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읽는 자본주의 - <유토피아>에서 <위대한 개츠비>까지
조준현 지음 / 다시봄 / 2014년 2월
절판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어떻게 정의하든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풍자한 인클로저 운동의 의의는,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토지에 묶여 있던 농민들이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으로 나뉘었다는 데 있다.-22쪽

'좀바르트'는 『사랑과 사치의 자본주의』에서 십자군전쟁이 유럽사회에 미친 영향을 남녀 관계의 변화의 측면에서 해석하고,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사회체제가 출현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설명했다. 십자군전쟁은 유럽인들의 가치관과 윤리적인 태도를 크게 변화시켰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사랑'이었다.-48쪽

로크는 사유재산이 개인의 노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여기서 사유재산은 귀족이나 지주들이 상속으로 받은 재산이 아니라 신흥계급들이 스스로 축적한 재산을 가리키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로크의 견해를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르크스의 비판처럼 부르주아계급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생산수단, 즉 자본은 노동의 산물이 아니라 노동을 지배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자기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의 노동을 착취한 결과라는 뜻이다.-74쪽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세계 10대 소설문학을 선정하면서 제일 윗자리에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꼽기도 했다. 반면에 문학사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제인 에어Jane Eyre, 1847』를 쓴 여류 작가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1816~1855는 "오스틴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에는 열정이 빠져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작가나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 영국 사회에서 젠트리의 삶에는 이미 열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84쪽

그런데 수공업자들이 상인들의 전횡에 맞서 권력을 쟁취하자마자 이번에는 수공업자들 내부에서 다시 갈등이 일어났다. 수공업자 조직의 가장 상위에 위치한 장인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그 아래에 위치한 직인들을 억압했다. 당시에는 장인들만이 자신의 이름으로 가게를 열 수 있었다. 장인들은 직인들이 독립해 장인이 될 자격을 갖추어도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직인들을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러한 통제를 '길드 guild 규제'라고 하는데, 길드란 상인이나 장인들의 협종조합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논촌에서는 봉건영주들의 규제가, 도시에서는 상인과 장인들의 규제가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억압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그 본질상 똑같은 봉건적 억압이었다.-100-102쪽

『국부론』에슨 너무도 유명한, 스미스 사상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말이 나온다. 바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다. 그런데 이 말처럼 스미스를 유명하게 만든 것도 없지만, 이 말처럼 스미스를 오해받게 한 것도 없다. 왜냐하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란 사람들이 흔히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미스의 말을,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대개 가격을 가리킬 때가 많다)이 있어서 저절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 시장에 맡겨놓으면 최상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
애덤 스미스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전혀 의도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이 하는 일은 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 전체의 이익에 기여하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시장에 맡기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등의 이야기는 『국부론』어디에도 없다.-108-109쪽

세상에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스미스는 사람은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고 자기 향상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개인이 자신을 위해 노력하면 그 결과로 사회도 발전하고 국가의 부도 증진된다는 것이 『국부론』의 핵심적인 사상이다.-110쪽

요컨대 스미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스로 더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말라. 네가 더 행복해지면 타인도 더 행복해질 것이고, 사회도 더 행복해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모두를 더 행복해지도록 이끌어줄 것이기 때문이다.-112-114쪽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인간을 이기적 존재라고 말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그가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을 동정심, 즉 '공감sympathy'의 존재라고 말한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사람이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동기에 반응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물질적 보상이나 이익이 없더라도 누구든 타인의 불행을 보면 슬퍼하고 타인의 행복을 보면 기뻐한다. 공감은 이익의 판단에 선행하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116쪽

지금도 대개의 경제학 교과서들은 '수요'라는 말을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의사로 정의한다. 그러나 맬서스는 아무리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더라도, 실제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고 있는 것이다.-142쪽

지금이나 옛날이나 독일은 광업이 발달하고 탄광촌이 많은 나라이다. 그래서 「백설공주」에 나오는 일곱 난쟁이는 난쟁이가 아니라 탄광에서 일하던 어린이들을 비유한 것이며, 백설공주와 왕자는 어린이들까지도 중노동을 시키며 착취했던 그 지역의 영주와 그 부인을 비유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168쪽

지금 우리는 이미 그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보되고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게 느끼지 않는 분도 많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노예제는 분명 야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토록 야만스럽게 보이는 노예제조차도 실은 긴 역사로 보면 진보의 한 갈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인류가 단지 노예제로 진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야만스러움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더 이성적인 문명을 건설해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이다.-177쪽

러다이트 운동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일으킨 최초의 집단 저항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영국의 공장 제도와 노동자들의 생활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
사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러다이트 운동에 나선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대해 거의 무지했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자본가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계의 자본가적인 사용이다. 기계가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된다면 노동시간이 줄고 노동의 강도는 낮춰질 것이다. 그러나 기계가 자본가를 위해 사용되면 노동시간은 더 늘어나지만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은 더 줄어들 뿐이다. 당시 노동자들은 기계가 아니라 기계의 자본가적 사용이 자신들을 착취한다는 사실을 아직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다.-179-181쪽

러다이트 운동이 실패한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저항은 각지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노동 운동이 점점 확대되면서 그 지도자들 가운데 며몇 선구자들은 이렇게 자생적이고 산발적인 저항으로는 사회체제를 개혁하고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없다는 자각을 했다. 자본가들의 힘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있는 반면에 노동자들의 힘은 오직 단결에 있다는 자각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노동조합 운동이 나타났다.-181쪽

노동은 인류에게 내린 그 어떤 저주보다 더 끔찍한 저주가 되고 말았다. 기술은 진보하고 사회는 더 발전하는데 노동자들은 왜 더 많이 일하면서도 왜 더 빈곤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과 축적을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노동자들의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이 되고, 그 생산물이 노동자들 자신의 풍요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저주일 수밖에 없다.-197쪽

물론 헨리 조지와 마크 트웨인의 시대에는 철도회사들만 온갖 악덕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대부분 남북전쟁에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이르는 시기에 부를 축적했다. 코넬리어스 밴더빌트를 비롯해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등이 바로 그들이다. 흔히 이들을 부르던 말이 바로 강도귀족이다. 강도귀족이라는 말은 이들의 부가 합리적인 기업 활동과 정당한 거래로 쌓은 것이 아니라 기만과 협잡, 부정부패, 심지어는 범죄단을 동원한 노골적인 폭력과 범죄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들에게 고용된 폭력단은 총을 들고 다른 회사에 침입하고, 경쟁자를 협박해 회사를 빼앗는 일도 예사였다. 나중의 일이지만 록펠러와 카네기는 그나마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치부 과정에서 쌓은 악명을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다.-228쪽

강도귀족들의 행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은 1869년 8월 9일 밴더빌트의 하수인이었다가 경쟁자가 된 금융투기꾼 제이 굴드와 모건의 하수인 조지프 램지가 철도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유혈 사태이다. 굴드가 800명의 폭력배들을 동원해 열차에 태우고 쳐들어가자 램지도 450명의 폭력배를 마주 오는 열차에 태우고 대항했다. 두 열차는 충돌해 전복했고, 10여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결국 이 싸움은 램지 측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한 것은 모건은행이었다. 지금은 후손들이 경영을 맡고 있지만, 미국의 10대 기업은 모두 '록펠러의 것이거나 모건의 것이거나 또는 록펠러-모건의 것'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이들 기업이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228-230쪽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계급들도 마치 유한계급들처럼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새로 나온 상품들을 경쟁적으로 소비한다. 얼핏 보면 이런 대중 소비사회는 과거 어느 사회보다 더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이제 노동자들은 생산 과정에서만 자본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소비와 생활에서조차 그들의 이윤을 늘려주기 위해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 아니라 자본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충분히 더 사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들을 바꾸고, 자동차를 바꾸고, 평범한 사람들이 살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복합상가를 짓는다. -274쪽

케인스Jhon Maynard Keynes, 1883-1946 를 비꼬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이런 것도 있다. "만약 어떤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 여섯 사람에게 질문하면 일곱 개의 답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가운데 두 개는 케인스 씨의 것입니다." 케인스는 자기가 했던 말과 전혀 다른 주장도 한다는 뜻이다. 달리 보면 이런 면모야말로 케인스 경제학의 현실성을 잘 보여준다. 상황이 다르면 대답도 달라져야 하는데, 주류 경제학자들은 똑같은 대답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관념이 현실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인스에게는 언제나 현실이 관념 위에 있다.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완전무결함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연구실에 파묻혀 있을 동안 현실에서는 빈곤과 시업으로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과연 무엇을 해야 옳은가?-280쪽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1924 은 당시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 대신 '경제학'이라는 이름을 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경제학 교과서의 기본 체계는 모두 마셜의 《경제학원론》에서 온 것이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에 독립된 학과로 경제학과를 처음 개설했으며, 케인스를 비롯한 수많은 경제학자의 대가들을 양성했다. 한때 신고전학파라는 말은 케임브리지학파와 동의어로 이해되기도 했다. 마셜의 연구실 방문에는 "런던의 빈민가를 가보지 않은 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경제학은 약자를 위한 학문이어야 한다는 '경제 기사도', 경제는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경제 생물학'등의 개념을 창안하기도 했다.-282쪽


"이렇게 추운데 우리 집은 왜 난로를 켜지 않나요?"
"아빠가 실업자가 되어서 석탄을 살 수 없단다."
"아빠는 왜 실업자가 되었나요?"
"그건 석탄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서란다."-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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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할인행사
에이나인미디어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사랑이 무엇인지에 관한 정의는 아주 다양하게 나올 수 있을테고, 그 형태 또한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겠지만, 중요한 건 사랑에 대한 코드가 맞아야 당신과 나의 사랑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 그런면에서 토멕의 코드는 나와 아주 많이 어긋나고,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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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절판


고통은 그 나름대로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이 없는 인류는 두려움이나 동정을 느끼지 못한다. 두려움이 없으면 겸손함도 없을 것이고, 모든 사람은 다 괴물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고통과 두려움에 대한 인식은 우리들 내부에서 동정심이 일도록 한다. 그러한 동정심 속에 자비와 구원이 존재하는 것이다.-3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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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4-09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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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4-09 15:16   좋아요 0 | URL
딘 쿤츠의 저 인용문을 읽으며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 상황에서 선물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지나치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딘 쿤츠의 소설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온갖 시름을 싹 잊게 해주거든요. 이 양반 책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일들에 비하면 나한테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웬디 웰치, 《빅스톤 갭의 작은책방》 中


'딘 쿤츠'의 책이라면 《남편》한 권을 읽었을 뿐이었는데,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여자가 딘 쿤츠의 소설을 읽고 시름을 잊는다는 말에 딘 쿤츠의 책을 어디 한 번 다시 보자, 하고는 다른 책을 골라 읽었다.
















읽으면서 빅스톤 갭의 책방에 찾아들었던 여자가 굳이 왜 딘 쿤츠의 소설을 읽는지는 이해했다. 이 책, 《벨로시티》에는 평범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온갖 역경을 다 겪으니까. 아휴, 내가 이런 지경이라면 정말 살 수가 없겠다, 싶으니까. 그런 부분이 아마도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그녀에게 '나한테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런 부분이 그녀에게 위로와 위안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아는데, 아는 건 아는 거고, 나는 딘 쿤츠의 책을 두 권 읽은 현재, 이제 딘 쿤츠는 그만 읽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이 재미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얼른 책장을 넘기고 싶은것도 맞고, 대체 누가 주인공을 이토록 괴롭히는지 궁금하고 애가 타는 것도 맞다. 그가 이 위기의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그렇지만 약간 억지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고 할까.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한국영화 《뚝방전설》에서 주인공 '박건형'이 내뱉았던 말이 떠올랐다. '범죄 신고는 112' 라고 했던 그 말이. 쉽게 말해, 경찰에 신고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했던거다. 이미 자신이 살인의 용의자로 지목받을 것 같아 늦어버린 그 상화에서라면, 진작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게 위험을 자초했다면, 그러면 FBI 를 찾아가도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여튼 해결해내는 그 모습을 보고 싶으면서도 근데 왜 혼자 해결하려고 이리 똥줄을 태울까, 경찰에 신고하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든거다. 신고해도 또 신고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죽는다면, 신고해서 그 일을 자신의 문제로 내버려두지 않고 경찰에 넘겨도 됐을텐데, 하는 생각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건 알고있지만, 여튼 저렇게 사는 주인공을 보자니 답답했다. 경찰에 신고를 하지..이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나의 경우, 바바리맨을, 술에 취해 쓰러진 아저씨를, 고장난 신호등을, 같은 학교의 교복입은 학생들 사이에 둘러쌓인 한 아이를 보고 죄다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은 우리 주변에 있어요!!



《벨로시티》를 시작으로 딘 쿤츠는 평범한 남자가 악몽 같은 현실에 빠져드는 연작을 발표했습니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에서 출간된 《남편》이 두 번째 작품. 그리고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The Good Guy》가 세 번째 작품이죠. 미국에서는 이 세작품을 '평범한 남자 3부작' 이라고도 부르더군요. -모중석 인터뷰 중에서(책 뒤)



난 이 평범한 남자 3부작 중 두 권을 읽은 셈인데, 음, 나는 평범한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킁.




















영화로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책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100쪽쯤 읽다가 중단했다. 문체가 산만하다고 해야하나.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문체여서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던거다. 그래도 영화는 봐야지 하고 별렀지만 상영관도 시간도 좀처럼 맞출 수가 없어 놓쳤다가 뒤늦게 보게됐다. 그리고 오, 보기를 정말 잘했다!!!!


여자 '엠마 몰리'는 남자 '덱스터'를 학창시절 내내 흠모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졸업식날 밤, 덱스터와 엠마는 사이 좋은 친구가 되고 그렇게 그들은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내며 같이 여행을 다니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서로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가 되어준다. 


어딘가에서 그런 말을 본 적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친구로 지내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짝사랑이 존재한다고. 물론 그 말은 백프로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짝사랑을 혹은 그의 짝사랑을 숨겨서 우리는 이성인 동시에 친구로 존재하는 가능성이 아주 높으니까. 그리고 그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신의 감정을 계속 숨기게 되고, 그것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우정을 더 오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이 말이 맞든 틀리든 어쨌든, 엠마와 덱스터에게는 맞는 말이었다. 엠마는 덱스터에 대한 연정을 품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부터. 덱스터가 자신의 이름을 외우지도 못했던 그때부터, 엠마는 덱스터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친구가 되는 것이, 그로부터 간혹 애정을 확인하는 말을 듣는것이 그렇게나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친구란 무엇인가. 그의 연애를 다 지켜보고 마찬가지로 그 연애에서 오는 헤어짐까지 다 지켜보는 사이가 아닌가. 그가 사귀는 여자들이 나와는 다르다는 것도 알고, 그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알면서, 그렇게 덱스터가 여자들을 바꿔치는 걸 묵묵히 지켜보며, 엠마 역시 다른 남자를 사귀고 동거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절망적으로 확인하게 된 건, 자신이 동거하는 남자를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또한 연애에 있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둘 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연애는 지속되기는 커녕 시작되지도 않겠지만, 어느 한 쪽의 사랑만 있어도 일단 연애는 성립할 수 있다. 남자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그 사랑에 기대어 그 연애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내 사랑이 너무 커 남자가 아직 사랑하지도 않는채로 앞으로 사랑할 수 있겠지, 하며 연애를 시작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좀처럼 상대에 대한 사랑이 자라지 않는다면, 결국 나도 또 상대도 그걸 알 수밖에 없다. 사랑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숨길 수 없는거니까. 사랑은 거짓으로 말할 수 있을 지언정, 그 거짓은 상대도 알 수밖에 없다. 만약 상대의 사랑한다는 말을 믿었다면, 그건 믿고 싶었던 본인의 의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물론 엠마의 동거남 '이안'도 안다. 엠마가 덱스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함께 살고 있다고 해서, 하루중의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니다. 그것이 증거는 아니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 마음속으로 다른 남자를 사랑하며 나도 모르게 시선을 그를 향하며 집으로 돌아와 나를 사랑한다는 남자와 살을 섞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될 수 없다. 그것이 오래 지속되는 건 나에게도 그리고 나를 한없이 사랑해주는 그에게도 못할 짓이다. 


이안은 덱스터에게 말한다.


당신하고 있을 때는 엠마의 표정이 달라졌어요. 아주 밝았죠.


이 부분을 보다가 문득 어느때의 내가 생각났다. 내 감정을 숨기고 그와 우정을 지속하던 그때, 그때의 내 표정도 누군가에겐 달라 보였을까. 연애를 하면서도 애정은 우정의 상대에게 가있던 그때,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 속마음을 들켰을까.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그는, 자신과 함께 있는 내 표정을 유심히 봤을까. 내 표정이 밝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내가 그를 관찰했듯이 그도 나를 관찰했을까. 엠마가 덱스터의 한마디에 표정이 극과 극을 오갔듯이, 나 역시 그랬던 걸 그는 눈치챘을까. 그리고, 


덱스터의 청첩장을 받아든 엠마의 축하한다는 말, 


그것을 덱스터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때. 엠마는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도 우는 대신 축하해 준 적이 몇 번 있었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 시절, 노래방에서 서영은의 《그 사람의 결혼식》 부르다가 목구멍 찢어질 뻔했었지.. 피를 토할뻔했어..이제는 그 노래 안부르고 묵묵히 보내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도 성장하니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행복이란 무얼까,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 생각했다. 더이상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테고. 예상치 못한 막판의 진행 때문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만약 극장에서 봤다면 눈물을 줄줄 흘렸을 것 같더라. 

오래 기다리면 결국 그는 내 사람이 될까? 그러나 내 사람이 꼭 연인으로 존재해야 하나? 그렇게 오래 기다리면 어차피 그 사랑은 더이상 사랑은 아니지 않을까. 내 사랑은 그렇게 길게 지속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그와 행복해지는 길이 지금의 우정이라면, 나는 그 우정을 계속 지켜나가는 방법을 택할 것 같다. 물론 이건, 지금의 내 생각이다. 사람은 앞으로 누구를 만나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엠마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결국 인생은 정해진 방향대로 흘러가는걸까...

엠마의 표정이 바뀔때마다 내 표정도 함께 바뀌었다. 엠마는 마음을 나에게 들켰고, 내 마음 역시 엠마에게 들킨 기분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심규선의 콘서트에 갔었다. 짙은과 함께 공연한다는 건 알았지만, 나는 짙은이 게스트의 형식으로 나올 줄 알았지, 2부는 짙은의 무대일줄은 몰랐다. 알았으면 콘서트를 안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오, 이게 뭐야. 짙은이 더 좋은거다! 나는 짙은을 모르고 노래도 몰랐는데, 아니 저사람 뭐야! 팬이 되기로 결심하고, 앨범을 다 사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 으흐흐흐흐.













그래서 사람일은 모르는거다. 지난 토요일까지 존재도 잘 몰랐던 짙은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내게 다가올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헐.

나 갑자기 눈 다래끼가 나기 시작하네? 완전 간지러운데 이를 어쩔...이게 뭔일이래 대체 ㅠㅠ

(13:47 추가: 다래끼 아닌가보다. 가라앉았어.. -_-)




덧. 1. 영화《원 데이》는 단 돈 천 원에 굿 다운로더 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꾸벅.

     2. '앤 헤서웨이' 주연의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도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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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4-04-0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래끼가 나다니! 아직 청춘이시군요. 나이드니까 안나던데. ㅎㅎ 잘 지내셨나요? ^^

다락방 2014-04-09 13:45   좋아요 0 | URL
이게 다래끼가 아닌가봅니다. 가라앉았네요. 뭐지..역시 나도(응?) 늙어버린 것인가....저도 초딩때 나고 다래끼는 처음이라 하하. 여튼 다래끼가 아니었나봐요. 이렇게 금세 사라지는 걸 보니. 밥 먹어서 없어졌나?

저야 잘 지냅니다. 야클님이야말로 잘 지내십니까. 종종 나타나주셔요, 좀!!

야클 2014-04-09 13:58   좋아요 0 | URL
지난 주에야 바쁜 시즌 겨우 끝나고 요즘은 시즌 후유증으로 골골거리고 있어요. ㅎㅎ

다락방 2014-04-09 16:02   좋아요 0 | URL
골골거리지 말고 기운내세욧!! ㅎㅎ

2014-04-09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9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조기후 2014-04-0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짙은을 모르셨구나.. 화창한 봄날 서럽게 녹아내리는 데는 제격이지 않던가요? ㅜㅜ 저도 아직 신보는 안 샀는데 노래 들어보니 역시 싶더라고요 어흑..

다락방 2014-04-09 15:25   좋아요 0 | URL
'화창한 봄날 서럽게 녹아내리는' 이라뇨, 건조기후님. 아..표현이 너무 시적이야! 건조기후님, 사랑합니다!

아무개 2014-04-09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우정을 빙자한 애정은 비.겁.한.거죠.
하지만 비겁할수 밖에 없는 그 심정은 차고 넘치게 잘알죠 저도..크흑...
분명 이 영화를 봤는데 왜 결말이 기억이 나지 않을까요..

2. 어디 < 그 사람의 결혼식> 한번 들어 볼까요? 으흐흐흐흐흐흐흐

3.아참...사람들은 자신이 힘들때 자신 보다 더 힘든 사람을 찾아요.
그래서 제가 가끔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쿨럭~ =..=


다락방 2014-04-09 15:27   좋아요 0 | URL
1. 아니, 아무개님. 이 영화를 보셨다고요? 정말? 은근 영화 많이 보시는 것 같습니다!! ㅎㅎ
결말은 나중에 만나면 말씀드릴게요. ㅎㅎ

2. 그 사람의 결혼식은 더이상 부르지 않습니다. 다 철없던 때의 얘기에요..이젠 웃으며 보내줍니다. 세이 굿바이- 저거 이 나이에 부르다가 목젖 나가요..

3.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일전에 너무 우울하다고 생각되던 때에, 내 앞에 마주앉았던 회사 동료가 우울해하는 걸 보고 아...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싶어 오히려 생각지도 않게 위로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수이 2021-12-1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두나 전 애인이었네요 영화 속 남자 주인공!

다락방 2021-12-18 18:55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ㅋㅋ 내일 다시 볼거에요. 마침 넷플에 있으니까요. 후훗.
 
원 데이 : 초회 한정판 (36p 화보집)
론 쉐르픽 감독, 앤 해서웨이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원작은 읽다가 중간에 멈췄는데 영화는 놓쳤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앤 헤서웨이의 표정 연기는 주인공 `엠마`의 감정을 너무나 잘 드러내주고, `엠마는 너를 사람 만들어줬고 너는 엠마에게 행복을 줬어` 라는 이안의 말이 자꾸 맴돈다. 그 사람과 있을 때의 내 표정은 어떨까, 궁금해지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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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4-0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말이 많은 영화다. 곧 다 해주마!

아무개 2014-04-08 13:01   좋아요 0 | URL
기다려주마!!!! *^^*

단발머리 2014-04-08 15:26   좋아요 0 | URL
아, 앤 헤서웨이면 무조건 봐야죠~~ 무조건, 무조건이야~~
얼릉 해 주세요. 기다려주마2!!!! *^^*


버벌 2014-04-08 18:41   좋아요 0 | URL
어서어서어서어서어서어서

다락방 2014-04-09 15:29   좋아요 0 | URL
썼습니다, 여러분! ㅎㅎㅎㅎㅎ

moonnight 2014-04-08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면서 펑펑 울었었죠. 앤 헤서웨이는 정말 예뻐요. >.<

다락방 2014-04-09 15:28   좋아요 0 | URL
저도 극장에서 봤으면 펑펑 울었을 것 같아요. 스맛폰으로 띄엄띄엄 봤더니 감정이 확- 오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는 ㅠㅠ

무스탕 2014-04-0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 많이 하시려면 배가 든든해야 합니다.
꼭 식사 맛있게 많이 드시고 완전무장상태에서 풀어주세요 ^^

다락방 2014-04-09 15:28   좋아요 0 | URL
제 배는 늘 든든합니다, 무스탕님. 그게 문제에요, 항상 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