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반노동의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
케이시 윅스 지음, 제현주 옮김 / 동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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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케이시 윅스'의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다 읽었다. 서문부터 어려워 과연 내가 이번에도 완독할 수 있을것인가 걱정했는데, 같이읽는 멤버중 2등으로 완독할 수 있었던 걸 보면(1등인 블랙겟타님, 축하합니다!!), 역시 나는 짱인 것 같다. (네?)


서문도 어렵고 1장 2장도 어려웠지만 기본소득이 나오는 부분부터는 너무 재미있어서 짜릿했다. 기본소득에 대해서 사실 크게 관심없었는데 케이시 윅스가 말하는 기본소득을 읽노라니 너무 재미있는거야. 아니, 이렇게 좋은 기본소득을 왜 안하는거지? 그러나 그렇게 흥미롭게 읽었으면서도 '그런데 기본소득이 정말 궁극적인 답인가'하고 혼자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나는 노동윤리를 말끔히 내다버리지 못하고 있는건가, 스스로 돌이켜보고 있다. 어쩌면 노동윤리에 갇혀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에 관심이 없었던걸지도 모르고. 



기본소득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기본소득은 개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가족이나 가구 구성, 다른 소득 여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되는 소득이다.(van Parijs 1992, 3) 기본소득은 소득이 그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게끔 바닥 수준을 정립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많은 이들이 임금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더라도 지금의 조건과 상태에 덜 의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p.217)



기본소득은 임금관계로부터 분리되고 거리를 둘 수단을 획득할 방법으로서 요구될 수 있다. 그 거리는 다시 삶의 질을 위해 더 이상 일에 그토록 완전히 쉼 없이 의존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이미 원하는 것을 하고자, 또는 원하는 존재가 되고자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기본소득은 다른 것을 원하고 행하고 다른 존재가 되는 삶, 다른 종류의 삶을 고려하고 실험할 수 있게 허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27)




기본소득 요구는 더 많은 돈과 시간, 자유를 향한 욕망의 자극으로서, 가사임금 요구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선언에 접근하는 다른 많은 방식들과 차별화된다. 기본소득 요구는 검약과 저축의 윤리, 양보의 정치, 희생의 경제학을 설교하는 대신, 필요와 욕망의 확대를 촉구한다. 일을 칭송하고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정치적 분석과 전략의 좀 더 익숙한 스타일들과는 달리 기본소득 요구는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적게 원해야 한다는 통상적 지침을 거부한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원하고 요구해야 하는 것의 합리적 한계로 그어져 있는 것에 도전하며 과잉으로 나아간다. 기본소득 요구는 개인의 생산과 소비 사이의 연결 고리에 반기를 들고, 임금노동만이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누리도록 하는 합당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거부함으로써 일에 더 이상 종속되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p.228)




가사임금은 탈자연화의 효과를 일으켰을지는 모르지만, 가사임금에 대한 주부들의 요구는 이 노동이 가정 내에서 행해지는 여성의 일이라는 점을 다시 확고하게 할 위협이 되었다.

기본소득 요구는 가정 내 특정 젠더 구성원을 잠재적 수혜자로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관점이자 자극으로서 훨씬 나은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기본소득 요구는 현실화된 젠더 범주를 재생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p.232)





케이시 윅스는 이 기본소득 요구를 가져오면서 페미니즘의 유명한 저자들, 가사노동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발언했던 '베티 프리단'과 '앨리 훅실드'의 저서를 가져와 비판한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고 요구한 것들에 대한 의미는 충분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과 가사임금의 한계를 비판한 것. 그러면서 기본소득 요구를 가져오는 거다. 가사노동과 그에 대한 임금을 책정하는 것은 젠더를 고정화시키고 이상적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 그러나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이것들로부터 더 한걸음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은 너무 재미있어서 열심히 밑줄 그으며 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은 앞으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다른 책들을 찾아 읽어봐도 아주 좋을 것 같다.


제 5장 유토피아 부분 읽으면서는 다시 좀 어려워저 헤롱헤롱 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요지만은 알 수 잇었다. 유토피아를 차마 우리가 갈 수 없는 이상향이라 생각하고 비난하거나 무시하는대신, 우리가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음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 결국 상상해야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건 작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여자는 인질이다》의 결론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상상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곳에 대한 열망이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곳에 다다를 수 있겠는가. 얼마전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꼽았던 '부정적인 성격' 역시 통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우리가 싸울 수도 있음을, 싸워서 이길 수도 있음을,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상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젊은 여성들이 주장하는 탈코르셋도 그 상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라면 으레 화장해야지, 예쁘게 보여야지, 를 체화하고 살고 있다가 '아니, 우리가 왜 그래야하지?' 로 생각이 뻗어갔고, 그 생각은 결국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의 사회적 성을 지울 수 있는 도약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상상이라는 것도 내가 얼만큼의 개인적 자원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질 터. 언제나 어디서나 통하고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은 여기에서도 답이 된다. 더 많이 아는 사람, 더 많이 본 사람, 더 많이 들은 사람, 더 많이 경험한 사람이 더 많이 더 넒게 상상할 수 있다.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으면서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부정적 생각보다는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면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확실히 더 나은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이 책은 옮긴이의 말까지 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이다. 유토피아 부분에서 막연하지만 확 정리되지 않았던 부분을 옮긴이 제현주가 제대로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다른 세상은 가능할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다른 세상이 가능한 듯이 요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존재할 때만, 비로소 다른 세상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나는 이 책을 옮기면서 그렇게 믿게 되었다. -옮긴이의 말, p.363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믿게 되었다.








노동 거부는 단순히 노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가장 고결한 소명이자 도덕적 의무로 보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것, 노동을 사회적 삶의 불가피한 중심이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심 없는 소비"를 포함한 다른 모든 추구보다 일을 우위에 두는 이들-좌파에 있는 그런 이들까지-의 금욕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노동 거부의 당면한 목표는 두 가지로 제시되는데, 하나는 노동 감소로 노동시간을 줄인다는 의미이자 노동의 사회적 중요성을 줄인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적 조직화 방식을 새로운 협업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노동 거부는 착취당화는 노동, 소외되는 노동을 거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실성과 합리성의 원칙으로서의 노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Baudrillard 1975, 141) 이런 면에서 "해방된 노동은 곧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Negri 1991, 165) - P161

"노동 거부는 활동을 소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지배에서 벗어난 인간 활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Berardi 2009, 60) - P167

뮤어헤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두 가지 측면, 즉 노동의 내재적 가치를 긍정하는 것과 그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어긋나 버릴 수 있다고 인정한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뮤어헤드는 세 번째 요소를 더한다. 일이, 심지어 좋은 일이라도, 그 자리에 붙들어 둠으로써 삶 전체를 잠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 P174

더 나은 일에 대한 요구는 더 적은 일에 대한 주장을 손쉽게 압도해 버린다. 그리하여 내가 짚어 두려는 두 번째 주장은, 노동윤리의 수정된 버전을 내놓기보다는 이 윤리를 비판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더 적은 일에 대한 투쟁에 성공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 P175

가족 제도는 임금을 버는 이들의 임금을 벌지 않는 이들에 대한 사회관계로서(12) "실업자, 노인, 병자, 아이, 그리고 주부들"을 포함하는 포괄적 범주이다.(James 1976, 7)이런 면에서 가족은 분배 기제로 작동하는데, 가족을 통해 임금이 임금을 벌지 않는 자, 임금을 적게 버는 자, 임금을 아직 못 버는 자, 임금을 더 이상 벌지 않는 자로 가닿는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은 사회적 재생산의 사유화된 장치로서 기능한다. 가족이 이처럼 기능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개인들은 가정 내에서 생산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상품화된 등가물을 통해 확보하거나 임금노동을 하고도 시간이 충분해 그런 재화나 서비스를 직접 생산할 것이다. 이 경우 임금은 더 높아야 하고 노동시간은 더 짧아야 할 것이다. - P192

이렇게 가족은 임금 시스템에 계속해서 결정적 요소로 기능하지만 여전히 숨어 있는 파트너로 남아 있으며, 가족 제도를 자연화하고 낭만화하며 사유화하고 탈정치화하는 모든 담론들이 그 역할을 은폐한다. - P193

델라 코스타는 가족을 임금 시스템과 연결 지어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이루는 한 축으로 설명함으로써(Dalla Costa and James 1973, 33)가족 제도가 노동 가격 인하를 흡수하며, 저렴하고 더 유연한 여성화된 노동 형태를 제공하도록 도울 뿐 아니라, 국가와 자본에게 사회적 재생산 비용의 책임을 상당부분 면제해 주는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 P193

임금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권력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요소 중 하나이자, 그 조건을 놓고 벌어지는 투쟁의 가장 구체적인 대상 중 하나다. 가사임금을 옹호하는 두 학자 니콜 콕스Nicole Cox와 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가 설명하다시피 "임금에는 언제나 두 편이 있다. 자본의 편은 임금을 올릴 때마다 생산성이 올라가게끔 하려고 노력하면서 노동계급을 조종하는 데 임금을 사용한다. 노동계급의 편은 더 많은 돈, 더 많은 권력, 더 적은 일을 위해 점점 열띤 투쟁을 벌인다."(1976.11) 임금은 자본의 축적, 그리고 노동자가 잠재적으로 지닌 자율적 필요와 열망의 확대 양쪽을 모두 촉진할 수 있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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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1-2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1장까지 읽었어요. 서문은 정말 어려워서 읽은 부분 다시 읽기를 몇번이나... 이론서를 오랫만에 읽으니 책 읽기의 색다른 경험이네요.

다락방 2020-01-29 07:55   좋아요 0 | URL
트윗 보니까 2장까지 다 읽으셨던데, 유부만두님. 이 책은 3장,4장이 특히나 재미있어요. 막 빨려들어가서 읽게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요. 밑줄 그을 준비도 하셔야 할거에요.

전 너무 짜릿했어요. 선배 학자들의 말을 가져와서 인용을 하고 또 어떤 건 비판을 하고 그 위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는게요. 너무 짜릿해서 더 많은 학자들이 말하고 연구하고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무쪼록 기쁘게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5장은 어렵지만.....킁킁.

단발머리 2020-01-28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제일 앞서가다가 이제부터 서두르고 있는 단발머리입니다. 저도 <제5장>이 저한테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답은 기본소득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새롭게 더 배워갔으면 해요.

상상한다는 것에 대한 문단 특히 좋아요. 여자가 재산을 갖는다는 것, 가정을 가진 상태에서 자신의 일을 계속한다는 것, 혼자 여행한다는 것. 모두 예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더 나은 세상을 같이 상상해 봐요. 수고했어요, 다락방님! (찡긋)

다락방 2020-01-29 07:57   좋아요 0 | URL
5장 때문에 당황했네요. 선명하게 잡히진 않았는데 응 뭔지 알겠다, 이러면서 읽다가, 제현주 님의 옮긴이의 말로 한 방에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단발머리님, 상상이라는 것도 그러나 자기 자본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아요. 자기 경험, 자기 생각, 자기 지식이요. 이게 충분해야 상상도 더 멀리, 넓게 뻗어나가는 것 같아요. 답은, 공부라고 또 생각했어요. 늘 하는 말이지만, 계속해서 뭐가 됐든 읽고 쓰는 게 아주 중요한 자기 자본이 될 것 같아요. 우리 서로 격려하며 함께 나아갑시다!

공쟝쟝 2020-01-28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기본소득넘나 요구하는 저는 이렇게 한명의 동지를 얻은 것 같아 기쁩니다! 핫핫

다락방 2020-01-29 07:57   좋아요 0 | URL
나는 공쟝쟝님의 동지 ♡

공쟝쟝님, 일단 이를 악물고 2장까지는 읽어내봐요. 3장부터는 소리 지르면서 읽게 될 거에요. 후훗.

syo 2020-01-28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을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저는 많이 늦었지만 이번 달을 넘겨서라도 한 챕터 한 챕터 읽으면서 꼼꼼하게 읽으면서 페이퍼 남겨야겠어요.
으쌰으쌰

다락방 2020-01-29 07:58   좋아요 0 | URL
쇼님이 한 챕터 한 챕터 꼼꼼하게 읽는다면 정말이지 좋은 페이퍼가 나올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쇼님 안에는 많은 지식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으니, 이 책과 만난다면 완전 근사한 페이퍼를 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훗.
 
희망이 삶이 될 때 - 아무도 모르는 병에 걸린 스물다섯 젊은 의사의 생존 실화
데이비드 파젠바움 지음, 박종성 옮김 / 더난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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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팀의 쿼터백을 하고있던 '데이비드 파젠바움'은 암으로 엄마를 잃고 암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의대공부에 매진하는데, 2년의 석사과정도 8개월에 끝낼만큼 스스로가 집중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릴적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어떤 일에서 다른 일로 옮기는 일에는 방해가 됐지만, 하나의 일에 집중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 잘해낼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신체적으로 혹은 선천적으로 풋볼을 잘하게끔 태어나진 않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집중력과 노력으로 풋볼팀의 쿼터백을 할 수 있었던 것. 그 집중력이 이제는 의대 공부로 옮아간 것이었다.


의학공부를 하며 이제는 취미로만 풋볼을 하던 그에게 '캐슬만병'이라는 희귀병이 찾아온다. 세계적으로 발병한 환자가 2만명 미만인 '고아병'으로써 이 병에 대해 충분한 치료방법이 나오지 않았던 터라, 그는 캐슬만병의 권위자를 찾아가 치료를 받지만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야만 했다. 온 몸이 부어오르고 의식도 희미해지면서 곧 죽겠구나, 하는 시점에서 그는 간신히 살아나지만 그러나 이 병은 재발하고 그렇게 다섯차례에 걸쳐 그를 죽음앞으로 데리고 간다.


데이비드는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마지막을 충격적으로 그리고 슬프게 기억하고 있다. 병들어 약해졌던 모습. 데이비드는 자신이 병들어 약해지고 신체의 곳곳이 망가져있는 모습을 사랑하는 '케이틀린'에게 보여주기를 거부한다. 병실에 찾아온 그녀를 애써 만나지 않는다. 그는 쿼터백이었던 건강한 자신의 모습을 그녀가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곧 죽어갈 약한 모습으로 그녀가 기억하기를 원치 않았던 거다. 그렇게 두번째 발병에도 그녀를 만나기를 거부하면서 그는 고통스러워 한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삶을 그녀와 함께 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지금의 모습을 보일 수 없다.



내가 처음 이 책, 《희망이 삶이 될 때》를 읽으려고 한 것, 그리고 읽으면서 기대했던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이별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한 사람의 '희망'이었다.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고 내 삶이 끝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인간에게 누구나 죽음은 찾아오는 법. 그 때 내가 과연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박경리'의 토지에서 '용이 아내'가 죽음을 앞두고 발악하던 모습은, 어쩌면 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늘 생각하고 있다. 거부하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나의 죽음. 그렇게 나는 이 책이 나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그리고 죽음으로써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삶에 대한 희망적인 태도 혹은 위로를 줄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데이비드가 약혼녀 케이틀린을 병상에서 만나기를 거부하고 그러나 그녀와 함께 살기를 꿈꾸는 것들이 아마도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었던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나는 '고작 그런것들'만 이 책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모습에게 내 병든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같은 당연한 욕망을 직시하고 공감하게 했지만, 데이비드 파젠바움은 이 책에서 '너 고작 그것만 생각했지? 다른 걸 보여줄게' 라고 하고 있다.



처음 엄마를 잃은 아직 어린 데이비드 파젠바움은, 이런 슬픔을 다른 사람들도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부모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AMF(Ailing Mothers & Fathers 아픈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공동체를 만든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또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자원봉사단체. 이 단체는 점점 커져서 각 대학마다 지점도 생겨나고 뉴스에도 소개가 되며 회원수가 많아진다.



자신의 슬픔을 그저 자신의 슬픔을 돌보는데에만 쓰지 않고 '그렇다면 이렇게 슬픈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텐데' 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그들을 위해 뭔가 해보자' 라고 행동으로 옮기다니. 이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은 분명 많겠지만 어떻게 그들을 위해 뭔가 하자는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가 있을까. 이건 정말 특별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같은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생각조차 못했을텐데.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이 처음 부분에서 약간의 거부반응이 들었다. 데이비드가 너무 '특별'하고 '대단'하게 보여서. 그러니까 이 책을 써내는 작가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좀 더 '잘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나 나는 점점 더 데이비드의 삶의 방향, 방식, 그가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매혹됐다. 얼마전에 기사에서 본 '실패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얼핏 기억나는 것만 떠올려보자면, '매사에 부정적이고', '호기심이 없고', '늘 비슷한 자들과 어울린다'는 게 있었다. 데이비드는 이 모든 것에서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에 놓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앓고 있는 '캐슬만병'에 지지 않고자 한다. 한 번으로 완치가 된 게 아니라 재발하고 다시 또 재발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 병에 대해 잘 알고자 한다. 알려져있는 모든 논문들을 읽고 알려져있는 모든 치료방법을 검토한 후, 치료방법 자체, 치료약 자체가 너무 적다고 생각한 그는, 이에 대해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건 자기 자신을 살리는 방법임과 동시에 이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방법이었다. 그는 그렇게 이 병에 대한 네트워크, CDCN(캐슬만병네트워크)를 만든다. 그는 확실히 이 병에 대해 알고 이 병의 치료법을 찾고 싶었다. 그간 캐슬만병에 대해 관심이 있고 연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 이메일을 뿌린다. 그들과 함께 세미나를 열고 제약회사를 찾아가 자신들을 지원해주기를 요구한다. 그는 계속해서 연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또 캐슬만병이 재발했을 때, 그는 알려진 치료약들로 자기가 낫지 않았던 바, 자기가 그간 논문을 보고 혈액샘플을 보고 생각했던 다른 약을 써보고자 한다. 처음엔 역시 재발했으나 그 다음에 써본 약으로 그는 다섯번째까지 재발한 뒤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방법이 모든 캐슬만병의 환자에게 다 통하는 건 아니었다. 캐슬만병을 앓던 다른 환자들, 그러나 알려진 방법만으로 치료가 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투여하는 약을 투여했을 때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었다. 그러니 또다른 방법이 나와야했다. 그가 하는 연구라는 것도 없던 약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나와있는 약중에 그리고 다른 병을 치료하는 약중에서 여기에도 어떤 효과로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들을 생각해내는 거다. 그가 기존에 캐슬만병에 대해 처방되었던 약이 아닌 새로운 다른 약을 자신에게 직접 투약해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 약 자체가 세상에 없던 약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캐슬만병에 대해 다른 약이 다른 식으로 또 치료의 가능성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병에 걸리고 낫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생각하고 행하라'는 삶의 모토가 생겼음을 밝힌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아팠을 때 더 강하게 확신한 것일뿐, 그의 기본 삶의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다시 실패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언급하자면 매사에 부정적이라 '안되는 핑계'만 찾는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얘기. 그러나 이걸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아무것도 가진 자원이 없는 사람이 생각만 한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전에 생각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게끔 몸의 건강을 신경써서 돌봐야 하고, 생각해서 꺼낼 수 있는 방안이 나오려면 지식도 충분해야 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들었던 사람이 더 많은 것들을 머리에 넣을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생각하는 건, 그런 지식을 전혀 가지지 못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그 양과 질에서도 확실히 다를 것이다.



데이비드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었고 그에 맞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그걸 알고 있다. 그동안 자신의 삶이 여기에서 활용되고자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물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환경이 갖추어져있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의 병으로부터 나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의지와 환경 그리고 운까지. 모든 것들이 다 맞물려서 그는 지금에 이를 수 있었을 것이다. 노력하면 돼, 노력하면 너도 잘 살 수 있어, 라는 건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지만, 그러나 굳건한 의지와 또 차곡차곡 지식과 건강을 쌓을 수 있었던 성실함을 갖추고 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확실히 더 높다.




데이비드의 그런 삶의 태도를 보는 것이 좋았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가 여전히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남들보다 특출나게 더 가진 것들이 있다고 생각되어지고 또 운도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고, 나는 그런 삶의 태도가 무척 좋다. 사람은 보고싶은 대로만 본다고 하는데,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데이비드 파젠바움의 그런 태도를 보고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같은 처지에 놓인다고 하고 또 생각했으면 행한다고 했을 때, 데이비드 처럼 이렇게나 넓고 깊게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의대학생이었고, 여러번의 재발을 겪으며 의대 조교수까지 될만큼 의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나와는 또 접근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고. 그러나 그의 그런 삶의 태도만큼은, 기꺼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데이비드는 처음 자신의 병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도 싫었고 또 케이틀린에게 병든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도 않았지만, 결국 그녀에게 청혼하고 결혼한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낸 약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국내 제목에서는 '희망'을 강조했고 저자도 희망에 대해 얘기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문제 해결에의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케이틀린을 거부한 것은 당시의 내가 상상해낼수 있는 최선의 우선순위 배정 방식에 따른 것이었노라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녀가 나를 생명력 넘치는 건강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일이었다고.
나는 그 상상력이 매우 빈곤한 것이었음을 이제 알고 있다. 우선순위를 배정할 때 최선은 나 자신이 얼마나 약해져 있는지를 그대로 그녀 앞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 P165

중병의 발병과 회복은 내게 ‘정상적‘인 삶이 대단히 비싼 것이라는 놀라운 진실을 가르쳐줬다. 어떻게든 정상에 가까운 삶을 재구축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내가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에 실제로 얼마나 큰 비용이 드는지 절감했다. 이를테면 병원을 오가지 않는 삶 같은 것. - P172

돌아보면 그때까지 내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이 내게 이 병과 맞설 수 있는 준비를 시킨 것 같다. 아직 전문의가 아닌 내겐 질병 치료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도구가 있었다. 강박에 가까운 노동윤리, 근면성이 있었다. AMF 를 설립해봤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뭔가를 구축할 때 필요한 계획성과 완성해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 P212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내 삶은 더 좋은 것이 됐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됐다. 그녀 또한 나와 같은 생각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4차 재발을 겪는 동안 병상을 지키는 케이틀린을 보면서 더이상은 그녀와 함게하는 미래를 꿈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어떤 결단을 내릴 수도 없었다. 나는 너무나 절실하게 케이틀린과 결혼하고 싶었다. 그녀 또한 그걸 원한다는 걸 알고 잇었다. 그렇지만 그건 그녀에게 너무나 큰 부담을 지우는 일이 아닌가? 몇 년전에 처음 사귀기 시작할 때의 남자, 별 걱정거리 없이 자신의 미래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듯 보이는 건강한 쿼터백과 지금 삶을 함께하려고 하는 남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이다. 매일매일 죽음과 싸우는 중병 환자가 바로 나였다. 게다가 성공 보장이 없는 일을 추진하고 있는 과학자이기도 했다. 청혼할 각오가 되어있는 것만큼이나 마음 한쪽에선 그녀와 겨별하고 그녀를 내 곁에서 떼어놓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 P234

그렇게 하면 케이틀린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보다 안정되고 예측 가능하고 편한 삶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었다. - P235

그런데 계시라는 것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계시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갑자기 IQ가 엄청나게 좋아지면서 찾아오는 마법의 순간이 아니다. 계시는 우리가 이미 준비하고 있는 것들,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들로부터 온다. 심지어는 그런 노력들이 있은 지 긴 시간이 흐른 후에 오기도 한다. 그건 마치 풋볼이 강화시켰던 내 인내력과 근육으로 인해 발병 초기 내가 생명을 지킬 수 있었던 것과 같다(그것들이 그런 식으로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시는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우리가 이미 행한 노력들의 결과로서 또는 그 결과물을 들고 나타나는 것이다. - P280

케이틀린은 내 힘과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녀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서 내게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내가 실험실에 나가지 않을 때 우리는 아파트에서 같이 일할 수 있었다.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몇 시간마다 한 번씩 쉬면서 그녀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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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1-1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락방님 드디어 읽으셨군요! 저도 백퍼 공감합니다. 삶의 자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지지 않는 투지, 이런게 도식적인 게 아니라 정말 살아 있는 느낌. 그리고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의 해피엔딩이 저는 너무 좋았어요.

다락방 2020-01-17 13:59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삶에 자세에 대해 감탄했지만 독서란 것에도 다시 한번 감탄했어요. 책 읽는 건 이렇게나 좋구나, 지식적인 면으로도 그렇지만 감동면에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를 볼 수 있는 수단으로 책만큼 좋은 게 어디있단 말인가요. 저자의 삶에 태도는 제가 갖고하 나는 것이라 아주 좋은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훗.

2020-01-17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0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1-18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원래 ‘불굴의 의지‘ 이런 거에 많이 약하거든요. 작심삼일이 안 되는 사람이라서요 ㅠㅠ 근데 소개해 주신 이 책의 이야기는 정말 소설같은데 소설보다 더한 감동을 주네요. 인용해 주신 구절 읽어보니 구구절절 너무 안타깝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하는데,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막 전해지고 그러더라구요.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인생이라면 진정한 의미의 성공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되구요.
잘 읽고 갑니다, 다락방님! 이 페이퍼는 아래에 ‘한나 아렌트‘ 페이퍼 다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페이퍼예요^^

다락방 2020-01-20 10:07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도 처음엔 저자가 너무 특별한 사람인 것 같아서 거부반응 들었다가 점점 저자의 말과 행동에 함께 힘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이런식의 삶에 대한 자세, 삶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는 제가 정말이지 좋아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요. 물론 저자는 여러가지로 많은 것들이 갖춰진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 삶에 대한 태도 만큼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게 아니었나 해요.

단발머리님, 우리 문제 해결에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갑시다. 잘 지내보자구요!!

2020-01-20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0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리모 같은 소리
레나트 클라인 지음, 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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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책 읽기를 거듭할수록 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내가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고 느낀다. 어쨌든 가야할 방향은 그곳이구나,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닿아야 여성의 권리를 위한 것이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도덕 코르셋'을 벗어야 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성애부부의 의뢰인 여성, 난자 공여자, 생모에 이르기까지 세 여성 모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침해와 해를 입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하는 대리모를 없애자는 '레나트 클라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있다. 그러나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많은 여성들이 '불쌍한 게이남성들에게 안된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리모 반대 보다는 규제 쪽의 손을 들어준다.



나는 2014년 대리모 우호 회담의 티타임에서 대리모로 인해 여성과 아동에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동의했지만 착석 종이 울릴 때쯤 곧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엾은 게이 남성들이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해치는 데 대한 긴장감과 겁, 특히 이 경우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 두려움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겁은 많은 사회 정의 쟁점들과 결부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용감하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p.116)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그것이 부적절한 것이라면 안된다고 말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게이에게 향한 것일 경우, '게이 혐오'로 비춰질까 우려되어 차마 안된다는 말을 하지도 못한다. 레나트 클라인은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겁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리모가 해외나 국내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이것이 얼마나 잘 혹은 잘못 진행되는, 확실한 것은 대리모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를 어른의 재산으로 상정해서 사고판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한다는 것이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 프레이저, 대리모 연구 조사 보고서, 2016, p.3)



대리모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시종일관 강한 어조로 얘기해주는 것이 나는 무척 좋았다. 자연스레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 생각도 났다(이 책에서도 몇 번 드워킨을 언급한다). 여성의 몸을, 정신을, 다시말해 여성의 인권 자체를 침해하려는 시도에 대해 안된다는 말을 할 때는 그것이 착할 필요도 없고 부드러울 필요도 없다. 나는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이 강한 어조로 포르노를 반대했듯, 레나트 클라인이 강한 어조로 대리모를 반대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결국 여성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은 이런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강한 목소리가 아닌가 싶다.




대리모라는 부적절한 이름으로 칭해지는 이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 아홉달 동안 아이를 품고 낳는다. 상업적 대리모에서 생모는 의뢰인 부부보다 항상 더 낮은 사호경제적 계층에 위치하고 또한 대게 더 ‘낮은‘ 인종적 위계상에 위치한다. 인종과 계급 문제가 한데 얽힌 것이다. 우리는 (흰 피부의) 최고경영자가 (어두운 피부를 가진)청소부의 아이를 낳아주는 경우를 아직 보지 못했다. - P20

‘선택‘은 내가 (그럴 힘만 있다면) 기꺼이 금지하고 싶은 단어다. 나는 선택이란 말은 두 가지 좋은 것 가운데서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로는 "초콜릿 케이크와 레몬 타르트중에 뭐 먹을래?"가 있다. 이렇게 쓸 때에만 양 선택지의 결과가 모두 끔찍한 상황에서 선택이라는 단어를 즉시 제거할 수 있다. 코카인에 심하게 중독된 상태에서 돈이 절실하고 집이 없으며 지지를 구할 만한 곳도 막막한 가운데 성매매를 계속하기로 ‘선택하는‘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는 가장 어렵고 불운한 결정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을 포함한 당신의 가족이 불임이라는 이유로 당신을 비난하고 따돌리는 가운데 여성을 대리모로 착취하기를 ‘선택하는‘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 역시 가장 어렵고 불운한 결정이다. - P31

우리는 이런 결정을 내린 여성들을 절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다만 여성이 결정을 내리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선택‘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한다. 이 결정 이후 일어나는 일들로 대부분의 여성은 심각한 해를 입게 되지만, 그것으로 탐욕적인 성착취 및 재생산 산업은 반드시 제 배를 채운다. - P32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직 모체로부터만 유전된다. 매들린 비크먼이 말했다시피, "당신이 받는 미토콘드리아는 모체로부터만 올 수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리모에 대입했을 때 이 때의 ‘어머니‘는 난자 ‘공여자‘이고 ‘모체‘는 이 세포를 발달시키는 생모다. 정자 공여자들은 착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당신의 중요성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몸을 부정하고 유전자만 찾아대는 이들을 한 번 더 입다물게 할 증거는 인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리모 연구자 실라 사라바난에 따르면, 고대 인도 아유르베다 문화에서 "출산과 수유는 어머니에서 아이로 핏줄을 이어주는 행위로서, 아이들은 이에 빚을 지고 있는 자신의 삶 내내 어머니를 보살피고 존경을 표해야 한다"(pers.com. June 2017). - P37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으려는 이들이 ‘절박하게‘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며 아이를 향한 그들의 갈망이 ‘자연적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가슴 아픈‘ 현실에 대해서만 끝도 없이 이야기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이가 용인하고 때로 지지하는 것은 아이를 선불 상품으로 상정한 작본일 뿐이고 이를 가질 자격은 그만큼 부유한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 신생아는 말이 없다. 이들의 삶은 제왕절개를 거쳐 ‘인큐베이터‘와 같은 포궁에서 꺼내지고 난 뒤부터 시작되는 빈 서판과도 같다. 이를 어린이로 그리고 어른으로 길러낼 이들은 의뢰인 부부다.
부끄럽게도 이는 성인 혹은 모부 중신적 관점으로, 신생아의 기본 인권을 무시한다. 대리모는 단순히 순진한 신자유주의적 환상일뿐 아니라 누군가의 배아를 임신하는 문제를 ‘일‘로 바라보는 것이다. - P49

대리모가 해외나 국내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이것이 얼마나 잘 혹은 잘못 진행되는, 확실한 것은 대리모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를 어른의 재산으로 상정해서 사고판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한다는 것이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 프레이저, 대리모 연구 조사 보고서, 2016, p.3) - P52

"내가 나를 위해서 이걸 선택하겠는가? 당신이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그저 부끄러움을 모르는 수표 덩어리라면 분명 당신도 모욕적이라 느낄 것이다." (대리모를 통해 출생한 ‘제시카 컨‘, 뉴욕포스트) - P55

"그렇다. 나는 화가 났고,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이는 수치이며 끔찍한 경험이다. 우리 모두에게 엄청나게 더러운 짓이다. 자신을 정확히 어딘가로 보내버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 것 같나? 당신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의견을 갖게 되리라는 걸 알아야 한다." (대리모를 통해 출생한 ‘브라이언‘) - P55

‘선택‘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사회 전체가 자신의 안녕을 해쳐서라도 타인을 우선시하는 여성을 대우한다면 이것을 ‘선택‘, 자유 의지, ‘행위자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 P70

모든 종류의 경제적, 사회적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권리가 박탈되고 문맹인 수많은 여성의 어깨에 얹힌 빈곤이 덜어져야 하지만 이는 대리모나 성매매와 같이 여성의 신체를 팔거나 대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아기의 인신매매 혹은 판매가 소수의 여성과 그 가족을 빈곤으로부터 끌어낼 윤리적인 방법이 되어서도 안 된다. - P74

대리모가 윤리적일 수 있다는 주장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임신 내내 관여하는 우생학의 존재다.
영국 맨체스터의 프리메이사 헬스 사에서 발명한 IONA테스트 혹은 스위스 게노마 사가 개발한 트랜퀼리티 같은 비침습적 산전 검사(NIPTs)의 활용이 늘어나면서부터, 모든 임신부는 다운증후군이나 다른 염색체 이상뿐 아니라 태아 성 감별 검사도 함께 받았다. 산전 검사는 임신 10주까지 가능하다. 유전자 이상이 감지되었을 때 진행되는 유일한 ‘해법‘은 임신중단인데, 국제 메타 분석이 경고하기로 이 중 92.2퍼센트가 여아를 대상으로 ‘선택‘된다(Achtelik 2015, p.58)
심지어 대리모가 되는 데 동의한 여성들은 이 문제에서 ‘선택‘을 더 적게 한다. 아이 구입자들은 ‘완벽한‘ 아이를 원하고, 이미 정자와 ‘공여된‘혹은 구입된 난자들은 유전자 결함을 진단받는다(허용된 곳에서는 성별도). - P84

그리고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어 수정란이 만들어지면 배아로부터 세포 하나를 떼어내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D)을 시행해 ‘품질 검사‘를 실시한다. ‘결함 없는‘ 배아만 대리모의 포궁으로 주입될 수 있다. 산전 검사나 초음파는 몇 번이고 계속되고 임신중단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면 임신부는 이에 따라아먄 한다. 계약이 이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강압이라고 부른다. 대리모를 윤리적이라고 부를 여지를 박탈하기 위함이다. - P85

대리모를 통해서 태어난 이들이 자신의 연원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가 연구된 바 없다. - P105

어떤 부유한 개인들이 어째서 다른 가난한 이들-그리고 오로지 여성들-에게 사랑이나 돈을 이유로 아이를 기르고 낳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느냐는 것이다. - P115

나는 2014년 대리모 우호 회담의 티타임에서 대리모로 인해 여성과 아동에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동의했지만 착석 종이 울릴 때쯤 곧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엾은 게이 남성들이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해치는 데 대한 긴장감과 겁, 특히 이 경우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 두려움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겁은 많은 사회 정의 쟁점들과 결부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용감하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 P116

대리모 폐지를 위한 국제협약이라는 아이디어는 정말이지 신나는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전 세계 페미니스트 개인과 집단이 대리모라는 폭력으로부터 여성과 아이의 인권과 존엄을 지키고자 함께 움직이리라는 데 엄청난 희망을 갖는다. - P120

대리모였던 알레한드라 무뇨스와 퍼트리샤 포스터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번식자 여성이라는 계급이 있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여자아이에게 최선인가? 이는 여자아이의 자존감에 얼마큼 해로운가? 만약 해롭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인가? (…) 재생산을 산업화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자본주의라는 물레방아는 정말로 모든 것을 가루 낼 수 있는 것인가? 무엇을 팔고 혹은 살 수 있는지에 어떤 제한이란 것이 과연 존재는 하는가?" - P139

대리모는 아이를 사랑 혹은 돈을 이유로 그를 기른 생모로부터 떼어놓는 행위이며 어떤 ‘동의‘나 ‘선택‘을 들먹인다 해도 이것은 여성의 신체완전성에 대한 침해다. - P155

우리는 법적 분쟁이나 의료 비용을 치르는 과정에서 아기 구입자들이 항상 대리모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P168

(로마에서 열린 국제)회의 때 읽은 결의안에서 서명인들은 다음을 지적했다.


"우리는 ‘삶이라는 경이로운 선물‘과 개인의 자유라는 수사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자 한다. 대리모는 사실상 희생과 유기를 만들어내며 어머니와 아이를 비인간화한다. 모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여성의 신체에 통제를 가하고 그 결과로서 아이의 생명을 사적 재산으로 만드는 개인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로 이어질 수 없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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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0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불쌍하기에 다른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 그들 몸의 일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 가능하군요.
더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 뿐이에요 ㅠㅠ

다락방 2020-01-08 16:25   좋아요 0 | URL
‘내가 강하게 원하기 때문에‘, ‘저사람이 원하기 때문에‘로 여성의 몸을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 끔찍하죠. 그러면서 그것이 대리모 여성들의 ‘선택‘이었다고 말해요. ‘선택‘이란 단어는 여기에서 저자가 지적했듯이 이럴 때 쓰는 용어가 아닌데 말예요. 이 ‘선택‘이란 단어 때문에 [페이드 포]도 생각났어요. 우리의 처지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결정하게 된 것에 과연 ‘선택‘이란 단어가 적합한것일까요?

역시나 좋은 독서였습니다, 단발머리님.

Jeanne_Hebuterne 2020-01-12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원하는 게이 남성들은 가엽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자들은 가엽지 않다는 말인지, 제발 돈으로 이것저것 다 사재기 좀 그만 했음 좋겠어요.

다락방 2020-01-13 09:20   좋아요 0 | URL
‘게이 혐오‘란 말을 듣기 싫어서 그러는 것도 큰 것 같아요. 혐오자 낙인 찍히기 싫어 여성의 몸을 팔아대는 꼴이죠. 아 정말 너무 끔찍합니다 ㅠㅠ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
베키 매스터먼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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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59세의 여자 '브리짓'이 주인공. 그녀는 FBI요원으로 활동하다 은퇴했고, 재혼남 남편에게는 자신이 조직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숨겼다. 범죄자들을 많이 만나는 그녀의 상황(그녀의 세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前)남편이 떠났기에 지금의 남편도 그렇게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채 실제 자신이 했던 일을 감추었던 것. 상처는 깊었고 사랑을 잃을까 두려웠으나,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늘상 함께하는 사람에게도 솔직하게 보일 수 없다는 것은, 둘 모두에게 고통이다.



그녀를 닮고 싶고 그녀의 뒤를 잇고 싶었던 현재 FBI 요원 '콜먼'은 FBI가 잡아들인 연쇄살인범의 자백이 거짓일거라 의심하고, 이에 이미 은퇴한 브리짓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브리짓과 콜먼 모두 연쇄살인범을 의심하고 증거를 찾아내지만, 그녀들 주변의 모든 남자들, 똑똑하고 경력도 있고 신뢰도 가졌던 그 모든 남자들은 누구도 그녀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들은 위험한 상황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소설의 첫시작부터가 59세의 브리짓이 젊은 남자 범죄자와 싸우는 장면이다. 아직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 전, 마구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브리짓, 싸워서 이겨버렷! 그리고 이 싸움은 내 기대이상으로 브리짓의 승리가 된다.




"경찰 가족이었어요. 아빠와 남동생은 시 경찰이었고, 여동생은 CIA에 있었죠. 여동생인 애리얼과 나도 어렸을 때는 바비 인형을 잘 갖고 놀았는데, 파티에 가는 대신 켄을 약물 중독 혐의로 체포하곤 했어요."
콜먼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 이야기를 농담으로 들은 듯했다. - P198

"…최대의 선은 진실을 감추는 것이라던데요."
"재미있네요. 맥스 비어봄을 잘 아나 봐요." - P312

꼴이 더 우스워지기 전에 마침내 택시가 도착했고 두 사람 모두 내가 택시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기사는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호텔까지 가는 동안 지나는 모든 모퉁이를 헤아리며, 부디 택시 기사가 암살범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정말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으로 다소 슬프졌다. 기사가 우회전을 해야 할 때에 하지 않을 경우 곧장 택시에서 뛰어 내릴 요량으로 나는 차 문의 손잡이를 점검했다.
기사는 무사히 나를 호텔 앞에 내려주었고 난 누구의 도움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 P317

전날 밤에 쏟아낸 자기 연민의 잔여물 위를 뒹굴며 뷔페에서 가져온 것을 먹는 동안 나는 한 주의 날씨를 알려주는 날씨 채널을 켰다(더움, 더움, 더움, 비, 비, 더움, 비).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내 삶이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것일지 생각했다. - P319

"데이비드 바이스가 당신에 대해 또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당신을 만나고 난 뒤에는 자신도 모르게 꿈을 꾸게 된다고 하더군." - P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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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19-12-13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았어요~ 브리짓과 그녀의 남편이 책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아보였구요. 저희 남편도 책은 읽는데 저랑 선호하는 분야가 달라서 같이 책 이야기 하는 일은 없고, 집에 쌓이는 책만 늘어갈 뿐이네요. ㅎ 연애할 때는 하루키도 좋아한댔으면서..

다락방 2019-12-15 12:00   좋아요 1 | URL
훌쩍 나이를 먹은 후에도 좋은 사람, 다정한 사람을 만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전 참 좋아보이더라고요. 게다가 브리짓은 직업도 직업이지만 스스로 강한 여자라는 것도 너무 좋았고요. 누군가에게 꿈꾸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 닮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건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일인데, 그런 강한 여자라는 게 참 좋았어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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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기다림'이란 화두에 끌린다. 길고 긴 기다림과 목적지에 닿겠다는 그 마음은 언제나 나를 건드린다. 그런 면에서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좋았다. SF 라는 장르를 빌어서도 충분히 경력단절 여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걸 드러내준 <관내분실>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우주적 상상력이 풍부한 따뜻한 작가의 글이었다. 그 따뜻함은 최은영의 소설과 결을 같이한다. 그러나,


특별할 게 없다. 앞에서부터 내리 세 편의 단편을 읽노라니 모두 주는 느낌이 비슷해, 아 다른 단편 역시 그러하겠구나,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단편들을 모아둔 이 단편집 한 권의 분위기는 우주적 상상력이 풍부한 따뜻한 글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문목하' 작가도 동시에 떠올렸는데, 내게는 김초엽 보다는 문목하, 로 정리될 수 있겠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는 북마크를 하나도 붙이지 않았다. 문장면에서는 인상적인 부분이 전혀 없었다는 말.



어찌되었든 나는 SF 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국내 여자 작가들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문목하,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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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9-12-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딱 다락방님이 느낀 거의 그대로여서 중반까지 읽고 덮어둔 상태입니다. 큰 재미를 못 본지라 이 책에 대한 다수의 열광이 살짝 갸우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sf 를 몰라서 그른가 싶기도 하고 그랬음요.

다락방 2019-12-08 19:55   좋아요 0 | URL
sf를 모르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이야기의 진행,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는 중에 책 읽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의 감상도 저랑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저도 좀 갸우뚱 했습니다. 치니님은 중간에 덮으셨네요. ㅎㅎ 관내분실은 읽으세요 치니님. 그건 좋아요!

blanca 2020-01-2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지금 이 책 이북 결제 직전인데 읽을까요, 말까요. 냉정하게 얘기해 주세요.

다락방 2020-01-20 17:32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은 읽으셔도 좋을겁니다. 아마 근사한 리뷰를 써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랑 다르게 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