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외출도서!!

이 무거운 걸 들고 나는, 한다, 외출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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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1-12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다락방님이 이래서 좋아요~ ^^

다락방 2019-01-14 09: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비연님. 으하하하

단발머리 2019-01-1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사람이 한결같아서, 그래서 좋아요^^

다락방 2019-01-14 09:34   좋아요 0 | URL
저야 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이게 제 팔자려니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1-12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목 부러지시겠다 그래도 열정이 뽐뿌!!!

다락방 2019-01-14 09:34   좋아요 1 | URL
너무 무거워서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걸까 계속 후회했어요. 하핫
 
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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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사랑하는 한 사람을 존중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건 가능할까?

네 가족 공동체에서 여자들은, 다른 남자들의 무신경함을 자연스레 캐치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이렇게 행동하는 남자라면, 자기 아내와 아이들에게 어떤 남자였을지 뻔하달까. 이해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이, 왜 그럴까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질문 없이, '남자는 원래 그러니까 니가 말을 해줘' 라고 해버리는 뻔뻔함.


게다가 신경줄 팽팽하게 만들어버리는 성희롱은 어떻고.

여자로 살면서 누구나 한번 이상씩은 그런 경험들이 있을텐데, '아 여기서 내가 말하면 분위기만 싸해질텐데', '내가 예민한건가', '이정도는 그냥 넘겨야되겠지', '웃지 않으면 까탈스럽다고 하겠지', '나만 이상해지겠지' 같은 것들. 나의 애인이나 남편에게 말하면 오히려 '넌 왜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난리야'를 들을만한 것들.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것들. 나는 카풀하는 차 안에서 여자가 당하는 그 성희롱들에 신경줄이 끊어져버리는 줄 알았다. 하아-




오래전 읽은《위저드 베이커리》의 구병모는 욕심 많은, 의욕이 앞선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차마 수습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욕심이 앞서 한꺼번에 다 넣어버린 것 같았달까. 그러나 《네 이웃의 식탁》의 구병모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할 말을 해내고 있다. 게다가 팽팽한 신경줄에 대한 묘사는 특히 좋아서, 그렇기에 읽는 동안 힘들었다. 내가 같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새삼 여자들의 이야기는 여자들이 해내는 게 가장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나 여자 이야기를 잘하는 작가들이 있으니 남자 작가들은 섣불리 아무말 하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이를테면 젖가슴 같은 자두라든가 말이다. 젖가슴 같은 자두 먹는 얘기 안해도 이야기는 아주, 잘 진행될 수 있고, 팽팽한 신경줄 역시 잘 표현될 수 있다. 그거 없이 글 못쓰겠으면 글 그만 쓰는 걸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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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9-01-11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읽은 구병모의 소설이 제겐 좀 과해서 그뒤론 안읽게 되던데 좀 다른 느낌인가 보네요^^

다락방 2019-01-11 10:44   좋아요 1 | URL
저도 구병모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그 과하다는 느낌, 지나치다는 느낌 때문에 안읽게 되었었거든요. 그런데 네 이웃의 식탁은 한결 정리된 느낌이에요. 그리고 할 말을 하고 있고요. 작가는 시간을 보내며 더 다듬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게혜윰 2019-01-11 10:50   좋아요 0 | URL
전 한번 아니다싶으면 선택안하게 되던데 어떻게 읽을 생각을 하셨을까 그게 궁금하기도 해요^^

다락방 2019-01-11 11:16   좋아요 1 | URL
저도 제가 왜 읽을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ㅎㅎ

그렇게혜윰 2019-01-11 21:50   좋아요 0 | URL
그냥 땡김 ㅋㅋㅋ

건조기후 2019-01-11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두 문장에 좋아요 백개 날렸어요💕 보이시죠? ㅎㅎㅎ

다락방 2019-01-11 17:41   좋아요 0 | URL
네, 아주 잘 보입니다! ㅎㅎㅎ
어떻게,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잘 읽고 계십니까? 네?
 
그 어리석은 사랑에서 빠져나와.


















언젠가 얘기한 적 있지만, 자신이 기다리던 애인이 죽은 걸 알고 여자가 슬퍼하는 영화를 보면서, 아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잖아, 라면서 한참 이별의 슬픔에 허우적대다가 스스로를 위로했던 거다. 나를 만나지 않는동안, 나와 헤어져 있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다른 누구를 사랑하고, 데이트하고, 만나고, 웃고, 함께 잘지 모르지만,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그래도 그가 어딘가에 살아있기만 하다면, 내가 언젠가는 어떻게든 그를 보게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나는 내가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그저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인간들도 다 나랑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슷할 거라고. 이별의 아픔은 때로 극복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때로는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한들, 내가 이루지 못한 사랑, 내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대가, 차라리 죽어버리길 바라는 마음 같은 걸 갖게 될 거란 걸 나는 상상해본 적 조차 없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물론 지금은 안다. 아주 많은 남성들이 자신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을 죽인다는 것을 안다. 거기에 대해 얼마나 많이 사회적으로 그 남자들을 이해하고 용납했는지까지도.


《레미제라블》과 《웃는 남자》를 너무 재미있게 잘, 감동하며 읽어냈던 나는,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이런 내용을 만날 줄을 몰랐다. 어렴풋이 이것이 비극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은, 이십대 초반에 읽었던 책 때문이었다. 그 때 당시에 내가 읽었던 파리의 노트르담은 한 권짜리였고 분량도 많지 않았다. 아마도 축약본이 아니었나 싶은데, 하도 오래 되어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고, 이미 나를 감동케한 두 소설을 내가 읽었으니, 새해 맞이 소설로 이만한 게 없을 거란 생각을 했던 거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해 첫 책은 위고의 책이다! 했던 거다. 하아-



얼마전에 본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여주인공들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니지마' 라고 말하고 수트를 입고 다니면서 '센' 역을 맡아 연기를 펼치는데, 그 두 주인공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학습된' 페미니즘 이었다. 영화는 재미도 없지만, 무엇보다 여성 캐릭터들에게 도무지 공감이 되지를 않는다. 친구가 사라져서 슬프다고 블로그를 통해 추리를 하고 소식을 전하면서, 그러나 그 친구가 죽고 나자 친구의 남편과 자고 친구의 커다란 집에서 사는 것에 흥분하고, 죽은 친구의 옷을 입어보고... 물론 커다란 집과 예쁜 옷들 다정한 남편을 부러워할 수도 있고 시기할 수도 있다. 그런 여자들이 없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캐릭터에는 어떤 내적 갈등도 없고 그렇다고 욕망이 드글거리는 것도 아닌, '이럴 것이다'라는 추측으로 그려낸 캐릭터가 있는 거다. 이 영화속 여자들은 달라! 라고 보여주려 했지만, 그러나 실제 그녀들이 보여준 건 납작했고, 영화를 보면 볼수록 '남자감독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검색해보니, 아니나다를까 남자 감독이었다.



나는 빅토르 위고가 이 책,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그려낸 여자들 역시 빅토르 위고가 머릿속에서 알고 있는 여자들을 그려냈다고 본다. 위대한 어머니, 흉측한 외모에 비난과 야유를 퍼부어대는 여자들, 그리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계속해서 속삭이는 십육세의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다운 여자... 결국 여자는 위험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크게 불러 저와 제어미를 죽음에 내던진다. 얼마나 화딱지가 났는지...


1권에서 어리석은 사랑이라며 내가 빠져나와야 한다고 했던 그것은,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아.


물론 죽음으로 내몬 남자가 그 하나뿐은 아니다. 아아. 위고는 이 책에서, 어쩌면 자신이 그것을 의도했는지 모르는채로,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를 다룬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가장 주된 요인이 바로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에 분노하는 한 남자이니까. 그는 연신 그녀에게 나를 받아줘, 나를 사랑해줘, 라고 하지만, 이미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에스메랄다가 그를 받아들일 이유가 무언가. 게다가 그는 그녀를 겁탈하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란 말이야? 싫다, 너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고 말하는 여자를, 그는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널 가질 수 없어' 라며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에서 여자들은 남자의 외모가 흉하다고 야유를 퍼붓지만, 남자들은 여자를 강간하고 죽였다. 위고의 의도였든 아니었든, 그러니까 위고가 자기가 머릿속으로 아는 여자, '이럴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그려낸 여자들을 소석 속에서 보여줬지만, 결국 소설속에서는 지금 현실과 마찬가지로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가질 수 없어'라고 여자를 죽여버리는 남자가 나오는 거다. 대체, 남자들에겐 어떤 결함이 있는걸까? 왜 거절에 살인으로 대응할까? 게다가 그것을 피해자인 여자에게 원인을 돌리는 것도 빅토르 위고가 그려낸 프랑스의 15세기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




컨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남자의 잘못은 아니잖소? 오! 세상에 이럴 수가! 아니 그래, 당신은 영원히 나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건가? 나를 언제까지나 미워하겠다는 건가! 그래 모든 것은 끝장났단 말인가! 바로 그런 까닭에 나 자신이 성미가 고약해지고 스스로 악독해진 거야. 당신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아! 내가 우리 두 사람의 저승의 경계에 서서 떨면서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당신은 아마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2권, p.432-433)




이 책의 작품 해설은 2005년에 정기수 가 쓴것인데, 위고가 이 소설을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를 읽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카지모도와 라 에스메랄다라는 두 인물이다. 그들은 이 소설 속에 살고 있는 중세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겠으나, 거기서 한 걸음 벗어나, 빅토르 위고가 주장하는 정신적 진리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즉 곱사등이고 애꾸눈이고 절름발이인 가련한 종지기, 군중의 조롱거리가 되는 불구자인 카지모도는, 그보다 더 아름답고 더 영리한 뭇사람들보다 더 고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젊은 집시 아가씨 라 에스메라다는 아름답고 순결하고 착한데도, 그녀의 순진함을 미워하고 약함을 이용하는 인간 악에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숙명적으로 운명이 서로 결합하게 되는, 이 감동적인 두 인간은 독자의 가슴을 연민의 정으로 가득 채우고, 이 소설의 로마네스크한 흥미를 한결 북돋워 준다. (작품해설, 정기수, p.496)



아니, 이것은 순진함을 미워하고 약함을 이용하는 인간 악에 희생되는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이다. 15세기에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하든 하지 못했든, 빅토르 위고가 그것을 알았든 몰랐든, 그런 일은 예로부터 이렇게나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에스메랄다를 보는 것은 짜증스러웠지만, 그러나 그녀가 그 어리석은 사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는 그 사랑이 실질적으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페뷔스를 더 많이, 더 자주 만나 관계를 맺었다면, 그녀는 페뷔스의 본질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그를 만난 시간은 짧았고 얼마 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그를 알기에 부족했다. 그녀가 본, 알고 있는 그는 '나를 구해준 남자'가 전부이니까. 그렇다한들 엄마와 자신이 위험에 놓인 상황에서도 그 남자가 자신을 봐주기를, 자신에게 와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너무 화가 나서 공감이 안돼. 일단 네가 살아야 한다, 네가 살아야 해, 네가 살아야 사랑이고 뭐고 할 거 아니야! 라고 내가 아무리 외쳐봤자 에스메랄다는 내 말을 들을 리 없고 위고는 이미 이야기를 완성해놓은 뒤다. 아, 나여... 진짜 내가 예전부터 아는 여자들 모두에게 미친듯이 반복하는 얘기가 있으니, 오, 여자들이여, 남자와의 사랑을 생애 유일한 기쁨이자 목표로 삼지 말아라, 기쁘게하는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되게 하라.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에스메랄다여, 우리가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당신을 만나 말해줬을 거예요. 당신을 살게 하는 이유가 절대 페뷔스 하나여서는 안된다고, 그것 말고도 지탱할 것들이 여러개 있어야 한다고, 나는 말해줬을 거예요.




마음에 드는 남자주인공 하나 안나오지만, 읽으면서 캐릭터에 대한 불만이 가득 쌓였지만, 흥미진진하게 책장이 빨리빨리 넘어갔다. 내 취향이지만, 공간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지루해서 어서 빨리 넘겨버리고 싶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 임금과 백성이 만나는 이야기 같은 것들은 위고 특유의 날카로움이 있다. 그래서 내가 레미제라블을 울며 읽었었고, 웃는 남자를 좋아했었지. 그러나 읽노라면, 레미제라블과 웃는 남자 같은 웅장함같은 게 좀 덜해서, 이것은 좀 더 젊은 시절에 쓴것일까, 그 위대함이 여기엔 좀 부족한데? 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 작가 연보를 보니 이 책은 위고의 29세 간행. 레미제라블은 60세 간행이더라. 오, 나이들어서 더 훌륭하고 더 멋진 작품을 써냈다니, 그야말로 한 개인으로서도 다행이며 독자로서도 다행이다. 인물들이 마음에 안들면 보통 이야기도 재미없기 마련인데,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현대에 재해석해서 영화로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여자라면 섹스하기에 급급해서, 여자랑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갈보집'에 데려갈 생각을 가장 먼저한다. 돈은 없으니 돈좀 빌려달라고 저들끼리 공공연하게 얘기해.



"장, 이봐, 장! 자네도 알다시피, 생 미셸 다리 끝에서 그 계집애와 만날 약속을 했는데, 그 다리의 갈보 팔루르델의 집으로밖에 그녀를 데리고 갈 수 없단 말이야. 방 값을 치러야만 해. 그 흰 콧수염 난 늙은 화냥년이 내게 외상을 주지 않을 거야. 장! 제발 부탁이야. 우리가 사제의 전대를 다 둘러 마셔버렸나? 이제 파리 주화 한 닢도 안 남았단 말야?" (2권, p.101)



페뷔스는 자신을 연모하는 에스메랄다와 만날 약속을 하고서는 그녀를 갈보집에 데려가려고 하고, '그 계집애' 라고 그녀를 칭한다. 이런 남자야, 에스메랄다. 나와, 나와, 나오라고... 그 사랑에서 나와.


페뷔스와 장의 대화를 보는데 문득 무서워졌다. 내 애인들 중 누군가도 자신의 친구에게 나를 만나러 가면서 '그 계집 만나러 간다'고 말했을까? '오늘 만나면 데리고 가서 자야지' 하고 낄낄거렸을까? 페뷔스는 중대장이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으며 잘생겼고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다. 그런 남자도 친구를 만나면 '계집을 만나러 간다'고 해. 남자들, 다들 저러고 사는거야?



단둘이 처음 밀폐된 공간에 있게 된 에스메랄다는 페뷔스를 만났다는 기쁨에 젖지만, 페뷔스는 자꾸 그녀를 벗기고 안으려 한다. 에스메랄다는 이에 저항하는데, 하아, 페뷔스는 아주 전형적이다.


페뷔스는 뒤로 물러나면서 쌀쌀한 어조로 말했다. "오! 아가씨!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겠군!" (p.123)



아, 이 말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나 역시 거부의 몸짓에 저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이러는 건 너를 사랑해서야, 사랑하면 원래 이러는거야' 라고. 안타깝게도 그는 나의 첫남자였는데, 그 당시에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나도 하고 싶다'가 아니라, '아 사랑하니까 하는거구나, 사랑하니까 해야 되는거구나' 였다. 나는 그를 사랑한걸까? 나는 분명 당시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에게 상대의 저 말은 얼마나 힘이 셌을까? 나는 혹여라도 그가 내 사랑을 의심할까 두려웠다. 내가 사랑한다는 것이 그렇게 증명되어지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증명하고 싶었다. 그 때의 나는 에스메랄다보다 나이가 많았는데도 그랬다. 에스메랄다는 고작 16세였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요!" 가련한 불행한 소녀는 이렇게 외치면서 동시에 자기 곁에 앉은 중대장에게 매달렸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요, 나의 페뷔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쁜 사람, 제 가슴을 이렇게 찢어놓기예요? 아! 자, 저를 가지세요, 다 가지세요! 저를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당신의 것이에요. 부적이 제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어머니가 제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당시이 제 어머니인걸요, 저는 당신을 사랑하니까! 페뷔스, 나의 사랑하는 페뷔스, 저를 보고 있나요? 이건 저예요, 저를 보세요, 이 계집애를 당신은 쫓아버리려 하지 않아요, 제 발로 걸어와서 당신을 찾고 있는 이 계집애를 말이에요. 제 마음도, 제 목숨도, 제 몸도, 제 육신도,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에요, 나의 중대장님. 그래요, 좋아요, 겨혼하지 마요, 당신이 싫다니까. 그리고 제가 뭔데요? 저는 한낱 보잘것없는 개골창의 게집, 그런데 당신은, 나의 페뷔스, 당신은 귀족인걸요. 참으로 가관이죠! 춤추는 계집애가 장교와 결혼하다니! 제가 돌았어요. 안 될 말, 페뷔스, 그건 안 될 말이에요. 저는 당신의 정부가 될 거예요, 당신이 원할 때는 당시느이 재미, 당신의 즐거움이 될 거예요. 저는 당신의 계집이 될 거예요, 저는 그렇게 되게 마련이에요. 더렵혀지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정조를 빼앗기고! 하지만 그럼 어때요! 사랑만 받는다면. 저느 ㄴ여자들 중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가장 즐거운 여자가 될 거예요." (p.123-124)



안돼, 에스메랄다, 안돼. 그거 아니야. 세컨드를 자처하지마.

당신도 그 누구도 세컨드가 되어서는 안돼요.

세컨드라도 되고 싶은  그 마음 나도 잘 알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지만 세컨드가 되면 결국 영혼이 황폐해져요. 우리는 그 누구도 세컨드가 되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안돼 에스메랄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고 또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에게 결혼을 요구할 수 있어요. 결국 그렇게 세컨드로 만족하지마요, 자신을 낮추지마. 우리는 그런 관계속에 들어가면 안돼.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옷을 벗지 않아도 돼. 그러지마요.



세컨드는 안되는거야. 세컨드를 두어서도 안되고 세컨드가 되어서도 안돼.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이제 그만 쓰고 밥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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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1-09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이 아무리 재미있다해도 다락방님의 이 글보다 못할 거예요! 휘몰아치게 단번에 알차게 재밌게 잘 읽었어요!
읽는 맛의 정수, 다락방님!
어서 밥 먹어요! 어서, 어서!!

다락방 2019-01-09 17:31   좋아요 0 | URL
페미사이드는 정말이지 알고 있었지만 그 역사가 꽤 오래됐어요. 위고가 그리고자 한 건 작품 해설가의 말처럼 악이 공격하는 약함 혹은 선함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형태는 나를 거절한 여자 죽이는 남자 였네요.

여러 부분에서 ‘왜그랬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재미있게 저도 잘 읽었어요. 에스메랄다가 엄마를 만나게 될지, 페뷔스랑 어떻게될지, 등장인물들의 다음 사건들이 궁금해 책장이 빨리 넘어갔어요. 그리고 결국 이런 글이 나왔네요. 하하하하.


점심은 맛있게 그리고 배불리 마라탕 먹었습니다. 꺅 >.<

심술 2019-01-0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뷔스와 장의 대화를 보는데 문득 무서워졌다. 내 애인들 중 누군가도 자신의 친구에게 나를 만나러 가면서 ‘그 계집 만나러 간다‘고 말했을까? ‘오늘 만나면 데리고 가서 자야지‘ 하고 낄낄거렸을까? 페뷔스는 중대장이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으며 잘생겼고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다. 그런 남자도 친구를 만나면 ‘계집을 만나러 간다‘고 해. 남자들, 다들 저러고 사는거야?

다는 아니고 십중칠팔은 저러고 사는 듯 하네요.
아주 주관적인 제 주위 남자들 관찰하고 얻은 결론이라 오차범위가 어느 만큼인지는 모르겠어요.
다행히 어느 마초가 절친에게 ‘애인 생겼다고 우린 잊었냐? 계집애 하나 때문에 우리 ?년 쌓은 우정 버릴 거야?‘고 시비걸자 그 절친이 마초에게 주먹질하는 것도 보기는 봤어요.

뒷이야기는 훈훈합니다.
마초는 제 언행을 반성하고 절친에게 사과했고
절친은 ‘그날 흥분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다시는 내 애인 나쁘게 말하지 마라.‘며 사과를 받아들여 다시 친하게 지내고
마초가 말한 ‘계집애 하나‘는 마초 절친의 아내이자 아들 하나의 엄마가 돼서 화목하게 살죠.

마초와 마초 절친은 둘 다 제 지인입니다.

다락방 2019-01-09 17:34   좋아요 0 | URL
남자들은 자신의 혹은 친구의 여자친구를 낮춰부름으로써 본인이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단순히 호칭문제뿐만이 아니라, 연인관계에서 데이트를 할 때도 관계형성을 그렇게 만들더라고요. 너는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못하고... 하면서 못하는 것들을 반복적으로 주입해 자연스레 자신의 잘남을 드러내려고 하는 거요. 그래봤자 자기가 잘나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심술님이 말씀해주신 마초처럼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반성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곳곳에서 너무 사소하게 빈번하게 여성혐오가 일어나서 말이지요. 그것이 잘못됐다는 걸 누군가 알려주고 또 스스로 깨닫고 하면서 반성하면,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러면 잘못인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지만... 요즘 보면 모두 반성하고 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일종의 판타지인 것 같아요.

심술 2019-01-09 19:57   좋아요 0 | URL
그래봤자 자기가 잘나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 100% 동감이예요.

독서괭 2019-01-0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돼, 그거 아니야!! 라고 함께 외치게 되네요 ㅜㅜ 왜 그랬니 에스메랄다.. 왜 그랬어요 29살의 위고...

다락방 2019-01-09 17:35   좋아요 0 | URL
스티븐 킹도 <it>을 썼을 때는 ‘이게 뭐야‘ 싶었었는데, 그 뒤에는 더 나은 작품을 썼더라고요. 위고 역시 그랬던 것 같아요. 어휴, 어찌나 에스메랄다 구해내고 싶은지... 어리석은 사랑으로부터도, 에스메랄다 잡으러 온 군인들로부터도 말예요. ㅠㅠ

302moon 2019-01-09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읽기 불편한 소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직 진행 중-이라기보다 안 읽고 팽개쳐놓은 지(;) 한참 됐네요.

다락방 2019-01-09 17:36   좋아요 0 | URL
중간중간 ‘왜 이런걸까‘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저는 그런 의문들과 불편함을 가지고도 재미있게 읽긴 했어요. 위고의 초기작이라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요. 레미제라블과 동시에 나온 게 이런 소설이라면 뭔가 ... 어휴.....

저는 이제 다음 작품을 고를 차례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 ‘이제 뭐 읽지?‘

후훗.
 
파리의 노트르담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4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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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를 다룬 소설인 걸, 이렇게 다시 읽기 전에는 미처 몰랐네.
이 소설 속에서 남자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자를 죽음으로 몰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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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1권을 읽으면서도 할 말이 많았지만 건너뛰고, 오늘 출근길부터 2권을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에스메랄다 때문에 정말이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일전에도 <stupid cupid>노래 올리면서, '누구나 한 번은 어리석은 사랑에 빠진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아주 오래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아아, 어리석은 사랑은 생애 꼭 한 번쯤 숙명인 것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에스메랄다는 집시를 싫어하는 부주교의 명에 따라 성당 종치기인 카지모도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 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시인, '그랭구아르'가 그녀를 구해주고자 하지만 한 대 맞고(두 대였나) 뻗어버리고, 중대장인 '페뷔스'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에스메랄다는 이 일로 페뷔스에 대한 연정을 품게 된다. 하아-


오래된 영화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게, 위기에 빠진 여자를 구해줌으로써 점수를 따는 남자였다. 나를 구해주는 남자 라는 건 확실히 매력적이다. 나에게 해를 가하려는 남자보다 나을 거야 뭐 두말하면 잔소리니까. 그러니 많은 동화속에서는 그렇게나 백마탄 왕자나 기사가 나타나 여자를 구해주는 걸 써낸거겠지. 그렇지만,


그 당시에 다른 남자의 겁탈로부터 구해줬다고 해서 이 남자는 정의로운 남자일까? 좋은 남자일까? 훌륭한 남자일까? 내가 사랑에 빠져도 좋을 사람인걸까?


페뷔스는 집시 에스메랄다를 구했지만, 구한 건 사실이지만, 구하는 과정에서 그녀를 '갈보'라 부른다. 겁탈하지 않았지만 여자를 갈보라 부르는 남자가, 좋은 남자일까?


게다가 그는 중대장으로서 이곳 저곳을 다니며 술과 여자를 즐기며 다녔다. 귀족 약혼자가 있지만 시들시들하고 입버릇을 비롯한 생활패턴이 천박해진 게 드러날까 노심초사 하는 남자다. 그래도 그 중대장이라는 신분과 잘생긴 외모 때문에 귀족 여자들은 그의 눈에 들고 싶어하고 그와 대화하고 싶어한다. 약혼녀를 비롯한 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 남자 하나를 두고 서로 긴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저 멀리, 에스메랄다가 춤추는 게 보였고, 여자들은 그에게 '일전에 니가 구해준 적이 있으니 그녀를 불러보라'고 말하고, 이에 페뷔스는 그녀를 불러 자기들앞으로 오게 한다.


막상 그들에게로 다가온 에스메랄다를 보자 여자들 모두 긴장하고 적의로 똘똘 뭉친다. 에스메랄다가 너무 예뻐서. 그래서 그녀를 다같이 적으로 삼고 멸시하려 든다. 나는, 위고가 이 책에서 이런 식으로 여자들을 묘사하는 게 불편했는데, 1권에서는 종치기이자 꼽추인 카지모도를 순전히 외모  때문에 저주하고 욕하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여자들이 더 그렇다고 말하면서. 나는 내내 궁금했다. 정말 흉측하게 생겼다는 그 이유만으로 여자들은 저주하고 욕하는가? 정말 그래?


위고가 그려내는 여자들은, 이제 신분이 다른 여자 하나를 불러놓고 단체로 모욕한다. 거기엔 중대장이 그녀들 앞에서 에스메랄다를 정말 예쁘다고 말한 게 컸다.


플뢰르드리스는 짐짓 상냥한 체하는 멸시 어린 태도로 중대장에게 대답했다. "제법 예쁘네요."

다른 아가씨들은 수군거리고 있었다. (p.23)



아가씨들은 그녀의 면전에서 그녀의 외모를 평가하고, 외모로는 그녀를 깔아뭉갤 수 없자 그녀가 입은 옷을 지적하고 그녀의 싸구려 귀금속들을 지적한다.



요컨대, 이 대갓집 규수들 앞에서 한낱 보잘것없는 광장의 무희 따위가 무엇이겠는가! 아가씨들은 그녀가 거기에 있는 데는 전혀 아랑곳도 하지 않는 것 같았으며, 그녀 앞에서, 그녀에 관해, 그녀 자신에게, 큰 소리로, 마치 무슨 꽤 불결하고 꽤 천하면서도 꽤 예쁜 것을 이야기하듯 지껄이고 있었다.

집시 여자가 그렇게 마늘로 찔러대는 것을 못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때로 수치심에서 오는 홍조와 분노의 섬광이 그녀의 눈이나 볼을 타오르게 하고, 경멸의 말이 그녀의 입술 위에서 주저하는 것 같았고, 독자가 이미 그 버릇을 알고 있다시피, 그녀는 멸시감으로 입을 삐쭉거리곤 하였으나,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까딱 않고 서서 그녀는 체념한 듯이 슬프고 부드러운 눈으로 페뷔스를 지긋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눈길에는 또한 행복감과 애정도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초겨날까 봐 두려워서 꾹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페뷔스로 말하자면 그는 웃고 있었고, 교만과 동정심 섞인 태도로 보헤미아 아가씨의 편을 들고 있었다.

"저들이 멋대로 지껄이게 내버려 두구려, 아가씨!" 그는 그의 금 박차를 짤랑짤랑 울리면서 되풀이했다. "물론 당신 옷차림이 좀 괴이하고 야성적일지도 몰라. 하지만 당신 같은 아리따운 처녀가 아무려면 어때?" (p.27-28)



아, 너무 무례한 사람들이다. 사람 면전에서 외모를 평가하고 지적하고..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그곳의 분위기는 그녀에게 얼마나 수치이고 억압일까. 그럼에도 애정을 품고 있는 페뷔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라니, 나는 에스메랄다에게 따끔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니야, 그 남자 아니야, 그 남자 어차피 그 안에서 같이 동조하고 있는 남자자잖아. 그 남자 형편없는 남자야, 그 남자를 사랑하지마.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이미 사랑에 빠진 그녀에게 내 말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stupid cupid> 라는 노래에 대해 글을 썼을 때는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보고난 후였다. 그 영화 속에서도, 기억은 잘 안나지만, 주인공이 어리석은 사랑에 빠졌었다. 그러다가 제자리를 찾았고.

나 역시 어리석은 사랑에 빠졌던 적이 있다. 크- 심지어 내가 어리석은 사랑에 빠졌을 때는,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주인공보다, 에스메랄다보다 더 나이도 많았다.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주인공은 십대 였고, 에스메랄다는 고작 스무살이야. 나는... 하아.


왜 어리석은 사랑에 빠지는가.

내가 사랑하게된 상대가 나쁜 남자인 걸 알지 못해서 그랬다. 나쁜 남자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그렇게 형편없는 남자일 줄은 몰랐지.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그런 남자일 리가 없어, 라는 생각으로 나는 사랑을 했다. 아예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을 때는 내가 잘못된 줄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쭉 갔다. 훗날 돌이켜 그것이 사랑이었나, 물어보면, 그것은 사랑인 줄 착각한 것이었던 거라는 답이 스스로 돌아왔다. 내 이 나쁜 사랑은 이미 내 운명 안에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다짜고짜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더랬다.


나쁜 사랑을 했었네.


그것이 내가 가진 내 평생의 비밀이다.



에스메랄다와 페뷔스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 페뷔스가 자신의 한심함을 깨닫고 좋은 남자가 되어 에스메랄다랑 사랑을 하게될까? 별로 그럴 것 같진 않다. 아마도 이 어리석은 사랑에 빠진 에스메랄다만 상처를 받고 다치겠지. 내가 페뷔스의 형편없음을 지적한다고 해서 에스메랄다가 내 말을 듣고 자신의 사랑을 그만둘까? 그도 역시 아닐 것이다. 에스메랄다는 지금 자신의, 자신만의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일단 혹독하게 그 사랑을 치러내겠지. 우리가 나쁜 남자를 굳이 겪어낼 필요는 없지만, 그런 과정들이 나쁜 남자를 앞으로 안만나게 걸러내주기는 하는 것 같다. 걸러내다보면 만날 남자가 없겠지만..


갈보란 단어를 욕으로 쓰는 남자 자체에 대해서도 나쁜 남자라 만나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페뷔스는 그걸 에스메랄다에게 했다. 에스메랄다는 그런 남자에게 '날 구해준 남자'라며 연정을 품고. 너무 가슴이 답답하다. 아니야, 그 남자 아니야, 그는 좋은 남자가 아니야, 그는 사랑에 빠질 가치가 없어, 그 어리석은 사랑에 빠지지마... 빠져나와..... 그러나 내 말은 에스메랄다의 귀에 닿지 않을 것이다.


에스메랄다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게 될까? 어리석은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현실로 돌아오게 될까? 빅토르 위고가 그렇게 그려냈을까? 빅토르 위고는 어쩐지 에스메랄다에게 그보다 더한 비극을 안겨줄것만 같다. 이미 자루 수녀로 그걸 암시한 바가 있어...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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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항상 당신이 먼저야, 항상.
    from 마지막 키스 2019-01-09 12:44 
    언젠가 얘기한 적 있지만, 자신이 기다리던 애인이 죽은 걸 알고 여자가 슬퍼하는 영화를 보면서, 아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잖아, 라면서 한참 이별의 슬픔에 허우적대다가 스스로를 위로했던 거다. 나를 만나지 않는동안, 나와 헤어져 있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다른 누구를 사랑하고, 데이트하고, 만나고, 웃고, 함께 잘지 모르지만, 그걸
 
 
transient-guest 2019-01-07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한번은 인생의 마가 낀 연애를 하게 마련인가봅니다 대략의 요체는 알고 있으나 아직 책을 제대로 읽지는 못했네요

다락방 2019-01-07 10:14   좋아요 1 | URL
오, 트랜님도 마가 낀 연애를 하신 적이 있단 말입니까?! ㅎㅎ

저는 이십대에 노틀담의 꼽추란 책으로 읽었었는데 그 책이 한 권에 두껍지 않았던 걸 보면 아마도 축약본이지 않았나 싶어요. 축약본이든 뭐든 내용이 전혀 생각이 나질 않네요. 고전은 성인이 되어 읽는 게 진리인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걸 보게 해주는 것 같거든요.

트랜님, 같이 읽어요! ㅎㅎ

transient-guest 2019-01-08 07:44   좋아요 0 | URL
책을 구하면 읽어보겠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질질 끌려가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제때 break하지 못한 나쁜 연애가 좀 있어요. 왜 만났는지 지금 생각해보 모르겠습니다.ㅎㅎ 어릴 때 읽은 건 아무래도 이것 저것 취사선택이 된 버전이었을 것이니 기회가 되면 제대로 읽어봐야겠습니다. 대략 중고생 때면 어느 정도 머리가 커지니까 그 정도에 읽어도 좋겠어요. 나이가 들면 음미하는 맛은 깊어지지만 독서에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ㅎㅎ

다락방 2019-01-08 09:12   좋아요 1 | URL
저는 치명적으로 나쁜 연애도 있었고, 안해도 좋았을 나쁜 연애도 있었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가 하지 말아야 할 게 무엇인지 알게 되더라고요. 덕분에 좋은 연애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아니, 트랜님이 독서에 시간이 많이 걸리신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일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엄청 많은 양의 책을 읽으시잖아요. 속독하시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어떻게 그 많은 책들을 읽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 저는 지금 매우 슬프게 읽고 있습니다. 2권의 절반쯤 읽었는데, 앞으로 슬플까봐 겁나요. ㅜㅜ

꼬마요정 2019-01-0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윽 위고 나빠요ㅠㅠ 다락방님 솔직히 나쁜 남자가 여자 때문에 착해지는 건 말이 안되죠ㅠㅠ 전 콰지모도가 선한 영혼이라는 것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얼른 다 읽으시고 리뷰 써 주세욤 ㅎㅎㅎ

다락방 2019-01-07 10:15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의 카지모도(기존에 읽은 책에서는 콰지모도 였는데 이 책에서는 카지모도 로 나오더라고요)는 결코 선한 영혼이 아닌데 말이지요. 나쁜 남자가 여자 때문에 착해지는 것도 말도 안되고, 세상엔 나쁜 남자가 너무 수두룩해요. 저도 얼른 읽고 싶은데 업무에 치어 살아요. 엉엉 ㅠㅠ

단발머리 2019-01-07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트르담 드 파리> 예매해놓고 이 책들을 샀더랬죠.
읽고 가리라, 내 읽고 홍콰지모도를 만나리라.
아직도 못 읽었는데 다락방님 리뷰 읽고 좀 화가 나네요. 나쁘다... 지은이... ㅠㅠ

다락방 2019-01-07 14:48   좋아요 0 | URL
에스메랄다에게 너무나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슬퍼요.
ㅠㅠ

저도 지킬 앤 하이드 예매해놓고 책 읽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책 읽는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끝까지 다 읽으면 또 글 쓰도록 할게요. 그냥.. 제 예상과 달리 해피엔드가 펼쳐졌으면 좋겠어요. ㅜㅜ

꼬마요정 2019-01-07 15:56   좋아요 1 | URL
전 배우 정보 없이 노담 봤는데, 나중에 보니 홍콰지더라구요 ㅎㅎㅎ
어쩐지 노래 너무 잘 한다 했어요 ㅎㅎㅎ

어쩌죠 다락방님....................................

다락방 2019-01-07 16:11   좋아요 0 | URL
노도 노틀담 드 파리 뮤지컬도 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이미 다 보셨군요! 전 검색 한 번 해봐야겠어요. ㅎㅎ

단발머리 2019-01-07 16:33   좋아요 0 | URL
어쩐지 노래 너무 잘 한다 했어요 ㅎㅎㅎ 에 맞아요!!! 한 사람.... 저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