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동생과 술을 마시는데 남동생이 새로운 책을 추천해달라 했다. 녀석은 추리, 미스테리 물만 읽어서 내가 이 놈 때문에 책 살 때 이쪽으로 한 두권씩 꼭 껴넣게 되는데, 며칠전에 추천한 책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그거 읽기 싫다고 다른 거 달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응 아직 나는 안읽었는데 미야베 미유키 책 줄게. 그림자 밟기라고. 에도시대 얘기래.' 라고 했더니, '안읽어도 다 읽은 것 같다, 다 알겠어' 하는 거다. 뭘 다 알어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뭔데? 했더니 '에도시대라며, 가문에 대한 얘기 나오겠지' 이러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아직 안읽어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어딘가에서 리뷰 읽었는데 잼나겠더라고. 하는 대화를 술 마시다 하고, 다 마시고 나서 내가 자려고 내 방에 누웠더니 노크하고 들어와서는, 책 준다며, 하는 거다. 나는 응, 맞다, 불 켜봐, 하고는 책장 앞으로 갔는데, 어? 그 책이 안보이는 거다.


산지 얼마 안되어서 책장에 꽂히진 않을 것 같고, 대충 놓여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디지....안보여...어딨을까.... 이러고 찾고 있노라니, 남동생은 '뭐냐' 막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어? 회사로 시켜서 회사에 있나? 집으로 배달시키지 않았나? 하고는 마침 인증사진 찍었던 게 기억나서 스맛폰을 열어봤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거다. 그런데 배경이 내 방인거다. 어? 이거 내 방인데? 내 방에 있어야 되는데? 그런데 보니, 그날 샀다고 인증한 책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 거다. 응? 이거 한뭉탱이가 다 어디간거지? 나는 비좁은 내 방에서 책무더기를 찾지 못하고 뭐지뭐지 어이없어 하다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퇴근 후에 내가 벗어 던지 원피스가 불룩 튀어나와 있는 걸 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앗, 하고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원피스를 들어올렸더니, 거기에 책뭉탱이가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며칠전에 책 사진 찍고 그냥 그자리에 그대로 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위에 옷을 던져서 안보였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동생 완전 어이없다고 빵터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고 절망하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동생에게 책을 건네고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시 자리에 누우면서, 주말에 방 좀 치우고 책도 정리좀 하고 그래야지, 생각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책을 왜 사는걸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그 인증사진 보면서, 어? 이런 책을 샀어? 막 이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아침에는 집에서 밥 먹기가 싫어서, 아침은 뭘 먹을까 고민했다. 양재역에서 모닝 우동을 할까, 스벅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실까,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을까, 하다가, 양재역에 가까워지자 세번째! 로 결정했는데, 컵라면은 불닭볶음면으로 하자! 결정하게 되었고, 편의점에 들러 불닭볶음면과 삼각김밥 두 개를 골라 계산했다. 아, 삼각김밥 세상 맛있고, 불닭볶음면 또 예술로 맛있어...그렇게 흡입을 했더니, 아아, 아침에 양 너무 많았나, 배가 터질것처럼 부른 거다. 그러자 하아, 이렇게, 이런 상황에서도, 왈칵, 그리움이 몰려왔다. 그러니까 운동맨이었던 내 과거의 연인 칠봉이 생각이 너무 난거다. 연애 당시 항상 나에게 '아침 뭐 먹었어?', '점심 뭐 먹었어?' 하고는 늘 뭐 먹었는지 묻곤 했는데, 그때 대답하면서 양이 너무 많거나 고칼로리 이거나 하면 나는 내심 '오늘은 뭐 먹었냐고 묻지마...'라는 마음이 되었던 거다. 그래서 오늘 불닭볶음면과 삼각김밥 두 개를 한꺼번에 먹고 배를 두드리면서, 아아, 칠봉이가 물었다면 나는 대답했을 거고, 무슨 아침부터 그렇게 거하게 먹었냐고 나는 또 잔소리를 들었겠지....하는 생각에, 그렇다면 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고 회피했어야 했을거야...라는 생각을 한거다. 



"아침 뭐 먹었어?"

"대답하고 싶지 않아."



이런 거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던 거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대답하고 싶지 않아, 우리... 다른 얘기할까? 급 화제전환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이래저래 딥빡 개빡의 날이었다. 그래서 남동생과 술을 마셨는데, 맛있는 술과 안주를 두고도 내 기분은 딱히 나아지질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책이, 좋아서, 문장에, 내 마음이 조금 풀어지더라. 


















나의 국내 페이버릿 이승우 작가의 책인데, 전작들에 비해 내용이 다소 가벼운 느낌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 문장만큼은 여전했는데, 내가 오늘 지하철안에서 읽고 마음이 진정된 건 이런 부분이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만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겨냥한다. 더욱 겨냥한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말을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은 듣기만 하는 사람이지만 하는 사람은 하면서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있지만 하는 사람, 하면서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질문해 보자, 단지 그 말을 했기 때문일까. 말의 힘, 즉 주술일 뿐일까. 그것뿐일까. 주술사는 누구, 혹은 무엇을 향해 주술을 건다. 주술에 힘이 있다는 것은, 주술사가 겨냥한 그 누구, 혹은 무엇에 주술사가 의도한 어떤 현상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주술사가 건 주술이 누구이거나 무엇이 아니라 주술사 자신에게 나타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경우에는, 이 주술이 말하는 사람의 외부, 그러니까 누구이거나 무엇을 향하지 않고 자기를 향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것이 주술의 내용이다. 자기 자신에게 주술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말하는 나와 듣는 너가 동일인이므로 이 말을 할 대 그는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는 사람이다. 주술이 이 사람을 피할 리 없다. (p.131-132)




사랑한다고 입밖으로 꺼내놓고 더 그 사랑의 감정이 진해져 당혹스러웠던 경험은 내게도 있다. 일단 입밖으로 나온 감정은, 그 감정에 무게가 더해진다고 해야하나. 사랑이 '더한' 사랑이 되어버리는 거다. 오늘 가만히, 이승우의 문장이 출근길의 나를 위로해서 나 많이 먹게 만들었다. (응?)




강요당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러니까 모든 사랑의 고백은 강요된 것이지만, 거꾸로 사랑한다는 고백에 의해 사랑이 이끌려 나오는 일도 일어난다. 없는 사랑이 갑자기 생겨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흔하지는 않다.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내진다. 수면 아래 깊이 잠겨 있거나 뒷방 구석의 어둠에 단단히 숨어 있던 것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는 말을 어떤 소설가는 자기 소설집 작가의 말에 쓴 적이 있다. 그런 뜻이다. 그 작가가 그 짧은 글에서 염두에 둔 대상은 독자였지만, 이것이 작가와 독자 사이에만 적용되는 원리일 리 없다. 기본적으로 이 문장은 말의 주술에 대한 것으로 읽힌다. 말이 가진 힘에 대한 말. (p.129-130)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편지형식의 리뷰를 쓰고 싶다, 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말 내가 쓰게될지는 아직 나조차도 알 수가 없다.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어쩌다보니 전작해버린 시인 박연준의 새 시집이 나왔다. 그래서일지 내게는 좀 특별한 시인이란 느낌이 있다. 박준의 산문집도 새로 나왔다는데, 이 두권을 조용히 사는 순간, 마음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읽지도 못하고 잘 이해도 못하면서, 그런데도 왜, 이 시집을 읽으면 나 좀 괜찮아질거야, 하는 생각이 드는건지 통 모르겠다. 




내일 아침부터는 거하게 먹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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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6-16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책무더기 말이예요.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포함하고 있던 그 책무더기를, 벗어던진 원피스가 끌어안고 있었다니.. 이거이거 아침부터 넘 섹시한 거 아닙니까.
책무더기와 벗어던진 원피스라니....
넘 자극적이예요.
상상하게 되고... 몰라 몰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7-06-16 11:55   좋아요 1 | URL
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자극적이 될 수도 있는거군요? 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님 사랑해요. 사랑한다고 제가 말하는 순간, 저는 그 사랑에 더욱 빠지게 됩니다....

단발머리 2017-06-16 12:01   좋아요 0 | URL
너무나 섹시한 다락방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지요.
자꾸 자꾸 상상하는 내가 다락방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우리 사랑 forever! 💜

다락방 2017-06-16 12:08   좋아요 0 | URL
우리 사랑 forever! 💜

아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을 일 없는 요즘에 웃게 해주셔서 진짜 감사합니다. 역시 단발머리님을 사랑하길 잘했어요.

럽-
럽-

북깨비 2017-06-16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ㅎㅎㅎ 너무 재미나게 읽었어요. 본 적도 없는 다락방님 방 풍경이 눈앞에 쫘악 그려지면서. 저도 집안에서 책 꾸러미를 찾아 헤맨 적 있거든요. 애꿎은 남편한테 엇다 뒀냐 승질내고. ㅋㅋㅋㅋ 다락방님 덕분에 엔돌핀 상승하고 덤으로 이승우님의 사랑의 생애까지 챙겨갑니다. 뭔가 묘하게 설득력이 있으면서 막 읽고 싶은 충동이 들어요.

다락방 2017-06-16 15:25   좋아요 0 | URL
히히히히히 저만 그러는 게 아니군요. 다른 분들도 책 꾸러미 어디다 뒀나 헤매이고 그러는군요. 어쩐지 위안이 됩니다. ㅎㅎㅎ
나른한 오후인데 엔돌핀 상승한다니 참 좋구요, 이승우 님의 책까지 챙겨가신다니 아주 좋습니다. 우리 서로 돕고 삽시다. 책 꾸러미 찾을 수 없을 때마다 서로의 존재를 기억합시다. 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이런 끼어들기 너무 환영합니다!!)

비연 2017-06-1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 폐부를 찌르는 말이네요. ‘사랑‘을 잊고 살았더니.. 뭔뭔 얘기인가 싶고. 이승우님 책 읽어봐야겠어욧!

다락방 2017-06-16 15:50   좋아요 0 | URL
제가 기대한 내용보다는 가볍지만, 사랑이 가볍다는 것 자체도 저의 편견 혹은 착각일 것 같아요.
즐거이 읽고 있습니다. 이승우 책은 정말이지 문장을 곱씹어가며 읽는 재미가 있어요.
추천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는 말, 제가 붙들고 살아요.
 
남자란 무엇인가
안경환 지음 / 홍익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 그대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리고 다 읽고 책장을 덮은 후에도, '도대체 이 책을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내가 읽기에도 아무것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가 읽는다고 해서 뭔가 위로를 받는다거나 재미있다거나 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안경환은 누구보다 현실 혹은 현상 파악에 능하다. 과거에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의 남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알고 있고 또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과정에는 페미니스트들과 페미니즘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고. 페미니즘을 지양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라는 인정도 하고 있다. 만약 그 인정을 좀 더 설득조로 썼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없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현상 파악을 잘 하고 있으면서도 단지 현상 파악만을 책에 기술했기 때문에 이 책은 문제가 된다. 게다가 처음부터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아니, 주장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현상을 기술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나는 그 기술, 단순한 기록에 있다고 생각한다. 숱한 명사의 숱한 책 혹은 말에서 가져와 이 책을 구성하는 거다. 남자와 여자의 뇌과 다른데, 이렇게 달라, 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인용문 가져오고, 그래서 남자가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행동하는데, 하면서도 여기저기서 인용문을 들입다 갖다 박는다. 위에 언급한대로, 그것은 '문제적'이고 지독한 차별에서 지금처럼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활동가들의 운동 덕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그냥 다 출처를 밝힌 인용문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세대의 남자들은 기존의 남자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는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시선을 가진듯 보이고, 이 역시도 강하게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현상을 나열하는데 그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분노하는 문장들을 비롯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는 문장들까지도, 대체적으로 인용문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읽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없는' , '삶 혹은 일상에 영향을 1도 안미치는', 그야말로 '읽으나마나 한' 책이었을 거다. 정말 이 책을 왜 쓴걸까?



이 책은 지금 화제가 되었든 안되었든 내가 읽고싶어할 만한 책은 아닌데, 여당 의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발췌'하여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하고 또한 '맥락을 읽지 못하고 발췌만 가지고 판단한다'고 하길래, 정말 그런가 싶어 읽게 되었다. 어디, 맥락을 파악하면 그 모든 발췌문들이 다르게 느껴질까? 해서 시작한 거다. 그리고 다 읽으니 발췌독만 읽었을 때보다는 '덜'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맥락이 '분노하지 않을만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남자들이 가진 문제와 지금의 남자들이 가진 문제, 이 사이에 페미니스트들의 역할까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언급했듯이,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다'고 심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남자들의 문제'를 '남자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이, 지금 욕먹을 만큼 '차별주의자'는 아닌 것 같은데(오히려 문제 파악을 잘하고 있다), 왜이렇게 읽는 내내 찜찜할까를 고민했는데, 그가 적어낸 문장에서 나는 그 답을 찾았다.




여군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데는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의 비중이 커지는 영향 때문이기도 했다. 파견국 주민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여성 군인이 장점이 많다. 최소한 성매매나 성폭력과 같은 전형적인 남자문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전자책 p.237)



남자의 문제를 조목조목 다 짚어내면서, 그것을 '문화'로 보고 있는 거다. 성매매나 성폭력은 '범죄'다. 그것을 범죄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전형적인 남자문화'라고 받아들이다보니 현상 파악을 잘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문제시 될 수밖에 없다. 저런것을 남자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여자의 '아니오'가 아니오라는 것을 말하면서도, 아내와의 섹스는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면서도,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된다고 얘기하면서도, 우울증은 정신적 질환이므로 병원에서 치료 받아야 하지 숨길 게 아니라고 말을 하면서도, 거기에 별로 설득력이 실리질 않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잘 알고 있는데, 이걸 왜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하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에겐 어차피 남자들의 생래적 본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걸 인정하고 가기 때문에, 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힘이 실리질 않는다. 쉽게 말하면 '남자의 성욕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다'를 인정해버리고 있는 거다. 애초에 본인이 멀리 떨어진 제삼자의 입장에서 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본인의 주장은 거의 '없고' 인용문으로 현상만 나열한 글이 된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저자는 실생활에서 다른 남자들보다는 차별하지 않는 삶, 평등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남자의 성적 본능'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은 어느 한 쪽에 가까운 책이 되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그저 인용문 나열에 그친다. 



이 책에 인용된 책은 장르도 다양한데, 이렇게 책도 많이 읽고 평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남자조차도, '남성의 성욕 본능' 같은 거, '젊은 여자를 간절히 원하는 본능' 에 대해서 '남자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걸 인정해버리고 시작하다니, 이것은 그저 남자들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의 제목을 '중년 남자의 한계' 혹은 '한국 남자의 한계' 같은 걸로 쓰고 싶었는데, 자극적인 걸 지양하자는 나만의 신념에 따라 자제하도록 한다. 




이 책은 왜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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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6-1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한계인가 싶어요. 다른 부분에서는 진보(?)라고 여겨지는 남자(!)들이 유독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계를 보이네요.
사실 좀 실망이긴 합니다. 맥락을 이해한다고 해도 말이죠.

다락방 2017-06-15 16:00   좋아요 0 | URL
저는 책을 읽고나니 이분이 여성을 바라보는 인식이 잘못됐다기 보다는, 어쩌면 본인도 남성이기 때문인지 남성에게 굉장히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안타까운 시선으로 남자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저랑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레와 2017-06-1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를 못 하는걸까, 안 하는 걸까?

다락방 2017-06-15 16:00   좋아요 0 | URL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걸까... 이렇든 저렇든 안읽어도 되는 책임.

블랙겟타 2017-06-15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핫(?)한 책을 얼른 읽어보셨군요 다락방님,
나름 안 내정자는 보통의 남성들 중에선 진보적인 관점을 많이 가졌을꺼라 봐요.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이 책이 접근하는 방식부터가 에러네요. ˝ㅎㅎ 우리가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놈이잖아. 어쩌겠니?˝ 라는 투의 관점으로 대부분의 문제들을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채 생물학적인 본성으로 접근해버리면 남성들의 본능이나 인식을 스스로 바뀔때까지 여성들은 기다려야만 하나요? 이런식의 접근이 아무리 현실의 한계를 고려해서 썼을지라도 얼마든지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질수 있을 가능성이 있기때문에 잘못된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다락방 2017-06-15 16:03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블랙겟타님. 진보적인 관점을 갖고 있고 페미니즘에 대한 것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이 사회를 이만큼까지 끌어올린게 성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이라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더라고요. 지금의 젊은 남성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역시 가지고 있는데, 글 자체가 뭐랄까, 뭘 어쩌라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남자는 왜 젊은 여자를 안고 싶은 것도 본능이고 여자끼고 술마시는 것도 다 본능인걸까요... 본능은 대체 뭐란 말입니까!

블랙겟타 2017-06-16 14:0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언론사에서도 서평을 썼더라구요 ㅎㅎ
‘프레시안‘의 서평인데요 시간되시면 읽어보셔요 ㅎㅎ
https://goo.gl/X1Si3j

다락방 2017-06-16 14:15   좋아요 1 | URL
잘 읽었어요. 은하선에 대한 평가부분은 저도 ‘이게 왜 자기가 평가할 일인가‘ 하고 리뷰에 언급할까 하다 말았는데(밑줄 그어놨어요), 프레시안 서평에서도 언급하네요. 올려주신 리뷰의 뉘앙스는 제가 쓴 리뷰랑 같네요. 그렇지만 뭐랄까, 저보다 훨씬 잘썼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질투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블랙겟타님.
잘 읽었어요.
블랙겟타님, 제가 응원합니다. (뭘?)
아무쪼록 열심히 읽고 써주세요. 그리고 여기에도 자주 오셔야해요!!

안전가옥 2017-06-15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발췌한 글에서 나름 좋게 봐서 주문할라고 왔는데.... 리뷰보고 어떤책인지 딱 각이 나오네요... 제목의 선입견을 뛰어넘지 못했군요. 어쩐지 제목부터가 좀 껄쩍지근한 느낌이 있어서 들고 다니거나 책장에 꽂아두기 좀 그렇겠다 걱정했는데..
리뷰 잘 봤습니다.

다락방 2017-06-15 16:05   좋아요 0 | URL
분명히 남성의 성적인 본능만 가지고 책 전체를 채우지는 않아요. 리뷰에 쓴것처럼 오히려 세상을 보는 눈은 다른 남자들보다 더 낫다고 보여집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문제‘를 ‘문화‘로 이해해버리면, 발췌독 가지고 사람들이 분노하는 데에 대해서 딱히 변명할 순 없다고 보여져요.
이런 책은 왜 쓴건지..모르겠어요.

2017-06-15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06-15 16:06   좋아요 0 | URL
어휴, 정말 지치네요.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서는 착하게 살아서는 안되는가 봅니다.
착하다는 건 뭔지...

비공개 2017-06-15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자책으로 사서 읽다가 재미가 너무 없어서 때려치웠는데, 다락방님은 다 읽으셨군요. 남성들이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해온 범죄행위들이 어쩔수 없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해는 해주자 라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남성분. 아.. 답이 없네요. 핵심을 짚어주심에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7-06-16 08:39   좋아요 0 | URL
저도 전자책으로 사서 읽었어요.
이 책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더라고요. 다른 책들 짜집기한 책을 읽는 기분이랄까요.
누구를 위한 책인지, 왜 쓰게 된 책인지 모르겠어요. ㅠㅠ

자강 2017-06-1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제목과 내용이 매치가 안되는 책이었습니다

다락방 2017-06-16 08:39   좋아요 0 | URL
자강님도 읽어보셨군요.
맞아요. 그러고보니 남자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답은 그냥...본능적으로 성욕을 갖고 태어난 동물이다..밖에 안되는거네요. -_-

2017-06-15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7-06-1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찌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남성‘의 심정을 토로?하기 위해 쓴 게 아닐까요. 방향도 의미도 사람까지 다 빻았는데 저자와 출판사만 모르고 있었던 어떤 그러한 것

다락방 2017-06-16 11:15   좋아요 1 | URL
뭐 딱히 또 토로?한 것 같진 않고요. 뭔가 이 책은 그냥 이도저도아닌 책인 것 같아요. 단순한 짜집기의 나열... 뭐라 설명할 순 없고, 아치 말대로, ‘어떤 그러한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요. 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떤 그러한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맞다. 아치, 나 그 책 샀어요. 부엌 에세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rch 2017-06-16 22:00   좋아요 0 | URL
어떤 그러한 것. 진짜 다락방은 이런거 잘 찾아내

샀을 것 같았어요. 맘에 들길. ^^

책한엄마 2017-06-17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하네요.이 책 사고 말아서-ㅠㅠ사지 말걸..

다락방 2017-06-17 10:45   좋아요 1 | URL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안타깝네요 ㅠㅠㅠㅠㅠ
 
페미니스트 모먼트
권김현영 외 지음 / 그린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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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이 '무뇌아적 페미니미스트'에 대한 언급을 할때만 해도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내 자신을 정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서 페미니즘은 내 관심밖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습게도 단 한순간에, 뭔가 잘못됐다, 라는 걸 인식하자마자, '페미니즘을 공부하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잘못됐다는 인식은, 내 주변의 어떤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책 속 등장인물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과 남성들 때문이었는데, 왜 이렇게 여자들이 불공평한 삶을 살아냈지, 이거 왜이러는거지, 이거 너무 화나는데, 혹시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되면, 그러면 이 답답함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게 될까? 했던 거다. 그리고 그 책은, 몇 번 언급했지만, '최명희'의 《혼불》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김태훈의 칼럼 때문에 또 누군가는 장동민의 발언 때문에 분노했을텐데, 나는 혼불 속의 강모 때문에 이미 딥빡침이 왔던 거다. 아아, 독서는 이렇게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 모른다. 최명희는 그 글을 쓴 의도가 어찌했든간에, 나를 페미니즘으로 이끌어버린 것이여. 어쩌면 그것은 최명희가 의도한 바로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주말에는 한 남자사람이 내게 페미니즘에 대해 내 생각을 물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 남자사람이었고, 혼자 책을 읽다가 머릿속에 고민이 쌓이고, 그러다보니 내게 말을 걸게 된 것이었는데,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얘기하고 있고, 또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고 정리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 내게 의견을 묻는다는 것은 조금 긴장되고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명징한 답을 주기보다는, 그 답을 알았다기 보다는,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점 더 답에 근접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어떤 방향을 잡게 된다고 할까. 페미니즘에 대해 물을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고, 내가 그것을 잘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조심스러웠는데, 페미니스트가 어떤 정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스스로에게도 계속 얘기해야 겠다고, 그 대화 후에 생각했다. 확정된 답,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그 방향을 계속 보면서 그러나 수시로 '잘 가고 있나', '맞게 가고 있나'를 확인해야 겠다고 생각한 거다. 



여섯명의 공저자가 쓴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읽으면서, 이 사람들, 이렇게나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말하고 쓰고 있구나 싶어서 고마워졌다. 그리고 나 역시 궁극적으로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진짜 내가 그런거 싫어하지만, 또 잠깐동안, 대학교를 다시 들어가거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여성학을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안돼... 나 학교 다니고 숙제 하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야..... 괜히 등록금 날리지마. 이십년전에 대학 다닐 때 등록금 날린 거로 이미 내 생애 등록금은 다 날린 거야... 지금처럼만 해, 지금처럼만... 욕심내지 마....



지금처럼만 하자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 발전이 없는 것 같아서 초조하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어떠한 물음에도 답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고, 더 넓은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고, 더 확장된 사고를 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지는 거다.


아니야, 학교갈 생각하지마. 방통대 자퇴한 거 떠올려봐...




'되돌아갈 길은 없다'는 책의 표지에 적힌 문구는, 모두에게 그렇겠지만, 내게도 역시 그러하다. 나는 되돌아갈 길은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페미니즘의 세계로 들어와버린 이상, 나는 다시 예전의 내가 될 수가 없어. 그렇지만 멈춰 있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내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고 있지 못할까봐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지금처럼 하는 공부지만, 본격적인 공부랄 수도 없지만, 멈추지 말아야지,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이 여섯명의 공저자가, 이미 페미니스트로 책을 쓸 수도 있는 이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내가 페미니스트인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고 고민하는 게 너무 좋았다. 페미니스트는 고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도 과거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 알았다고 반성하고 후회하며,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은 어떤 것일까를 또 끊임없이 고민한다. 나도 내 자리에서 계속 나를 들여다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거운 다리를 들어올려야겠다. 그리고 그 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라면 친구들이, 연인이라면 연인이, 페미니즘을 향해 걷고 있는 길에 함께였으면 좋겠다.



2015년, '코르셋'을 벗어 던진 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만연한 여성혐오에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과거에 그랬듯이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들이 딴지 거는 방식이 과격하다고 진단 내리는 중이고 이들이 말하는 핵심(몰래카메라 근절, 성차별 금지, 성폭력 근절 등)을 버릇처럼 외면한다. 어떤 이들은 메갈리아를 '여자일베'라고 부르는 일('여자'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일)을 서슴지 않으면서 성에 따른 차별이 난무한 사회구조를 뭉개고 '상호혐오'로 퉁쳤다. 언론은 메갈리아를 남성혐오 집단으로 몰아가는 일에 톡톡히 기여 중이다. 이런 걸 보면 지금의 한국사회는 분노를 기각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나의 스무 살때보다 더 세련됐고 더 고약해졌다. '그 정도로 화가 나 있었구나. 그동안 여성혐오를 이렇게까지 방치했다니. 이제부터라도 같이 바꿔 보자'라는 정도의 공감과 이런 수준의 연대를 기대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메갈리안이 한국사회에 왜 등장했는지에 대해서 질문해 보고, 단 몇 분만이라도 이분법적 젠더 위계로 구획된 세계에 대해 숙고해 볼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는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람들은 여성들의 분노를 기각하고 '여성이 (감히)분노했다'는 것에 더 격하게 분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성들의 분노에 대한 1997년의 응답이 '어리둥절'이었다면, 2016년 한국사회는 분노한 여성에 대한 '응징'으로 답한다. 누가 너희에게 분노해도 된다고 허락했느냐며 버럭 하는 모양새다.

2015년 5월 메르스 갤러리의 문이 열린 후 여기저기 페미니즘에 눈뜬 이들이 메갈리아로 몰려들기 '시작'할 때, 그러니까 성차별적 사회를 알아 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메갈리아로 채 몰려들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은 메갈리아를 부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곳곳에 메갈리아를 비난하지 못해 안달난 이들이 즐비했다. '메갈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혐오에서 시작해서 혐오로 망할 것'이라는 진단 속에서, 사람들은 '분노해도 될지 말지'를 생각하고, 설사 분노하기로 결정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메갈리아로 몰려들지 말지를 두고 머뭇거렸다. 메갈리아가 일평생 미러링(만)을 할 건지, 성-비하(만)를 쏟아 내다 망할 건지, 어떻게든 결국 망할 건지, 아니면 움직이는 시도들 속에서 분화하고 논쟁하고 숙고하고 변화할 것인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메갈리아에 대한 사망선고는 생후 3개월을 넘기지 않고 일어났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었던 건지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모든 것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하고 이동하는 것일 텐데 사람들은 왜 메갈리아의 필멸(必滅)을 탄생 한 달 후부터 줄기차게 예측하고 있었던 걸까. 마치 메갈리아의 죽음을 선언하기 위해 처음부터 죽이기로 결정한 것처럼, 그렇게 세상은 작정한 듯 한통속으로 메갈리아를 궁지로 몰아갔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예측한 대로, 혹은 목표한 바대로 '메갈리아'는 그 이름을 잃어 가는 중이다. 우르르 몰려들어 함께 분노하고, 그 분노를 어떻게 조직화하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기도 전에 그 공간은 오명에, 오명에, 오명을 뒤집어썼다. 성폭력 생존자들의 네트워크이자, 언어를 갖지 못해 입 없이 살던 이들이 언어를 찾은 공간이고, 지지받지 못해 온 이들이 힘 받는 공간이면서, 먼저 코르셋 벗은 이들이 알려 주는 소소한 노하우로 키득거리던 공간은 이쯤에서 변태를 꿈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김홍미리, p.155-158)





'메갈리안이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라는 질문은 참 의미 없지만, 굳이 물어 오고 또 굳이 답해야 한다면, 그렇게 묻는 이의 의도에 맞추어 '물론 그러하다'라고 답해야겠다. 메갈리안은 특정되지 않는다. (메갈리안은 누구이고, 페미니스트는 누구란 말인가?) 메갈리아를 방문하거나 메갈리아에 관심 있는 모두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자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반대로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도 아니다. 때문에 그 질문은 메갈리안과 페미니스트 둘 다를 물화시킨다는 점에서 위험할 뿐 아니라 그 둘의 분할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더욱이 페미니스트는 인증을 통해 확인받는 자격증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젠더로 구획된 세상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고, 질문하기를 시작한 이상 삶의 장소로서 세상이 나를 향해 던져 오는 질문에는 끝이 없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는 '나는 페미니스트 맞나?'라는 질문 속에서 산다. 질문을 시작한 이상 누군가가 나를 페미니스트로 부르든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정하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페미니스트 '이다/아니다'라는 타인의 진단이 나를 규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김홍미리, p.164-165)

여성심리학자의 창시자인 카렌 호나이(1885-1952)는 성차별적 환경의 영향으로 남자들은 업적을 통해 성취를 이루려고 하는 반면, 여자들은 사랑을 통해 성취를 이루려 한다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대문에 여자들이 자신의 재능과 꿈을 밀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주변의 평가에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같은 시기 영미문학에서 대단한 명성을 누리던 헨리 제임스는 조르주 상드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상드의 재능이 천재적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여성에게 천재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의심스러운 것은 상드가 정말 여자인가 하는 사실이다."
당시 상드의 친한 친구였던 그는 자신이 상드에게 최고의 찬사를 바쳤다고 생각했지만 이 말은 여성의 천재성을 전혀 인정할 수 없어 하는 대표적인 문장으로 두고두고 비아냥거리가 되었다. 조지 엘리엇은 "나는 확실히 여자들이 어리석다는 걸 안다. 신이 여자를 (어리석은)남자에게 어울리게 만들었으니 당연하다" 라며, 여자들이 어리석은 존재라면 남자 또한 반드시 그러할 것이라며 여자를 폄하하는 남성비평가들을 비웃었다. (권김현영, p.23-24)

인도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의 표현대로 무지는 그 자체로 ‘특권‘이다. 누가 이 상황을 참아 내고 있는지 모를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특권을 가진 이들에게만 가능하다. 서 있는 위치를 바꾸어 보기면 하면 얼마든지 다른 질문이 만들어지고, 다른 질문은 다른 지식으로 우리를 안내하 간다. 때로는 질문이 문제가 아니라 대답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 여성철학자는 없지?‘라는 질문에 천재성은 남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던 헨리 제임스가 있었는가 하면, 미국의 급진주의 여성미술 단체 게릴라걸스와 여성철학자들은 이 질문을 추적하던 중 기존 미술사에서 대가로 칭송받은 남성 예술가들이 자신의 딸과 애인의 작품을 가로챘다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권김현영, p.39)

이 글의 모든 참고문헌은 여자들의 말과 글로 이루어졌다. 분리주의나 자매애 때문이 아니다. 내게 필요했던 대부분의 지식은 여자들이 만들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었다. (권김현영, p.44)

여하튼, 덕분에 여성학과에 진학하고 언니네트워크 활동을 병행했던 약 5년여 동안 아버지와 남동생을 제외하고는 인생에 남자가 주요 인물로 전혀 등장하지 않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성들만으로도 충분했고, 완전했다. (전희경, p.201)

(대담중에서)
권김: 그러면 덧붙여서 잠깐, 미디어 비평을 하시기도 하니까, 김태훈 같은 칼럼니스트가 ‘무뇌아적 페미니즘‘에 관해 쓴 칼럼에 대한 코멘트를 들어보고 싶기도 한데요. (웃음) (p.238)

손: 사실 그 칼럼의 의미는 2015년까지의 한국의 페미니즘 지형이랄까, 아니면 문화적 지형이랄까, 여혐 지형도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징후적 칼럼이었다는 점에 있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페미니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무 말이나 해도 괜찮은 사회. 그게 한국사회이자, 한국 사회의 페미니스트 혐오였던 거고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들이 중첩되면서 염증을 느끼고 있던 여성들이 드디어 ‘악!‘하고 소리를 지르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것 같아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글을 써도 남자들은 부끄럼 없이 지면을 쓰는구나. 그러니까 우리도 부끄러워하지 말자‘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우리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글은 안쓰잖아요. (웃음) 그리고 그때부터 더 적극적으로 ‘지면은 기회가 오면 무조건 잡아서 누그든지 내가 동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나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런 식으로 활개를 치게 놔두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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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2017-06-1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만 알려드리면 여성의 의무군복무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면 됩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 분 가운데 여성의 군복무, 최소한 공익근무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분은 한 분도 없는게 페미니즘 발전의 가장 큰 장벽이예요.

다락방 2017-06-15 10:17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을 1도 모르는 댓글이네요.
공부좀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최소한 제가 페미니즘 관련 책 리뷰 쓴 것만 읽었어도 이렇게 댓글 쓰진 못할텐데요.
실망입니다.

제이슨 2017-06-15 17:5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여기에 대해서는 대부분 페미니스트들이 거의 같은 반응을 하는것 같아요
컨텐츠에 대해서는 함구...

다락방 2017-06-15 18:19   좋아요 1 | URL
여성들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헌법소원 제기한 게 여성이라는 사실은 알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페미니스트들을 다 만나보셨어요?
페미니즘 책 조금만 읽어도 군대에 대해 얘기하는 페미니스트들 좌르륵 나오거든요?
그리고 어디 페미니스트한테 페미니즘 인정받는 방법 얘기를 해요... 지금 뭘 잘못한건지 감이 전혀 안잡히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맨스플레인 하고 계십니다 지금.

2017-06-15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모닝 말레이시아
조경화 글, 마커스 페들 글 사진 / 꿈의열쇠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대한 리뷰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평이 나쁜데, 아마도 '나쁠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봐서인지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저자가 똑똑하고(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했던 것 같다), 많이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더 열심히 글쓰기를 한다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실망스런 부분은 사진 부분이었는데, 한국인 아내가 글을 쓰고 캐나다인 남편이 사진에 취미를 붙여 사진을 찍었다고 했는데, 사진이 안좋더라. 뭐 각자의 취향이니, 자기가 좋은대로 찍고 싶은대로 찍었겠지만, 여행기는 대체적으로 사진이 큰 영향을 미치는 바, 내게는 맞지 않는 취향의 사진들이었다. 나는 역시 베트남 쌀국수 여행 책이 여태 읽은 여행 책 중에 최고로 좋았어.....



어떤 호텔에서는 '두리안'이 반입금지인데, 가격이 비싸고 날카로운 돌기가 나있고, 냄새는 화장실 변냄새와 같은데 맛에 대해서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 두리안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렇게 끝맺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개성 있는 사람은 속된 말로 튄다. 눈에 띄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과 결코 다 잘 어울릴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결코 다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 우리 풍토에선 이런 유의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개성을 우스갯소리로 '개 같은 성질'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가 요구하는 인간형은 창의적인 인간 즉 개성이 뚜렷한 사람이다. 두리안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반입금지'와 같은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가장 필요한 것 같다. (p.156)




읭?

여기 뭔가 이상해.. 뭔가, 억지스럽달까... 이 부분 읽으면서 읭???? 했더랬다.




안좋은 리뷰를 보고난 후에 선택해 읽은 책이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말레이시아 여행을 결정하는데, 한 방이 더 필요해!! 하고 있다가, 그 한 방이 되어주기에는 충분했다. 맛있는 먹거리가 많다고 한다................ -0-





영국의 한 대학에서 조사한 바로는 인간이 습관을 만드는 데는 ‘66일‘ 정도가 걸린단다. 이게 습관이 되면 오히려 안 하면 찝찝해진다. 습관은 사람의 성격을 만들고 성격은 인생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난 내가 나를 위해 직접 정해봐야겠다. 하루에 다섯 번, 아니 한 번만이라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것으로 뭐가 좋을까?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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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6-13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레이시아 가세요? ... 쿠알라룸푸르.. 좋은데 말이죠. ㅎㅎㅎ

다락방 2017-06-13 09:28   좋아요 0 | URL
네, 쿠알라룸푸르에 먹방 ... 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마땅히 마음에 드는 말레이시아 여행기가 없네요... (시무룩)

비연 2017-06-13 12:25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때 갈 때 마땅한 여행기가 없어서 그냥 여행책자 들고 갔던 기억이...;;;;;
아 그래도 다시 가고 싶네요. 쿠알라룸푸르 먹방여행이라닛! 으. 놀고 싶어요.

다락방 2017-06-13 16:02   좋아요 0 | URL
저도 여행책자 들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사진 않았는데, 여행책자 들고가는 건 싫은데 ㅠ 그것 말고는 답이 없을 듯. 베트남은 국수책 들고 가면 진짜 끝내줬는데요!

비공개 2017-06-13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이 말레이시아에 살던 2013년에 3주간 가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갈데가 쇼핑몰밖에 없더라구요.. 쇼핑몰에서 유모차에 꽂아둔 아이폰을 잃어버렸던 기억만 ㅠ 말레이시아 먹방은 몰까 궁금합니다. 다녀오셔서 후기 남겨주세요^^

다락방 2017-06-13 16:03   좋아요 1 | URL
ㅎㅎ 거기 꼬치도 있고 면도 있고 그래서, 제가 며칠 안있겠지만, 가서 죄다 먹어보고 오겠습니다! ㅎㅎ
지금 당장 갈 건 아니고요, 여름에 갈 거예요. 휴가때요. 후훗.
아이폰 조심해야 하는군요.
호치민 갔을 때 안그래도 길에서 어떤 아저씨가 제 손에 든 아이폰을 보고는 가방에 넣으라고 충고해주시더라고요. ㅠㅠ
 

















만약 내가 이 책,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흑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끔찍해서 가족과 연을 저버리며 백인인척 해야 하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 베트남전에 참전하고난 후 아시아인만 보면 쏴죽이고 싶었던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흑인과 참전이라는 건 내게 막연한 것이었고 어떤 구체적인 것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내가 이 책 하나 더 읽었다고 해서 그전보다 깊게 그들을 이해했다고 보는 건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아, 이정도인건가, 하는 충격을 받은건 사실이다. 특히 참전후에 후유증에 시달리며, 아시안 음식점에 가서 음료 주문하나 조차도 힘겨워하는 사람을 보는 건, 대단히 힘든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 힘들었다면, 피부색 옅은 흑인이 자신의 엄마에게 '나는 이제 가족과 연을 끊고 백인으로 살아가겠소' 하는 것도 너무 놀라운 장면이었고. 그 장면들, 그 고민들마다 필립 로스는 아주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필립 로스는 대단한 작가구나, 필립 로스가 아니면 대체 이런 책을 어떻게 쓴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나는 진짜로 했다. 읽으면서 나는 이렇게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진짜 너무 좋아, 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진짜다. 정말 그랬단 말이다.



그러나 1권의 끝부터, 페미니스트 교수에 대한 언급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 

인종차별로 노(老)교수를 고발한 페미니스트 여자교수가, 실은 그의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그게 안되어 분해서(!)그런 것처럼 그린 것부터, 어???????????????????????????????????? 이렇게 되었는데, 그래, 똑똑한 페미니스트 여자가, 자신이 사랑받고 싶었던 남성에게 사랑받지 못하니, 분명 속상하고 화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 말을 하려는 것인가, 하고, 나는 특유의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되살아나, 그렇게 애써 모른척하며 1권을 덮었던 거다.

그런데 2권에서부터는 도무지 모른척 할 수가 없었다. 2권에 이르면, 이 프랑스에서 온 페미니스트 여자교수를, 미국의 페미니스트 여자교수들이 싫어한다는 거다. 왜냐고? 인기가 많고 명품을 쓰는 사람이라서!!



읭???



필립 로스에게 페미니스트는...뭐지? 필립 로스가 그려내는 페미니스트는, 예쁘고 돈 많고 남자에게 인기 많은 여자를 질투하는, 그런 사람인가? 그러니까 내 개인의 성취는 별로 없어서, 그래서 여권신장을 부르짖는 사람이란 말인가? 페미니스트는 값비싼 물건을 써서는 안되는 사람인거야?




그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건 신중하지 못할테지만, 미국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그 여자들이 그녀보다 훨씬 페미니스트답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신중하지 못한 이유는 그 여자들이 이미 충분히 그녀를 멸시하고 있고,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아는 것처럼 보이며, 언제나 그녀의 동기와 목적에 의혹의 시선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력적이고 젊고 날씬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맵시가 나며, 단시간에 높은 자리까지 승진하면서 대학 외부에까지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해기 때문에, 파리에 있는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아테네 여교수들이 쓰는 진부한 말들(기저귀족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거세되고 싶어하며 사용하는 그 진부한 말들)을 사용하지 않고, 사용할 필요도 없다. (2권, p.113)



그러니까, 이 프랑스에서 온 젊은 여자교수 '델핀'이 페미니스트 답지 못한 건, 그녀가 젊고, 날씬하고, 매력적이고, 맵시가 나고, 유명하기 때문...인거야? 




사실, 그녀는 아테나 대학의 페미니스트들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인습에서 자유로운 여성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등졌고, 즉 프랑스를 대담하게 떠나왔고, 교수로서 열심히 일하고, 논문 발표도 열심히 하고, 성공하고 싶어한다. 기댈 데가 없는 만큼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집과 모국에서도 벗어나 완전히 혼자다. 타향살이. 자유롭기는 하나 대개는 몹시 쓸쓸한 타향살이. 야심만만하다고? 공교롭게도 그녀가 철저히 독립적인 저 페미니스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보다도 야망이 큰 건 사실이다. (2권, p.114)




델핀은 자유롭고 페미니스트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야망이 크단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이 왜 그녀를 싫어하냐고?



여자들이 분개하는 이유는, 남자들이 그녀에게 끌리기 때문이고, 그런 남자들 가운데 아서 서스먼 같은 유명인사가 있기 때문이며, 그녀가 장난삼아 샤넬 빈티지 재킷에 스키니진을 입거나 여름에는 슬립드레스를 입고 캐시미어와 가죽 옷을 즐겨 입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여자들의 끔찍한 옷차림에 대해 절대 상관하지 않는데, 그들은 무슨 권리로 그녀의 옷차림을 두고 상습범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걸까? 그 여자들이 자신에 대해 불쾌하하며 무슨 소리를 하고 다니는지 그녀는 다 안다. 그 여자들은 그녀가 마지못해 존중해주는 남자 교수들과 똑같은 소리-그녀가 협잡꾼이며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르겠다고-를 하는데 그것이 더 큰 상처를 준다. "그 여자는 학생들한테 사기 치는 거야." 그들은 말한다. "학생들은 어째서 그 여자의 본 모습을 못보는 걸까?" 그들은 말한다. "학생들한테는 그 여자가 여자 옷만 걸친 프랑스 남성우월주의자라는 게 안 보이나?" 그들은 그녀가 학과장이 된 건 더 좋은 수가 없어서였다고 말한다. (2권, p.114)



필립 로스에게는 철저히, '여자의 적은 여자'인가보다. 그러나 여자의 적은 여자이기도 하고 남자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 상황에 따라 적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내가 오늘 너랑 적이어도 내일은 친구가 될 수 있고, 내가 오늘 너랑 연대해도 내일은 너랑 반대 입장으로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 직장 내에서도 나는 남자들과 경쟁하기도 해야 하고 그건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여자사람인 내 입장에서의 적은 여자가 될 수도 있고 남자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때로 어떤 여자들을 미워하지만 대부분 많은 여자들에 대해서 좋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내 입장에서 친구는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어떤 남자들을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또 어떤 남자들과는 친하게 지내고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며 애정을 갖기도 한다. 페미니스트는 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 역시 그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옷을 아무렇게나 입을 수 있고 비싼 옷을 입을 수도 있다. 세련되게 입을 수도 있고, 옷 따위 그저 걸치는 것일 뿐, 이라며 심드렁할 수도 있다. 필립 로스가 그려내는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프랑스의 페미니스트가 좋은 옷을 입고 학생들과 잘 지낸다고 싫어한다. 그래서 분개한다. 만약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이 프랑스의 페미니스트에게 분개했다면, 그 이유가 정말로, 단지, 남자들이 그녀에게 끌리기 때문이란 말인가? 많은 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건가? 글쎄다. 여자인 내가, 페미니스트인 내가 그렇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데, 여자도 아니고 페미니스트도 아닌 늙은 남자가 참 잘도 아네? 아마도 그런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그 숱한 대한민국의 지식인 남자들처럼 '야, 문제는 여성비하만이 아니야, 더 크게 봐' 라는 말 같은 거 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이 책에서 이 프랑스에서 온 '델핀'이, 모두의 미움을 받으면서 어떤 꿋꿋한 삶을 살아가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녀는 외롭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인기 많고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녀에겐 여자사람 친구가 없고 남자연인도 없다. 그녀는 섹스는 물론이거니와 자신과 지적인 대화까지 함께 할 사람을 원하는데, 그런 남자가 진짜 없다. 자신과 지적인 교류를 할 남자가 없어. 결국 그녀는 남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게 되는데, 자신이 어떤 남자를 원하는지 써놓고 보니, 그게 자신이 고발한 그 인종차별 교수인거다. 자신을 사랑해주길 원했지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그 교수. 아아, 사실 나는 그 사람을 원해, 그 사실이 끔찍하지만, 그 사람이어야 해,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선택하지 않았어, 그를 망하게 할거야, 이러면서 그녀 스스로 몰락을 향해 걸어간다.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형, 남성적인 매력에 지적인 대화까지 할 수 있는 걸 갖춘 남자가, 그 늙은 교수밖에 없어... 그런데 그 교수는 이 대학의 여자청소부-나는 교수인데 그녀는 청소부야!!-와 연인관계다. 게다가 그 청소부는 문맹인데!!!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고,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흠이 없는 게 아니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건 내 삶의 축을 이루는 모토가 될 순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남들로부터 받게 되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옳다고 하는 바를 실천하려 하고 행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그러면 그때마다 비난과 욕을 먹게 될 것이고. 그렇지만 필립 로스가 그려내는 델핀과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하찮게 느껴진다. 니네 그렇게 성평등 주장하곤 하지만 사실은 남자한테 사랑받지 못해서 부들부들하지, 라는 느낌이 자꾸 드는 거다. 게다가 페미니스트들이 현상을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아주 아프고 잔인하게 얘기하는데, 그건 대학 청소부-문맹이며 젊은 여자-와 이 대학의 학장까지 지낸 늙은 남자교수가 연인이라는 걸 드러내면서, '외부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이건 남자가 권력으로 여자를 누른것처럼 보이겠지만, 이 여자는 이 관계를 정말 좋아했다니까?' 를 아주 강하게 주장하는 거다. 어떻게? 그들의 관계를 알지도 못하는 채로 비난하는 한 게시물에 의해서.



열네 살에 가출해 정규교육은 고등학교 2학년까지가 전부이며, 그 이후 짧은 생애 내내 기능적 문맹으로 살았던 이 여성의 곤경에 대해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그 누구보다 전제적인 학장으로 십육 년 동안 아테나에 재직하며 총장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둘렀던 은퇴한 대학교수의 농간에 맞서야 했던 이 여성을 상상해보십시오. 그의 강력한 힘 앞에서 그녀가 얼마나 저항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에게 굴복한 상황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악한 남성적 힘에 노예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힘든 노동에 시달린 자신의 육체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의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당하리라는 것을 그녀가 어떻게 가늠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2권, p.146-147)





물론, 남자와 여자가 어떤 입장이건 간에 그들 사이에 사랑과 친밀함이 싹틀 수 있다. 그러므로 필립 로스가 하고자 하는 말에는 일리가 있고, 그 지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어떤 것을 일단 비난하기에 앞서, 그 안에 있는 사정 혹은 사연에 대해 우리가 모른다는 것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분명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겉보기에 그런것 같은 일이라면, 우리는 '이들이 사랑했을것이다'를 먼저 전제하기 보다는 '이 여자는 폭력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를 당연히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게다가 그 여자가 어릴 때부터 계부에 의한 성폭력에 시달렸었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렸었는데, 자신이 잡역부로 일하는 학교의 총장까지 지냈던 늙은 남자와 함께 있었다고 했을 때, 폭력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생각은 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물론 우리가 무조건 비난하기에 앞서,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사연에 대해 생각해봐야겠지만, 그렇지만, 이런 사회와 현상을 만든건 혹시 모를 그 폭력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폭력을 저질러온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앞으로도 필립 로스의 작품을 읽고 싶다. 그가 얘기하는 것들에는 귀기울일만한 것들이 많으니까. 이번 책도 나는 여러가지로 좋았다. 그런데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에 대한 시선만큼은 그저 흔한, 지식인인 '체'하는 그저 그런 남자들의 것과 다르지 않아 당황했고, 게다가 책에서 이렇게 미묘하게 잘 비난해놔서, 찬란한 글빨로 무시하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이정도의 글을 쓰는 작가가, 이정도의 지명도가 있는 작가가 이런 시선을 갖고 있다니, 한숨이 나왔다. 게다가 이 휴먼 스테인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데. 니콜 키드먼 주연이라는데... 




새삼 스티븐 킹이 고맙네... 




그간 필립 로스의 작품을 읽어왔는데, 내가 그의 책 속에서 그가 여자들 혹은 페미니스트를 보는 시선에 대해 불편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진 않다. 그가 그런 시선을 보이지 않아서였는지, 혹은 그 책들을 읽을 때 나의 페미니즘 감수성이 무뎌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내가 또 필립 로스를 읽을 때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을 갖게 될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내가 읽을 그의 작품들에서 내가 무엇을 생각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휴먼 스테인에서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시선 만큼은 지워지지 않고 내내 그를 따라다닐 것 같다. 너무 속상한 게, 나는 필립 로스를 내치고 싶지 않았었다. 글 잘 쓰는 작가, 앞으로 계속 읽고 싶은 작가로 생각하고 있었던건데, 나는 이제 좋아하는 작가에 필립 로스를 말할 수가 없다. 그전에도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글 잘 쓰는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제 뭔가 관심 밖의 영역으로 밀려나버렸다고 해야할까. 그러보고면, '린디 웨스트'가 자신의 책 《Shrill》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떤 면에서 보면 페미니즘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아가는 기나긴 과정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는 너무나 명백하고 자명한 이치인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에게 작별을 고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걸 생각하니 너무 슬프다. 바보같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도, 아니야, 아닐 거야, 자꾸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뭔가 훌륭한 작가를 내친다는 게 스스로 잘 받아들여지질 않아서. 그런데 책을 다 읽고나서 잊으려 해도 자꾸만 곱씹어지고, 곱씹을수록 너무 괘씸한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속상하다. ㅠㅠ




필립 로스는, 주인공 콜먼의 여동생 입을 빌어 이런 얘길 한다.



아버지가 잘못한 것들은 왜 미워하지 말아야 하죠? 저세상 사람이 된 제 남편은 왜 미워하지 말아야 하죠? 제가 성자와 결혼한 건 분명 아니거든요. 아무리 남편을 사랑했어도 눈이 먼 건 아니에요. 게다가 제 아들은 어떻고요? 미워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은 녀석인데. 아주 미워하기 쉽게 늘 엇나가주니까요. 하지만 증오가 위험한 건 일단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예상보다 백배는 더 괴롭기 때문이에요.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도 없어요. 미워하는 마음보다 통제하기 힘든건 세상에 없는 것 같아요. 미움을 다스리는 것보다 차라리 술을 끊는게 훨씬 쉬워요. 그만큼 어려운 일이죠. (2권, p.199)



나는 미움이, 미움을 가진 자신을 괴롭게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어오면서 이 부분을 읽으니, 이 부분 역시 예사로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꾸하고 싶어진다. 


아니, 나는 미운 행위를 한 사람들을 계속 미워할거야. 미워하면서, 술 마실거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행위를 한 사람들에게만 한정하겠어. 난 그럴거야.





"찰스 드루 박사는," 그녀가 말했다. "혈액응고를 막는 법을 발견해 혈액을 저장할 수 있게 해준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가 교통사고로 다쳤을 때, 가장 가까운 병원에서 유색인 환자를 받지 않는 바람에 출혈과다로 사망했죠." (2권,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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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7-06-09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읽는 중이니깐 다락방 리뷰는 잠심 패스하고,
어제 잠들기전에 루(프랑스인 교수)교수의 실수를 읽었다오!!!!!!!!!!!!!!!!!!!!! 두둥!!!!!!!!

과연 그 뒤는 ........ 읽고 싶다.

다락방 2017-06-09 16:22   좋아요 0 | URL
응 그래요. 얼른 다 읽고 컴온!

clavis 2017-06-1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삼 스티븐 킹에게 고마웠다,에서 빵터졌음당♥

저는 몇 일전에 알라딘에게서 통보를 하나 받게 되었습니다

무려,락방님의 매니아가 되었다고 뙇아~!!♥♥ㅋ

다락방 2017-06-11 12:18   좋아요 1 | URL
아니, 매니아라니요! 아아,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거침없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것의 매니아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아, 좋군요! 히히히히히

clavis 2017-06-1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 두 가지에서 마니아인데요,바흐의 187번째.그리고 ㅇㅇ경님의 18번째 마니아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