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폭력으로서 ‘몰카‘와 성폭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어 피해여성이 ‘죄인‘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강간 범죄에서나 ‘몰카‘ 범죄에서나 문제화되는 것은 ‘가해자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가‘가 아니라 피해자의 처신이다. 둘째,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 사실 자체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오히려 피해 사실을 숨긴다. ㅂ씨 피해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스스로 ‘ㅂ씨와의 성관계를 찍은 몰카를 가지고 있다‘며 언론에 범죄 사실을 알렸으며, ㅂ씨는 사건 발생 초기에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는 강간범이 강간 피해여성에게 ‘강간 사실을 가족·주변 등지에 알리겠다‘며 협박하고, 피해여성은 이를 숨기기 위해 가해자의 요구에 끌려 다니는 메커니즘과 똑같다. 범죄는 가해자가 저질렀으되, 사회적 처벌은 피해여성을 향한다. (강김아리, p.135)




셋째, 강간과 ‘몰카‘의 정치적 효과는 일반 여성으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 일상적으로 여성의 몸을 규율, 통제한다. 이제 여성들은 공중 화장실이나 공중 숙박 시설을 이용할 때 ‘몰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에 대한 주변의 반응과 처벌 과정은, 잠재적 피해여성들에게 ‘이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 기제가 없으며, 당하는 사람만 피해를 보는 것이니, 미연에 알아서 조심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즉 ‘ㅂ씨 비디오‘의 존재 자체가 일반 여성들에게 일종의 ‘경고‘이자 ‘본보기‘인 것이다.
강간 문제에서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남성의 폭력성‘이 아니라 ‘여성의 몸‘이었듯이, ‘몰카‘ 역시 여성의 몸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만든다. 강간과 ‘몰카‘, 그것은 여성들 스스로 종속을 체화하게 하는 가부장제적 공포와 통제의 수행자이다. (강김아리, p.136)





내가 읽은 건 2003년에 나온 구판이고, 링크된 책은 2018년 개정판이라 쪽수가 일치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제 승리와 정준영 사건을 보면서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2016년 정준영 동영상 사건이 드러났을 때 정준영은 무혐의라고 계속 예능에 나왔고 또 지금도 나오고 있다. 그때 내가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을 읽으며 다니진 않았지만, 아마 많은 남자들이 정준영이 '당했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무혐의가 무혐의가 아닐 것이다'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괜히 그걸 고소할 리가 없으니까. 불법촬영 당했다는 혹은 성추행, 성폭행 당했다는 고소를 여자들이 대체 무슨 '이익'을 보자고 괜히 하겠나. 그 무혐의를 지켜보며 피해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러고도 정준영은 예능에 계속 나와서 웃으며 돈을 벌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피해자는, 아니 피해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피해자 중에는 자신이 찍힌 걸 뒤늦게 알고 '고소안할테니 유포만 하지 말아라'고 말하기도 했던데, 그렇게 말을 하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정말이지 분해서 미치겠다. 왜 피해자가 범죄 사실을 드러내기 겁내야 하고 숨어야 하는가. 그동안 이 사회는 어떻게 유지되어온 것인가.



그나마 이렇게 심각하게 인식될 수 있었던 건, 지난해 나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이 불법촬영 하지 말라고 길에 나가 크게 소리질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에 이른 게 아닐까.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마 저런 단톡방은 숱하게 많을 것이다. 불법촬영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공유하는 단톡방. 남자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학생들 사이에도 숱하게 존재하는 단톡방이겠지. 부디 이번에 저 단톡방에 있던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죄에 맞는 벌을 받는 걸 보고싶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지금 이 나라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개의 단톡방들을 더이상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저 단톡방에 있던 그 누구도 텔레비젼에 더이상 얼굴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나와서 반성했다며 눈물 흘리고 또다시 웃으며 돈을 잘 벌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래가 좋아서', '연기를 잘해서'라는 핑계로 그들이 여전히 잘 살 수 있음을 보여줘서는 안된다.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열심히 노래하고 연기하는 이들을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만큼 연기하고 그만큼 노래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이 아니면 안되는 게 아니다. 범죄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피해자들이 보는 텔레비젼에 나와서 재능을 뽐내는 일따위 해서는 안된다. 사실 뭐 재능 따위, 남자라는 것 말고 별 거 있는 것 같지도 않지만.




어제 저녁 퇴근 무렵만 해도, 사랑의 묘약 다 읽었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말랑해진 마음으로 페이퍼써야지, 했는데, 저 지독한 한남들의 뻔한 단톡방 불법촬영 사건을 보고 너무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최근 책읽기에 또 집중 못하는 타이밍이구먼, 하고 있었는데, 더 가열차게 읽어야겠다. 작년에 친구와 나는 성폭력에 대해 더 파고들어보겠다, 라는 얘길 나눴더랬는데, 더 열심히 읽고 더 열심히 말하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보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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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9-03-12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준영이 그런일이 있었군요. 그럼에도 계속 TV에 나올 수 있었다니요....

메모해 둡니다.
˝젠더 폭력으로서 ‘몰카‘와 성폭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어 피해여성이 ‘죄인‘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둘째,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 사실 자체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오히려 피해 사실을 숨긴다....셋째, 강간과 ‘몰카‘의 정치적 효과는 일반 여성으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 일상적으로 여성의 몸을 규율, 통제한다.˝

다락방 2019-03-12 08:37   좋아요 2 | URL
네, 정준영을 티비에서 보는 피해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것만 생각하면 진짜 가슴이 폭발할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9-03-12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두 번째 문단이요.
강간과 몰카가 여성들에게 ‘공포‘를 조장해 여성의 몸을 규율, 통제한다는 문단 읽으면서 <캘리번과 마녀>가 다시 떠오르네요. 마녀사냥의 대상은 대부분, 사실은 거의 전부가 여자였고, 마녀=여성 이었기 때문에, 마녀가 고문당하고 공개적으로 참수되고 화형당할 때 여성들이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이 여성들을 얼마나 압박했을지 말했던 그 문단이요.

특별히 나쁜 놈이었다기 보다는 보통의 나쁜 놈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쉽게 꼬시고 여자에게는 사귀는 거라 말하면서 관계를 갖고.
그 이야기를 단톡방에서 나누고, 자랑하고, 동영상을 공유하고. 그 친밀함과 우정에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에요.
다시는 못 나오게 해야지요.

다락방 2019-03-12 11:3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캘리번과 마녀]에서는 그런 말도 했죠. 마녀를 숨겨주거나 편을 드는 사람까지도 벌을 내렸기 때문에 다들 하나같이 마녀몰이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단톡방에서의 그들은 모두들 하나되어 여자를 물화해 줄겼어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늘상 일어나는 일이라는 듯, 잤어, 라는 말에 ‘영상은?‘ 되묻는 그 대화라니. 자신들이 지금 여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 없이, 자기들끼리 낄낄거렸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화가 나요, 단발머리님.

저 역시 그들이 ‘특별히‘ 나쁜 놈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보편적 나쁜놈이었을 거예요. 자기들끼리는 나쁜놈이라는 생각도 안했을 거고요. 그냥 평범한 놈들. 그런 놈들은 아직 많고도 많을 거에요.

2019-03-12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랙겟타 2019-03-12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우연히 sbs뉴스를 보다가 정준영사건을 접했어요.
1박2일에서 그의 모습을 봤던게 불과 이틀 전입니다.

단발머리님 말대로 이 친구가 특별한 쓰레기라고 생각되지 않고 ‘보통’쓰레기라는 것이에요.

보통의 남자들까지 만연한 이 풍토(친구들끼리 여자들 상대로 얼평, 몸평하며 낄낄거리는 것)가 결국 지금 살고 있는 남성중심주의의 현실입니다. 그점에선 저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순 없네요.

여성들은 이미 이른 나이부터 여성주의 책보면서 스스로 공부하고 있는 반면, 남성들은 어릴때부터 이런 카톡방에서 여자를 주제로 히히덕 거리는 이 현실에서 남성과 여성의 생각의 갭은 쉽사리 좁혀지기 어렵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이 더더욱 공부해야한다고 보지만....;;;
어쨋든 결론은 죄값을 확실하게 받는 것부터 출발이라고 봅니다. 뭐 자숙하다가 쳐 나와서 노래로...연기로..보답하겠습니다. 라는 개소리는 더이상 보기 싫네요.

다락방 2019-03-13 08:08   좋아요 1 | URL
오늘 은퇴한다고 하는 입장문을 읽었어요. 죄송하다는 사과가, 정말 죄송해서 본인이 쓴 건지는 모르겠네요. 맞아요, 블랙겟타님. 보편적 놈들이죠, 보편적 남자들. 그런 남자들이 아마 수두룩 하겠죠. 저런 단톡방은 한두개가 아닐거에요.

여자라고 해서 사실 자유로울 순 없어요. 저 역시도 일전에 유행하던 *양 비디오 같은 거 본 적 있고요, 직장동료가 자기 핸드폰에서 재생시켜서 보여준 유포된 불법영상도 본 적 있어요. 다만 그 때 뭔가 남자들처럼 낄낄거릴 순 없었죠. 무엇이 잘못됐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어딘가 이상한.. 되게 부끄러운 그런 기억이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나 스스로 여성주의를 공부하게 되면서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알게 됐어요. 다음번에 같은 직장 동료가 또 보여주려고 할 때는 말할 수 있었습니다. 너는 불법촬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걸 찍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이걸 소비하고 있으면 어떡하냐, 이렇게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찍는 사람이 어떻게 사라지겠냐, 이것을 유포하는 것 역시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겠냐, 하고요. 제 말에 동료는 금세 알아듣더라고요. ‘아 정말 그렇네요‘ 하더니, 앞으로 보지도 유포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며 폰에서 그 영상을 지우더라고요.


부끄러운 기억은 아주 많죠.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러나 이제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기 때문에 자꾸 바꿔나가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변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말하게 되고, 그렇게 주변 사람들도 변하게 되면 점점 더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이것이 지나치게 여성들 쪽에서만 가능하다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이제는 시위에 나가 불법촬영 해서는 안된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되었지만, 수만명의 여자들이 그곳에 모여들게 되었지만, 남자들은 여전히 변할 생각 없이 불법촬영을 하고 유포를 하고 성매매를 하고 강간을 하고 있네요.

그나마 지금은 목소리 내는 여자들이 많아져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싶어요.


정준영과 승리도 이제 보여서는 안되겠지만, 지금껏 얼굴 잘 들고 다니는 다른 많은 남자 연예인들도 제발 꺼져줬으면 좋겠어요.

공쟝쟝 2019-03-14 17:49   좋아요 1 | URL
남성연대 진짜 오지는게 이수근?도 그렇고 이미 성폭력으로 물의 일으킨 자들., PD들이 막 다독여서 복귀시켜주고 그러는 것도 진절나요. 여배우였으면???? 진짜 꼴보기 싫습니다.

다락방 2019-03-15 09:21   좋아요 2 | URL
진짜 토나오는 알탕카르텔이죠. 여자들은 나가서 안된다고 소리지를 동안 지들은 낄낄거리며 불법촬영하고 돌려보고 있었다니. 진짜 토할것 같아요. 그 단톡방에 있던 남자들 죄다 감방에서 모여야해요. -_-

차트랑 2019-03-13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를 10개 혹은 그 이상, 또는 맘껏 누를 수 있는 버튼은 없나요?

다락방 2019-03-13 18:29   좋아요 0 | URL
ㅎㅎ 차트랑님, 오랜만입니다! 써주신 댓글만으로도 뜻이 전달되네요. 좋아요 열 개 받은 기분입니다!
 
혁명의 영점 - 가사노동, 재생산, 여성주의 투쟁 아우또노미아총서 44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 갈무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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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읽으면 좋을 책들과 이 책을 읽고난 후에 읽으면 좋을 책들이 있어 더 좋은 독서가 된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 책에서도 예외없이, 기존의 남자 작가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 부러 말하지 않았거나 혹은 놓친 것들‘에 대해서 냉철하게 꼬집어낸다.

세상 똑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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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악인
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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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남동생은 이 책을 읽고 화를 냈었다. 뭐 이런 책이 있냐, 읽고나서 기분 너무 나빴다, 고 한거다. 그 말에 바로 처분할까 하다가, 남동생과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독자이니,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단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고, 음, 역시 남동생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해버리고야 말았다. 이런 건 확인하지 않았어도 됐을텐데...



여자 등장인물인 '요시노'는 부잣집 남자랑 사귄다고 친한 직장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데이트앱으로 남자를 만나놓고는, 길에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게다가 그런 요시노가 원하는 건, '마스오 게이고 같은 남자의 차에 타고 시원스레 하카타 거리를 내달리(p.50)'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남자를 이용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자랄까. 이 책이 국내에 나온 게 2008년이니, '요시다 슈이치'가 써낸 건 그 이전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물론 '부자 남자 만나서 신분 상승하려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욕망에 있는 여자가 '부자 남자랑 사귄다'고 친구들에게 '거짓말'까지 하는 건 도대체 이 여자 캐릭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게다가 동료중 한 명인 '마코' 역시, 짝사랑만 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생긴 남자랑 연애하다 헤어졌다'고 하는거다. 도대체 왜 이들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는걸까. 요시노, 마코를 제외한 다른 친구는 남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고 거기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지만, 남자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게 꿈이다. 하아- 사람이 끼리끼리 만난다지만 어떻게 하나같이 여자들이 죄다 이런 캐릭터들인지... 어쩌면 하나같이 이래, 하나같이.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요시노가 살해당한다. 그녀가 사귄다고 주장했던 '마스오'가 살인범일지, 그녀에게 지독한 쾌락을 주는 '유이치'가 살인범일지 알 수 없다.



정확한 숫자는 밝히지 않았지만, 형사들은 그녀와 관계가 있는 몇몇 남자들을 이미 만나봤다고 말했다.

심심풀이 삼아 등록한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살해되는 바람에 궁지에 몰린 사내들이다. 자기 자신도 그렇지만, 여자를 살해할 마음으로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살해당했다.

창녀 하나가 사악한 손님을 만나 살해당했다고 하면 얼마간 틀에 박힌 스토리라는 느낌이라도 있을까. 그러나 살해당한 사람은 창녀가 아니다. 밝히진 않았지만, 견실하게 생명보험 영업을 하며 살았던 젊은 여성이다. 창녀인 척했지만 창녀가 아닌 아닌 여자였다. (p.166)



그전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안읽어본 게 아니었는데, 요시다 슈이치, 이런 사람이었던건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생각하는 여자란 어떤건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견실하게 살았던 창녀가 아닌 젊은 여성'은 창녀보다 '더' 죽어서는 안되는가? 초반부터 '머릿속에 있는 여자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아서 불쾌했는데, 그러나 불쾌함은 책을 읽을수록 더해진다.



소설속에서 언제나 정의롭고 선한 캐릭터만 나와야 한다는 게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상 혐오를 하는 인물, 나쁜 인물은 당연히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인물이 어떤 식으로 등장하든간에, 우리는 그 안에서 '결국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읽어낼 수밖에 없고,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냐에 따라 우리는 어떤 등장인물이든 소설 속의 캐릭터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또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건 그거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내가 얼마전 읽은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를 싫다고 했던 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소아성애에 대한 변명'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랑을 지켜가는 굳은 인물들의 입을 빌어 결국은 소아성애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이 책, 《악인》이 싫은 건, 작가가 결국은 '꽃뱀에게 당하는 불쌍한 남자'들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진실한 사랑을 원했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 결국 그런 여자들이 남자를 지옥으로 떠밀어버려, 라는 얘기.



'하퍼 리'의 소설《앵무새 죽이기》에서 작가가 왜 하필이면 '거짓강간 신고'에 대해 얘기해야 했는지 유감이라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요시다 슈이치에 대해서라면 '왜 하필이면', 이라는 말을 안할 수가 없다. 작가는 왜 하필이면 거짓으로 강간 신고를 하겠다는 여자를 그려냈는지, 그래서 남자로 하여금 그 여자를 죽이게 했는지, 천 번 생각해도 나는 너무 유감인거다. 이 책이 만약 지금 나왔다면, 그야말로 미투 폭로에 대한 가해자들의 변으로 들리지 않겠는가. 소위 말해 '판결 나오기 전까지는 중립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바로 그 입장에 대한 이야기.






"우리? 알잖아, 우린 오래 전부터 여관 하는 거"라고 내뱉듯 말했다.

"여관 하는 게 어떻다고?"

"여관에는 여종업원이 많지."

게이고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봤다. 아버지가 여관 종업원들을 데리고 안쪽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 어땠을까? 그 여자들, 싫었을까? …… 그랬겠지, 분명히 싫어했겠지. 그런데 말이다,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더라."

포장마차를 나오면서 게이고는 가게 주인에게 "잘 먹었습니다. 근데 맛은 영 아니네요." 라고 말했다.

그 순간, 포장마차에 있던 손님들의 손동작이 일시에 멈췄다. 껄끄러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쓰루다는 게이고의 그런 점이 좋았다. 실제로 그곳은 관광객을 상대로 돈만 많이 받는 포장마차였다.(p.114)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가는 여자들이 싫어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이고는, 식당에서 할 말을 하는 남자다. 그래서 쓰루다는 그런 얘기를 들어놓고서도 '네가 잘못 생각했어' 라는 말이 아니라, '게이고의 그런 점이 좋았다'라고 말을 한다. 위의 장면에서 독자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가장 어이없는 건, 요시노가 살해된 이유다. 요시노는 게이고가 타라는 말에 게이고의 차에 타는데, 게이고는 그런 요시노에게 남자가 타란다고 타냐고 너같은 천박한 여자가 싫다며 한적한 밤에 그녀를 떠밀듯이 차에서 내쫓는다. 요시노와 만날 약속에 요시노를 기다리고 있던 유이치는 요시노가 자신이 뻔히 기다리는 앞에서 다른 남자 차를 타고 가는 것에 대한 사과를 받으려고 요시노가 탄 차를 따라갔다가 그녀가 차에서 내쫓기는 걸 보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자 한다. 그런데 요시노는 그런 자기의 모습을 유이치가 본 게 싫어서 그를 강간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한다. 강간은 없었는데.



"살인자! 경찰에 신고할 거야! 성폭행했다고 신고할 거야! 여기까지 납치했다고! 납치해서 강간했다고! 우리 친척 중에 변호사도 있어! 우습게보지 마! 난 너 따위 남자랑 사귈 여자가 아니야! 살인자!"

요시노가 소리쳤다. 모두 다 거짓말인데도 유이치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이 떨렸고, 떨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p.345)



부자 남자 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했던 요시노는, 강간했다고 거짓으로 신고할거라고 악을 쓰고, 그러다 살해당한다.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강간범으로 신고당하면 자신이 그 다음을 살아나갈 수 없을 거란 두려움에 유이치는 그녀를 죽여버린다. 왜냐하면, 자기는 강간범이 아닌데, 자기를 강간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런 유이치를 사랑하게 된 여자는, 자수를 하겠다며 경찰서 앞까지 찾아간 유이치에게 같이 도망치자고 한다. 결국 유이치는 자수를 하는 대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도망치며 보낸다. 유이치를 살인으로 유도한(?) 것도 여자고, 그런 유이치에게 삶의 기쁨을 주며 그러나 벌 받으러 가는 길을 막는 것도 여자고.



작가는 처음부터 왜 요시노를 그렇게 거짓말하는 캐릭터로 만들어서는, 그렇게 거짓말하다 살해당하게 만들었을까? 왜 하필이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 거짓말은 '성폭행당했다고 (거짓말)할거야!' 일까? 토할뻔했다. 혹여 거짓미투일까봐 두려워하는 남자들을 대신해 변명해주는 것 같았다.


일전에 '트레버 노아'가 자신의 토크쇼에서 관객들을 향해 '여기에 거짓 성폭행 신고를 당했던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 아마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중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이을 당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요시다 슈이치는 대체 누구의 편에 서서 어떤 변명을 하고 있는가. 요시다 슈이치가 이 책을 통해 계속해 하는 말은, '응 나쁜 여자들 많아', '응 남자로 팔자 펴려는 여자들 있지', '응, 남자 엿먹이려고 거짓 성폭행 신고하는 사람 있어' 밖에 없다. 게다가 그녀가 성폭행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했던 그 남자는 자신으로 하여금 신음 소리를 참지 못하게 했던 쾌락을 준 남자이고, 자신의 상반신 누드를 찍었기에 돈을 요구했던 남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를 이용하려는 나쁜년이 얼마나 해로운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 소설은 도대체 왜 쓴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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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hinew 2020-04-2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네요. 이 이야기는 이 세상에 나쁜여자들많아! 만 외치는게 아니라 악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인데, 하나에만 꽂혀 생각하면 큰 줄기는 안보이나봅니다.

다락방 2020-04-28 15:55   좋아요 0 | URL
ㅎㅎ 님도 별 하나준 책 있던데, 별 하나 주면 큰 그림 못본건가요? sunshinew 님이야말로 이책을 제대로 읽으신건지 모르겠네요. 뭐, 어차피 소설은 읽는 자의 몫이니까요.
 
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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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의 일정도 읽은 지금 그만 읽을까 고민하다 계속 읽는다.
딱 기다리고 있어라.
다 읽으면 진짜 대차게 까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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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소설은 도대체 왜 쓴건지 모르겠다.
    from 마지막 키스 2019-03-04 14:15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남동생은 이 책을 읽고 화를 냈었다. 뭐 이런 책이 있냐, 읽고나서 기분 너무 나빴다, 고 한거다. 그 말에 바로 처분할까 하다가, 남동생과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독자이니,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단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고, 음, 역시 남동생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해버리고야 말았다. 이런 건 확인하지 않았어도 됐을텐데...여자 등장인물인 '요시노'는 부잣집 남자랑 사귄다고 친한 직장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데이트앱
 
 
2019-02-28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2-28 12:53   좋아요 0 | URL
네네 조금 기다려 주세요. 다음 주 중에 받으실 수 있도록 보내드릴게요! :)
 
여성이라는 예술 - 우리는 각자의 슬픔에서 자란다 아르테 S 1
강성은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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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책은 의미는 있긴 하지만 시류에 편승한 기획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기획된 책이라서인지 글쓴이들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글쓰기도 아니었던 것 같다. 가독성이 떨어짐. 특히 박연준 글 보면서 ‘흠, 왜 이정도인 거지..‘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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