는지도 알고 그래서 펄에게 너가 쓰고 싶은 걸 쓰라면서 몰스킨 노트-펄이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를 선물하기도 했으니까. 펄은 그런 무디의 마음을 눈치챘지만 사실 펄에겐 무디에 대한 어떤 이성적인 호감 같은 것은 없었다. 친한 친구 단짝 친구 좋은 친구지만, 욕망을 느끼는 대상은 아니었다. 펄은 무디의 형인 트립을 좋아했다. 무디의 집에 놀러가서는 아무도 모르게 슬쩍 트립의 옆에 앉곤 했다. 그런데! 트립이 움직였어..트립의 마음도 펄에게 움직였고, 그렇게 둘은 서로의 가족들 몰래 따로 만나게 된다. 이 청소년들은 그러나 단둘이 있을만한 공간을 찾을 수 없어, 트립의 친구네 집에 가기도 하는데, 어느 하루, 펄의 집 펄의 방에서 관계를 갖고 나오다가, 문 밖에서 '설마... '하고 의심하던 무디와 마주친다. 요즘 계속 집에도 같이 안가고 자기를 만나는 시간이 줄었던 펄이, 그 시간에 자신의 형을 만나고 있었다니. 게다가 서로에게 다정한 저 친근한 행위들-머리카락을 떼어준다든가 몸을 다정하게 붙인다든가-이, 그들이 이미 여러차례 섹스를 했음을 암시했다. 무디는 절망했다. 무디는 슬펐고 무디는 화가 났다. 그렇지만, 무디가 슬펐고 무디가 화가났고 무디가 절망했다고 해서, 펄이 트립대신 무디를 좋아할 순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건 기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리고 그 말은 진리이듯이, 세상엔 아주 많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딱히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일이 발생한다. 언젠가는 저 사람도 나를 봐주겠지, 나를 사랑해주겠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바란다고 해도, 나의 그런 기도에 신이 혹은 상대가 응답해주는 일도 딱히 많지 않다. 나의 짝사랑은 그저 나의 짝사랑으로 끝날 확률이 훨씬 높다. 또한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이천번 넘게 말하고 아무리 선물 공세를 퍼붓는다 해도, 나의 마음이 그저 저절로 '네가 나를 좋아하니 나도 너를 좋아해줄게' 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 것들은 좋은 관계, 다정한 사이가 될 순 있게 도와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적 욕망과 끌림으로까지 가게 되지는 않는 거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 너무 고맙고, 나 역시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가게 되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연애감정으로 이어지는 건 다른 문제. 거기엔 무언가 다른 것이 끼어들어야 하는 것 같다.



무디는 펄에게 실망했다.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달랐다고 생각했던 펄이, 다른 여자아이들과 똑같이 트립을 좋아한다는 것에 실망했다. 바람둥이 트립과 사귀다니, 너무 화가났다. 너무 화가나서 둘은 이제 말하지 않는 사이가 된다. 무디는 펄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선물했던 몰스킨 노트를 몰래 다시 가져간다.




무디는 자신이 누구보다도 펄에게 가장 실망했다고 생각했다. 결국에는 펄도 하고 많은 사람 중에 트립을 택할 정도로 경박했다. 물론 펄이 자기를 택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여자아이들이 반할 유형이 아니었다. 하지만 트립이라니, 그 점은 용서할 수 없었다. 깊고 맑은 호수로 알고 뛰어들었다가 그것이 무릎까지 차는 얕은 연못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래서 무엇을 했나? 그래, 일어섰다. 진흙이 묻은 무릎을 씻고 진창에서 발을 빼냈다. 그 뒤에는 더욱 조심했다. 그때부터 무디는 세상이 예상보다 작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대수학 수업 중에 펄이 화장실에 가자 무디는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펄의 책가방을 열고 몇 달 전에 자신이 펄에게 준 조그마한 검은색 몰스킨 수첩을 꺼냈다. 의심했던 대로 책등은 갈라진 자국 없이 말짱했다. 그날 저녁, 무디는 방에서 홀로 수첩을 한 움큼씩 찢어내 꼬깃꼬깃 구긴 다음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휴지통이 구겨진 종이로 수북해지자 무디는-옥수숫대에서 벗겨낸 겉껍질처럼 이제 속이 텅 비어 축 늘어진-수첩의 가죽 표지를 맨 위에 떨어뜨리고는 휴지통을 발로 차 책상 밑으로 집어넣었다. 펄은 수첩이 없어진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왠지 그것이 무디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p.407)




하아-



무디의 마음이 가장 아픈 이유로 나도 가장 아팠다. 그러니까 너무 화가나고 실망해서 자신이 주었던 수첩을 다시 뺏어왔는데, 그런데 정작 펄은 자신의 수첩이 없어진 사실조차도 몰라..그러니까 애초에 몰스킨 수첩에 딱히 의미도 관심도 없는 거였어.. 나는 생각하고 고민해서 마음을 담아 선물했는데 상대에겐 받았는지도 모를 물건이여... ㅠㅠ


나도 이 점이 가장 가슴 아팠다. 그토록 친하다고 생각했고 그토록 소중했는데, 그리고 내가 그러듯이 상대 역시 나를 그렇게 여길거라 생각했는데, 만약 상대가 나에게 몰스킨을 줬다면 나는 거기에 소중한 글들을 쓰고 간직하고 내내 가지고 다녔을텐데, 그런데 자신이 받았다는 사실, 그래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다니... 이것은 정말이지 비극..슬픔의 새드니스 ㅠㅠ




무디가 펄에게 몰스킨 수첩을 선물했던 건, 그가 나에게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했던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펄은 그 몰스킨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잊었고, 나는 몽블랑을 매일 지니고 다니며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다. 나는 몽블랑을 너무나 갖고 싶어했고 그런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계속 지니고 다닐 이유는 충분했다. 내가 이걸 가지고다니는 만큼 계속 이걸 준 상대를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건 잊을 수 없는 부분이니까. 그래서 내가 그에게 줬던 것들이 결국 사라지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최근에는 가슴 아팠다. 사라지지 못할 것, 팔아넘기지 못할 것, 그런 것을 줄걸..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걸 주었다면, 그랬다면 오래오래, 평생, 영원히 기억하고 살 수 있을텐데. 빌어먹을, 죄다 팔아치워버릴 수 있는 것들이어서 공중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어...




'이도우'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보면 라디오작가 '공진솔'이 자신은 글을 쓰고 싶은데 라디오 작가를 하고 있고, 그래서 방송되는 말들은 기록되지 않고 사라져 의미가 없는 것 같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내가 준 선물들은 그 사라진 말들 같은 거 아니었을까. 기록되지 못하고 남아나지 못하고 그저 사라지고 지워질 것들. 뭔가 하나라도 내내 지니고 다닐 것이 있어야 했어. 뭐가 좋을까......문신????.............. 내 얼굴, 그 넓은 어깨에 문신으로 박아넣게 할 걸.. 어깨는 자기는 못보겠구나..그러면 배는 어떨까. <피파 리의 마지막 로맨스>에서 키에누 리브스가 자신의 몸에 예수님 얼굴 문신 했던 것처럼, 나는 가슴에, 그러니까 그의 한 쪽 가슴에 혹은 왼쪽 젖꼭지와 오른쪽 젖꼭지 그 사이에 크게 내 얼굴을 문신해놓는 거지... 샤워할 때마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옷 벗고 잘 때마다 보게...음.... 그러면...... 음..... 다른 여자랑 잘 때 그 여자도 보겠구먼? 좋은데? 변태같다...... 킁킁. 어쨌든 그 때 '이 건' 피디는 공진솔에게, 말하여지고나면 그게 왜 의미가 없는 거냐고 오히려 되묻는데, 그냥...무디, 몰스킨, 펄, 몽블랑, 다락방, 공진솔, 이건, 생각나고,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이해경'의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생각나고, 뭐 그렇다. 어젯밤, 나는 진하게 무디가 되었어... 응답받지 못하는 사랑의 주인공..........나는 언제나 그들의 편. 



(말없이 운다)





지난번에 조카와 홍콩 디즈니에 갔을 때 기념품 가게에 가서 나를 위해 작은 인형을 샀더랬다. 여기에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 가지고 다니려고 했는데, 매일 가지고 다니는 건 어쩐지 좀 부끄러워, 사무실 책상에 두고는 출근하고 퇴근할 때마다 인형의 코를 가볍게 건드리며 인사하고, 또 수시로 말을 건다. 음.............역시 변태같은가..........


그 때 조카랑 투닥대며 이름을 지었었는데, 내가 지은 이름을 조카가 반대했고(사람 이름 붙였다고.. 역시 나는... 변태 ㅠㅠ), 그래서 결국...뭐라고 지었더라? 김말이었나??????????? 왜 기억이 안나지?????????? 조카에게 물어봐야겠다. ㅠㅠ


조카야, 학교 끝나고 이모한테 전화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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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컬러 부부는 아이를 갖고 싶었다.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일곱번을 유산을 했고, 이제 그들에게 남은 가장 좋은 선택은 아이를 입양하는 것이었다. 아이를 입양하기로 하고 신청해두었지만 그들 부부의 나이가 딱히 젊지도 않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그들에게 아이가 입양오는 일은 좀 먼 일 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날 전화가 걸려온다. 소방서에 버려진 아기가 있다, 이 아이를 데려가겠느냐, 하는 전화. 매컬러 부부는 가서 아이를 데려온다. 예쁜 동양인 여자아이었고, 부부는 보는 그 날 바로 아기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아기와 함께 살면서 입양절차를 밟고 그것이 완벽히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가 이 집에 온 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 날 파티를 열었고, 사람들을 초대해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 부부는 아이를 사랑했다.



사실 매컬러 부인은 아기 이름을 알았다. 아기는 옷 여러벌을 껴입고 1월 추위를 막아줄 담요 여러 장에 겹겹이 싸인채 판지 상자 안에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쪽지도 있었는데 매컬러 부인은 사회복지사를 설득한 끝에 결국 쪽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아기의 이름은 메이 링입니다. 부디 이 아기를 데려가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해주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첫날 밤 아기가 매컬러 부부의 무릎에서 잠들자 부부는 인명사전을 뒤적이며 두 시간을 보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단 한 순간도 아기가 옛 이름을 잃게 되어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매컬러 부인이 말했다.

"새 삶의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아기에게 새 이름을 지어 주는 게 더 적절하다고 느꼈어. 미라벨은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란 뜻이야. 예쁘지 않니?" (p.170)



버려진 아기에겐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매컬러 부인은 아기에게 다른 이름을 준다. 매컬러 부부의 집은 부유했고 아기에게 뭐든 부족함 없이 해줄 수 있었으며 지역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백인 부부였다.



이 파티에 참석한 소녀 '펄'은 이 얘기를 자신의 엄마 '미아'에게 하게되는데, 이에 미아는 그 아이가 자신과 함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중국인 여성 '베베'의 아기라는 것을 직감한다. 베베는 마침 자신이 버린 아이를 찾고 있었다. 어떻게든 찾고 싶었다.



"그 때 너무 무서웠어요.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일하러 갈 수 없어요. 잠잘 수 없어요. 온종일 아기를 안고 울기만 해요."

"아기 아빠는 어디 있었어요?"

미아가 묻자 베베는 가버렸다고 말했다.

"내가 아기 가졌다고 말하고 이 주 뒤에 그 사람은 사라졌어요. 광저우로 돌아갔다고 누가 말해줬어요. 난 그 사람을 위해 이곳으로 왔어요, 그거 알아요? 그 전에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나는 치과 의원에서 접수 직원으로 일했어요. 수입도 좋고 상사도 정말 친절했어요. 그런데 그이가 이곳 자동차 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고, 클리블랜드는 싼데 샌프란시스코는 너무 비싸다고, 클리블랜드로 이주하면 집 살 수 있고 마당도 가질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이를 따라 이곳으로 왔는데 ……."

베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젓가락과 포크와 나이프를 안에 넣어 깔끔하게 둘둘 만 냅킨을 더미 위에 얹은 뒤 말을 이었다.

"여기에는 아무도 중국말을 안 해요. 접수 직원을 하려고 면접 봤더니 사람들은 내 영어가 별로 좋지 않대요. 어디에서도 일을 찾을 수 없어요. 아기를 돌봐줄 사람도 없어요."

미아는 베베가 적어도 산후 우울증을 앓았거나 어쩌면 산후 정신질환에 걸렸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젖을 못 먹었다. 베베의 젖이 다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으러 입원할 때-일자리를 잃어서 분유를 살 녿도 없었다. 결국-이 점이 바로 미아가 우연일 리 없다고 느낀 부분이었다-베베는 절망에 빠진 채 어느 소방서로 가서 아기를 문간에 두고 떠났다.

며칠 뒤 경찰관 두 명이 탈수와 굶주림으로 의식을 잃은채 공원 의자 밑에 쓰러져 있는 베베를 발견했따. 그들은 베베를 보호시설로 데려갔고 베베는 그곳에서 씻고 먹고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받고는 삼 주 뒤에 풀려났다. 하지만 그때는 아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베베는 소방서, 소방서에 아기를 놔두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어느 소방서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베베는 아기를 팔에 안고 걸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열심히 생각하며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마침내 어느 소방서를 지나게 되었고 캄캄한 밤에 따뜻하게 빛나는 소방서 창문들을 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소방서가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아무도 베베를 도와주지 않았다. 아기를 두고 떠났을 때 당신은 권리를 포기한 거라고 경찰은 말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아무 정보도 줄 수 없다고.

베베가 딸을 다시 찾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미아는 알았다. 베베는 마음을 다시 추스른 뒤 이미 몇 달째 딸을 찾고 있었다. 이제 벌이는 얼마 안 돼도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겼다. 새 아파트도 찾았고 기분도 안정되었다. 하지만 아기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아기가 그냥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다. (p.176-178)




베베는 아기 아빠가 도망가버리고 중국어도 통하지 않고 영어로는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던 곳에서 아기를 혼자 낳아 키우느라 너무나 힘들었다. 게다가 일자리도 잃어 아이를 먹일 수도 없게 되어 소방서에 아이를 두고 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안정되자 아이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미아를 통해, 일년이 흐른 지금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었다. 베베는 매컬러 부부를 찾아갔지만 매컬러 부부는 베베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이 아이는 자기들의 아이라고 말했다. 베베는 미아의 조언대로 언론에 이를 알렸고 변호사를 고용했다. 친모인 베베와 양부모인 매컬러 부부가 '메이' 혹은 '미라벨'을 두고 서로 자기의 아이라며, 상대에게 양보할 수 없다며 싸우고 있다. 당연히 이 일이 벌어지는 마을에서도 뉴스로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둘로 갈린다. 친엄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쪽과  아기에게 부족한 것 없이 다 해줄 수 있는 매컬러 부부가 계속 키워야 한다는 쪽으로.



매컬러 부부의 친한 친구는 당연히 아이는 매컬러 부부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들과 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그들 부부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이 책의 주요내용이 이 얘기로만 가득찬 건 아니고, 미아와 그녀의 딸 펄을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인데, 나 역시 이 부분에서 어떤 게 아이를 위해 더 나은걸까,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매컬러 부부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고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것들을 해줄 수 있다. 베베는 친엄마이지만 가난하고 계속 일을 해야 하니 아이를 잘 돌볼 수도 없다. 사실 나는 그녀가 또다시 직장을 잃거나 우울증에 걸리면 다시 또 아이를 어딘가에 두고 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렇지만 베베는 아이의 친엄마이고, 그 때 자신이 너무 힘들어 아기를 두고 갔지만, 생활이 안정되자마자 아이를 다시 데려올 정도로 자신의 아이를 사랑한다. 반면에 매컬러 부부는 아이에 대한 사랑이 생겨난 시점이 먼저라기 보다는, 그들 부부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간절히 원할 때 찾아든 아이이다. 일 년동안 정성스레 아이를 돌봤으니, 그 사이에 분명 사랑과 애정이 커졌을텐데,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이는 누구에게 가야할까?


나로 말하자면, 그러니까 내 개인적인, 순전히 내 생각으로만 보자면, 이 셋이 같이 키우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모는 친모대로 아이를 사랑하고, 매컬러 부부는 아이가 자라는 데 뭐든 부족함이 없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니, 이 셋이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아이를 위해서도 그 편이 가장 좋지 않을까. 아이 하나 키우는데 어른 셋이 뭐 많은 건 아니잖아?


아이가 모자람 없는 지원을 받는 부유한 환경에 있다는 게,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게 아이를 위한 거라고 감히 다른 사람이 생각해도 될까? 너무나 혼란스러워지는 거다. 동시에 이 싸움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기가 아직 어릴 때. 아이가 지금보다 더 자라서 주변 환경을 미묘하게 인식하게 되면, 자신을 키우고 싶은 어른들이 자기를 두고 싸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아직 읽고 있는 중이라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매컬러 부부의 친구가 아이의 친모인 베베에게 이 사실을 알린 것 때문에, 미아를 미워하고 있어...


















렉시는 예일대에, 렉시의 남자친구는 프린스턴 대학에 곧 입학을 앞두고 있다. 렉시는 백인이고 남자친구인 브라이언은 흑인인데, 이들은 사귀다가 처음 섹스를 하게 됐고, 한 번 하고나서는 자주 하게 된다. 종종 둘이서만 모습을 감춰 사랑을 나누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피임을 안 하고 한 적도 몇 번 있고, 아아, 이야기는 이렇게.... 렉시가 임신을 하게 되는 거다.


렉시가 임신진단 테스트에 줄 두 개를 보며 임신을 알게 되고, 곧 대학에 가야하는데 이를 어쩌나 싶고, 아기들은 너무 작고 예쁘고, 아기를 낳고 대학 입학은 반학기 미뤄도 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브라이언에게 운을 띄운다. 벌써 아기들은 너무 예쁘지 않냐고 여러차례 말해온 터다.



"우리도 당장 아기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 안 들어?"

브라이언이 너무 갑자기 일어나 앉는 바람에 렉시는 침대 너머로 떨어질 뻔했다.

"너 미쳤구나. 내가 들어본 중에 가장 정신 나간 소리야.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브라이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상상해본 것뿐이야, 브라이언."

렉시는 목이 메었다.

"너는 아기를 상상하지. 난 클리프와 클레어가 날 죽이는 모습을 상상해. 두 분은 날 건드리려고도 하지 않으실 거야. 부모님이 날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난 이미 죽은 목숨이지. 즉시. 바로 죽음이라고."

브라이언이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부모님이 뭐라고 할지 알아? 우리는 너를 그보다 더 잘되라고 키웠어."

"그게 정말 그렇게 끔찍하게 들려? 우리가 함께하고 작은 아기를 갖는 게?"

렉시가 손톱으로 잡지 모서리를 꼬깃꼬깃 접으며 말했다.

"난 네가 나와 영원히 함께 지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는데."

"맞아, 어쩌면. 렉시, 우리는 열여덟 살이야.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알아? 다들 이렇게 말하겠지. 아이고, 저기 좀 봐요, 또 어떤 흑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여자애를 임신시켰네요. 십대 부모가 늘었어요. 이제 중퇴하겠죠. 모두 이렇게 떠들어댈 거라고."

브라이언은 책을 덮어 탁자 위로 던지고는 말했다.

"난 절대로 그런 놈이 되지 않을 거야. 절대로." (p.256-258)




...........................................................



그런 놈이 되지 않을 거라면서....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면서, 그런데 왜....왜 십대에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십대 부모 되기 싫은데 왜 십대에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중퇴하기 싫은데 왜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열여덟살인데 왜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부모님한테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지금의 임신은 정신나간 미친짓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콘돔없이 섹스했지요? 임신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으면, 미친 짓이었으면, 여자친구가 콘돔없이 섹스하자고 해도 '그것은 안될 일이여' 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왜 콘돔없이 섹스를 해놓고 임신은 미친짓이라고 하는 거지요? 



렉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펄에게 전화해 낙태수술 받으러 함께 가달라고 말한다.




참...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이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와락 기억들이 덮치는 데 별 수 있나, 휩쓸려 가는거지. 나 역시 콘돔없이 섹스를 한 적이 있고, 또 설사 콘돔을 사이에 두고 섹스를 했다고 하더라도, 생리가 하루라도 늦어지면 가슴이 쪼그라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설마..' 하는 걱정으로 끙끙댄 적이 있으니까. 지금보다 훨씬 어린 나이이긴 했었는데, 그 때 좋다고 섹스한 남자가 '나 생리가 좀 늦어..'라고 말했을 때 '야, 넌 그런거 체크도 안했냐! 니가 그런걸 체크 했어야지, 나 겁 많아!' 했던 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만약 그 때 내가 임신했다면... 그랬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이십대였고, 월급도 적었던 나는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를 키울 수 있었을까? 아무도 몰래 낙태하려고 했을까? 그 때 사귀던 남자는 기꺼이 나랑 낙태수술 하러 가주었을까? 내가 아는 여자중에도 임신했단 말에 바로 연락 차단한 남자친구가 있었다. 결국 그 여자는 다른 여자랑 같이 낙태 받으러 갔고. 수술에 같이 안가주는 게 다 뭐야, 연락 자체가 안되는데... 나 역시 쌩까는 남자친구 대신 한 여자의 낙태 수술에 같이 가준 적도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그 때 너무 화가 났었는데, 그렇게 화났던 일이, 만약 내가 임신했다면 내게 일어날 일이 될지도 몰랐다.




국제학부의 여성학 수업 시간, 피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여자였고, 유학생이었다. 프랑스에서 온 학생이 분통을 터뜨리며 이렇게 질문했다. "대체 왜 한국 남자들은 콘돔을 쓰지 않는 거죠?" 그 이야기를 들은 미국, 일본, 영국 등지에서 살다 온 학생들이 입을 모아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한국 남자들의 문제가 유학생들 사이에서 종종 화제가 된다고 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남자들이 하도 사정하고 회유하고 설득하기에 한두 번 콘돔 없이 섹스를 했는데 임신이 되어서 고통을 겪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며 분개했다. 만약 자국의 남성이 그러자고 했으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텐데, 한국 남자들이 너무 자신만만한 태도로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뭔가 신비한 아시아적 '비기(秘器)'라도 있나 싶어서 넘어가버렸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 남자에 대한 성토장처럼 되어버린 수업 시간에서는 뒤이어 한국의 '어메이징'한 성 산업에 대한 증언들이 속출했고, 소수를 제외하고는 한국 남자는 대체로 매너가 없다는 불평도 이어졌다. 한국 남성은 자신이 먼저 데이트 신청을 했으면서도 고압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으며, 한국 드라마와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며 분개했다. 원하는 것(주로 섹스다)을 얻기 위해서는 비굴할 정도로 집요하게 굴다가, 끝내 얻지 못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며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사례는 너무 많아서 학생들을 잠시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권김현영, 근대 전환기 한국의 남성성, p.68-69)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사귀었던 남자는 너무 형편없는 남자였는데, 그 당시에는 그걸 몰랐다. 다행히도 나는 그 후에, 더 나이가 들어서는 점점 더 나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하나의 연애가 끝나고 그 일로 가슴 아파하고 그 다음 연애가 시작될 때에는 더 나은 관계를 맺고 더 나은 사람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콘돔 없이 하자고 내가 말해도 안된다고 단호히 말하며 먼저 콘돔을 꺼내드는 남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지. 인생...


그러고보면 나는 내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연애로도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나은 관계를 만들고 있다.




이별의 고통은 우리의 일상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우리를 무의식적 충동이 담긴 어두운 지하 창고로 끌고 내려갑니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얻을 것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사랑의 실패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어떻게 나아가기를 원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인생을 새로이 설계하게 만들죠. 인생 설계를 재조정하도록 촉구하는 것으로 실연만 한 것은 없습니다. 상실로 인한 번민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적극 참여하게 만들죠. (p.194)









지난 토요일에는 남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나의 아홉살 조카와 여섯살 조카도 예쁘게 차려입고 왔는데 결혼식 끝나고는 우리집으로 왔다. 다음날 조카들과 놀이터에 가 놀려는데 아홉살 여자 조카가 구두를 신어서 발이 불편하겠는 거다. 내 덧버선을 신었는데 발등에 닿는 끈 부분이 아무래도 더워서 땀나면 상처날 것 같아.. 나는 놀이터까지 걷다 말고 조카에게 내가 신은 발목양말과 바꿔신자 말했다. 폴짝폴짝 뛰어 노는 조카에게 저 양말은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걷다가 멈추어 내 양말을 주었는데 신발은 내 신발을 줄 수가 없는거다. 흐음.. 가면서 슬리퍼 하나 살까? 했는데 오전 열시가 되기 전이라 문 연 곳도 없고... 여동생은 괜찮아,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데 슬리퍼보다는 구두가 낫지, 하며 놀이터까지 갔는데, 구두를 신고 조카는 정말이지 팔짝팔짝 잘도 뛰어논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조카에게 앞으로 구두를 신고 올때 슬리퍼를 스스로 챙기라고 말했다.



-타미야, 이제 이모 집 올 때 슬리퍼나 운동화 꼭 챙겨와. 구두 신고 놀면 불편하잖아.

-이모, 그러면 내가 슬리퍼를 갖다 놓으면 어때?

-이모집에?

-응!

-그러면 너무나 좋지! 그런데 이모 집에 슬리퍼 놓으면 타미 집에선 슬리퍼 못신잖아?

-하나 더 있어. 새로 샀거든.

-오! 그러면 너무 좋네! 낡은 거 이모집에 갖다 놔.

-응!



아, 진짜 이 별 거 아닌 대화가 너무 좋아서 계속계속 생각한다. 내 안에 사랑이 가득차게 되는데, 나란 인간은 그 포지션이 '이모'일 때 가장 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내가 이 생에서 이모가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는 그 이모에 최선을 다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게 이모로서 조카를 사랑하는거라면, 그 역할에 충실할 것. 이것이 이 삶에서의 나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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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7-1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어디서 사는것이 더 좋은 것일까를 보니 가라 아이야 가라 가 생각나네요

다락방 2018-07-12 10:12   좋아요 0 | URL
아아 이런 댓글이라니..저로 하여금 ‘왜지?‘ 라는 궁금증을 유발하시어 결국 이 책을 읽게 만드시네요. 장바구니에 넣으러 갑니다. 가라 아이야 가라.

다락방 2018-07-12 10:15   좋아요 1 | URL
이 책 전자책 있네요. 꺅 >.<

psyche 2018-07-12 10:16   좋아요 0 | URL
켄지와 제라로 시리즈는 제가 애정하는 것이라서... 다락방님도 좋아하실지는 잘 모르겠는데 저는 저 책 좋아하구요. 영화로도 있어요.

비연 2018-07-12 19:56   좋아요 0 | URL
저도 켄지와 제라로 시리즈 좋아하는데.. 요즘엔 나오지 않고 있죠.
작가가 안쓰는건지, 번역이 안되는 건지.. 갑자기 급궁금해지네요.

다락방님. 저도 이 시리즈 애정하는데, psyche님과 함께 한번 보시라고 조심스럽게 추천...^^

psyche 2018-07-12 20:03   좋아요 1 | URL
켄지와 제라로는 문라이트 마일에서 켄지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시리즈의 끝을 냈죠. 너무 아쉽더라구요. 다른 시리즈들은 몇십권씩 계속 내던데 딱 6권으로 끝내다니... 정말 너무해요ㅠㅠ

비연 2018-07-12 22:11   좋아요 0 | URL
앗. 문라이트 마일을 안 읽은 것 같아요 ㅠ 지금 바로 찾으러 갑니다...

다락방 2018-07-13 10:06   좋아요 1 | URL
아니, 이분들이..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가뜩이나 사두고 안읽은 책들이 많은데 대체 왜 여기서 또 뽐뿌를 넣으시는 겁니까! 아이 몰라. 당장 사러가야겠어요. ㅋㅋㅋㅋㅋ
 
8시에 만나!
울리히 흄 지음, 유혜자 옮김, 요르그 뮬러 그림 / 현암사 / 201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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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몰라도 아이가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눈과 얼음‘의 반복도 재미있고 중간중간 미안함이란 어떤 것인지, 애정이란 어떤 것인지, 도리라는 것은 무엇인지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무척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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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7-0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즈 케익!

다락방 2018-07-09 14:05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아아, 이래서 치즈케익! 했었습니다. ㅎㅎ
 
[100자평] 손가락 사이로 찾아온 행복















지난 주에 서점에 갔을 때 이 책의 뒷표지를 보았는데 줄거리가 몹시 흥미로웠다. 의상학교 입학에 실패한 여자 '이리스'는 의사 남편과 결혼하여 10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하다가, 자신의 의상학교 합격증을 가족들이 몰래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 그래서 가족들에게 분노하고 의상공부를 시작한다는 거였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 당당하게 서는 여성을 상상하게 될텐데, 자신의 꿈을 뒤늦게라도 실현하기 위해 그녀는 파리로 갔지만, 그녀가 디자이너로 서기 위해서는, 의상학교의 원장 '마르트'의 힘이 컸다. 아니, 온전히 그녀의 힘이었다. 사교계에 이리스를 소개시키고, 그녀를 자신이 원하는 타입의 여자로 만든 것.


처음이야 당연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또 누군가가 도와준다면 훨씬 더 쉽게 생활할 수 있겠지만, 너무 전적으로 의탁하게 된달까. 결혼 생활에서는 집에서 얌전히 남편을 기다리고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행복하지 않아도 애를 쓰더니, 일에서는 또 다른 그 분야의 능력있는 사람에게 확 의존하는 거다.자리잡고 돈 벌기 위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거야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녀는 정신적으로도 마르트를 의지하게 되고 '그녀가 없으면 내가 없지' 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그래서 바람핀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껴 남편을 떠나면서도 가방 싸들고 곧바로 마르트를 찾아가는데, 글쎄... 이 여자가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결혼해서 착실하게 의사의 부인으로만 살아서인지, 어째서 '나 혼자서'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녀가 의사의 아내였을 때도 남편의 동료의사들의 아내를 만나서는 '그녀들 모두가 유니폼처럼 같은 옷을 입고 있다'고 하는데, 뭐랄까, '의사의 아내들'을 보는 시선이 너무 납작하다고 해야하나. 굉장히 전형적인 패턴이라 촌스러웠다. 전형적인 패턴은 또 있는데, 그녀가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 남자를 만나게 되는 데에서도 있다. 이건 다른 의미로도 할 말이 많기는 한데, 그 남자의 등장은 전형적 로맨스 소설의 바로 그것. 잘생기고 돈도 많고 주변에 항상 여자들을 몰고 다니고..그에게로 향하는 내 마음의 이끌림을 어쩌지를 못하겠고..하는게, 대체 이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소설인가 헷갈리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이미 남편이 있는 여자라는 것 때문에 그와 더 나아가지를 못하는데, 아무튼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촌스러웠다.



의사 남편은 항상 일 때문에 바쁘다고 늦고 당직이고 전화통화만 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너는 나보다 니 직장이 더 중요해' 라고 서운해하고.. 어쨌든 흐름이 다 별로인데, 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이 여자의 캐릭터였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러브, 비하인드》에 보면 여자가 전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여자는 전남편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서 너무 힘들고, 그 이별을 몸으로 겪으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런 그녀에게도 새로운 남자가 나타난다. 그 남자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고 그녀에게 다가서려고 하는데, 그녀는 자신이 싱글인 상황이니 지금의 이 관계로 이 힘든 시간을 벗어나자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남자를 막아서며,


'나는 이혼하는 중이에요'


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음을 밝히고, 새로운 상대를 만날 때는 자신이 다 정리되어서 만나고자 했던 것. 나는 이런 캐릭터를 좋아한다. 너가 나에게 설 때는 당당할 것, 나 역시 네 앞에서 온전히 혼자이고 당당할 수 있을 것.



《일곱 번째 파도》의 '에미' 역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다. 아주 마음에 드는 캐릭터인데, 그녀는 자신이 남편이 있다는 것 때문에 레오가 더 다가오지 못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신이 싱글이 되자마자,


"레오~~ 나 이제 싱글이지롱, 너랑 사귀어도 되지롱~'"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데, 마찬가지로 나는 에미가 자신이 혼자가 된 상황을 어떻게든 어필해 지금의 외로움 혹은 혼자인 고독함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상황을 이용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기 혼자 당당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에미가 레오에게 간다면, 에미가 레오와 사귀게 된다면, 그건 나 자체로 온전히 혼자이며 당당할 때 가능해야 한다고, 에미도 나도 생각했던 거다.



내가 이런 캐릭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에 내가 가혹하게 별 두 개만 주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 책속의 여자는 남편이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강하게 이끌리는 남자에게 '안된다'고 말하고 그를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남편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고 사실은 남편하고 벌써 헤어졌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편으로부터 벗어나서는, 그 길로 자신을 직업적 성공으로 이끌어주었던 마르트에게로 달려가는 거다. 나는 그녀가 남편 곁을 떠날 때,


'설마 마르트한테 받아달라고 가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그렇게 해버렸어. 게다가 마르트랑도 안좋아지자 나는 또 불안한 마음에 휩싸인다. '설마 자기 좋다고 했던 그 총각에게로 달려가는 건 아니겠지' 하고. 그랬는데 그 총각에게로 바로 달려가...



이리스, 당신은 잠시도 혼자 있을 수는 없는 사람인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라면, 그리고 나였다면,

남편을 떠났을 때 그 즉시 혼자 하는 걸 택했을 것이다. 나 혼자서 어떻게든 다시 내 일을 시작하려고 하고 남편이 없는 싱글인 생활에 적응하면서 외로움과 고독으로부터 단단해지는 것. 그 후라면, 이제 어느정도 내가 단단해진 것 같다면, 그 때 내 열정을 불살랐던 가브리엘에게 문자한통 넣을 수 있었겠지.


<잘 지내나요?>


라고. 그래서 그로부터 연락이 와,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냐, 물었을 때, 응, 나는 남편하고 헤어졌고 일을 구했고, 그래서 이렇게 돈 벌면서 잘 살고 있어. 요즘 내 삶의 낙은 혼자서 하루를 되돌아보며 술 한 잔 마시는거야, 하고 온전히 내가 나임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리고는 말했겠지.


내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때 너에게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 시간이 좀 흘렀지만, 당신을 정말 사랑했어.



라고.



물론 누군가와 헤어진 상실의 아픔을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만약 헤어진 상대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 채워짐은 순간이고 새로 생겨난 사랑도 공허함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새로 나타난 사랑이 사랑인지 아닌지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나는 일단 온전히 혼자일 필요가 있다. 지금 사랑한다고 생각햇던 사람에게 '이건 사랑이 아니었어', '배신감 느꼈어' 하고는 쪼르르 달려가서 '나는 너를 사랑해' 라고 한다는 것이 나는 좀..


물론 이리스는 여태 혼자였던 적이 없으니, 앞으로 혼자서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 자체를 안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살아오던대로 살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내가 이 모든걸 깨닫기 위해서 나에게도 시련과 실연과 실패와 잘못이 있지 않았나. 어쩌면 이리스가 깨닫기 위해서도 아픔이 동반되어야 할 수도 있다. 이리스의 나이는 고작 서른이고(서른 하나였나), 나 역시 잘못 시작한 관계 때문에 후회하는 아픔을 삼십대 후반에도 경험했었다면, 이제 서른인 이리스의 캐릭터를 마냥 욕하고 있을 수만도 없다. 그러나 내가 마냥 이해하기에도 확실히 비호감 캐릭터이긴 하다. 그러니까 이리스는 '나를 위해' 사는 삶 자체를 아예 상상도 못하는 사람인건가. 마르트를 떠나 남편에게로 갈 때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인 거다.



한동안 샤워기 아래 서 있었다. 내 삶이 또 다른 곡절을 겪기까지는 채 24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과거의 삶으로 나를 되돌려놓는 소용돌이에 빨려 들었다. 다시 피에르를 위해 살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는 마르트를 위해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가브리엘에게도 의미 없는 존재가 될 터였다. (p.240)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꿈꿨을 때, 그것이 나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 함께일 때 성장하는 사람들이니, 그렇게 함께라면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위해 사는 삶'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 행복'을 위한 것이었고, 그것이 '그에게도 행복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만약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을 산다면, 아마도 그것은 내 조카들을 향한 것일테다. 의지와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니 내가 조카들을 위해 사는 삶을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동등한 연인 관계라면 '너를 위해 살아'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 이리스는 이 놈을 위한 거 아니면 저 여자를 위한 거 아니면 다른 남자를 위해서 사는 것만이 삶을 바꾸는 방향이라고 생각하는걸까? 나랑 다른 사람이라서(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누군가를 '위해서' 사는 삶이 삶의 형태라고 생각한걸까?



이리스가 새로이 사랑에 빠진 남자, 있는 줄도 몰랐던 열정을 모두 끌어내는 남자 '가브리엘'과 함께 케밥을 먹는 장면을 보자.



그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부스러기 하나라도 남기지 않으려고 손가락까지 빨아가며 먹는 모습을 보는 게 내가 직접 케밥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p.208)



그래, 나도 이거 뭔지 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랑 함께 있을 때 밥을 맛있게 먹고 잘 먹고 그러면 너무나 기분이 좋지. 헤죽헤죽 웃게되고 그것이 사랑이지, 그런데.



마치 어린아이를 데리고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다 못먹고 내려놓자 가브리엘은 내가 남긴 것까지 먹이치웠다. 다 먹고서는 트림까지 했다. 그 모습이 웃겼다. (p.208)



음...나는 일단 내가 함께 밥 먹고 술마시는 남자로부터 어린아이 같은 거 별로 느끼고 싶지 않고요...(성인 남자를 원합니다), 내가 남긴 것까지 먹어치우는 것도 원하지 않고요, 다 먹고서는 트림까지 내 앞에서 하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게 웃길 것 같지도 않아. 그러니까 너무 사랑해서..그런건가? 똥싸면 똥도 이뻐보이는 거??



그녀는 '내가 먹고 싶은 건 내가 알아' 라면서 케밥에 양파넣고 화이트 소스 넣어달라 말하는데, 어떤 케밥을 먹고 싶은지 외에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게 없는것 같다. 뭐, 앞으로 달라질 수는 있을 거라고 보여진다. 그녀를 믿고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남자랑 함께할테니까.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비로소 혼자 당당해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내가 그런 캐릭터를 안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이 참 뭐랄까, 촌스럽고 너무 전형적이고.. 특히나 홀딱 빠져들만한 남자에 대해 설명하고 그가 그녀를 유혹할 때도 너무... 아니 그런데, 뭐 음.. 어쨌든 그랬는데, 그런데 그녀가 설명하는 그에 대한 감정의 이끌림, 감정의 폭풍! 그 격렬함만은 내가 또 뭔지 진짜 완전 넘나 잘 알고 있는 것이야...



미친 듯이 가브리엘이 그리웠다. 정말 놀랍게도 그날 그렇게 헤어진 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나를 피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두렵기까지 했다. 그가 내 삶에서 완전히 떠나버린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마치 불도저처럼 내 삶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에게 끌리는 마음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p.191)




'그는 마치 불도저처럼 내 삶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울고싶다 진짜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여러분 이거 몬주 알아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 완전 알아 완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자 우리 이제 다같이 울자. 펑펑 울자. 엉엉 울자.




그러니까 내 삶에 저렇게, 정확히 저렇게,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온 자식이 있었어... 내가 살면서 그런 폭풍을 처음 만나가지고 너무..진짜 멘탈이 나가버렸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나면, 그 남자를 처음 만나고 한동안 정신이 나가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족족 얘기했던 거다. 야, 나 어떡하냐, 이런 일이 있었다, 하고..... 한동안 내가 지상에 발을 디딘건지 내가 어디 지옥불에 들어와있는건지, 아니면 내가 극락에 와있는지를 모르겠는 거라. 나 역시 그를 이제 만나지 않는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이리스가 그러했듯이, 그렇다고 내 마음을 끌리는 이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그건 안되는 것이었어. 안돼, 이건 안된다, 이건 나를 너무 잃는다, 내가 내가 아닌게 된다....

나는 만나는 여자친구들에게마다, 살면서 이런 남자는 한 번쯤 만나봐야 된다고 열변을 토하고 다녔더랬다. 이 남자랑 어떻게 될 수도 없을거고, 아마도 이런 폭풍은 또 겪게 되진 않겠지만, 내가 지금 너무나 힘들지만, 그런데 이 폭풍 여자들이 한 번씩 다 겪어봤으면 좋겠어...라고 하고 다녔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면, '이렇게 끌리게 내버려두면 안된다' 내가 나를 타일렀고, 그러니 내적갈등이 얼마나 오졌겠는가. 혼자서 그냥 눈물 줄줄 흘리고 그랬던 거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 만나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여라도 그걸 입밖에 내면 그가 정말 그만 만나자고 할까봐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대고, 그에게 전혀, 내가 그에게 끌린다는 것을 전혀 티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꼿꼿하게 내 상태를 지키려고 하다보니,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해야 하고..그러니 내 영혼은 찢길대로 찢기고 탈탈 털려서, 강한 이끌림으로 사랑을 하면서 지독하게 괴로웠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 속도 모르고, 이 미친 남자가 ㅠㅠ 나 만날 때마다 자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불도저처럼 돌진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좀 얌전하게 가만있으면 되잖아? 근데 그러지를 못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자꾸 불도저처렴 돌진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면 나는 고스란히 사고를 당해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피하지를 못하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런데 머릿속에서 '피해, 다쳐' 이러니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가까스로 억지로 피하려고 노력하니까 또 겁나게 힘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결국 그는 나에게 그만두자고 했었더랬다.



나는 불도저처럼 돌진하고 너는 피하려 애를 쓰고



이런 상황을 자기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야 그러면 어떡하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불도저처럼 돌진하는 거 받아들이면 피를 철철 내면서 쓰러질텐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떻게든 막아야지. 그는 불도저인데, 나는 그저 손으로 막을 뿐이야..힘이 없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그러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저 때의 이리스에 나는 온전히 이입했다. 책을 읽는 내내 튕겨져 나갔었다가 저때만 갑자기 샤라라랑~ 하고 내 영혼이 그녀의 육체로 들어가서 그녀의 영혼이 되어 내적갈등을 같이 시작한 것이었다. 아아...




"따라와요."

우리는 방향을 바꿔 로열 케밥이라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게 완벽했다. 살짝 의심스러우면서도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구운 양고기 냄새, 빛바랜 포스터, 이름 모를 시골 마을 사진 위에 달린 꽃 장식 조명, 낡은 포마이카 테이블, 적어도 이틀은 뜬 눈으로 지새운 것 같은 눈빛으로 흥청거리는 사람들, 축구 채널에 고정된 텔레비전까지. 그런 곳에 가브리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가브리엘은 가게 주인과 서로 가볍게 포옹까지 나누는 걸로 보아 단골인 것 같았다. 주인은 가브리엘과 같이 온 나를 발견하더니 그에게는 윙크를 하고 내게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가브리엘은 뒤로 돌아 나를 보며 물었다.

"여기 괜찮아요?"

"진짜 좋아요. 정말로요." (p.206)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아한 장면이다. 내가 좋아한 장면이 이리스와 가브리엘이 드디어!! 섹스를 하는 장면이 아니라, 이렇게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으러 간 곳이 케밥식당이었다는 게, 나도 참 신기한데,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았다. 둘이 처음으로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케밥 식당에 가 함께 저녁을 먹게된 것. 식당 묘사가 너무 현실적이랄까, 정말 내 눈앞에 있는 오래된 식당인 것 같고,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나는 잔뜩 흥분이 되는 거다. 아마 저 상황에 나였다면, 나 역시 '정말 좋다'고 말했을 것이고, 앉아서 케밥을 먹는 내내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 너무 좋아, 아 행복해, 좋은 시간이다, 라고 몇 번이나 입밖으로 말했을 것이다. 나는 좋은 것에 대해서는 도무지 그 감정을 숨긴다는 걸 참을 수 없어하는 사람이니까.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면전에서 비웃어줄 수 있을 정도였다.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다만, 그 사랑의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피에르를 향한 마음은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사랑이었다. 가브리엘을 향한 마음은 폭발적이고 아슬아슬하며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의 입술은 피에르처럼 안도감을 전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감촉을 느낀 것만으로도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내 온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p.248)



일단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거짓이다. 이것이 내 생각이다.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순 없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면, 어느 한 쪽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게 아니라, 둘 다에게서 부족한 것들을 서로 보충할 뿐인거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를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다른 것이 침투할 여지가 없어... 그러나 상대에게 어떤 것이 부족해서 나를 온전히 채워주지 못한다면, 그건 얘기가 다르다. 그걸 채우기 위한 다른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법.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전히 나를 충족시킬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친구도 필요하고 저 친구도 필요하고, 이리스의 경우에는 남편도 있고 사랑하는 남자가 또 따로 있는 거다. 그러나 이리스 조차도 나중에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건그렇고,



이리스가 말하는 것처럼 저렇게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사랑'과 '폭발적인 미지의 영역'의 사랑은 다르다. 아마도 대부분의 연애나 결혼은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사랑의 편을 들어주겠지. 나 역시 그러하고. 그러나 나는 폭발적인 끌림의 손을 들어주는 쪽이다. 사랑이나 설레임이 가져오는 긴장을 내가 몹시 괴로워하면서 좋아해. 변태같은 면이 있어.. .내가 이거 너무 힘들어서 대부분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걸 택했었는데, 그게 나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도 않고,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연애를 하면 자꾸 폭발적인 걸 그리워해... 아아, 나는 안되는구나... 나는 언제고 어떤 상황에 있든간에, 폭발적인 미지의 영역이 불러내면 맨발로 뛰어나가 맞이할 사람이야....이것이 내가 비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러나 나는 또 놀라운 경험을 하게된다.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폭발적인 미지의 영역이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것과 동시에 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만하자..

너무 많은 얘기가 과거를 소환해내고........

그러면 나 또 운다........

그만하자.

더 하면 나는 두시간동안 울어야 돼...



자, 다시 이리스 얘기로 돌아가자. 이리스는 가브리엘에게 끌리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의 옆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가브리엘을 떠난다.



가브리엘 ……. 그에 대한 기억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빠르게 사라져갔다. 마치 그를 안 적도, 그가 내 삶의 일부를 차지한 적도 없던 것만 같았다. 드물게 혼자 시내로 산책을 나왔다가 오 소바주 향수를 뿌린 남자라도 마주치게 되면 가브리엘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코를 킁킁거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순간을 머릿속에 떠올린 게 벌써 수백 번도 넘었다. 그리고 결론은 언제나 하나였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p.254)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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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고,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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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05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글 우아 이 글....진짜 다락방님은 대단하셔요

다락방 2018-07-05 15:26   좋아요 0 | URL
ㅎㅎ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

카알벨루치 2018-07-05 15:48   좋아요 0 | URL
첫째, 글이 너무 길어 숨고르고 읽었다는 것
둘째, 다락방님 넘 솔직outspoken 하셔서 ㅋ
셋째, 글에 열정이 느껴져서
넷째, 노을의 “붙잡고도” 란 곡을 생각했는데 엥 젤 밑에 노래가 삽입되어 있네요 신기방기 ㅋ
다섯째, 제가 북플한지 얼마 안되는데 첨엔 남자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여성이라는 반전, 그중에 다락방님도 첨엔 남자인 줄! ㅋㅋㅋㅋ
여섯째, 글을 참 잼나게 찰지게 쓰셔요 👍

다락방 2018-07-05 17:39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이 댓글의 결론은,
카알벨루치님도 여자, 다락방도 여자..란 것이지요? ㅎㅎ

오늘 하루종일 <붙잡고도> 흥얼거리면서 다니고 있어요.

제 글이 재미있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그것은 솔직한 글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후훗.
저는 글 쓰는 거 너무 재미있고 좋아요. 글을 쓰는 첫번째 목적은 저 좋으라고 쓰는 거랍니다. 글을 쓰면서 정리되는 게 아주 많아요. 다다다닥 글을 쓰고나면 한결 후련해지곤 한답니다. 아마도 그래서 열정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재미있다고 소문난 다락방의 책은 읽어 보셨습니까? 두 권이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와, [잘 지내나요?] 가 그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깨알 홍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8-07-05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앞으로 불도저만 보면 다락방 님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불도저불도저불도저불도저불도전불도저불도저불도저다락방.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7-05 17:3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불도저 다락방이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8-07-08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이 책에 대한 백자평을 보고... 아 이 책은 패스. 했는데,
이렇게 길고, 재미난 평을 남기다니... 반칙입니다.
오늘 반복하신 두 구절이 머리에 퐉 박히네요.

˝불도저˝
˝가브리엘은 나를 붙잡지 않았다.˝

다락방 2018-07-09 09:35   좋아요 0 | URL
불도저...
저에게 너무나 많은 기억을 불러오는 단어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불도저 처럼 밀고 들어오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가슴은 찢어지게 아플지라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