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리석은 사랑에서 빠져나와.


















언젠가 얘기한 적 있지만, 자신이 기다리던 애인이 죽은 걸 알고 여자가 슬퍼하는 영화를 보면서, 아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잖아, 라면서 한참 이별의 슬픔에 허우적대다가 스스로를 위로했던 거다. 나를 만나지 않는동안, 나와 헤어져 있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다른 누구를 사랑하고, 데이트하고, 만나고, 웃고, 함께 잘지 모르지만,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그래도 그가 어딘가에 살아있기만 하다면, 내가 언젠가는 어떻게든 그를 보게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나는 내가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그저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인간들도 다 나랑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슷할 거라고. 이별의 아픔은 때로 극복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때로는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한들, 내가 이루지 못한 사랑, 내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대가, 차라리 죽어버리길 바라는 마음 같은 걸 갖게 될 거란 걸 나는 상상해본 적 조차 없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물론 지금은 안다. 아주 많은 남성들이 자신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을 죽인다는 것을 안다. 거기에 대해 얼마나 많이 사회적으로 그 남자들을 이해하고 용납했는지까지도.


《레미제라블》과 《웃는 남자》를 너무 재미있게 잘, 감동하며 읽어냈던 나는,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이런 내용을 만날 줄을 몰랐다. 어렴풋이 이것이 비극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은, 이십대 초반에 읽었던 책 때문이었다. 그 때 당시에 내가 읽었던 파리의 노트르담은 한 권짜리였고 분량도 많지 않았다. 아마도 축약본이 아니었나 싶은데, 하도 오래 되어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고, 이미 나를 감동케한 두 소설을 내가 읽었으니, 새해 맞이 소설로 이만한 게 없을 거란 생각을 했던 거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해 첫 책은 위고의 책이다! 했던 거다. 하아-



얼마전에 본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여주인공들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니지마' 라고 말하고 수트를 입고 다니면서 '센' 역을 맡아 연기를 펼치는데, 그 두 주인공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학습된' 페미니즘 이었다. 영화는 재미도 없지만, 무엇보다 여성 캐릭터들에게 도무지 공감이 되지를 않는다. 친구가 사라져서 슬프다고 블로그를 통해 추리를 하고 소식을 전하면서, 그러나 그 친구가 죽고 나자 친구의 남편과 자고 친구의 커다란 집에서 사는 것에 흥분하고, 죽은 친구의 옷을 입어보고... 물론 커다란 집과 예쁜 옷들 다정한 남편을 부러워할 수도 있고 시기할 수도 있다. 그런 여자들이 없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캐릭터에는 어떤 내적 갈등도 없고 그렇다고 욕망이 드글거리는 것도 아닌, '이럴 것이다'라는 추측으로 그려낸 캐릭터가 있는 거다. 이 영화속 여자들은 달라! 라고 보여주려 했지만, 그러나 실제 그녀들이 보여준 건 납작했고, 영화를 보면 볼수록 '남자감독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검색해보니, 아니나다를까 남자 감독이었다.



나는 빅토르 위고가 이 책,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그려낸 여자들 역시 빅토르 위고가 머릿속에서 알고 있는 여자들을 그려냈다고 본다. 위대한 어머니, 흉측한 외모에 비난과 야유를 퍼부어대는 여자들, 그리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계속해서 속삭이는 십육세의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다운 여자... 결국 여자는 위험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크게 불러 저와 제어미를 죽음에 내던진다. 얼마나 화딱지가 났는지...


1권에서 어리석은 사랑이라며 내가 빠져나와야 한다고 했던 그것은,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아.


물론 죽음으로 내몬 남자가 그 하나뿐은 아니다. 아아. 위고는 이 책에서, 어쩌면 자신이 그것을 의도했는지 모르는채로,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를 다룬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가장 주된 요인이 바로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에 분노하는 한 남자이니까. 그는 연신 그녀에게 나를 받아줘, 나를 사랑해줘, 라고 하지만, 이미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에스메랄다가 그를 받아들일 이유가 무언가. 게다가 그는 그녀를 겁탈하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란 말이야? 싫다, 너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고 말하는 여자를, 그는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널 가질 수 없어' 라며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에서 여자들은 남자의 외모가 흉하다고 야유를 퍼붓지만, 남자들은 여자를 강간하고 죽였다. 위고의 의도였든 아니었든, 그러니까 위고가 자기가 머릿속으로 아는 여자, '이럴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그려낸 여자들을 소석 속에서 보여줬지만, 결국 소설속에서는 지금 현실과 마찬가지로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가질 수 없어'라고 여자를 죽여버리는 남자가 나오는 거다. 대체, 남자들에겐 어떤 결함이 있는걸까? 왜 거절에 살인으로 대응할까? 게다가 그것을 피해자인 여자에게 원인을 돌리는 것도 빅토르 위고가 그려낸 프랑스의 15세기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




컨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남자의 잘못은 아니잖소? 오! 세상에 이럴 수가! 아니 그래, 당신은 영원히 나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건가? 나를 언제까지나 미워하겠다는 건가! 그래 모든 것은 끝장났단 말인가! 바로 그런 까닭에 나 자신이 성미가 고약해지고 스스로 악독해진 거야. 당신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아! 내가 우리 두 사람의 저승의 경계에 서서 떨면서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당신은 아마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2권, p.432-433)




이 책의 작품 해설은 2005년에 정기수 가 쓴것인데, 위고가 이 소설을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를 읽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카지모도와 라 에스메랄다라는 두 인물이다. 그들은 이 소설 속에 살고 있는 중세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겠으나, 거기서 한 걸음 벗어나, 빅토르 위고가 주장하는 정신적 진리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즉 곱사등이고 애꾸눈이고 절름발이인 가련한 종지기, 군중의 조롱거리가 되는 불구자인 카지모도는, 그보다 더 아름답고 더 영리한 뭇사람들보다 더 고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젊은 집시 아가씨 라 에스메라다는 아름답고 순결하고 착한데도, 그녀의 순진함을 미워하고 약함을 이용하는 인간 악에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숙명적으로 운명이 서로 결합하게 되는, 이 감동적인 두 인간은 독자의 가슴을 연민의 정으로 가득 채우고, 이 소설의 로마네스크한 흥미를 한결 북돋워 준다. (작품해설, 정기수, p.496)



아니, 이것은 순진함을 미워하고 약함을 이용하는 인간 악에 희생되는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이다. 15세기에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하든 하지 못했든, 빅토르 위고가 그것을 알았든 몰랐든, 그런 일은 예로부터 이렇게나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에스메랄다를 보는 것은 짜증스러웠지만, 그러나 그녀가 그 어리석은 사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는 그 사랑이 실질적으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페뷔스를 더 많이, 더 자주 만나 관계를 맺었다면, 그녀는 페뷔스의 본질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그를 만난 시간은 짧았고 얼마 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그를 알기에 부족했다. 그녀가 본, 알고 있는 그는 '나를 구해준 남자'가 전부이니까. 그렇다한들 엄마와 자신이 위험에 놓인 상황에서도 그 남자가 자신을 봐주기를, 자신에게 와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너무 화가 나서 공감이 안돼. 일단 네가 살아야 한다, 네가 살아야 해, 네가 살아야 사랑이고 뭐고 할 거 아니야! 라고 내가 아무리 외쳐봤자 에스메랄다는 내 말을 들을 리 없고 위고는 이미 이야기를 완성해놓은 뒤다. 아, 나여... 진짜 내가 예전부터 아는 여자들 모두에게 미친듯이 반복하는 얘기가 있으니, 오, 여자들이여, 남자와의 사랑을 생애 유일한 기쁨이자 목표로 삼지 말아라, 기쁘게하는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되게 하라.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에스메랄다여, 우리가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당신을 만나 말해줬을 거예요. 당신을 살게 하는 이유가 절대 페뷔스 하나여서는 안된다고, 그것 말고도 지탱할 것들이 여러개 있어야 한다고, 나는 말해줬을 거예요.




마음에 드는 남자주인공 하나 안나오지만, 읽으면서 캐릭터에 대한 불만이 가득 쌓였지만, 흥미진진하게 책장이 빨리빨리 넘어갔다. 내 취향이지만, 공간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지루해서 어서 빨리 넘겨버리고 싶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 임금과 백성이 만나는 이야기 같은 것들은 위고 특유의 날카로움이 있다. 그래서 내가 레미제라블을 울며 읽었었고, 웃는 남자를 좋아했었지. 그러나 읽노라면, 레미제라블과 웃는 남자 같은 웅장함같은 게 좀 덜해서, 이것은 좀 더 젊은 시절에 쓴것일까, 그 위대함이 여기엔 좀 부족한데? 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 작가 연보를 보니 이 책은 위고의 29세 간행. 레미제라블은 60세 간행이더라. 오, 나이들어서 더 훌륭하고 더 멋진 작품을 써냈다니, 그야말로 한 개인으로서도 다행이며 독자로서도 다행이다. 인물들이 마음에 안들면 보통 이야기도 재미없기 마련인데,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현대에 재해석해서 영화로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여자라면 섹스하기에 급급해서, 여자랑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갈보집'에 데려갈 생각을 가장 먼저한다. 돈은 없으니 돈좀 빌려달라고 저들끼리 공공연하게 얘기해.



"장, 이봐, 장! 자네도 알다시피, 생 미셸 다리 끝에서 그 계집애와 만날 약속을 했는데, 그 다리의 갈보 팔루르델의 집으로밖에 그녀를 데리고 갈 수 없단 말이야. 방 값을 치러야만 해. 그 흰 콧수염 난 늙은 화냥년이 내게 외상을 주지 않을 거야. 장! 제발 부탁이야. 우리가 사제의 전대를 다 둘러 마셔버렸나? 이제 파리 주화 한 닢도 안 남았단 말야?" (2권, p.101)



페뷔스는 자신을 연모하는 에스메랄다와 만날 약속을 하고서는 그녀를 갈보집에 데려가려고 하고, '그 계집애' 라고 그녀를 칭한다. 이런 남자야, 에스메랄다. 나와, 나와, 나오라고... 그 사랑에서 나와.


페뷔스와 장의 대화를 보는데 문득 무서워졌다. 내 애인들 중 누군가도 자신의 친구에게 나를 만나러 가면서 '그 계집 만나러 간다'고 말했을까? '오늘 만나면 데리고 가서 자야지' 하고 낄낄거렸을까? 페뷔스는 중대장이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으며 잘생겼고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다. 그런 남자도 친구를 만나면 '계집을 만나러 간다'고 해. 남자들, 다들 저러고 사는거야?



단둘이 처음 밀폐된 공간에 있게 된 에스메랄다는 페뷔스를 만났다는 기쁨에 젖지만, 페뷔스는 자꾸 그녀를 벗기고 안으려 한다. 에스메랄다는 이에 저항하는데, 하아, 페뷔스는 아주 전형적이다.


페뷔스는 뒤로 물러나면서 쌀쌀한 어조로 말했다. "오! 아가씨!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겠군!" (p.123)



아, 이 말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나 역시 거부의 몸짓에 저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이러는 건 너를 사랑해서야, 사랑하면 원래 이러는거야' 라고. 안타깝게도 그는 나의 첫남자였는데, 그 당시에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나도 하고 싶다'가 아니라, '아 사랑하니까 하는거구나, 사랑하니까 해야 되는거구나' 였다. 나는 그를 사랑한걸까? 나는 분명 당시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에게 상대의 저 말은 얼마나 힘이 셌을까? 나는 혹여라도 그가 내 사랑을 의심할까 두려웠다. 내가 사랑한다는 것이 그렇게 증명되어지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증명하고 싶었다. 그 때의 나는 에스메랄다보다 나이가 많았는데도 그랬다. 에스메랄다는 고작 16세였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요!" 가련한 불행한 소녀는 이렇게 외치면서 동시에 자기 곁에 앉은 중대장에게 매달렸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요, 나의 페뷔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쁜 사람, 제 가슴을 이렇게 찢어놓기예요? 아! 자, 저를 가지세요, 다 가지세요! 저를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당신의 것이에요. 부적이 제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어머니가 제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당시이 제 어머니인걸요, 저는 당신을 사랑하니까! 페뷔스, 나의 사랑하는 페뷔스, 저를 보고 있나요? 이건 저예요, 저를 보세요, 이 계집애를 당신은 쫓아버리려 하지 않아요, 제 발로 걸어와서 당신을 찾고 있는 이 계집애를 말이에요. 제 마음도, 제 목숨도, 제 몸도, 제 육신도,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에요, 나의 중대장님. 그래요, 좋아요, 겨혼하지 마요, 당신이 싫다니까. 그리고 제가 뭔데요? 저는 한낱 보잘것없는 개골창의 게집, 그런데 당신은, 나의 페뷔스, 당신은 귀족인걸요. 참으로 가관이죠! 춤추는 계집애가 장교와 결혼하다니! 제가 돌았어요. 안 될 말, 페뷔스, 그건 안 될 말이에요. 저는 당신의 정부가 될 거예요, 당신이 원할 때는 당시느이 재미, 당신의 즐거움이 될 거예요. 저는 당신의 계집이 될 거예요, 저는 그렇게 되게 마련이에요. 더렵혀지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정조를 빼앗기고! 하지만 그럼 어때요! 사랑만 받는다면. 저느 ㄴ여자들 중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가장 즐거운 여자가 될 거예요." (p.123-124)



안돼, 에스메랄다, 안돼. 그거 아니야. 세컨드를 자처하지마.

당신도 그 누구도 세컨드가 되어서는 안돼요.

세컨드라도 되고 싶은  그 마음 나도 잘 알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지만 세컨드가 되면 결국 영혼이 황폐해져요. 우리는 그 누구도 세컨드가 되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안돼 에스메랄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고 또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에게 결혼을 요구할 수 있어요. 결국 그렇게 세컨드로 만족하지마요, 자신을 낮추지마. 우리는 그런 관계속에 들어가면 안돼.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옷을 벗지 않아도 돼. 그러지마요.



세컨드는 안되는거야. 세컨드를 두어서도 안되고 세컨드가 되어서도 안돼.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이제 그만 쓰고 밥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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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1-09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이 아무리 재미있다해도 다락방님의 이 글보다 못할 거예요! 휘몰아치게 단번에 알차게 재밌게 잘 읽었어요!
읽는 맛의 정수, 다락방님!
어서 밥 먹어요! 어서, 어서!!

다락방 2019-01-09 17:31   좋아요 0 | URL
페미사이드는 정말이지 알고 있었지만 그 역사가 꽤 오래됐어요. 위고가 그리고자 한 건 작품 해설가의 말처럼 악이 공격하는 약함 혹은 선함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형태는 나를 거절한 여자 죽이는 남자 였네요.

여러 부분에서 ‘왜그랬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재미있게 저도 잘 읽었어요. 에스메랄다가 엄마를 만나게 될지, 페뷔스랑 어떻게될지, 등장인물들의 다음 사건들이 궁금해 책장이 빨리 넘어갔어요. 그리고 결국 이런 글이 나왔네요. 하하하하.


점심은 맛있게 그리고 배불리 마라탕 먹었습니다. 꺅 >.<

심술 2019-01-0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뷔스와 장의 대화를 보는데 문득 무서워졌다. 내 애인들 중 누군가도 자신의 친구에게 나를 만나러 가면서 ‘그 계집 만나러 간다‘고 말했을까? ‘오늘 만나면 데리고 가서 자야지‘ 하고 낄낄거렸을까? 페뷔스는 중대장이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으며 잘생겼고 여성들에게 인기도 많다. 그런 남자도 친구를 만나면 ‘계집을 만나러 간다‘고 해. 남자들, 다들 저러고 사는거야?

다는 아니고 십중칠팔은 저러고 사는 듯 하네요.
아주 주관적인 제 주위 남자들 관찰하고 얻은 결론이라 오차범위가 어느 만큼인지는 모르겠어요.
다행히 어느 마초가 절친에게 ‘애인 생겼다고 우린 잊었냐? 계집애 하나 때문에 우리 ?년 쌓은 우정 버릴 거야?‘고 시비걸자 그 절친이 마초에게 주먹질하는 것도 보기는 봤어요.

뒷이야기는 훈훈합니다.
마초는 제 언행을 반성하고 절친에게 사과했고
절친은 ‘그날 흥분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다시는 내 애인 나쁘게 말하지 마라.‘며 사과를 받아들여 다시 친하게 지내고
마초가 말한 ‘계집애 하나‘는 마초 절친의 아내이자 아들 하나의 엄마가 돼서 화목하게 살죠.

마초와 마초 절친은 둘 다 제 지인입니다.

다락방 2019-01-09 17:34   좋아요 0 | URL
남자들은 자신의 혹은 친구의 여자친구를 낮춰부름으로써 본인이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단순히 호칭문제뿐만이 아니라, 연인관계에서 데이트를 할 때도 관계형성을 그렇게 만들더라고요. 너는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못하고... 하면서 못하는 것들을 반복적으로 주입해 자연스레 자신의 잘남을 드러내려고 하는 거요. 그래봤자 자기가 잘나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심술님이 말씀해주신 마초처럼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반성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곳곳에서 너무 사소하게 빈번하게 여성혐오가 일어나서 말이지요. 그것이 잘못됐다는 걸 누군가 알려주고 또 스스로 깨닫고 하면서 반성하면,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러면 잘못인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지만... 요즘 보면 모두 반성하고 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일종의 판타지인 것 같아요.

심술 2019-01-09 19:57   좋아요 0 | URL
그래봤자 자기가 잘나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 100% 동감이예요.

독서괭 2019-01-0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돼, 그거 아니야!! 라고 함께 외치게 되네요 ㅜㅜ 왜 그랬니 에스메랄다.. 왜 그랬어요 29살의 위고...

다락방 2019-01-09 17:35   좋아요 0 | URL
스티븐 킹도 <it>을 썼을 때는 ‘이게 뭐야‘ 싶었었는데, 그 뒤에는 더 나은 작품을 썼더라고요. 위고 역시 그랬던 것 같아요. 어휴, 어찌나 에스메랄다 구해내고 싶은지... 어리석은 사랑으로부터도, 에스메랄다 잡으러 온 군인들로부터도 말예요. ㅠㅠ

302moon 2019-01-09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읽기 불편한 소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직 진행 중-이라기보다 안 읽고 팽개쳐놓은 지(;) 한참 됐네요.

다락방 2019-01-09 17:36   좋아요 0 | URL
중간중간 ‘왜 이런걸까‘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저는 그런 의문들과 불편함을 가지고도 재미있게 읽긴 했어요. 위고의 초기작이라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요. 레미제라블과 동시에 나온 게 이런 소설이라면 뭔가 ... 어휴.....

저는 이제 다음 작품을 고를 차례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 ‘이제 뭐 읽지?‘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