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엄마에게 처음이자 유일한, 순전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태어난 것도 엄마를 기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아빠와 결혼했다는 일종의 증거물이었고, 배운 대로 사는 삶이 낳은 예상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프라납 삼촌은 달랐다. 삼촌은 엄마의 삶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이고 기쁨이었다. (-「지옥 천국」, 줌파 라히리, p.85)




'순전한 기쁨'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했었다. '순전한 기쁨'이라니 대뜸 '줌파 라히리'의 「지옥 천국」이 떠올랐고, 당연한듯 프라납 삼촌이 떠올랐다. 화자의 엄마가 프라납 삼촌을 좋아하는 이야기라,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한나 아렌트'의 전기와는 매우 결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다른 건 아니었다. 줌파 라히리가 말하는 '순전한 기쁨'이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난 다른 것에서 온다고 했을 때, 나 역시 지옥 천국의 엄마처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에서 그것을 찾는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어쨌든 그래서 지옥 천국의 인용문을 가져오려고 찾았는데, 아 이 미친 기억력의 왜곡이여... '순전한'은 기쁨에 붙은 수식어가 아니라 '행복'에 붙은 수식어였네. 나는 어제 내내 '순전한 기쁨'이야, 이건 순전한 기쁨이지, 줌파 라히리가 말한 바로 그거야, 했는데 아아, 순전한 행복 이었어...



마침 오늘 아침에 읽기 시작한 책에서도 얼라리여, '순전한 기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아니, 이것이 뭔일이래. 어제 하루종일 '순전한 기쁨'을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전혀 다른 책에서 만나는 순전한 기쁨 이라니. 순전한 기쁨 이라는 워딩 자체가 그렇게 흔한 워딩이 아닌데, 계속 생각하는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삶이라니. 일전에 나는 내가 소설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문학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포용하는 문학적인 삶...


아, 다시 말하지만 그러나, 줌파 라히리는 프라납 삼촌에게서 얻은 것이 순전한 '기쁨'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기억력은 왜곡되었어..




어제 동료랑 점심을 먹는데 어떤 얘기 끝에 동료가 '매일 만나는 것도 아닌데 만날 때 꼭 붙어있고 싶다'며 애인에 대한 얘기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겠지만 이 동료에게도 애인은 매우 중요하고 애인은 언제나 우선순위이다. 그러니 그토록 사랑하는 애인과 만나는 횟수는 항상 자기 바람보다 못미칠 것이고 그렇게 만나면 한시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을것이며,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동료는 내게 한것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붙어있는 건 아무리 사랑해도 내게는 힘든일이며, 각자 좀 떨어져서 혼자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혼자 있는 게 행복하다면, 나는 그게 섞여 있는 사람인거다. 어쨌든 이 동료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은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퇴근길에 책을 읽었다.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알로이스 프린츠'의 《한나 아렌트》전기였다. 한나 아렌트라면 악의 평범성 이라든가 하이데거 정도로 그 유명세만 알던 터라 이번 기회에 읽어보자, 하고 빌려온 참이었다. 마침 표지를 보니 그렇게 어렵게 쓰여져 있을 것 같지도 않아. 게다가 이번달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에서도 언급되지 않던가.



















근데 이 책을 읽는 게 너무 좋은 거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 내가 가진 지식은 전무한 상황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가 태어나고 공부하고 연인을 만나고 스승을 뛰어넘는 철학자가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거다. 한나 아렌트는 특별히 여성주의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여성주의를 무시하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참정권에도 관심이 없었으니. 그녀의 그런 점이 어떤 남자들에게는 더 어필했던 것 같고.



한 다과모임에서 그녀느 역시 야스퍼스에게서 공부를 하고 있는 베노 폰 비제를 알게 되었다. 그는 훗날 문예학자로서 이름을 얻게 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심지어는 결혼 얘기까지 있었다. 세 살 위인 폰 비제는 한나에게 매혹되었다. 특히 그녀의 눈에서 풍기는 '암시적인 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훗날 비망록에서 "그 눈을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두 번 다시 헤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움이 일었다"고 회상한다. 그에게는 한나가 '여성 참정권론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p.61)



1964년 10월 28일, 한나 아렌트의 모습이 독일 제2방송ZDF에 나왔다. "인물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권터 가우스가 그녀를 인터뷰했다. 가우스는 대담이 시작될 때 그녀가 이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첫 번째 여성이라고 말하며, 여성 해방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한나는 여성 해방 문제에 있어서 자신은 개인적으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왔을 뿐이에요." (p.241)



굉장히 지명도 있는 사람이었던만큼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고 여성주의를 주장해주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내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긴 하지만, 그녀가 특별히 여성주의를 염두에 두고 산 게 아니라도 남성들만 나왔던 프로그램에 '여성으로서' 나오게 된다는 것, 자신을 가르쳤던 스승보다 더 유명해졌다는 것등은 다른 여성들로 하여금 충분히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기사를 쓰고 나서는 수많은 유대인들로부터 공격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무너지거나 자기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것에 목소리를 낸것도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했다'고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여성을 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충분히 다른 여성에게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보여진다. 물론 한나 아렌트가 살아있고 이런 나의 글을 본다면 '아니, 여성주의랑 엮지 말라니까 왜 니 맘대로 엮고있어!'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유명해지고 힘을 갖게 되는 것은 다른 여성들에게 너무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하는 바, 한나 아렌트가 '난 여성주의에 아무 역할도 안했어' 라고 해도 계속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나 아렌트가 제일 처음 만난 연인이 '하이데거'인만큼 하이데거 얘기를 안할 수가 없고, 하이데거 애기를 할라치면 일단 빡이 치는 건 또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인것이야...

한나 아렌트는 1906년에 태어났고 매우 총명해서 어릴 적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이른 나이에 대학에 진학했다. 한나는 학생으로 하이데거는 교수로 처음 만나게 되는데 그 때 하이데거의 나이가 35세. 하이데거가 1889년생이니 둘의 나이차이는 17년이고 그러니까 그 때 한나의 나이는 18세였던 거다. 씨부럴. 한나가 하이데거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학교에 들어가긴 했지만, 이 총명하고 젊고 아름다운 한나에게 35세 중년남 하이데거는 반해버리고 마는 것이야. 그래서 지가 먼저 편지를 쓰고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둘 사이의 나이차이도 빡치지만,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도 빡치지만, 그당시 하이데거는 유부남이었다. 아내와 아들들도 있었다고. 그러면서 뻔뻔하게 어떻게 18세 여성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할 수가 있지? 정말이지 ... 어처구니가 없다.



하이데거는 기혼자였고 두 아들의 아버지였다. 처음부트 그는 한나에게 자신의 결혼과 경력을 위태롭게 하고 싶지 않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한나는 이 게임 규칙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고 온갖 궁리를 짜내는 게임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창문을 열어놓는다거나 램프를 켜놓는 것과 같은 비밀 신호를 정했다. 두 연인은 비밀이 들키면 어쩌나 늘 불안했다. (p.50)


그는 편지에서 그녀만큼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는 이는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한나는 그의 좋은 정령이며, 그녀는 그의 사상에 영감을 주었다. 훗날 그는 그녀가 없었더라면 『존재와 시간』을 쓸 수 없었으리라고 고백한다.

한나는 예속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녀는 "내 사랑으로 인해 당신이 더 힘들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묵묵히 순종하며 그의 은밀한 지시에 따랐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는 선생이었고 그녀는 제자였다. (p.55)




한나도 하이데거를 사랑해서 둘은 사랑하지만, 하이데거는 한나를 자신의 지적인 '동반자'로 보기 보다는 보조자 취급을 했다. 너는 내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똑똑한 여성이지만, 너 스스로 혼자 설만큼 똑똑한 건 아니야, 정도의 느낌이랄까. 나중에 한나가 하이데거보다 더 유명해지고난 뒤에도 한나의 작업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는 게 합의되어 있었다.



한나는 자신이 하이데거의 수호자이며, 그의 정신적 균형과 철학적 작업의 수호자임을 느꼈다. 그녀의 말에서 위대한 마법사 하이데거에 대한 옛 경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하이데거의 '컨디션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고, 그가 마련해준 귀빈석에 앉아 그의 강연도 들었으며 강연 내용에도 감탄했다. 그녀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는 물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나가 언제나 '마치 글을 한 줄도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두 사람의 암묵적 합의였다. (p.157)


한나와 하이데거가 동시에 싫어지는 일은, 하이데거의 아내를 만나 친해지려고 했던 일이다. 한나는 '하인리히 블뤼허'랑 결혼해 사이좋게 오래 살았지만, 하이데거를 인생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가 나치당에 들어갔었다는 사실 때문에 끝내 괴로워하면서도 그러나 하이데거랑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어했다. 하이데거는 자신과 한나의 오래전 관계를 아내에게 말했는데, 아니, 어느 아내가 자신의 남편과 사랑했던 여자를 다정하고 친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미국에 정착해 살면서 독일에 방문할 때면 하이데거를 찾아가는 한나를 하이데거의 아내가 반가이 맞을 리 없다. 하이데거와 한나 둘만 있게 두지 않으려 하고 질투하며 표독스럽게 구는데, 이에 한나는 너무 짜증을 내는 거다. 누가 나를 다정하게 대하지 않으면 짜증나는 건 모두에게 마찬가지겠지만, 아니, 그 아내가 어떻게 친절하게 한나를 대하냐고. 이 둘을 소개시킨 하이데거는 대체 뭐하는 놈이야... 삼십대 중반의 유부남 주제에 18세 제자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더니, 나중엔 '나 한나랑 사랑하는 사이였어' 이러면서 아내에게 소개해.. 철학은 뭡니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뭐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대체 하이데거라는 이 '남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던거야? 철학이 뭔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철학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왜 때문에 아내에게 자신이 젊은 시절 바람폈던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사이가 좋기를 바라는가... 삶을 쥐뿔도 모르는데?

한나는 그녀가 짜증낸다고 너무 신경질적이라고 남편에게 편지 보내면서, 하이데거의 정치적 과오들도 뒤에서 아내가 조종한거였다고 쓴다. 하아- 아내가 조종했다는 것이 팩트인지도 모르겠지만, 설사 그렇다해도 아내가 그러라고 했다고 나치당에 들어간 게 뭐 아무 잘못 없는 게 되는가.. 자신의 머리로 판단 못하는부분?


나는 한나 아렌트가 참 좋아졌는데, 저 부분에서만큼은 진짜 딥빡이 온다. 아니, 아내의 입장이 되어보면 말이다, 한나가 집에 딱 왔어. 그러면 " 꺅 >.< 너무 좋아, 반가워요, 남편의 전 내연녀, 내집처럼 편히 머물러요~" 이게 되는가? 쯧쯧...

물론 저거 가능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자기가 화낼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 자기중심적인지라 자기 기분, 자기 상황이 먼저지. 한나는 자기 기분에 충실했던 거야...




인상적인 건 남편 '하인리히'와의 관계였다. 뉴욕으로 건너가서 하인리히는 거기에서 일자리를 구해 강의를 하는데, 한나는 주중에 남편과 떨어져야 할 일이 많다. 여행을 비롯해서 강연 초청까지 여기저기 막 다녀야 하는, 역마살 낀 삶을 살고 있는 것. 실질적으로 남편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신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한다. 지금 내 옆에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어도, 나는 여기 비행기 타고 먼 곳에 와있고 당신은 거기, 아주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내 옆에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하는 삶이라니. 이 지점이 아까 말한 회사 동료와는 전혀 다른 지점이고 또 나랑은 같은 지점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육체적 물리적으로 내 옆에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사람의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가 함께하고 내 영혼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이 한나가 아주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28년동안 함께 살았어. 그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어." (p.248)



그녀는 열정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즐겼다. 메리 매카시는 한나가 일찍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마치 자기 자신도 잊은 듯이 꼼짝도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고 눈을 뜨고 있을 때도 있었다. 방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까치발로 살금살금 그녀 곁을 지나가야 했다. 한나는 은거할 수 있는 그런 국면이 필요했다. 그녀에게는 그다음 다시 대중 속으로 들어가 토론하는 일도 그만큼 중요했다.

그런 식으로 고요히 생각하는 국면이 지난 다음에 그녀가 말을 거는 최초의 사람은 대부분 하인리히 블뤼허였다. 그와의 대화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과 같았다. (p.279)




한나는 사유하는 사람이었다. 사유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할수밖에 없다. 사유란 무릇 그런 것이니까. 그런 그녀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아닌 타인. 이것은 얼마나 고맙고 또 다행한 존재인가. 24시간 365일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어도, 각자가 서로 떨어져있더라도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다니, 너무 좋지 않은가. 그건 하인리히에게도 또 한나에게도 서로가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사람은 생애 그렇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거라고 보인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 얘기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유대인 학살 당시 나치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한다. 그당시 현재의 법률로 그를 처벌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고, 또한 그녀는 아이히만이 그저 어리숙한 한 남자였다는 것에 당황한다. 그럼으로써 악의 평범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한나 아렌트가 생각하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고 그것으로 사유하면서 말과 행동을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열정적이라, 아 그녀가 자꾸 위로 쑥쑥 올라갈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는 좀 길지만 인용해보겠다.




덴마크 정부는 독일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고집스럽게 거부했고, 유대인 별 표시를 받아들이라는 요구에 대해 덴마크왕은 자신이 그 별을 다는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식으로 '저변이 더 확대된' 저항은 놀라운 효과가 있었다. 독일의 지휘관들은 기이할 정도로 양보를 하며 어쩔 줄 몰라 했고, 베를린에서 오는 지시들을 무시하고 믿지 않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그들의 "냉혹함"은 "햇볕 속의 버터처럼 녹아버렸다." 이렇게 부드러워지는 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가 이미 전체주의에 대한 책에서 기술한 전체주의 체제의 한 속성을 시사한다. 그런 식의 체제는 아무리 살인적이고 파괴적이라 하더라도, 어떤 단호하고 연대적인 저항이 나타나면 대단히 쉽게 내부적으로 와해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본질이 기이할 정도로 아무런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무실체성을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영혼 없는 괴물로 내세우는 데 반대한다. 그를 그런 식으로 악마화한다면, 비록 악마적인 위대함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적합하지 않은 어떤 위대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악마화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항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내맡겨져 있는 검은 세력과 관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일깨운다. 이 외견상의 어두운 세력 뒤에는 사람들이 어떤 대항 행동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대단히 현실적인 조직이 숨어 있었다. 사람들이 힘을 합헤 공동으로 사태를 이끌어가는 것은 명령과 복종과 무책임에 근거를 둔 모든 테러 체제보다 언제나 영향력이 크고 또 "깊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아이히만을 "어릿광대"라고 불렀고 그가 체현한 악을 "평범"하다고 했던 것이다. (p.233-234)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를 괴물로 보지 않고 평범하게 봤다는 것, 게다가 유대인 학살을 돕는 유대인이 있었다고 쓴 것 때문에 한나는 유대인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는다. 그녀와 친한 사람들조차도 그녀를 비난한다. 그녀가 나치의 악을 극소화 시키고 있다는 것.

한나의 강의는 매우 유명하고 교수로서 이름도 높아 대학마다 그녀를 교수로 모시려 하고 그녀의 강의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머무르는 미국에서 너무 비난을 받아 매스컴의 초대에는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로부터 악의 평범성 때문에 등을 돌렸는데, 그녀가 언제나 스승이라고 생각했던 '카를 야스퍼스'는 그녀의 말을 지지하고 또한 남편 '하인리히'도 그녀 편이다. 단지 편으로써 편이 아닌, 그 말을 이해해주는 것. 나는 이런 지점들이 그녀가 인생에서 가진 행운이라고 보여진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한나 아렌트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겠다. 사실 그건 지금 적용해도 틀린 말이 아니고. 강남역 살인사건에 있어서 가해자가 과연 '괴물'이어서, 그가 '근본 악'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일을 저지른걸까? 그가 다른 남성들과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나? 악의 평범성은, 이런 부분에서도 적용되는 거 아닐까?



그러나 내가 그 당시의 유대인이었다면 나는 한나 아렌트의 편에 섰을까? 한나 아렌트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잘 모르겠다. 나치로부터 고통을 받았던 유대인의 입장에서 '그 악이 특별했던 게 아니야, 평범했던 거야, 그를 영웅화 시키지마'라는 말을, '아 맞다 그렇지' 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라면 한나 아렌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언지 알겠는데, 그 당시에 그 피해자속의 나였다면 나 역시도 한나 아렌트를 비난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자, 다시 순전한 기쁨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순전한 기쁨을 느꼈다.

한나 아렌트의 탄생과 삶 전반에 걸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정말 기뻤다. 기뻤다는 단어가 책의 내용상으로 적절하진 않겠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는 것, 한 위대한 여성에 대해 알게 됐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책을 읽는다는 게 너무 기뻤던 거다. 책 너무 좋다. 책을 한 권 읽음으로써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는 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이 기분. 내가 조금 더 달라지 기분, 책을 읽기 전보다 뭔가 더 채워진 기분. 나는 이것이 너무 기뻤다. 너무 짜릿했다. 이것은 짜릿하고도 순전한 기쁨이야. 어제 퇴근길에 순전한 기쁨이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그러나 회사 동료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순전한 기쁨은 자기만의 몫이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늘 붙어있고 싶은 마음, 그래서 붙어 있을 때 행복한 그 마음은 누군들 모를까. 그러나 굳이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나는 이런 게 더 기쁜거다. 심지어 최고의 기쁨이야. 우선순위의 기쁨이다. 그러니까 좀전과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좀 전보다 내가 더 채워진 것 같은 이 순간, 책을 읽는 이 순간,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에 대해 감동하고 생각하고 돌이켜보는 이 순간. 이 순전한 기쁨이라니! 이걸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 책과도 대화를 하게 되지만 나와도 대화를 하게 된다. 나는 이런 순간이 순수하게 너무나 기쁜 것이다. 순전한 기쁨!!



기쁨도 각자의 몫이고 행복의 기준도 저마다 다른 것이고 그러니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들어 멋대로 조언해서는 안되지만,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아, 책을 읽어라! 하고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누가 오지랖 떠는 거 보는 거 세상 싫지만, 그래서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지만... 여러분, 책은 읽어야 해! 책은 나 자신과 풍부한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얼마나 좋은지 몰라. 삶이 충만해진다고!!




한나 아렌트는 제일 처음 하이데거를 선생으로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지만, 어느 순간 스승을 앞지르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나는 이것도 너무나 너무나 좋다. 이런 실재한 여성을 책으로 만날 수 있다니, 아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한나 아렌트를 더 읽어봐야겠다.

지금 기분으로는 이 책을 읽은 게 너무 기뻐서 책장 한 칸을 온통 한나 아렌트로 채우고 싶다.






















아, 아침부터 페이퍼를 너무 열정적으로 썼더니 출출하네. 백설기 뜯어먹고 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오레오도 있고 귤도 있고 백설기도 있고 커피도 있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책 만세!



덧붙임) 바로 위에 링크한 《한나 아렌트의 말》사려고 했는데 내가 이미 사둔 책이란다... 네??????????? 나는 기억에 없는데?????????? 그러면 내 책장에 이 책이 있단 말이야????????????? ㅜㅜ




마르타는 편물공장에서 일거리를 맡아왔다. 67세의 나이로 낯선 세계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거의 집에 머물면서 한나와 하인리히를 위해 살림을 했다. - P109

알프레드 케이진은 한나가 친구들 사이에 끼친 첫 번째 영향을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40대 후반의 그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매력적이고 정열적인 유대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상냥하고 재치 있고 혀가 매서운 만큼이나 여성적이었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교양이 있었다. 새로운 우정에 매혹되면 그녀의 유대인 용모와 칼칼한 목소리는 명상에 잠긴 듯한 다정함으로 변했다. […] 그녀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왜냐하면 그녀의 새로운 고향과 영문학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억양과 열정과 마찬가지로 그녀 자신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 P122

야스퍼스가 하이데거를 ‘순수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면 그녀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정말 인격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이데거가 무너진 후 처음 쓴 글 「휴머니즘에 관하여」도 그녀는 좋게 보지 않았다. "문명을 욕하고 존재Sein를 y자[Seyn]로 쓰면서 토트나우베르크에서 살았던 삶은 사실 쥐구멍 속으로 숨는 것과 같아요. 그렇게 숨어든 건 순례를 하듯 자신을 찾아와 경탄을 표하는 사람들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 P125

한나는 뉴욕에서 충만한 삶을 살았다. 요구 사항이 많은 직업을 갖고 있었고, 마음에 담고 있는 책을 썼으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러나 한나의 어머니는 그렇다고 할 수 없었다. 마르타 아렌트에게 미국은 영영 낯선 존재였다. 그녀는 95번가의 가구 딸린 방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사위를 잘 이해하지 못햇다. 하인리히는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다시 재야학자로 살아갔다. 그는 독자적인 철학적 구상으로 전 서구 사상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지고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 밖에도 그는 한나가 책을 쓰는 데 자극과 조언을 주는 대화 상대자였다. - P128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lobe00 2020-01-15 1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이 달의 페이퍼로 추천합니다♡

다락방 2020-01-15 14:26   좋아요 1 | URL
아이고 별말씀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매우 좋아하고 있다)

잠자냥 2020-01-1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그 *빻은* 관계 때문에 이상하게 손이 안 가더라고요. 그래도 더 읽어봐야겠지요. ㅎㅎ
(똑똑한 사람이 어쩌다 그런 사랑을;; 음..)
우리가 읽은 <나 시몬 베유>의 시몬 베유는 다락방 님이 페이퍼에서 구구절절 쓰신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주장을 비판했지요. 저는 ‘악의 평범성‘도 공감하지만, 시몬 베유의 비판도 이해가 가요. 암튼 두 여성 다 멋지긴 합니다. ㅎㅎ

그나저나 하이데거 이야기 하시면서 흥분하셨나봐요. ㅋㅋㅋ아렌트 관련 네 번째 인용문에서 ˝한나는 예쏙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p.55) 예쏙적 ㅋㅋㅋㅋㅋㅋ 너무 예속되었다고 생각하셨나봐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15 14:38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지고 또 그것을 평생에 걸쳐 가져간건(심지어 중간에 그가 그녀로부터도 비난당할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너무 어릴 때 만난 첫사랑 혹은 첫남자 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하이데거가 더 싫고요. 제 경우에도 제 첫사랑을 잊는데 되게 오래 걸렸거든요. 그나마 나중에는 다른 시각으로 그 일을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고요(그건 사랑이 아니었어요). 한나 아렌트에게 어릴 적에 만난 스승이자 남자인 하이데거는 너무 강한 사람이었고 잊지 못할 사람이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한나 아렌트가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란 생각을 안해볼 수가 없어요. 그랬다면 한나 아렌트도 사랑에 빠진 그 당시라면 몰라도, 나중에는 하이데거와 하이데거와의 관계 그리고 하이데거 아내와의 관계도 다르게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뭐, 이건 지금의 제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시몬 베유는 보부아르와도 선을 그었는데 한나 아렌트를 비판했군요.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뭐랄까. 멋진 여성이 다른 멋진 여성을 비판하는 게 너무 멋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부아르, 시몬 베유, 한나 아렌트. 각자 자기 주장을 가지고 멋져서 너무 좋아요. 세상에 멋진 여자가 많아서 좋군요. 물론 아직 충분하진 않습니다. 더 나와야 해요, 더!


하이데거 너무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싫어. 하여간 철학한다는 남자들은 죄다 별로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저 [나, 시몬 베유]는 안읽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1-16 07:50   좋아요 0 | URL
[나, 시몬 베유]를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의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을 비판하는 걸 읽으면서, 시몬 베유라는 사람 대단하구나 했어요. 자기만의 경험을 토대로 사상을 발전시키고 (꼭 사상이라고 지칭할 필요도 없지만) 그에 기인하여 다른 사람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건전한 상황인 것 같다. 시몬 베유와 한나 아렌트가 다 훌륭해보기에 하는 지점이었죠. ..

그나저나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에게 푹 빠져 산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 심정에 대해 뭐라 말할 순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라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게 마련인지라. 하이데거가.. 나쁜 넘인거죠. 흥. (라고 비난의 화살을 하이데거에게 확 돌려버린다)..

아 아침부터 졸린데 이 글 읽고 깼어요. 요즘 넘 피곤해서 책이 잘 안 읽혀지는 게 넘 괴롭구나 생각하며 출근했거든요. 책만 읽으며 살 순 없겠죠.. 먹기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출근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피곤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책 읽을 시간이 줄 수 밖에 없고.. 악의 순환고리에요. 쩝.

다락방 2020-01-16 08:15   좋아요 1 | URL
제가 시몬 베유 책을 세 권을 사서 그 중에 두 권을 읽고 한 권을 팔았거든요. 근데 그 한 권이 바로 [나, 시몬 베유] 였어요. 하아. 어제 잠자냥 님의 댓글과 오늘 비연 님의 이 댓글을 읽으니 제가 무슨짓을 한건지..너무 후회가 밀려오네요. 안그래도 새책 팔면서 팔까말까 엄청 망설였는데... 팔지말걸. 저 너무 악의 평범성 비판한 부분 읽고 싶고요... 그렇다면 저는 정가에 사서 중고가로 팔고 다시 정가에 사야 하는걸까요? 슬픔 ㅠㅠ 그렇지만 너무 읽고 싶네요. 제가 왜 팔았을까요? ㅠㅠ


저도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의 관계에서는 하이데거가 나쁜놈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뻔뻔한 새끼에요. 나이도 훌쩍 많은 유부남이 어디 어린 여학생에게 사랑한다고 껄떡댑니까? 그러면서 들키지 않으려고 숨겨가며 만나고. 진짜 제일 싫어요. 나쁜 새끼...

저도 회사 안다니고 책만 읽으면 얼마나 신날까 생각하는데... 그런데 회사를 안다니면 책을 또 어떻게 사죠 ㅠㅠ
인생이란 게 이런건가 봅니다. 하나를 취하기 위해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
인생....

비연님, 오늘도 화이팅요! ㅠㅠ

잠자냥 2020-01-16 11:13   좋아요 1 | URL
ㅎㅎ 댓글 달고 보니 제가 한나 아렌트를 비난(?)한 거 같군요. ㅋㅋㅋㅋ 아니 왜 그런 남자를 만나! 하면서요.물론 하이데거가 나쁜 노....옴이지요. 에휴. 거기에는 덧붙일 말도 없어요.

다락방님 그 책을 그렇게 팔아버리셨군요!
그럴 땐 도서관을 이용하시는 거예욧....
전 시몬 베유가 아렌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보기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지적하는 점이 정말 당차 보였습니다. ㅎㅎㅎ 근데 또 그게 그냥 비난이 아니라 말이 되니까 더 멋진!

다락방 2020-01-16 11:34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가 도서관도 검색해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도서관에 없더군요..
앗. 해가 바뀌었으니 신청해야겠어요!!

(잠시후) 희망도서 신청하고 왔어요! 그런데 한나 아렌트 비판하는 부분 너무 멋있어서 결국 구매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무슨짓을 한것인가 내가 ㅠㅠ

단발머리 2020-01-18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두 다락방님 이 페이퍼를 읽어야 할 듯합니다!!! 너무 좋으네요!!
저 역시 <나, 시몬 베유>에서 한나 아렌트에 대한 시몬 베유의 가열차고 야무진 비판이 기억나요.
시몬 베유 같은 유대인 생존자들의 비난을 예상했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나 아렌트의 학자적 고집과 확신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됐구요.

전 그래픽노블 <한나 아렌트, 세번의 탈출>에서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서술하면서 ‘마음에 그늘이 졌다‘ 그 표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사랑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제자라니..... ㅠㅠ 슬퍼요.

다락방 2020-01-20 10:09   좋아요 0 | URL
저도 한나 아렌트를 읽게 되어서 너무 좋았어요. 이 책을 읽을 때 얼마나 독서에 대한 사랑이 샘솟던지요. 도대체 이렇게나 좋은 독서를 왜 국민 전체가 하지 않는걸까요? 사람들은 왜 책을 안읽을까요, 단발머리님? 이렇게나 좋은데??

저는 도서관에 [나, 시몬 베유] 희망도서로 신청했습니다. 제가 왜 섣불리 그걸 팔아버려가지고... 그러니까 돈에 눈이 어두워서 읽지도 않고 팔았습니다. 아, 한심한 인간이여... 이렇게 금세 읽고싶어질줄은 나는 몰랐네. 흑흑. 한나 아렌트 비판에 대한 부분은 너무 읽어보고 싶어요. 한 똑똑한 여자가 다른 똑똑한 여자를 비난하는 글이라니. 너무 멋져요 ㅠㅠ

저는 [한나 아렌트의 말] 사려고 했는데 이미 구매한 도서라고 해서 어제 책장 앞으로 가 대체 어디에 있나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찾아냈다고 합니다. 찾아서 책상에 꺼내두었는데, 그렇게 읽으려고 책상에 꺼내둔 책이 또 쌓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또 안읽고 다시 정리한다며 싹 다 넣어두겠지요. 인생은 뭔지... 킁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