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주로 출퇴근길에 읽는 나로서는 가지고 다니는 것도 너무 무겁고 들고 읽기도 진짜 무거워 ㅠㅠ 오늘 아침에도 가방안에 이 책 넣고 무겁게 이동하면서 '아아, 내가 무거운 걸 가지고 다니는 건 내 팔자인걸까..' 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아직 100쪽도 못읽은 현재, '아이 참..정말로.... 에이모 토울스는 너무 좋구나 ㅠㅠ' 하고 있다.



작가의 전작 《우아한 연인》에서는 여자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 <월든>이라는 말에, 남자주인공이 그 책을 읽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책을 좋아하게 되어서 늘상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는거다. 남자는 금융맨이었는데, 이후의 삶 자체가 달라지게 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나도 그 책을 좋아하게 되는 그런 거, 진짜 너무 좋은 에피소드 아닌가. 내가 우아한 연인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에피소드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에이모 토울스의 다음작품을 당연히 읽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읽었는데 초반부터 아아, 작가님, 또 너무 좋은 이야기를 하고 계셔. 책에 대해서. 에이모 토울스가 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건지 책 이야기 껴넣는 거 진짜 너무 좋구요. 그것도 주인공들이 책 읽는 거라서 진짜 너무나 좋다. 물론 지금 이 책의 주인공인 백작은 사실 이 책 읽기를 즐겨하고 있진 않지만, 어쨌든..



로스토프 백작은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가면 총살을 당하는 벌을 받는다. 그러니 호텔 내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것. 이런 벌을 받기 전에는 호텔 스위트 룸에 묵었었는데, 이 벌이 내려지고 나서 그가 묵어야 할 방은 창고로 쓰여지던 낡은 방이다. 그러니 가지고 있던 짐을 확 줄여야했고, 책을 한 권 남기고 다 직원들이 물건 보관하는 창고에 넣어두게 되는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발자크, 디킨스, 톨스토이의 숭고한 작품들이 있는 개인 서재는 파리에 남아 있었다. 사환들이 다락바응로 옮긴 책들은 실은 아버지의 책들이었고, 주로 합리주의 철학과 현대 농업 과학을 다룬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책이 무거웠고, 읽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위압감을 주었다. (p.41)



아, 서른셋의 로스토프 백작은, 너무 좋아, 발자크, 디킨스, 톨스토이를 좋아하는 문학인이었던 것이야. 아아, 소설을 좋아하다니, 당신은 멋진 사람! 당신은 분명 다정하겠군요. 너무 좋으네. 그러나 그의 책들을 파리..에 있고 지금 그가 모스크바에서 가지고 있는 책들은 자신의 취향이 '아닌' 책들인 것이었다. 어쨌든 장소도 좁고 그래서 한 권만 남기고 일단 다 창고에 처박아 두게 되는데, 그 한 권이 무엇이냐 하면, 10년전부터 읽어야지 생각했지만 아직까지도 읽지 못한, '몽테뉴'의 《수상록》되시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이해되지 않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다음 책상에 앉아 방에 남겨놓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으며 아버지가 몹시 좋아했던 이 책을 읽겠노라고 백작이 자신과 처음 약속한 것이 분명 10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달력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번 달엔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는 데 전념할 거야!' 라고 선언했을 때마다 인생의 어떤 악마적인 면이 문간에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뜻밖의 곳에서 어떤 연애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도의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가 거래하는 은행가가 전화를 하기도 했다. 혹은 서커스단이 마을에 오기도 했다.

어찌 됐든 인생은 유혹할 것이다. (p.42)



아니 그러니까 ㅋㅋㅋㅋ 당연히 인생은 유혹할 것이고, 연애를 하면 연애에 푹 빠지는 것도 맞는데, 만약 발자크와 디킨스와 톨스토이의 작품이었다면, 연애나 은행의 전화 핑계를 대면서 읽기를 10년간 미뤘을까? 아닐 것이다. 몽테뉴여서 그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자꾸 미룬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지금은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호텔에 갇혔으므로), 바로 이 때 읽자!하고 그는 수상록 읽기를 시도하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도무지 잘 읽히지가 않는 것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그냥 내가 피곤해서, 내가 집중이 안돼서, 뭐 기타등등의 이유로 책을 읽는데, 아, 내가 어디까지 읽었더라? 하고 여기였나 읽어보면 너무 새롭고, 그래서 앞으로 돌아가고 돌아가고... 우리의 백작님께서 수상록을 만나고 그렇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힘든 싸움을 시작했어..




트베르스카야 거리(그리고 한껏 맵시를 부린 젊은 숙녀들과 무지칠 기회)에 대한 생각을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목욕을 하고, 옷을 입고, 커피와 과일(오늘은 무화과였다)을 먹고 나니 10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백작은 몽테뉴의 걸작을 의욕적으로 집어 들었으나, 열다섯 줄쯤 읽고 나서는 매번 그의 눈길이 시계를 향해 슬금슬금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백작은 전날 책상에서 처음으로 그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약간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책으로서는 사전이나 성경-그런 책들은 필요한 내용을 참고하거나 아니면 마음 먹고 정독하는 용도의 책이지 '읽는' 책이 아니다-에 버금가는 밀도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차-절개, 절제, 고독, 잠과 같은 주제를 다룬 107편의 에세이 목록-를 살펴본 백작은, 그 책은 아믕에 겨울밤이 스며들었을 때 쓰인 책일 거라는 애초의 의심이 확인되었다고 생각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책은, 새들은 이미 남쪽으로 날아갔고 장작은 벽난로 옆에 쌓여 있고 들판은 눈으로 하얀, 그런 때를 위한 책이었다. 즉, 밖으로 나가서 뭔가 할 엄두가 나지 않고 친구들고 고생스럽게 자기를 찾아올 생각이 없는, 그런 시간을 위한 책이었다. (p.54-55)



그러니까 나는 유독 힘든 요가 프로그램 시간에 자꾸 시계를 보곤 했다. 어느날 선생님은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요' 말씀하셨더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백작님, 시계는 몇 번이나 보셨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시 20분 56초, 시계가 알려주었다.

10시 20분 57초.

58초.

59초.

시계는 호메로스가 자신의 강약약적 운율을 알려주고 베드로가 죄인의 죄를 알려주듯이 초를 완벽하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어디를 읽고 있었더라?

아, 그래. 세 번째 에세이.

백작은 시계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고 의자를 약간 왼쪽으로 옮겼다. 그런 다음 읽던 부분을 찾았다. 15페이지 다섯 번째 단락이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단락의 글로 되돌아갔을 때 문맥이 전혀 와닿지 않고 생소했다. 바로 앞 단락을 읽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는 뒤로 세 페이지를 온전히 돌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읽어나갈 수 있을 만큼 분명히 기억나는 구절을 발견했다.

"당신과 함께한다는 건 이런 겁니까?" 백작이 몽테뉴에게 따져 물었다. "한 걸음 나아갔다 두 걸음 뒷걸음질해야 하는 거예요?" (p.56-57)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여러분 너무 좋지 않아요?

완전 백작이 되었다. 나는 백작이 되어 몽테뉴에게 따지고 들었다.



"당신과 함께한다는 건 이런 겁니까?"

"한 걸음 나아갔다 두 걸금 뒷걸음질해야 하는 거예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넘나 좋아 넘나 좋다.



우아한 연인 읽었을 때는 월든을 너무 읽고 싶어서 월든 사두었는데 나는 아직 읽지 않았지. 그런데 이 책 읽다보니 수상록 넘나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직 사지도 않았는데. 나 역시 몽테뉴에게 따져가며 수상록 읽기에 도전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 100쪽도 읽지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물론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겠지만, 끝내 백작이 수상록 읽기에 성공하는지, 혹여 성공했다면 어떤 감상을 들려줄지 넘나 궁금한 것.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책을 집어들게 될지, 그렇다면 그 책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지도 너무 궁금하고. 너무 좋네.



그리고 좀 많이 읽은 날, 그는 점심에 와인을 주문한다.



"샤토 드 보들레르 한 병이 낫겠군요." 백작이 점잖게 고쳐 말했다.

"그럼요." 비숍이 성직자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보들레르 한 병은 혼자 먹는 점심에는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도 지칠 줄 모르는 미셸 드 몽테뉴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 터라 백작은 자신의 사기를 북돋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p.68)



나도 줌파 라히리 책 읽다가 너무 지쳐서 던킨 도넛츠에 들어가 도넛을 주문해 먹었던 때가 있었다. 책 읽는 사람들 누구나 다 독서로 인해 스스로에게 기운낼만한 음식을 선물한 적이 있지 않을까. 몽테뉴 읽었더니 점심에 사치스런 와인 한 병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백작이라니. 와- 진짜 완전 내타입이다. 백작과 내가 친구여야 했는데!



"몽테뉴 읽었더니 힘드네. 점심에 사치스런 와인 병으로 마셔야겠어."

"아이고..그래그래. 같이 가서 짠해줄게. 나도 가니까 두당 한 병씩 와인 두 병 주문하자."

"응 고마워.

"근데 와인 한 병만으로는 기운 내기 힘들어. 위로는 되겠지만. 스테이크 큰 걸로 시켜. 시금치도 사이드로 시키고. 사이드는 시금치가 좋지 않니?"

"응 시금치 너무 좋지!"

"오늘 아침에 몽테뉴 읽느라 기운 빠졌으니까 점심에 와인 비우고 스테이크 먹고 배 두드리면서 오후에 낮잠 자자."

"응."

"오늘은 그냥 우리를 풀어놓자."

"응."



이렇게 되면 너무 좋으니까 나랑 친구하면 너무 좋을것 같지 않아용??


그러다가 다음날에는 내가 그러는거지.


"야, 너 따라 몽테뉴 읽었더니 나도 와인 필요해."

"아, 알지알지. 그래그래 마시자 마시자."

"우리 어제도 마셨잖아.."

"응. 근데 어제는 나 때문에 마신 거고 오늘은 너 때문에 마셔야지."

"응. 그것이 참된 우정이지.."


이러면서 우리는 또 마시고 먹고 배두드리고 자고...


몽테뉴를 완독하기 위해 우리의 우정은 30년이상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야....



독서

우정

와인

고기

럽...




에이미 토울스 좋네요. 후훗. 책 이야기 이렇게 적어주는 건 너무 좋아. 우아한 연인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책 따라 읽어보는 것도 너무 좋고, 이렇게 취향에 안맞는 책 도전하면서 사기 북돋기 위해 와인 병째 시키는 거 사랑합니다.



럽..

















아, 근데 여러분. 우아한 연인 들어가면 추천글에 이유경 나오는 거 알아요? 그 이유경이 바로 이 이유경이다..



여러분이 알고 지내는 이유경이 바로 이 이유경이야.. 유명인..... =3=3=3=3=3=3=3=3=3=3=3=3=3=3=3=3=3=3=3=3=3=3=3=3

세인트 피터스버그 타임즈, 해럴드,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랑 나란히 있는 이유경...




이만총총.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18-09-0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죠?^^ 전 아직 <우아한 연인> 안 읽었는데... 당장 구입해야겠어요. 추천인을 보니 바로..ㅎㅎ

다락방 2018-09-06 15:4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아한 연인 정말 좋았어요! 제가 좋아라 하는 책인데 회사 동료 빌려줬더니 퇴사해버렸다능... 지금 다시 사고 싶어 봤더니 절판이라고 되어있네요? ㅜㅜ

syo 2018-09-0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새로운 남자가 하나 더 나타났어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은 바람둥이 다락바람님.

다락방 2018-09-06 15:47   좋아요 0 | URL
아니야 아니야 아직 그정도는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9-06 18:24   좋아요 0 | URL
이유경 바로 옆에 저 아래 화살표를 누르면, 이유경의 프로필이 나오고.
이유경의 마니아가 뜹니다.
내 뒤에 로쟈님... 그래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내 앞에... 아니!!! syo님!! 쇼님! 쑈님!!!

syo 2018-09-06 18:26   좋아요 0 | URL
단발님 소식이 꽤 늦으셨네요. syo의 이유경 마니아 1위 등극은 벌써 꽤 된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이유경 작가님조차 인지하고 계신 부분이구요.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락방 2018-09-06 18:34   좋아요 0 | URL
네, 이유경 마니아는 1위가 이유경이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답니다?

단발머리 2018-09-06 18:41   좋아요 0 | URL
이유경의 마니아 이유경을 간신히 넘어섰다 했더니, 이게 웬일이예요?
긴 말 필요없어요!
syo님, 비켜요! 얼른!

syo 2018-09-06 18:54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하 그렇게 쉽게 비켜설 순 없지!! 😎

다락방 2018-09-06 20:21   좋아요 0 | URL
이 사람들.. 있어봐요 ㅋㅋㅋ 이유경 마니아 1위는 이유경이 하는 것이 온당하다! 곧 닿겠어!! 😡

비연 2018-09-07 19:36   좋아요 0 | URL
syo님, 단발님, 그리고 다락방님 대화 내용에 빵터진... ㅎㅎㅎㅎㅎ

루쉰P 2018-09-0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함없이 항상 여기에 계시는군요 ㅎ

다락방 2018-09-17 17:59   좋아요 0 | URL
네, 저야 뭐 늘 그렇듯이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환경 애견 배변봉투 개똥이
















"여기다 집을 지을 생각 없어?" 1월의 어느 추운 날 아침, 많은 여행객들과 함께 말 농장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던 중에 자시가 내게 갑자기 물었다. 대녀와 대자를 만난 다음날이었다.

"뭐? 말 농장에다가?" 나는 이 황당한 제안에 놀라 되물었다.

"맞아, 여기다가. 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이 아름다운 곳에 말이야. 조그만 모쒀식 집을 지을 수 있어. 돈도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거야." 자시가 말했다.

"많지 않은 게 얼마인데?" 그가 내민 미끼를 물어서라기보다는 순전한 호기심에 반문했다.

자시가 답한 금액은 땅이 귀한 싱가포르의 집값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는 확실히 놀라우리만치 적은 금액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차 한 대를 사는 값보다 훨신 적은 비용이라니!

"음, 생각해볼게." 내가 말했다. 즉각적으로 머릿속에서 생각의 씨앗이 하나 심어졌다는 걸 느꼈지만 여지를 남겨두었다. (p.53)



이 책의 저자 '추 와이홍'은 싱가포르에 살면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중국 변방의 루구호 주변 윈난 지역에 찾아가게 된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모계사회인 그곳에서 안락함을 느껴, 한 번 여행갔던 곳을 또 찾게 되고 반복해 찾게 되면서 차츰 그곳의 사람들과도 친해지게 된다. 그러자 '여기에 집을 지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되고, 그렇게 싱가포르에 살던 추 와이홍은 이곳에 별장처럼 또 하나의 집을 지어두게 된다. 점점 이곳을 찾는 시간이 많아지더니, 이제는 일년의 반정도를 이곳에 살게 되었다. 이곳이 고향같아서, 아늑해서, 안정감이 느껴져서.



현지인처럼 사는 것은 루구호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빈도가 잦아질수록 가능해졌다. 머무는 기간이 초반에는 짧다가 갈수록 길어져서 나중에는 일 년에 최소 서너 번, 한 번 올 때마다 최소 두어 달은 머물게 되었다. 갈수록 싱가포르와 루구호 사이, 숨가쁜 도시에서의 일상과 그것과는 사뭇 다른 산속의 생활리듬 사이를 오가는 데 익숙해졌다.

한 발은 싱가포르에 걸치고, 다른 발은 살던 곳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 두는 생활은 마치 두 개의 나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p.90)



나는 언제나 이런 삶을 꿈꾸어 왔는데, 누군가 이런 삶을 이미 살고 있었다. 역시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나 밖에 없지만(너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그러나 나랑 비슷한 사람은 많은가 보다. 나는 항상 이민을 가고 싶어하면서도, 그러나 이민 간 곳에서 완전히 뿌리를 내릴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거기에 단단히 박혀있기 보다는, 거기에 거주지를 두면서도 다른 곳을 왔다갔다 하고 싶었던 거다. 나는 여기에도 있지만 거기에도 있지.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정확히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국제결혼을 생각했었는데(하하하하하), 그건 내가 바라는 그 삶이 국제결혼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외국인하고 결혼하면 외국에 살면서 한국에 다녀갈 수 있다'는 게 내가 그린 빅픽쳐 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종종 엄마나 아빠에게 '나 국제결혼 해도 돼?' 묻곤 했다. 어릴 땐 안된다고 하던 부모님이 나이 들고 나서는 '누가 됐든 하기나 해라' 하셨지만, 이제는 내가 생각이가 없다.... 인생......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살고자 하는 그 삶이 국제결혼이 아니어도 이루어질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내가 돈을 많이, 그러니까 아주 많이 번다면, 나 스스로도 혼자서 충분히 여기에도 살고 저기에도 살 수 있다. 여기에도 집 있고 거기에도 집이 있어서 아, 지금은 여기 있고, 아 저기 가고 싶네, 그러면 굳이 호텔 예약 하지 않아도 그곳으로 훅- 날아가 머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내가 돈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집을 두 채 가지고 싶었다. 여기와, 그리고, 그 곳에.



그 곳은 오래 미국이었다가, 호주였다가, 짧게는 포르투갈이었다가, 체코였다가 했다. 지금은 베트남이 되었지...무릇 인생이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는 것이로구나..



싱가포르 변호사로서 미친 듯이 바쁘게 일하던 시절을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이전의 생활을 추억한다. 가족들을 만나러 암스테르담과 샌프란시스코로 가고, 친구들을 만나러 베이징과 런던을 찾는 일을 예나 지금이나 무척 즐기기도 한다.

또 다른 나는 여전히 자신들의 선조가 몇백 년  전에 하던 대로 농사를 짓고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중국 변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속세와 격리된 루구호로의 일탈을 좋아한다. 6년쯤 살아보니 이제 모쒀인들 사이에서 삶을 꾸려가는 게 가능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p.91)



추 와이홍 역시 혼자서 그렇게 지낸다. 혼자서 싱가포르에 그리고 모쒀인과 함께. 그 속에서 친구를 사귀고 사회에 적응해간다. 여기에서 거기로 오가는 삶은 사실 딱히 편한 건 아니지만, 그러나 그렇게 이동하는 시간과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야만 이곳은 그곳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이 새롭게 일 년의 절반씩을 정착하게된 이곳에서 이 지역 사람들에게 환영받는다. 그녀가 이곳을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 역시 그녀를 편안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성들의 세상에서 환영받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스스로가 진정으로 수용되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여성이 중심이 된 이 세계에서는 누구도 내가 혼자서 즐겁게 돌아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쒀인들은 여남을 불문하고 강인한 여성의 존재에 익숙해져 있다. 모두 자기 집에서 그런 여성을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쒀 친구들 역시 여성을 기리는 이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것을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느끼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모쒀인들과 나 사이에는 서로가 같은 마음이라는 이해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내가 아직까지도 완전히 소화해내지 못한 어떤 깨달음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정말 사는 동안 이렇게 나를 나 자신으로 받아들여주는 환경에서 편안하게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여성인 나를 그저 나로 존재하게끔 하고, 그럴 수 있도록 북돋아 주고,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세계에서 포근하게 보호받는 기분을 느낀다. 과장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거나 어떤 행동을 제안하는 순간에 나는 단 한 번도 의견을 묵살당한 적이 없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한 번도 무지와 싸우거나 적대감에 맞설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강요받는 기분을 느낀 적도, 잘못된 신념에 맞서 핏대를 세울 일도 없었다. 직관적으로, 나는 모쒀인들과 살아가는 이곳이 훨씬 집처럼 여겨졌다.

아직도 나는 어떻게 이 가모장제 부족이 고문 변호사로 살아온 여태까지의 내 삶을 부수어내고, 가슴속 깊이 페미니스트로서의 의식을 길러냈는지 생각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p.92)




나는 누구나 자기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살게 된다고 믿는다. 물론 내가 그리는 그 삶에 정확히, 바로 그대로 꼭 맞춘 듯 살 수 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근접해질 수는 있다. 내가 원하는 삶, 바라는 삶이 있다면, 내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바로 그 방향을 가리킬 테니까. 그러니 지금의 나는, 그간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내가 살아오길 바랐던 모습에 가장 근접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 내 삶의 형태는, 내가 그 구체적 모습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바라는 것에 가장 가까워질 것이다.



지난 주말 친구를 만났다. 아직 여름휴가를 다녀오지 못했던 친구는 이번주에 동생과 함께 하노이에 가기로 했단다. 오오, 좋겠다, 잘 다녀와, 좋겠다 ㅠㅠ 했는데, 친구는 '하노이에 대해 잘 몰라서 쫄린다'고 하는 거다. '너 일본도 혼자 여러차례 다녀왔는데 뭐가 쫄려, 쫄지마!' 했는데, 친구가 계속 '지금 비수기라 비행기도 싸고', '지금 가면 더워서 니가 딱 좋아하는 기후일텐데' 막 이래서, 나는 응 그렇겠지, 하고 삼겹살을 한 입 가득 넣고 먹고 있는데... 친구가 그러는 거다.


"나랑 하노이에서 주말에 놀지 않을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장 일주일 뒤에 하노이에서 놀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머 얘좀 봐, 나한테 왜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고 그 자리에서 나는 비행기표를 예약한 것이었던 것이었다. -0-


어떻게 살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어떻게 살다가 당장 일주일 뒤에 베트남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는..그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어떻게 살다가 올 한 해에만 하노이를 세번째 가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마침 '추 와이홍'이 점점 더 잦게, 점점 더 오래 중국 변방에 머무르게 되었다 하니, 어라, 이것은 내 얘기인가 싶어지는 것이다. 추 와이홍은 따로 집도 지었지만, 나는 집을 지을 형편은 안되네...


베트남에 이민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이민은 못가고 있지만 자주 들르는 삶을 살게 되었어... 이것 봐라, 사람은 원하는 삶에 근접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야. 내가 산 증인이다.........나도 가고 또 가고 자주 가다보면...그러다보면 누군가가 '여기에 집짓고 살아' 라고 해주지 않을까? '얼만데?' 물으면, '한국에서 자동차 한대도 안되는 값이야'라고 대답해주면 좋겠지만,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재작년이었나, 사주 봤을 때, '너 몇 년뒤엔 외국에서 산다, 영주권도 받을 거다' 했는데, 어쩌면 나 정말 베트남에 이민가게 되는걸까? 이렇게 베트남 자주 들렀다가 베트남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영주권도 받게 되는걸까?



어제 예술의 전당에 가 전시를 보고나서 쌀국수를 먹던 나의 아홉살 조카 타미는, 너무 맛있다며, 제엄마에게 그랬다 한다.



"안되겠어. 나 이모랑 베트남 가야겠어."

"왜?"

"쌀국수 먹으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타미 누구 조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홉살이 어떻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쌀국수 먹으러 베트남 간다고 하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안해..이모가 그동안 너무 먹으러 다녔지... 그런 것만 보여줘서 니가 '여행은 먹으러 가는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구나. 미안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조카가 관람한 전시는 두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가 《니키 드 생팔전》이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이 설명을 가만 읽던 조카는 "이모 생각난다"고 했다는 것. 아이고 얘야 ㅠㅠ 나는 너에게 어떤 이모인거니? ㅠㅠ 너는 리틀 다락방이 된거니? (글썽)



음...나는 한 쪽 발을 여기에 한 쪽 발은 저기에 걸친 삶에 쓰려고 했던 거였는데 또 쓰다보니 조카사랑...음....흐음....




얼마전에 올린 남동생네 개똥이는 곧 [홈앤쇼핑]에 광고가 나갈 예정인데, 영상 속에서 뒷부분에 보여지는 <개똥이 에코>에 대해 주문이 들어오고 문의가 많이 온다고 한다. 오호라, 개똥이가 시작 상품인데, 사람들이 '생분해 비닐 봉투'에 관심을 가지는구나! 다른 알라디너 분도 내게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문의 주셨고.


어쩌면..남동생이 내게 별장을 지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기대)


생분해 비닐 봉투 링크는 여기 ☞ 생분해 비닐 봉투




자, 돌아와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모계사회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은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결혼'이 없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가족을 이루고 한 집에 사는 구성원이 그 집의 '여자'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도 신선했다. 그러나 이 책의 끝에 가보면, 슬프게도, 이곳에 가부장제가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 곳이 관광사업으로 점차 개발되면서 현금이 들어오고 그렇게 중국의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지금 젊은 모쒀인들은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 전에 성관계를 지양하는 걸로 바뀌고 있다고. 이게 너무 섭섭했다. 가모장제가 더 퍼지지 못하고 어째서 가부장제가 스며들까.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필연적으로 한 몸인걸까. 그래서 자본주의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부장제 따라가는 건가. 집에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책이 있으니 그걸 읽어봐야겠다.


번역서 뒤의 <옮긴이의 말>은 대체 왜있는걸까, 이거 쓰는 거 옮긴이들한테도 부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 그래서 어떤 옮긴이의 글을 읽기를 포기하게 되는데, 이 책의 옮긴이의 말은 문장이 너무 좋았다. 앗, 이 옮긴이의 말 뭐지? 하고는, 책의 본문보다 옮긴이의 말이 더 좋은데?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어.



이 책을 다 읽고 다음 책을 골라야 하는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왔다. 침대 헤드에는 여러권의 책이 있었는데, 그중에 최은영의 책이 눈에 띄었다. 음, 그래, 최은영 읽자, 라고 생각하고는 잠깐 침대에 앉아 트위터를 보는데, 배우 '고아성'의 인터뷰가 보인다. 고아성은 《애도일기》의 한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오?!


내가 또 이 책이 있지. 사둔지 오래지만, 책장 어딘가에 있지. 나는 서둘러 책장 앞으로 가 어디있더라, 하고 책장을 훑는다. 그리고 찾았다! 으하하하하. 그래서 다음 읽을 책은 애도일기가 되었어.


















아아, 나는 또 그러니까 이렇게 책 사두고 쌓아두는 나 너무 좋아졌다. 이렇게 갑자기 언급된 책에 대해서 '으앗, 얼른 사서 읽자, 그런데 밤이니까 주문해도 내일 오겠지..' 하는게 아니라, 그냥 책장 앞에 가면 이미 준비되어 있어. 읽고 싶을 때 바로 읽을 수가 있는 것이야. 여러분 책 사두고 쌓아두는 게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더 자주 만들기 위해서, '아아 이 책은 안사뒀는데' 하는 후회 같은 거 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더 많이 사서 쌓아두자. 당장 그러자!!



그리고 오늘 알라딘에 이런거 나온거 봤네?












너무 편할 것 같다. 책 높낮이도 조절할 수 있어.... 인생.....





남성의 외도만을 옹호하는 가부장적 관습은 뻔뻔스러우리만치 불공정하고 비논리적으로 불공평하다. 모든 인간은 같은 욕구와 열망을 가진다. 성적 쾌락은 자연스럽고 좋은 것인데, 사회는 인구의 절반에게는 그것을 즐길 자유를 허하고 나머지 절반에게서는 빼앗으려 든다. 그래서는 안 된다. (p.256)

모쒀인에게 아이는 딸이든 아들이든 언제나 엄마의 가족에 속하는 존재지 남자의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남자, 또 그 남자 쪽 가족의 어느 누구든 여자가 낳은 자식을 빼앗을 수는 없는 법이다. (p.2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마워 영화 - 배혜경의 농밀한 영화읽기 51
배혜경 지음 / 세종출판사(이길안)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인데, 나는 배혜경 작가의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모른다. 다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오래 남는 문장을 만들어낸다는 건 분명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책 속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의 감상을 훅- 읽었고 종종 떠올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포일러 없습니다!!)



토요일에는 친구와 영화 《서치》를 봤다. 굉장히 젊은 감각의 영화였다. 문자메세지와 페이스타임을 비롯해 유캐스트, 트위터(잠시), 텀블러, 유튭 등이 나오는데, 주인공 '데이비드'가 어찌나 스맛폰이며 맥을 잘 사용하는지 너무 맥 사고 싶었어.. 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있지만 그걸 어떻게 뭐랄까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가장 기본적인 것들, 그러니까 전화,문자,동영상 보기가 전부인 사람이라서 .. 왜 좋은 걸 가지고 있어도 현명하게 사용하지 못하나.. 싶었다.


영화는 실제 장면 보다는 맥북, 맥, 스맛폰, 유캐스트 등의 화면들이 훨씬 많이 보여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 완전 깔끔한 영화였다. 영화적인 재미도 있고 게다가 반전도 있어. 수시로 '맥을 사야되는걸까' 했지만, 맥을 사고 싶지만, 할부는 어떻게 갚지.. 같은 생각하다가도 영화가 재미있어서, 다 끝나고 나서는 친구와 '재미있네' 했다. 친구는 맥북을 살까? 완전 고민중이라고 했고.. 내 추천으로 이 영화 본 남동생은 안드로이드폰 유저인데, '왜 애플 광고하냐!' 며 씅질을 냈어... ㅋㅋㅋ




데이비드는 몇 해전 아내 '팸'을 잃고 딸 '마고'와 함께 살아간다. 마고는 이제 고등학생인데 생물스터디에 참가했다가 밤을 새고 오겠다는 연락을 끝으로 더이상 연락되지 않는다. 새벽에 마고로부터 온 전화를 자느라 자지 못했던 데이비드는 시간이 지나 이것이 뭔가 불길한 사건이라고 생각해 경찰에 신고하고, 그렇게 유능한 '로즈메리' 형사와 함께 딸의 실종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


영화는 재미있으면서 굉장히 인상적이다. 중간에 용의자가 자살한 영상을 보여주는 뉴스 장면에서 몇 번이나 앵커가 '이것은 잔인합니다, 여러분 시청에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라고 안내해주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유치원 아동학대 영상이나 혹은 학생들의 집단구타 장면들이 내가 의도치 않아도 여기저기 보여지는데서 나는 큰 피로를 느끼고, 또 그것들을 무조건 피하고자 하는데(그런 영상 못봄 ㅠㅠ), 그런 참에 이런 안내는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으악 어떡하지' 싶었는데, 실제로 그 영상에서 뭔가 잔인한 건 보여지지 않는다. 영화는 굳이 잔인함을 보여내지 않아도 잔인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잘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건 '상실에 대처하는 각자의 방법' 이었다.

'데이비드'의 동생 '피터'는 '형 마고와 대화는 잘 하고 있는거냐'고 묻고, 데이비드는 그렇다고 한다. 순간순간 데이비드는 마고에게 엄마 얘기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흐르면 이 상실감은 점차 옅어지겠지, 하고 애써 엄마 얘기를 피한다. 그러나 마고는 엄마의 상실, 엄마의 기억 때문에 엄마 얘기를 계속 하고 싶은 쪽이었다. 그러나 아빠가 자꾸 엄마 얘기를 피하니,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마고는 누군가와는 엄마 얘기를 계속 하고 싶었어.


이렇게 상실에 대처하는 각자의 방법이 다르다. 그리고 이 방법이 다를 때 상대와 나는 엇나갈 수밖에 없다. 한 쪽은 하고 싶은 대화를 한쪽은 피하고 싶어하는데, 우리 사이에 사랑이 있다고 해도 그 대화가 자연스레 잘 될 리가 없다. 그러니 대화를 하고 싶은 쪽은, 그 대화를 같이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게 된다.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이 상실감이고, 지금 그것이 나를 지탱하는 가장 큰 중심인데, 그런데 그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그 사람과 지금 가장 큰 관계를 만드는 데에도 무리가 있지 않을까?



나란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누군가와 대화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아빠도 그렇다. 문제는 아빠와 나의 타이밍이 어긋난다는 것. 나는 회사에 다녀와 집에 오면 그 때부터는 혼자 있고 싶고 쉬고 싶은데, 하루종일 집에 있던 아빠는 내가 오는 순간 얘기를 하고 싶어지는 거다. 이렇게 어긋나면 누군가의 취향 혹은 욕망은 차단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각자 다르다.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나는 빨강색을 좋아하지만 너는 파랑색을 좋아할 수도 있고 나는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지만 너는 이야기 나누는 걸 귀찮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하는 데에는, 연인이나 부부가 된다면, 그리고 아빠와 자식 간이라도, 그 다름 속에서도 서로 조율하며 맞춰가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그 관계가 계속 유지되고 단단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지금 현재 이것이 고민이야, 라고 하는데 '그것 따위가 무슨 고민거리냐' 라고 응수하면 내가 나의 다른 고민을 그 사람에게 또 얘기할 수 있을까? 우리 사이의 관계는 그 때부터 벌어지게 되는 거 아닐까.  내가 지금 현재 이것이 고민이라고 하면 그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건 사소해' 라고 말하는 건, 해서는 안될 말이 아닐까.



얼마전에 무슨 프로였더라, 어떤 여자 연예인이 나와서 남편과 사이가 안좋아 이혼할 뻔했지만 상담 받으며 극복했다고 하면서 '사랑의 다섯가지 언어'에 대해 얘기했었다. 그 다섯가지가 뭐였는지 다 기억은 안나지만, 남편에게 사랑은 '함께 있는 것' 이었고 자신에게 사랑은 '스킨십' 이었던 것. 이걸 모르는 채로 상대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너는 날 사랑하지 않는가봐' 라는 오해가 쌓이면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는 거였다. 그 배우의 말에 모든 걸 다 긍정할 순 없었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더라. 우리는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과'상대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와 내가 만들어가는 관계가 단단해질 수 있는 거다.



영화중에 데이비드가 하는 말중에 '폭우로 인해서 이틀이면 됐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 스포일러가 될테니 장면 설명은 하지 않겠다. 스포일러는 안돼요~ 그 말을 듣는데 영화를 보다가 소름이 쫙 돋았어.


영화를 보고나니 책 두 권이 생각났다. 국내 소설 한 권가 번역 소설 한 권.


















같이 영화를 본 친구에게 이 두 책이 생각난다 했더니 줄거리까지 묻는거야.. 그러면 스포일러 될텐데 괜찮아? 했더니 괜찮다고 내용 말해달라고 해서 말해주었는데, 내 이야길 들은 친구는 얼른 알라딘 들어가 이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읽는 거 너무 좋아요!! >.< (뜬금)

서로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이 두 책들이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동시에 생각나는 두 권이란 말이다.

궁금하죠? 궁금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일요일 오전, 전날 요가의 후유증으로 격한 근육통에 시달리면서도 책장 조립을 했다. 박스를 뜯었는데 뭐랄까, 너무 형태없이 나무들만 있어서 잠깐 당황...




뭐랄까, 어떤 윤곽이나 틀 같은 것이 잡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너무 그냥 나무들이네.. 하하하하하. 내가 이걸 잘 조립할 수 있을까?


내가 이걸 조립한다고 꼬물꼬물 대고 있으니 아빠가 와서는 '아빠가 해줄까?' 하시더라. 나는 "내가 할거야!!" 크게 소리치고 차분하게 설명서를 펼쳤다. 으으, 따라하면 되려나, 하고 차근차근 따라하다 보니, 그렇게 힘을 쓰고(망치질 해야 함) 땀을 흘리고 나니 뚝딱, 완성되었다.



이렇게 조립하는 게 튼튼한걸까 싶었지만 만들고나니 튼튼했고, 걱정하시던 엄마도 만져 보시더니 오, 튼튼하네? 하셨다. 이걸 해놓고 내가 어찌나 뿌듯한지 으쓱하고 있는데, 아빠가 보시더니


"너는 진짜 못하는 게 없구나"


하셨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제 근육맨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말고는 더 바랄 게 없지는 않고, 그래도 더 바랄 게 있어. 나는 망치같은, 도끼같은 여자가 되는 게 바람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페미니즘 책들을 다 저리로 옮겨 놓았는데, 그래도 자리가 남아서 토지도 일렬로 줄세워 보았다.





조립하고 형태를 갖춰가면서 결국 완성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하나 더 사다 해볼까, 이번엔 시간도 덜 걸릴텐데..했지만, 이제는 더이상 책장을 놓아둘 자리가 없어...


그나저나 책 옮기면서 봤더니, 책을 두 줄로 진열해 두었던 책장들이 있어서... ㅠㅠ 책이 너무 많다고 또 새삼스레 ㅠㅠㅠ 책 너무 많아, 이제 그만 사고 있는 책 읽자...했지만 또 책 사고 싶은 9월의 아침이다......



ㅜㅜ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8-09-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쪽 공간이 너무 허전하네요. 똑같이 생긴 책장이 하나 더 놓이면 딱이겠는데요?

그런데 책장만 놓이면 허전하잖아요. 그 책장을 채울 책도 있어야 되겠죠? 자, 장바구니를 채우는 겁니다 후후후후후후후후

다락방 2018-09-03 18:11   좋아요 0 | URL
아 저옆에는 매트리스가 없어서 공간이 없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렇지만 저 책장에 책을 옮겼더니 기존 책장에 자리가 한 칸 생겼어요....네....그러한 것입니다.

장바구니 말입니까? 그건 늘상 채워져 있는거 아닌가요? 결제는 그저 도울 뿐... -0-

단발머리 2018-09-0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다락방님 못 하는게 없군요.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책장 조립 전 사진 보고 급 하애지는 머릿속을 가진 사람도 있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미니즘 책이 많으시네요, 다락방님!! 첫줄에 토지도 근사하고요^^

다락방 2018-09-03 18:13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설명서 피고는 머리가 하얘졌는데요, 제가 시도해보지도 않고 그저 겁먹고 하얘진 거더라고요. 막상 해보니까 뭐 별 거 아니었어요. 하하하하하. 한 번 하고나니까 이거 또 하면 더 빨리 하게 될 것 같아요. 이걸 부업삼아 할까..그러니까 단발머리님이 이 책장 샀다고 하면 제가 가서 조립해 드리고... 이걸 부업으로 해서 부자 될까...뭐,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아하하하하.

무해한모리군 2018-09-0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진짜 조립마저 잘하시는군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9-03 18:13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transient-guest 2018-09-0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넘치면 책장을 사죠 조금 넉넉하게 그리고 그 책장을 채우기 위해 책을 더 삽니다 조금 넉넉하게 그렇게 수레바퀴는 끝이 없이 돌아간다는 ㅎㅎㅎ

다락방 2018-09-03 18:14   좋아요 1 | URL
안그래도 책장 한 칸이 남고, 저 책장 조차도 조금 헐렁해서 꽉꽉 채우리라, 더 사도 된다!! 막 이러고 있긴 해요. 그러다가 말씀하신대로 또 책장을 사겠죠... 인생....인생은 뭘까요, 트랜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비연 2018-09-03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책의 규모상.. 저 책장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찌릿... 근데 저 책장에 빈 곳이 보이네요. 빈 곳. 빈 곳. 책으로 채워야 할 공간... 빈 곳.. (휘릭)

다락방 2018-09-03 18:15   좋아요 1 | URL
제가 딱 오백권 정도만 집에 두자...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이니 그정도만 지키자...해서 부지런히 책을 팔고 있는데, 그런데도 책은 자꾸 늘어나네요..... 책 구입이란 뭘까요?
어쨌든 저렇게 책장 하나 더 사서 책 꽂고 일요일에 책 몇 권 또 팔았습니다. 그러니 또 살 수 있지요. 네, 그런 것입니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8-09-03 18:1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이상하게 어디서 본 상황입니다.. 전 이사 나왔어도 더 못사고 있어요. 책장 다 찬 ㅠㅠ 이제 위에 쌓아야 하나 ㅠ

clavis 2018-09-03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아름다워요! 늘 다정하신 아빠 덕분에 저도 힐링이 됩니다. 넌 못 하는게 없구나♡♡♡저도 이런 말 너무너무 듣고싶..크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