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주로 출퇴근길에 읽는 나로서는 가지고 다니는 것도 너무 무겁고 들고 읽기도 진짜 무거워 ㅠㅠ 오늘 아침에도 가방안에 이 책 넣고 무겁게 이동하면서 '아아, 내가 무거운 걸 가지고 다니는 건 내 팔자인걸까..' 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아직 100쪽도 못읽은 현재, '아이 참..정말로.... 에이모 토울스는 너무 좋구나 ㅠㅠ' 하고 있다.



작가의 전작 《우아한 연인》에서는 여자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 <월든>이라는 말에, 남자주인공이 그 책을 읽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책을 좋아하게 되어서 늘상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는거다. 남자는 금융맨이었는데, 이후의 삶 자체가 달라지게 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나도 그 책을 좋아하게 되는 그런 거, 진짜 너무 좋은 에피소드 아닌가. 내가 우아한 연인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에피소드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에이모 토울스의 다음작품을 당연히 읽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읽었는데 초반부터 아아, 작가님, 또 너무 좋은 이야기를 하고 계셔. 책에 대해서. 에이모 토울스가 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건지 책 이야기 껴넣는 거 진짜 너무 좋구요. 그것도 주인공들이 책 읽는 거라서 진짜 너무나 좋다. 물론 지금 이 책의 주인공인 백작은 사실 이 책 읽기를 즐겨하고 있진 않지만, 어쨌든..



로스토프 백작은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가면 총살을 당하는 벌을 받는다. 그러니 호텔 내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것. 이런 벌을 받기 전에는 호텔 스위트 룸에 묵었었는데, 이 벌이 내려지고 나서 그가 묵어야 할 방은 창고로 쓰여지던 낡은 방이다. 그러니 가지고 있던 짐을 확 줄여야했고, 책을 한 권 남기고 다 직원들이 물건 보관하는 창고에 넣어두게 되는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발자크, 디킨스, 톨스토이의 숭고한 작품들이 있는 개인 서재는 파리에 남아 있었다. 사환들이 다락바응로 옮긴 책들은 실은 아버지의 책들이었고, 주로 합리주의 철학과 현대 농업 과학을 다룬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책이 무거웠고, 읽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위압감을 주었다. (p.41)



아, 서른셋의 로스토프 백작은, 너무 좋아, 발자크, 디킨스, 톨스토이를 좋아하는 문학인이었던 것이야. 아아, 소설을 좋아하다니, 당신은 멋진 사람! 당신은 분명 다정하겠군요. 너무 좋으네. 그러나 그의 책들을 파리..에 있고 지금 그가 모스크바에서 가지고 있는 책들은 자신의 취향이 '아닌' 책들인 것이었다. 어쨌든 장소도 좁고 그래서 한 권만 남기고 일단 다 창고에 처박아 두게 되는데, 그 한 권이 무엇이냐 하면, 10년전부터 읽어야지 생각했지만 아직까지도 읽지 못한, '몽테뉴'의 《수상록》되시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이해되지 않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다음 책상에 앉아 방에 남겨놓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으며 아버지가 몹시 좋아했던 이 책을 읽겠노라고 백작이 자신과 처음 약속한 것이 분명 10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달력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번 달엔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는 데 전념할 거야!' 라고 선언했을 때마다 인생의 어떤 악마적인 면이 문간에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뜻밖의 곳에서 어떤 연애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도의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가 거래하는 은행가가 전화를 하기도 했다. 혹은 서커스단이 마을에 오기도 했다.

어찌 됐든 인생은 유혹할 것이다. (p.42)



아니 그러니까 ㅋㅋㅋㅋ 당연히 인생은 유혹할 것이고, 연애를 하면 연애에 푹 빠지는 것도 맞는데, 만약 발자크와 디킨스와 톨스토이의 작품이었다면, 연애나 은행의 전화 핑계를 대면서 읽기를 10년간 미뤘을까? 아닐 것이다. 몽테뉴여서 그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자꾸 미룬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지금은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호텔에 갇혔으므로), 바로 이 때 읽자!하고 그는 수상록 읽기를 시도하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도무지 잘 읽히지가 않는 것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그냥 내가 피곤해서, 내가 집중이 안돼서, 뭐 기타등등의 이유로 책을 읽는데, 아, 내가 어디까지 읽었더라? 하고 여기였나 읽어보면 너무 새롭고, 그래서 앞으로 돌아가고 돌아가고... 우리의 백작님께서 수상록을 만나고 그렇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힘든 싸움을 시작했어..




트베르스카야 거리(그리고 한껏 맵시를 부린 젊은 숙녀들과 무지칠 기회)에 대한 생각을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목욕을 하고, 옷을 입고, 커피와 과일(오늘은 무화과였다)을 먹고 나니 10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백작은 몽테뉴의 걸작을 의욕적으로 집어 들었으나, 열다섯 줄쯤 읽고 나서는 매번 그의 눈길이 시계를 향해 슬금슬금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백작은 전날 책상에서 처음으로 그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약간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책으로서는 사전이나 성경-그런 책들은 필요한 내용을 참고하거나 아니면 마음 먹고 정독하는 용도의 책이지 '읽는' 책이 아니다-에 버금가는 밀도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차-절개, 절제, 고독, 잠과 같은 주제를 다룬 107편의 에세이 목록-를 살펴본 백작은, 그 책은 아믕에 겨울밤이 스며들었을 때 쓰인 책일 거라는 애초의 의심이 확인되었다고 생각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책은, 새들은 이미 남쪽으로 날아갔고 장작은 벽난로 옆에 쌓여 있고 들판은 눈으로 하얀, 그런 때를 위한 책이었다. 즉, 밖으로 나가서 뭔가 할 엄두가 나지 않고 친구들고 고생스럽게 자기를 찾아올 생각이 없는, 그런 시간을 위한 책이었다. (p.54-55)



그러니까 나는 유독 힘든 요가 프로그램 시간에 자꾸 시계를 보곤 했다. 어느날 선생님은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요' 말씀하셨더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백작님, 시계는 몇 번이나 보셨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시 20분 56초, 시계가 알려주었다.

10시 20분 57초.

58초.

59초.

시계는 호메로스가 자신의 강약약적 운율을 알려주고 베드로가 죄인의 죄를 알려주듯이 초를 완벽하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어디를 읽고 있었더라?

아, 그래. 세 번째 에세이.

백작은 시계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고 의자를 약간 왼쪽으로 옮겼다. 그런 다음 읽던 부분을 찾았다. 15페이지 다섯 번째 단락이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단락의 글로 되돌아갔을 때 문맥이 전혀 와닿지 않고 생소했다. 바로 앞 단락을 읽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는 뒤로 세 페이지를 온전히 돌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읽어나갈 수 있을 만큼 분명히 기억나는 구절을 발견했다.

"당신과 함께한다는 건 이런 겁니까?" 백작이 몽테뉴에게 따져 물었다. "한 걸음 나아갔다 두 걸음 뒷걸음질해야 하는 거예요?" (p.56-57)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여러분 너무 좋지 않아요?

완전 백작이 되었다. 나는 백작이 되어 몽테뉴에게 따지고 들었다.



"당신과 함께한다는 건 이런 겁니까?"

"한 걸음 나아갔다 두 걸금 뒷걸음질해야 하는 거예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넘나 좋아 넘나 좋다.



우아한 연인 읽었을 때는 월든을 너무 읽고 싶어서 월든 사두었는데 나는 아직 읽지 않았지. 그런데 이 책 읽다보니 수상록 넘나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직 사지도 않았는데. 나 역시 몽테뉴에게 따져가며 수상록 읽기에 도전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 100쪽도 읽지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물론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겠지만, 끝내 백작이 수상록 읽기에 성공하는지, 혹여 성공했다면 어떤 감상을 들려줄지 넘나 궁금한 것.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책을 집어들게 될지, 그렇다면 그 책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지도 너무 궁금하고. 너무 좋네.



그리고 좀 많이 읽은 날, 그는 점심에 와인을 주문한다.



"샤토 드 보들레르 한 병이 낫겠군요." 백작이 점잖게 고쳐 말했다.

"그럼요." 비숍이 성직자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보들레르 한 병은 혼자 먹는 점심에는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도 지칠 줄 모르는 미셸 드 몽테뉴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 터라 백작은 자신의 사기를 북돋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p.68)



나도 줌파 라히리 책 읽다가 너무 지쳐서 던킨 도넛츠에 들어가 도넛을 주문해 먹었던 때가 있었다. 책 읽는 사람들 누구나 다 독서로 인해 스스로에게 기운낼만한 음식을 선물한 적이 있지 않을까. 몽테뉴 읽었더니 점심에 사치스런 와인 한 병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백작이라니. 와- 진짜 완전 내타입이다. 백작과 내가 친구여야 했는데!



"몽테뉴 읽었더니 힘드네. 점심에 사치스런 와인 병으로 마셔야겠어."

"아이고..그래그래. 같이 가서 짠해줄게. 나도 가니까 두당 한 병씩 와인 두 병 주문하자."

"응 고마워.

"근데 와인 한 병만으로는 기운 내기 힘들어. 위로는 되겠지만. 스테이크 큰 걸로 시켜. 시금치도 사이드로 시키고. 사이드는 시금치가 좋지 않니?"

"응 시금치 너무 좋지!"

"오늘 아침에 몽테뉴 읽느라 기운 빠졌으니까 점심에 와인 비우고 스테이크 먹고 배 두드리면서 오후에 낮잠 자자."

"응."

"오늘은 그냥 우리를 풀어놓자."

"응."



이렇게 되면 너무 좋으니까 나랑 친구하면 너무 좋을것 같지 않아용??


그러다가 다음날에는 내가 그러는거지.


"야, 너 따라 몽테뉴 읽었더니 나도 와인 필요해."

"아, 알지알지. 그래그래 마시자 마시자."

"우리 어제도 마셨잖아.."

"응. 근데 어제는 나 때문에 마신 거고 오늘은 너 때문에 마셔야지."

"응. 그것이 참된 우정이지.."


이러면서 우리는 또 마시고 먹고 배두드리고 자고...


몽테뉴를 완독하기 위해 우리의 우정은 30년이상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야....



독서

우정

와인

고기

럽...




에이미 토울스 좋네요. 후훗. 책 이야기 이렇게 적어주는 건 너무 좋아. 우아한 연인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책 따라 읽어보는 것도 너무 좋고, 이렇게 취향에 안맞는 책 도전하면서 사기 북돋기 위해 와인 병째 시키는 거 사랑합니다.



럽..

















아, 근데 여러분. 우아한 연인 들어가면 추천글에 이유경 나오는 거 알아요? 그 이유경이 바로 이 이유경이다..



여러분이 알고 지내는 이유경이 바로 이 이유경이야.. 유명인..... =3=3=3=3=3=3=3=3=3=3=3=3=3=3=3=3=3=3=3=3=3=3=3=3

세인트 피터스버그 타임즈, 해럴드,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랑 나란히 있는 이유경...




이만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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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9-0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죠?^^ 전 아직 <우아한 연인> 안 읽었는데... 당장 구입해야겠어요. 추천인을 보니 바로..ㅎㅎ

다락방 2018-09-06 15:4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아한 연인 정말 좋았어요! 제가 좋아라 하는 책인데 회사 동료 빌려줬더니 퇴사해버렸다능... 지금 다시 사고 싶어 봤더니 절판이라고 되어있네요? ㅜㅜ

syo 2018-09-0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새로운 남자가 하나 더 나타났어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은 바람둥이 다락바람님.

다락방 2018-09-06 15:47   좋아요 0 | URL
아니야 아니야 아직 그정도는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9-06 18:24   좋아요 0 | URL
이유경 바로 옆에 저 아래 화살표를 누르면, 이유경의 프로필이 나오고.
이유경의 마니아가 뜹니다.
내 뒤에 로쟈님... 그래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내 앞에... 아니!!! syo님!! 쇼님! 쑈님!!!

syo 2018-09-06 18:26   좋아요 0 | URL
단발님 소식이 꽤 늦으셨네요. syo의 이유경 마니아 1위 등극은 벌써 꽤 된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이유경 작가님조차 인지하고 계신 부분이구요.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락방 2018-09-06 18:34   좋아요 0 | URL
네, 이유경 마니아는 1위가 이유경이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답니다?

단발머리 2018-09-06 18:41   좋아요 0 | URL
이유경의 마니아 이유경을 간신히 넘어섰다 했더니, 이게 웬일이예요?
긴 말 필요없어요!
syo님, 비켜요! 얼른!

syo 2018-09-06 18:54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하 그렇게 쉽게 비켜설 순 없지!! 😎

다락방 2018-09-06 20:21   좋아요 0 | URL
이 사람들.. 있어봐요 ㅋㅋㅋ 이유경 마니아 1위는 이유경이 하는 것이 온당하다! 곧 닿겠어!! 😡

비연 2018-09-07 19:36   좋아요 0 | URL
syo님, 단발님, 그리고 다락방님 대화 내용에 빵터진... ㅎㅎㅎㅎㅎ

루쉰P 2018-09-0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함없이 항상 여기에 계시는군요 ㅎ

다락방 2018-09-17 17:59   좋아요 0 | URL
네, 저야 뭐 늘 그렇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