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자평] 악인
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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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남동생은 이 책을 읽고 화를 냈었다. 뭐 이런 책이 있냐, 읽고나서 기분 너무 나빴다, 고 한거다. 그 말에 바로 처분할까 하다가, 남동생과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독자이니,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단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고, 음, 역시 남동생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해버리고야 말았다. 이런 건 확인하지 않았어도 됐을텐데...



여자 등장인물인 '요시노'는 부잣집 남자랑 사귄다고 친한 직장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데이트앱으로 남자를 만나놓고는, 길에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게다가 그런 요시노가 원하는 건, '마스오 게이고 같은 남자의 차에 타고 시원스레 하카타 거리를 내달리(p.50)'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남자를 이용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자랄까. 이 책이 국내에 나온 게 2008년이니, '요시다 슈이치'가 써낸 건 그 이전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물론 '부자 남자 만나서 신분 상승하려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욕망에 있는 여자가 '부자 남자랑 사귄다'고 친구들에게 '거짓말'까지 하는 건 도대체 이 여자 캐릭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게다가 동료중 한 명인 '마코' 역시, 짝사랑만 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생긴 남자랑 연애하다 헤어졌다'고 하는거다. 도대체 왜 이들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는걸까. 요시노, 마코를 제외한 다른 친구는 남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고 거기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지만, 남자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게 꿈이다. 하아- 사람이 끼리끼리 만난다지만 어떻게 하나같이 여자들이 죄다 이런 캐릭터들인지... 어쩌면 하나같이 이래, 하나같이.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요시노가 살해당한다. 그녀가 사귄다고 주장했던 '마스오'가 살인범일지, 그녀에게 지독한 쾌락을 주는 '유이치'가 살인범일지 알 수 없다.



정확한 숫자는 밝히지 않았지만, 형사들은 그녀와 관계가 있는 몇몇 남자들을 이미 만나봤다고 말했다.

심심풀이 삼아 등록한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살해되는 바람에 궁지에 몰린 사내들이다. 자기 자신도 그렇지만, 여자를 살해할 마음으로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살해당했다.

창녀 하나가 사악한 손님을 만나 살해당했다고 하면 얼마간 틀에 박힌 스토리라는 느낌이라도 있을까. 그러나 살해당한 사람은 창녀가 아니다. 밝히진 않았지만, 견실하게 생명보험 영업을 하며 살았던 젊은 여성이다. 창녀인 척했지만 창녀가 아닌 아닌 여자였다. (p.166)



그전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안읽어본 게 아니었는데, 요시다 슈이치, 이런 사람이었던건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생각하는 여자란 어떤건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견실하게 살았던 창녀가 아닌 젊은 여성'은 창녀보다 '더' 죽어서는 안되는가? 초반부터 '머릿속에 있는 여자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아서 불쾌했는데, 그러나 불쾌함은 책을 읽을수록 더해진다.



소설속에서 언제나 정의롭고 선한 캐릭터만 나와야 한다는 게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상 혐오를 하는 인물, 나쁜 인물은 당연히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인물이 어떤 식으로 등장하든간에, 우리는 그 안에서 '결국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읽어낼 수밖에 없고,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냐에 따라 우리는 어떤 등장인물이든 소설 속의 캐릭터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또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건 그거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내가 얼마전 읽은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를 싫다고 했던 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소아성애에 대한 변명'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랑을 지켜가는 굳은 인물들의 입을 빌어 결국은 소아성애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이 책, 《악인》이 싫은 건, 작가가 결국은 '꽃뱀에게 당하는 불쌍한 남자'들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진실한 사랑을 원했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 결국 그런 여자들이 남자를 지옥으로 떠밀어버려, 라는 얘기.



'하퍼 리'의 소설《앵무새 죽이기》에서 작가가 왜 하필이면 '거짓강간 신고'에 대해 얘기해야 했는지 유감이라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요시다 슈이치에 대해서라면 '왜 하필이면', 이라는 말을 안할 수가 없다. 작가는 왜 하필이면 거짓으로 강간 신고를 하겠다는 여자를 그려냈는지, 그래서 남자로 하여금 그 여자를 죽이게 했는지, 천 번 생각해도 나는 너무 유감인거다. 이 책이 만약 지금 나왔다면, 그야말로 미투 폭로에 대한 가해자들의 변으로 들리지 않겠는가. 소위 말해 '판결 나오기 전까지는 중립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바로 그 입장에 대한 이야기.






"우리? 알잖아, 우린 오래 전부터 여관 하는 거"라고 내뱉듯 말했다.

"여관 하는 게 어떻다고?"

"여관에는 여종업원이 많지."

게이고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봤다. 아버지가 여관 종업원들을 데리고 안쪽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 어땠을까? 그 여자들, 싫었을까? …… 그랬겠지, 분명히 싫어했겠지. 그런데 말이다,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더라."

포장마차를 나오면서 게이고는 가게 주인에게 "잘 먹었습니다. 근데 맛은 영 아니네요." 라고 말했다.

그 순간, 포장마차에 있던 손님들의 손동작이 일시에 멈췄다. 껄끄러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쓰루다는 게이고의 그런 점이 좋았다. 실제로 그곳은 관광객을 상대로 돈만 많이 받는 포장마차였다.(p.114)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가는 여자들이 싫어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이고는, 식당에서 할 말을 하는 남자다. 그래서 쓰루다는 그런 얘기를 들어놓고서도 '네가 잘못 생각했어' 라는 말이 아니라, '게이고의 그런 점이 좋았다'라고 말을 한다. 위의 장면에서 독자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가장 어이없는 건, 요시노가 살해된 이유다. 요시노는 게이고가 타라는 말에 게이고의 차에 타는데, 게이고는 그런 요시노에게 남자가 타란다고 타냐고 너같은 천박한 여자가 싫다며 한적한 밤에 그녀를 떠밀듯이 차에서 내쫓는다. 요시노와 만날 약속에 요시노를 기다리고 있던 유이치는 요시노가 자신이 뻔히 기다리는 앞에서 다른 남자 차를 타고 가는 것에 대한 사과를 받으려고 요시노가 탄 차를 따라갔다가 그녀가 차에서 내쫓기는 걸 보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자 한다. 그런데 요시노는 그런 자기의 모습을 유이치가 본 게 싫어서 그를 강간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한다. 강간은 없었는데.



"살인자! 경찰에 신고할 거야! 성폭행했다고 신고할 거야! 여기까지 납치했다고! 납치해서 강간했다고! 우리 친척 중에 변호사도 있어! 우습게보지 마! 난 너 따위 남자랑 사귈 여자가 아니야! 살인자!"

요시노가 소리쳤다. 모두 다 거짓말인데도 유이치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이 떨렸고, 떨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p.345)



부자 남자 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했던 요시노는, 강간했다고 거짓으로 신고할거라고 악을 쓰고, 그러다 살해당한다.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강간범으로 신고당하면 자신이 그 다음을 살아나갈 수 없을 거란 두려움에 유이치는 그녀를 죽여버린다. 왜냐하면, 자기는 강간범이 아닌데, 자기를 강간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런 유이치를 사랑하게 된 여자는, 자수를 하겠다며 경찰서 앞까지 찾아간 유이치에게 같이 도망치자고 한다. 결국 유이치는 자수를 하는 대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도망치며 보낸다. 유이치를 살인으로 유도한(?) 것도 여자고, 그런 유이치에게 삶의 기쁨을 주며 그러나 벌 받으러 가는 길을 막는 것도 여자고.



작가는 처음부터 왜 요시노를 그렇게 거짓말하는 캐릭터로 만들어서는, 그렇게 거짓말하다 살해당하게 만들었을까? 왜 하필이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 거짓말은 '성폭행당했다고 (거짓말)할거야!' 일까? 토할뻔했다. 혹여 거짓미투일까봐 두려워하는 남자들을 대신해 변명해주는 것 같았다.


일전에 '트레버 노아'가 자신의 토크쇼에서 관객들을 향해 '여기에 거짓 성폭행 신고를 당했던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 아마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중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이을 당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요시다 슈이치는 대체 누구의 편에 서서 어떤 변명을 하고 있는가. 요시다 슈이치가 이 책을 통해 계속해 하는 말은, '응 나쁜 여자들 많아', '응 남자로 팔자 펴려는 여자들 있지', '응, 남자 엿먹이려고 거짓 성폭행 신고하는 사람 있어' 밖에 없다. 게다가 그녀가 성폭행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했던 그 남자는 자신으로 하여금 신음 소리를 참지 못하게 했던 쾌락을 준 남자이고, 자신의 상반신 누드를 찍었기에 돈을 요구했던 남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를 이용하려는 나쁜년이 얼마나 해로운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 소설은 도대체 왜 쓴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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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hinew 2020-04-2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네요. 이 이야기는 이 세상에 나쁜여자들많아! 만 외치는게 아니라 악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인데, 하나에만 꽂혀 생각하면 큰 줄기는 안보이나봅니다.

다락방 2020-04-28 15:55   좋아요 0 | URL
ㅎㅎ 님도 별 하나준 책 있던데, 별 하나 주면 큰 그림 못본건가요? sunshinew 님이야말로 이책을 제대로 읽으신건지 모르겠네요. 뭐, 어차피 소설은 읽는 자의 몫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