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네. 인간이란 죽을 고비를 만나더라도 고통을 참고 버티어내는 경우가 있지. 그러나 누구에게나 참을 수 없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것이 있기 마련일세. 그건 용기나 비겁함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 만약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다가 밧줄을 잡는다면, 그건 비겁한 짓이 아니네. 깊은 물속에서 나와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고 해도 비겁한 짓이랄 수 없고 말일세. 그건 단지 본능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행동일 뿐이지. 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네. 자네에게는 쥐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이지. 그것들은 자네가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종의 압력인 셈이네. 자네는 자네한테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될걸세." -p.398

'조지 오웰'의 《1984》 에는 감시 체제하에서 사랑을 나누는 '윈스턴'과 '줄리아'가 나온다. 그러나 그들이 숨어서 사랑하는 것은 영원하지 못했고 그들은 결국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게된다. 이때 윈스턴은 버티려고 했지만 '쥐'를 이용한 고문 앞에서는 간절하게 외친다. 줄리아한테 하라고. 자기 대신 이 고문에 줄리아를 바치겠다고 하는 거다. 쥐는 윈스턴에게 견딜 수 없는 어떤 한가지였고 그는 '쥐는 안돼', '쥐만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윈스턴이 비겁하다던가 옳지 못한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위의 인용문에서처럼 누구에게나 참을 수 없는 게 있고, 윈스턴에게는 그게 쥐였던 것이다. 그는 온몸이 꽁꽁 묶여 갇힌 자신의 앞에 쥐를 든 상자를 가져온 고문자가 그의 앞에서 육식동물인 쥐를 풀어놓으려고 하자,

그와 쥐 사이에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의 몸뚱이를 갖다놓아야 한다! -p.400

라고 생각하고 결국 줄리아의 이름을 댄다. 그와 쥐 사이에 그는 줄리아를 호명한거다.

시간은 흘렀고 윈스턴은 어느날 줄리아를 마주친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줄리아는 기존에 자기가 알던 줄리아가 아니었다. 얼굴빛도 눈빛도 변했다. 영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줄리아에게도 고문은 있었고 그건 사람을 이렇게나 변하게 했다. 줄리아는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서 나는 그리고 당신은 서로를 배반했을 거라고.

우리에게는 각자의 신념이 있다. 그 신념은 대체적으로 자기 기준에서 옳은 생각을 하게 하고 또 그걸 바탕으로 옳은 행동을 하게할 것이다. 신념은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짓은 스스로에게 쪽팔려서 할 수가 없어, 그런 짓을 내가 하게끔 나에게 허락하지 않겠어, 그런 비열한 짓은 안돼, 그런 비겁한 짓은 안돼, 그런 치사한 짓은 안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된다'는 말은 그러므로 사실이 아니다. 내가 살고자 한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는게 아니어도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조차 꼿꼿할 순 없는 법이다. 평소라면 기회주의자로 보일까봐 취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이, 나의 상황이 급박해지고 급박해지고 급박해진다면, 어쩔 수 없이,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선택할 수도 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은, '내가 결국 이런 사람이 되어버렸구나'로 바뀌는 지점이 온다. 그러나 그것을 비겁하다거나 비열하다고 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오면 별 수 없지 않나. 내가 죽을것 같다면, 살기 위해서 하는 선택이 내 신념에 위배된들 별 수 없잖나. 살아야 한다.

윈스턴은 쥐가 너무 끔찍했다. 그러므로 쥐 앞에서 줄리아의 이름을 얘기했다. 줄리아에겐 어떤 것이 내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줄리아 역시 치명적인 약점으로 공격하는 바람에 역시 윈스턴을 배반했다. 서로가 서로를 배반한 뒤에 우연히 만난 그들은, 이제 그들이 예전과는 같지 않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전과 같지 않게 돼요."

"그래. 전과 같지 않게 돼." -p.410

그러나 이건 윈스턴과 줄리아의 케이스다. 저 사람은 그리고 나는 이런 경우 서로를 배반했네, 라는 생각 때문에 그들은 전과 같지 않게 되어버렸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잔아, 라고 말하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수 있다. 내가 한계에 이르러서, 더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 선택이 평소의 자신이 선택하지 않을 것이었다면, 자신을 너무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가끔 마음이 너무 아프거나 답답할 때, 슬픈 기억이나 아픈 기억이 떠올라 괴로울 때, 가만 누워서 손으로 내 윗가슴을 살살 쓰다듬는다. 그러면 손의 온기가 가슴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한동안 쓰다듬고 나면 조금은 괜찮아진다. 살기 위해 신념과 다른 선택을 하고 그래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가만 누워서 자신의 손의 온기로 자신의 가슴을 쓸어주었으면 좋겠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 일을 내가 해주고싶다. 내 손의 온기로 가만가만 당신의 온 몸을 쓰다듬어주고 싶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괜찮아.

그런 결정을 어쩔 수 없이 내렸다해서 눈빛과 낯빛이 변하지 않도록 해. 그래도 여전히 당신이 당신임에는 변함 없으니.





- 주말에는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헛짓거리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삶의 의미가 대체 뭘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내가 살아야 하는 목적 자체가 내게 닿지 않는 것이라면 내가 살아가는 것 역시 부질없지 않은가. 내 삶에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친구와 만난 저녁, 여동생으로부터 사진 한 장이 날아들었다. 조카가 잠든 모습이었다. 졸리다고 자네, 하면서 보내준 사진. 그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면서 예쁘다고, 너무 사랑한다고 수십번 느끼면서,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는 이 조카의 잠든 얼굴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얘가 왜이렇게 좋으니.


다음날 오전에는 눈뜨자마자 동생들에게 사랑한다고 톡을 보냈다. 내 동생들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맙다고. 남동생은 아침부터 왜이래? 물었고, 나는 '사랑은 아침부터 하는거야' 답했다.




- 그때 당신이 메일에 답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나는 알겠다. 이해하겠다.

당신은 내게 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답할 것이다. 




- 점심에는 비빔국수에 돈까스 셋트 먹어야지. 여동생은 왜 언니는 점심을 매번 셋트로 먹냐고 했다. 글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