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8월 도서는


'캐슬린 배리'의 《섹슈얼리티의 매춘화》입니다.


8월 한달동안 읽으면서 리뷰, 구매자평, 페이퍼, 밑줄긋기 등의 글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다음주초에는 아마도 이 책을 일곱권 나란히 쌓아두고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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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7-28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 완료!! 땡스투 완료!!!!

다락방 2020-07-28 14:06   좋아요 0 | URL
구입도 베리 굿 땡투도 베리 굿입니다!

단발머리 2020-07-2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의 책도 기대되네요. 선행 금지! 학습 진도 엄수!!!

다락방 2020-07-28 14:06   좋아요 0 | URL
선행 금지! 학습 진도 엄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8월이 요이땅! 하면 시작하는 겁니다, 단발머리님. 네? 아셨어요?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7-2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상품검색하면 표지가 선명히 잘 나오는데 글쓸때 이렇게 검색하여 상품을 링크하면 표지가 흐릿하다. 고객센터에 수정해달라 문의넣었다.

2020-07-28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8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8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조기후 2020-07-2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식적(?) 참여는 어렵지만 혼자 띄엄띄엄이라도 따라가보려 노력하는데 힘드네요 ㅜㅜ 그래도 끄트머리의 끄트머리엔 꼭 붙어있겠다 불끈 다짐해봅니다!

다락방 2020-07-28 15:59   좋아요 0 | URL
어쩌면 공식적 참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힘드는지도 모릅니다, 건조기후님. 순전히 자기 의지니까요. 그러나 공식적 참여를 하면 강제성이 들어오죠. 물론 강제성이라고 해서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말예요.
건조기후님은 건조기후 님의 삶을 사느라 나름 바쁘시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셔요.
그리고 조만간 그 때 말씀하셨던 제육볶음 먹으러 갑시다!!

건조기후 2020-07-28 20: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락방님. 공식적인 참여로 의지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제가 특히 바쁜 달이 있고 조금 괜찮은 달이 있다보니 들쭉날쭉 분위기만 흐릴까봐... 최대한 가능한 달이라도 따라잡아보자 하고 있는데 역시 쉽지 않습니다 흙. 그러나 마음을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해보려고요, 다락방님 말씀처럼.

다락방님, 너무 슬프지만 그 제육볶음 집은 없어져버렸답니다. 어느 날 가보니 디자인 편집샵?인가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친구들이 우리 동네로 오면 항상 가던 곳이었는데... 정갈했던 한 상 차림이 종종 그리워요. ㅜㅜ

어디서든 한 번 봐요 다락방님! :)

블랙겟타 2020-07-2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 완료!! 땡스투 완료!!! (2)

다락방 2020-07-28 17:05   좋아요 1 | URL
구입도 베리 굿 땡투도 베리 굿입니다! (2)
 


















"고통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네. 인간이란 죽을 고비를 만나더라도 고통을 참고 버티어내는 경우가 있지. 그러나 누구에게나 참을 수 없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것이 있기 마련일세. 그건 용기나 비겁함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 만약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다가 밧줄을 잡는다면, 그건 비겁한 짓이 아니네. 깊은 물속에서 나와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고 해도 비겁한 짓이랄 수 없고 말일세. 그건 단지 본능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행동일 뿐이지. 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네. 자네에게는 쥐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이지. 그것들은 자네가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압력인 셈이네. 자네는 자네한테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될걸세." -p.398

'조지 오웰'의 《1984》 에는 감시 체제하에서 사랑을 나누는 '윈스턴'과 '줄리아'가 나온다. 그러나 그들이 숨어서 사랑하는 것은 영원하지 못했고 그들은 결국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게된다. 이때 윈스턴은 버티려고 했지만 '쥐'를 이용한 고문 앞에서는 간절하게 외친다. 줄리아한테 하라고. 자기 대신 이 고문에 줄리아를 바치겠다고 하는 거다. 쥐는 윈스턴에게 견딜 수 없는 어떤 한가지였고 그는 '쥐는 안돼', '쥐만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윈스턴이 비겁하다던가 옳지 못한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누구에게나 참을 수 없는 게 있고, 윈스턴에게는 그게 쥐였던 것이다. 그는 온몸이 꽁꽁 묶여 갇힌 자신의 앞에 쥐를 든 상자를 가져온 고문자가 그의 앞에서 육식동물인 쥐를 풀어놓으려고 하자,

그와 쥐 사이에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의 몸뚱이를 갖다놓아야 한다! -p.400

라고 생각하고 결국 줄리아의 이름을 댄다. 그와 쥐 사이에 그는 줄리아를 호명한거다.

시간은 흘렀고 윈스턴은 어느날 줄리아를 마주친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줄리아는 기존에 자기가 알던 줄리아가 아니었다. 얼굴빛도 눈빛도 변했다. 영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줄리아에게도 고문은 있었고 그건 사람을 이렇게나 변하게 했다. 줄리아는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서 나는 그리고 당신은 서로를 배반했을 거라고.

우리에게는 각자의 신념이 있다. 그 신념은 대체적으로 자기 기준에서 옳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 그걸 바탕으로 옳은 행동을 하게할 것이다. 신념은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짓은 스스로에게 쪽팔려서 할 수가 없어, 그런 짓을 내가 하게끔 나에게 허락하지 않겠어, 그런 비열한 짓은 안돼, 그런 비겁한 짓은 안돼, 그런 치사한 짓은 안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된다'는 말은 그러므로 사실이 아니다. 내가 살고자 한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는게 아니어도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조차 꼿꼿할 순 없는 법이다. 평소라면 기회주의자로 보일까봐 취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이, 나의 상황이 급박해지고 급박해지고 급박해진다면, 어쩔 수 없이,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선택할 수도 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은, '내가 결국 이런 사람이 되어버렸구나'로 바뀌는 지점이 온다. 그러나 그것을 비겁하다거나 비열하다고 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오면 별 수 없지 않나. 내가 죽을것 같다면, 살기 위해서 하는 선택이 내 신념에 위배된들 별 수 없잖나. 살아야 한다.

윈스턴은 쥐가 너무 끔찍했다. 그러므로 쥐 앞에서 줄리아의 이름을 얘기했다. 줄리아에겐 어떤 것이 내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줄리아 역시 치명적인 약점으로 공격하는 바람에 역시 윈스턴을 배반했다. 서로가 서로를 배반한 뒤에 우연히 만난 그들은, 이제 그들이 예전과는 같지 않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전과 같지 않게 돼요."

"그래. 전과 같지 않게 돼." -p.410

그러나 이건 윈스턴과 줄리아의 케이스다. 저 사람은 그리고 나는 이런 경우 서로를 배반했네, 라는 생각 때문에 그들은 전과 같지 않게 되어버렸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잔아, 라고 말하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수 있다. 내가 한계에 이르러서, 더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 선택이 평소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을 것이었다면, 자신을 너무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가끔 마음이 너무 아프거나 답답할 때, 슬픈 기억이나 아픈 기억이 떠올라 괴로울 때, 가만 누워서 손으로 내 윗가슴을 살살 쓰다듬는다. 그러면 손의 온기가 가슴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한동안 쓰다듬고 나면 조금은 괜찮아진다. 살기 위해 신념과 다른 선택을 하고 그래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가만 누워서 자신의 손의 온기로 자신의 가슴을 쓸어주었으면 좋겠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 일을 내가 해주고싶다. 내 손의 온기로 가만가만 당신의 온 몸을 쓰다듬어주고 싶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괜찮아.

그런 결정을 어쩔 수 없이 내렸다해서 눈빛과 낯빛이 변하지 않도록 해. 그래도 여전히 당신이 당신임에는 변함 없으니.





- 주말에는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헛짓거리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삶의 의미가 대체 뭘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내가 살아야 하는 목적 자체가 내게 닿지 않는 것이라면 내가 살아가는 것 역시 부질없지 않은가. 내 삶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친구와 만난 저녁, 여동생으로부터 사진 한 장이 날아들었다. 조카가 잠든 모습이었다. 졸리다고 자네, 하면서 보내준 사진. 그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면서 예쁘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수십번 느끼면서,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는 이 조카의 잠든 얼굴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얘가 왜이렇게 좋으니.


다음날 오전에는 눈뜨자마자 동생들에게 사랑한다고 톡을 보냈다. 내 동생들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맙다고. 남동생은 아침부터 왜이래? 물었고, 나는 '사랑은 아침부터 하는거야' 답했다.




- 그때 당신이 메일에 답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나는 알겠다. 이해하겠다.

당신은 내게 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답할 것이다. 




- 점심에는 비빔국수에 돈까스 셋트 먹어야지. 여동생은 왜 언니는 점심을 매번 셋트로 먹냐고 했다. 글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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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열린 책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보이는 단조로움과 보이지 않는 치열함이 공존하는 것이 인간이고 삶이며 그런 인생들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이다.
루시아 벌린은 곧 터질 것 같은 긴장감과 작은 한 방을 품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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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1월에 한나 아렌트에 관한 책을 읽고 한나 아렌트에게 너무 푹 빠져서 이 책을 읽으려고 계속 마음먹고 있었는데, 너무 읽고 싶어서 자꾸 뒤로 미루게 됐다. 읽던 소설책이 지지부진하고 지루하고 도저히 끝날 것 같지가 않아서 매우 초조했다. 한나 아렌트의 말 읽고 싶은데... 결국 다 끝마치지 못한 채로 어제 이 책을 들고 외출을 했고, 지하철안에서 펼쳐 읽으면서 뭔가 땀 많이 난 육체에 포카리스웨트 부어주는 느낌이랄까. 막 너무 좋아서, 으윽 정말 좋다, 했다.


나보다 이 책을 먼저 읽었던 친구는 내가 이 책을 딱히 좋아하지 않을거다, 한나 아렌트의 어떤 말들에 내가 실망할거다, 라고 얘기해주었더랬다. 나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읽자, 하고 시작했는데, 친구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다음의 문장을 보고 알아챘다. 여성주의에 대한 말이었다.



사실 나는 상당히 고루한 사람이에요. 세상에는,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여성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들이 있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여자가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모습은 그냥 보기가 좋지 않아요. 여성스로운 존재로 남아있고 싶은 여자는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마땅해요.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여부는 나도 몰라요. 나 자신은 거의 무의식적으로-아니, 거의 의식적으로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네요-늘 이런 사고방식에 부합하게 살아왔어요.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그 자체로는 내 인생에서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어요. 단순하게 말해, 나는 늘 내 마음에 드는 일들을 해왔어요. -p.23


한나 아렌트는 여성해방women's emancipation을 자신의 문젯거리라고 생각한다.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 있다고 생각하고 여자가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한다. 나는 물론 그녀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정체화하고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고 여성해방에 힘을 쏟는 사람이었다면 더 좋았을거라고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는 매우 큰 사람이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니 만약 페미니스트였다면 여성주의에 더 힘을 실어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녀가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또 이래라저래라 하는 여성의 모습을 올바르지 못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해서 내가 그녀에게 실망하거나 그녀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한나 아렌트이고 아이히만의 재판을 직접 가서 보고, 사유하고, 책을 쓰고, 최종적으로 살았던 미국에서는 매우 인기있는 대학교수였다. 이런 것들이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 행동, 천재적이고 사유를 하고 강연을 하는 등의 이런 행동들로 자신의 이름을 드높인 여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다. 그녀가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철학자가 아닌 정치이론가라고 불러줘, 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 자체로 그녀가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드러낼 수 있었던 그런 행동을 우선시한 사람. 나는 이런 여자들이야말로 세상에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 다른 여자들에게 본보기가 되니까. 올해 1월 한나 아렌트를 읽으면서 나는 정치이론가의 자리에 그녀의 이름이 있고, 그녀의 책이 여전히 읽힌다는 게 좋았다.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이런 행동에 반한다. 이런 행동을 취함으로써, 실제 행동을 함으로써 어떤 자리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여자라는 것, 그것 만으로 나는 한나 아렌트가 진짜 너무 좋은 거다. 



이수정 박사님도 그러한데 이수정 박사님도 오디오방송이나 인터뷰에서 본인이 여성주의자라고는 정체화하지 않으신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얘기하신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에서는 그 누구보다 이름을 알린 프로파일러가 아닌가. 나는 한나 아렌트와 이수정 박사처럼 '나는 **이다'라고 말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걸 보여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말보다 행동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말로는 무엇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자기정체성은 사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말보다 행동이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다 정체화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야, 나는 불의를 보지 못해, 나는 한결같은 사람이야, 나는 용감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좋다. 행동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많은 남자들을 보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여성의 인권을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아무것도 본 게 없다. 말로는 뭔들 못할까.



말이 아닌 행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나는 너를 아껴, 너를 사랑해 라는 말들. 말로는 하늘의 별도 따다줄 수 있다. 그러나 행동은 사람을 움직인다. 너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오고, 너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너에게 맛있는 걸 사주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너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너의 옆에 오래 머물기 위해 운동을 하고. 이런 행동들이 사랑을 보여주지 나는 너가 너무 좋아서 하늘의 별도 따다주고 싶어, 라는 말은, 별을 한 개도 따오지 못한다면 말짱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런 남자들에게는 언제나 정나미가 떨어졌다. 무수히 말, 말, 말을 하는 남자들. 연애를 시작할 때, 연애의 도중, 세상 달콤한 말들을 주절대지만, 그러나 스스로의 행동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 말보다 행동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한나 아렌트와 이수정 박사는 내가 어떤 사람이다, 라고 말로 드러내는 사람이기 보다는 행동으로 어떻게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고, 나는 정말이지 이런 사람들이 자지러지게 좋다. 그리고 결국 내가 추구하는 바도 이런쪽이다. 나는 말로만 그치는 사람이기 싫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고, 내가 말하는 바에 일치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고자 한다. 또한 말을 수십개 해놓고 지키지 않는게 세상 꼴보기 싫어서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하지도 않을 것들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한다. 




사람이 자의식에 사로잡혀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행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은 그가 보여주는 모든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요. 말하기도 행위의 한 형태예요. -p.71



아,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말하기도 행위의 한 형태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은 옳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행위에 속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말을 해놓고 그 다음을 어떻게 하느냐를 보여주는 것이 행위의 한 형태라고 본다. 그래, 나는 너를 위해 하늘의 별을 따줄거야, 라지만 별따러 하늘을 가지 않는다면, 하늘의 별을 따주겠다는 말하기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주는 한 형태가 아닌가. 아, 나는 한나 아렌트가 너무 멋지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에 대한 책을 하나씩 사서 모으고 죄다 읽어보고 싶다. 천천히. 































저기 두번째 링크의 전3권 셋트..깔맞춤으로 사고 싶은데 읽어본 사람들이 도저히 읽히지 않는 문장들이라고 한다. 한나 아렌트 책은 다른 책들도 그렇고 번역이 별로라는 평들이 워낙에 많다. 한나 아렌트 자체가 워낙에 어려운 문장들을 써서 그것들을 제대로 옮겨내는 게 쉽지 않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읽어낼 수 있을 것인가.. 좋은 번역이라고 평을 얻는 작품이 있다면 그걸 먼저 읽어 보고 싶다. 내가 1월에 읽었던 이 책은 좋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 같은데, 그래서 그렇게 잘읽혔나...


















위의 책을 읽고 쓴 페이퍼는 여기 https://blog.aladin.co.kr/fallen77/11436712



그리고 얘들아 이것봐...




칸트를 읽고 키르케고르 읽고 야스퍼스 읽었던 한나 아렌트 나이 열네 살... 아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천재란 무엇인가 보통 사람이란 무엇인가..나는 위의 부분을 읽고 너무 놀라서 ..열네살에 뭐라고요? 내가 열네살에 무엇을 읽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늘상 책을 읽는 나란 아이, 열네살에 버지니아 앤드류스의 다락방의 꽃들 시리즈를 마스터했고... 그렇게 내 닉네임은 다락방이 되었고....그 책내용은 다락방에 갇힌 아이들, 독약을 먹여 아이를 죽이는 엄마, 그리고 근친상간.... 꼬꼬마 다락방 어릴 때 도대체 어떤 책을 읽은거야. 한나 아렌트를 봐, 키르케고르를 읽었대잖아. 키르케고르라면, 나는 아직도 안읽어봤는데. 아아.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한나 아렌트이고 다락방은 다락방인가 봅니다.....







토요일인 어제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를 만나 대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진 트라우마가 내 생각보다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상처와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내 안에 있다는 것도 들여다보게 됐다. 결국 나는 울었고, 친구는 나를 달래주다 함께 울었다. 어린 시절의 어떤 한 순간에 갇혀서 어쩌지를 못하고 괴로워하는 나를 달래주며 친구도 안타까워 울었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이것에 대해서 분명히 극복을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 좋겠구나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내가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한 권의 책 때문이라는 얘기를 친구에게 했는데, 친구도 이미 그 책을 읽었다고 해서 너무 씐났다. 내가 읽은 책을 친구도 이미 읽었다니. 이런 일은 너무나 신나고 경이롭지 않은가. 만세!

















친구와 스테이크에 와인을 먹고 기분좋게 레스토랑 1층에 자리한 까페로 내려왔다. 따뜻한 커피와 티라미수를 먹다가 문득 하늘을 보았는데 너무 예쁜거다. 나는 부랴부랴 달려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내 옆에서는 한 젊은 여자가 나처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름다운 하늘에 대한 감탄과 옆에서 함께 사진 찍는 낯선 여자에 대한 어떤 동지의식이 느껴져셔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다락방: 이렇게 예쁜게 사진으로 잘 안나오네요.

낯선그녀: 눈으로 보는 만큼 안나와요.

다락방: 저기 달 떴어요!

낯선그녀: 정말이네요!



너무 씐나는 저녁이었다.





쓰고 싶은 말이 더 있는데 엄마가 냉면 해놨다고 부르셔서 냉면 먹으러 간다. 쓩-

아, 그리고 마음의 문을 닫기로 한다. 빗장도 건다.








내 기억력이 내 생각을 모두 기억할 정도로 좋다면 나는 글 쓰는 작업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나 자신이 무척 게으른 인간이라는 걸 잘 아니까요. 나한테 중요한 것은 사유 과정 자체예요. 나는 무엇인가 철저히 사유하는 데 성공할 때 개인적으로 상당한 만족감을 느껴요. 내 사유 과정을 글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할 경우에도 만족감을 느끼고요.
내 저작이 남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물어봤죠? 비아냥조로 말하자면, 그건 마초적인 질문이에요. 남자들은 늘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어 해요. 나는 남자들의 그런 성향을 이를테면 허울만 그럴싸하지 실속은 없는 문제로 봐요.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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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7-26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위의 분홍색표지 <한나 아렌트>를 읽어보려 했는데, 왜 그 책이 만화라고 생각했을까요? 실망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한나 아렌트 매력 넘쳐요. 그 자리에 있어준 것 만으로도 대단하지만, 그냥 사람 전체가 매력 넘쳐요. 하이데거와의 씬 빼고 전부요.

수이 2020-07-26 20:32   좋아요 0 | URL
하이데거와의 씬조차 저는 좋았어요, 나 변태인가;;

단발머리 2020-07-26 21:10   좋아요 1 | URL
진짜 그런가? 하고 댓글 달면 나 변태인가 : )

다락방 2020-07-27 07:48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 너무 좋아요! 저는 감히 한나 아렌트처럼 될 순 없겠지만(천재도 아니니까 ㅠㅠ) 한나 아렌트처럼 되고 싶어요.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하는 사람요.
저는 하이데거와의 씬 싫지만(그래서 링크된 거에도 엄청 하이데거 까놨죠! ㅋㅋ) 우리는 누구나 어릴 적에 나쁜 사랑 한 번쯤은 해보지 않나 싶으면...(저만 그랬을지도..)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그래요.

저 분홍색 책은 만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 읽혀요. 한나 아렌트 입문서로 매우 좋습니다. 오히려 [한나 아렌트의 말]이 더 어려워요. 히융 ㅠㅠ

- 2020-07-28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표지속 그의 모습이 더 놀랍습니다.. 뭔가 진짜 포스 작렬이당🦖

다락방 2020-07-28 11:32   좋아요 1 | URL
저도 포스 작렬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리 포스를 품고 살아갑시다. 으르렁-

- 2020-07-28 20:27   좋아요 0 | URL
크르렁!!!!!

라로 2020-07-29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멋져요! 글은 더 멋지고!!

다락방 2020-07-29 08:55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감사합니다, 라로님!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 때, 즉 하나의 이야기를 새로이 창조할 때, 그 안에는 온갖 악한 행위를 넣을 수 있다. 주변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일을 포함해서 드물게 일어나는 일들까지 혹은 순전히 상상에서 나온 것까지도 넣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악한 행동을 넣음으로써 어떤 것을 말하느냐는 그 이야기를 창조하는 사람의 평소 가치관, 사상일 것이고 또 방향일 것이다.

절도나 살인 혹은 강간을 넣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다, 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일 수도 있고, 절도나 살인 혹은 강간을 넣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런 가해 행위를 당해도 싸다는 것을 말하는 수도 있다. 이야기는 '나쁜 짓 하면 안돼'로 끝맺지만 그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과 문체, 흐름에 있어서 '으이고 당해도 싸네'라는 생각을 독자나 관객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거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갈릴 수밖에 없고, 바로 그 지점에서 같은 '가해'를 다뤘음에도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있고 졸라 까대야 되는 이야기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범죄를 다뤄서가 아니다. 범죄나 가해는 어떤 이야기에도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서 뭘 보여주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거다.



최근에 본 좀비 영화 두 편이 그에 해당한다. '좀비'를 다룬 것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여자주인공 이라는 것은 같지만, 그러나 보여주는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데이 오브 더 데드:블러드라인》의 '조이'는 의대생이다. 시체를 해부하고 기증되는 혈액으로 이것저것 연구하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데, '맥스'라는 남자가 그 날도 어김없이 그녀를 찾아와 혈액을 기증하고자 한다. 그의 항체는 여느 사람들과는 좀 달라서 연구 가치가 있는데, 그는 꼭 조이에게만 혈액을 주고자 한다. 언젠가는 조이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줄거라 생각하고 조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데, 조이는 그랑 둘만 있는게 싫어 그의 혈액 채취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지만, 그가 꼭 그녀를 칭하는 바람에 피할 도리가 없다. 그는 자신의 팔에 새긴 조이의 이름을 보여주고 그녀를 강간하려 한다. 그러나 시체실의 한 시체가 깨어나 좀비로 돌변해 맥스를 물고 조이는 그 자리를 피하게 된다.


시간은 흘러 세상은 수많은 좀비들로 가득차있고 조이를 비롯한 살아있는 인간들은 요새를 이뤄 그곳에서 생활한다. 조이는 그 안에서 의사로 생활하면서 열병에 걸린 아이를 치료하고자 하는데, 가지고 있는 항생제가 말을 듣지 않는다. 자신의 학교 약보관실에 더 좋은 항생제가 있으므로 그것을 가지러 다녀오자고 그 요새를 지키는 대장에게 말하고, 그러다 좀비에 감염되거나 좀비를 끌어들이게 되면 위험하다는 반대를 무릅쓰며, 항생제가 있어야 우리를 살릴 수 있다, 저 열병은 전염성이 있다, 고 말하는 거다. 그렇게 몇몇 군인을 이끌고 학교로 가 약품을 가져오는 도중 좀비에 물리는 희생자가 생기고, 그 학교에 내내 머무르던 좀비 맥스는 그녀가 타는 차 밑에 숨어들어 요새로 침입한다.



조이가 항생제를 가져오고자 한 것은 옳은 일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그 항생제를 가져와야 한다는 조이의 말에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아이 하나를 살리자고 부대원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대장의 말 역시 타당하지만, 그러나 항생제를 가져와 그 열병의 전염을 막는 것이야말로 사람으로서, 의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나는 아이를 살리는 일이라면 무조건적으로 그 사람의 편이 된다.





따뜻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자자리 여성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관대한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아이들과 약자들을 여성스러운 연민으로 감싸안아 주는 사람입니다. - 《당신의 별자리 사자자리》, 린다 굿맨, p.72







그런 한편 분명 희생자도 발생했기 때문에 여기서 갈등의 지점이 생긴다. 아니, 생겨야 한다. 아, 사람들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가,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희생을 감당하면서 이렇게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나는 조이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갈등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갈등을 하게끔 풀어가지를 않는다. 나는 억지로 그 갈등 속으로 나를 밀어넣었지만, 이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어휴 저 여자 때문에 사람이 죽었네' 하게 되고, '저 여자가 저러지만 않았어도 좀비가 들어오지 않았을텐데' 하게된단 말이다. 좋은 일 하자고 앞장서는 민폐 캐릭터가 되어버리는 거다.



결국 요새 내에서도 물리는 사람이 생기고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은 맥스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 놈의 맥스는 정말이지 징글징글한게, 엄청 특이한 항체를 가지고 있어서 좀비에게 물렸어도 백프로 좀비가 안되고 인간의 생각과 자질이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이를 본 순간 조이를 무작정 따라오게 된거다. 인간 남자였을 때도 스토커였던 맥스는, 좀비가 되어도 스토커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 스토커 맥스는 다른 인간들을 물지언정 조이는 '내 거'이기 때문에 물지 않는다. 조이에 대한 사랑으로 거기까지 왔고 조이에 대한 사랑으로 조이를 물지 않아.... 어쩌라규.......

어째서 스토커와 진정한 사랑이 이렇게 종이 한 장 차이인것처럼 얘기하냐구!!

스토커는 맥스고, 강간을 시도한 것도 맥스인데, 왜 조이한테 화나게 만드는거냐. 왜!

그리고 스토커여..왜 인간이어도 스토커이고 좀비어도 스토커인가. 제발 이 세상에 스토커들아 좀 사라져라. 진짜 싫다.





이수정: 경계성 성격 장애인의 행동 저변에는 어린 시절부터 욕구 충족이 안 되어 생긴 결핍이 깔려 있습니다. 결핍은 쉽게 채워지지 않으니 감정 기복이 굉장히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집착하는 대상과의 관계는 상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쪽만의 일방적인 관계가 만족을 주기란 어렵죠.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미저리>, P163











요새의 군인들은 그를 묶고, 조이는 그런 맥스의 피를 채혈해서 이제 백신을 만들고자 한다. 역시나 요새 안의 사람들은 이 좀비를 죽이고 싶어했지만, 조이가 '백신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거라고요! 반드시 만들게요! 날 믿어줘요!' 하면서 그 좀비를 살려두고...........이 과정에서 묶인 맥스 앞으로 가 '정말 더럽게 못생겼네'하고 맥스를 무시하는 여자군인 때문에 맥스는 묶인 줄을 풀게 되고 요새 안은 좀비 판이 되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야, 이 영화 감독은 철저하게 남자구나, 라고 생각했다. 선한 의도를 가진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 그녀가 행한 건 숱한 민폐였다. 요새 안의 사람들? 다 죽는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도 물렸는데 그렇게 자살하려고 하는 그에게 '백신으로 치료해줄게'해서 만들어본 백신을 투여해 결국 애인을 살려. 그러나 그 백신을 만들기 전에 이미 사람들 다 죽었는데?



물론 우리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위대한 연구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걸. 하다못해 화장품 하나를 만들어도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나. 우리 편을 살리기 위해 상대편을 죽이는 일도 일어나고.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죽어가게 되는 생명들이 많다. 결국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 그러니까 지구에 인간이 남아있도록 하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거다. 조이는 백신을 결국은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물론, 조이가 죽인 게 아니다. 애초에 왜 좀비가 생겼는지도 나오지 않고, 좀비가 사람을 문 것은 조이가 지시한 것도 당연히 아니다. 우리는 조이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뭐야 이 여자 때문에 좀비 들어왔잖아, 이 여자 때문에 사람들 다 죽었네' 하게 되어버리는 거다. 게다가 여자 군인도 마찬가지. 그녀가 '무시했기 때문에' 좀비 맥스가 빡쳐서 묶인 사슬을 풀 수 있게 되는 거다. 감독은 여자 주인공을 앞세워 여자 주인공의 업적을 보여줄게, 라고 보란듯이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여성혐오를 조장한다. 그러니 여자 주인공이 백신을 만들어 인류를 구하지만 개짜증나는 영화가 된다니까?


이 영화의 포스터를 가져올까 싶어 검색해보았더니 제일 처음 보이는 이 영화에 대한 한줄 리뷰가 '여주인공때문에 암걸리겠다'는 거였다. 그 밑으로 별 한개의 리뷰들이 가득했다. 다 여주인공 욕을 하고 있었다. 백신을 만들고 세상을 구했지만, 욕이란 욕을 다 먹게 만드는 그런 영화인거다.





그러나 이 영화, 《리틀 몬스터》는 다르다.


여자주인공 '캐롤라인'은 유치원 선생님이다.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 그녀는 남자 학부모들의 대시가 너무 끔찍해서 왼쪽 약지에 반지를 끼고 다닌다. 자신에게도 불행한 시절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주는 존재라는 깨달음 뒤에 유치원 선생님을 하면서 아이들을 진정 사랑으로 보살핀다. 그런 아이들을 통솔하여 야외학습을 갔는데, 바로 거기에 좀비떼가 나타난다.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속 좀비들은 느리다. 뛰지도 않고 지붕 위로 점프하지도 않는다. 유리창을 주먹으로 박살내는 일도 없다. 그러니 기념품가게 안에 캐롤라인과 아이들이 숨어들었을 때, 이 좀비들이 공격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밖에는 좀비들이 있고 안에는 아이들이 있는 상황에서 캐롤라인은 용기와 지혜를 보여준다. 글루텐 알러지가 있는 아이가 호흡이상 증세를 보였을 때 그 아이에게 놓아야할 주사기가 들어있는 가방이 밖에 있다는 걸 안 선생님은 밖으로 나가 좀비들과 맞서며 그 가방을 가까스로 가져와 결국 아이의 호흡을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아이의 삼촌은 분명 엄마가 주사 놓는 법을 알려줬는데도 그 말을 건성으로 듣고 안에 있던 주사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인기있는 남자 스타도, 그리고 아이의 삼촌도, 겉모습은 성인 남자이지만 어른이 아니다. 철이 덜든 인간들. 이렇게 철이 들지 않은 성인 남자들 때문에 아이들을 보호하고 좀비와 싸우는 게 여자 선생님 몫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일을 아주 잘해낸다.


철들지 않은 성인 남자를 보는 게 너무 답답했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평소 약하다고 생각한 아이와 여성이 얼마나 용감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 보고나면 친여성, 친아이적이네, 샤라라랑~ 이렇게 되어버려. 물론 아이들이 여러명 등장하지만 이 영화를 여기에 출연한 아이들이 볼 수 있을지는...다른 문제지만(볼 수 없을 것 같다), 좀비를 다루고 여성주인공이 인간을 구한다는 스토리는 같은데, 위의 영화 《데이 오브 더 데드》와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됐다.






- 일전에 남자1과 술을 마시면서 나한테 일어난 일을 얘기한 적이 있다. 사소한 일이긴 하지만 나름의 고민이었고, 내 고민속에는 나 말고도 남자2와 여자1이 등장했다. 남자 2가 나한테 할거라 예상되는 행동을 해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 때 남자1이 내 말을 다 듣고는 내게 그랬다.


"남자2가 네 생각만큼 널 좋아하지 않았나보지."



아?! 나는 그때 너무 깜짝 놀랐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당연하게도 나는 그에게 내가 당연히 우선 순위일 거라고 생각한거다. 그가 나에게 우선순위이니 나 역시 그에게 우선순위일거라고, 너무나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상대를 10만큼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가 나를 10만큼 좋아하리라는 보장이 어디있는가.



여자2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나는 남자3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 때 여자2가 내게 그랬다.


"남자3이 너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았나보지."


아?! 나는 내가 남자 3을 110만큼 좋아하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히 남자3이 나를 110만큼 좋아할거라고 생각했었나보다. 그의 애정은 고작 98정도였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110에 대한 기대치를 가졌던 것.



오늘은 위의 일들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사소한 일들을 마주하고 나는 오늘, '아 내 생각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한 것. 내가 우선순위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나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다는 것을, 오늘은 새삼 나에게 일깨워줘야 했다. 약간 가슴이 아팠지만, 살아가다보면 무수히 겪게 될 일이다. 그러니 극복해야지.





- 어제는 오랜만에 팬레터(?)를 받았다. 가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럴때마다 여전히 신기하다. 나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그저 내가 쓴 글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 글을 읽고서 좋다고 혹은 위로를 받았다고 고맙다는 말들을 전해온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네가 글로 덕을 쌓았다'고 했던 말. 선한 의지를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하기도 쉽지 않은데 나는 나좋자고 한 일이 이렇게 선한 행동이 될때가 있는 것 같다. 온갖 스트레스로 두드려맞고 있다가도 히힛 하고 좋아하게 된다. 팬레터 감사합니다.

:)



나, 잘 자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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