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반노동의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
케이시 윅스 지음, 제현주 옮김 / 동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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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케이시 윅스'의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다 읽었다. 서문부터 어려워 과연 내가 이번에도 완독할 수 있을것인가 걱정했는데, 같이읽는 멤버중 2등으로 완독할 수 있었던 걸 보면(1등인 블랙겟타님, 축하합니다!!), 역시 나는 짱인 것 같다. (네?)


서문도 어렵고 1장 2장도 어려웠지만 기본소득이 나오는 부분부터는 너무 재미있어서 짜릿했다. 기본소득에 대해서 사실 크게 관심없었는데 케이시 윅스가 말하는 기본소득을 읽노라니 너무 재미있는거야. 아니, 이렇게 좋은 기본소득을 왜 안하는거지? 그러나 그렇게 흥미롭게 읽었으면서도 '그런데 기본소득이 정말 궁극적인 답인가'하고 혼자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나는 노동윤리를 말끔히 내다버리지 못하고 있는건가, 스스로 돌이켜보고 있다. 어쩌면 노동윤리에 갇혀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에 관심이 없었던걸지도 모르고. 



기본소득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기본소득은 개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가족이나 가구 구성, 다른 소득 여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되는 소득이다.(van Parijs 1992, 3) 기본소득은 소득이 그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게끔 바닥 수준을 정립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많은 이들이 임금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더라도 지금의 조건과 상태에 덜 의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p.217)



기본소득은 임금관계로부터 분리되고 거리를 둘 수단을 획득할 방법으로서 요구될 수 있다. 그 거리는 다시 삶의 질을 위해 더 이상 일에 그토록 완전히 쉼 없이 의존하지 않아도 될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이미 원하는 것을 하고자, 또는 원하는 존재가 되고자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기본소득은 다른 것을 원하고 행하고 다른 존재가 되는 삶, 다른 종류의 삶을 고려하고 실험할 수 있게 허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27)




기본소득 요구는 더 많은 돈과 시간, 자유를 향한 욕망의 자극으로서, 가사임금 요구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선언에 접근하는 다른 많은 방식들과 차별화된다. 기본소득 요구는 검약과 저축의 윤리, 양보의 정치, 희생의 경제학을 설교하는 대신, 필요와 욕망의 확대를 촉구한다. 일을 칭송하고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정치적 분석과 전략의 좀 더 익숙한 스타일들과는 달리 기본소득 요구는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적게 원해야 한다는 통상적 지침을 거부한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원하고 요구해야 하는 것의 합리적 한계로 그어져 있는 것에 도전하며 과잉으로 나아간다. 기본소득 요구는 개인의 생산과 소비 사이의 연결 고리에 반기를 들고, 임금노동만이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누리도록 하는 합당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거부함으로써 일에 더 이상 종속되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p.228)




가사임금은 탈자연화의 효과를 일으켰을지는 모르지만, 가사임금에 대한 주부들의 요구는 이 노동이 가정 내에서 행해지는 여성의 일이라는 점을 다시 확고하게 할 위협이 되었다.

기본소득 요구는 가정 내 특정 젠더 구성원을 잠재적 수혜자로 상정하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관점이자 자극으로서 훨씬 나은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기본소득 요구는 현실화된 젠더 범주를 재생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혜택이 특정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p.232)





케이시 윅스는 이 기본소득 요구를 가져오면서 페미니즘의 유명한 저자들, 가사노동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발언했던 '베티 프리단'과 '앨리 훅실드'의 저서를 가져와 비판한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고 요구한 것들에 대한 의미는 충분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과 가사임금의 한계를 비판한 것. 그러면서 기본소득 요구를 가져오는 거다. 가사노동과 그에 대한 임금을 책정하는 것은 젠더를 고정화시키고 이상적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 그러나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이것들로부터 더 한걸음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은 너무 재미있어서 열심히 밑줄 그으며 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은 앞으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다른 책들을 찾아 읽어봐도 아주 좋을 것 같다.


제 5장 유토피아 부분 읽으면서는 다시 좀 어려워저 헤롱헤롱 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요지만은 알 수 잇었다. 유토피아를 차마 우리가 갈 수 없는 이상향이라 생각하고 비난하거나 무시하는대신, 우리가 그곳에 다다를 수 있음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 결국 상상해야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건 작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여자는 인질이다》의 결론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상상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곳에 대한 열망이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곳에 다다를 수 있겠는가. 얼마전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꼽았던 '부정적인 성격' 역시 통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우리가 싸울 수도 있음을, 싸워서 이길 수도 있음을,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상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젊은 여성들이 주장하는 탈코르셋도 그 상상의 연장선에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라면 으레 화장해야지, 예쁘게 보여야지, 를 체화하고 살고 있다가 '아니, 우리가 왜 그래야하지?' 로 생각이 뻗어갔고, 그 생각은 결국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의 사회적 성을 지울 수 있는 도약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상상이라는 것도 내가 얼만큼의 개인적 자원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질 터. 언제나 어디서나 통하고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은 여기에서도 답이 된다. 더 많이 아는 사람, 더 많이 본 사람, 더 많이 들은 사람, 더 많이 경험한 사람이 더 많이 더 넒게 상상할 수 있다.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으면서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부정적 생각보다는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면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확실히 더 나은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이 책은 옮긴이의 말까지 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느낌이다. 유토피아 부분에서 막연하지만 확 정리되지 않았던 부분을 옮긴이 제현주가 제대로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다른 세상은 가능할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다른 세상이 가능한 듯이 요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존재할 때만, 비로소 다른 세상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나는 이 책을 옮기면서 그렇게 믿게 되었다. -옮긴이의 말, p.363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믿게 되었다.








노동 거부는 단순히 노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가장 고결한 소명이자 도덕적 의무로 보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것, 노동을 사회적 삶의 불가피한 중심이자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심 없는 소비˝를 포함한 다른 모든 추구보다 일을 우위에 두는 이들-좌파에 있는 그런 이들까지-의 금욕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노동 거부의 당면한 목표는 두 가지로 제시되는데, 하나는 노동 감소로 노동시간을 줄인다는 의미이자 노동의 사회적 중요성을 줄인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적 조직화 방식을 새로운 협업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노동 거부는 착취당화는 노동, 소외되는 노동을 거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실성과 합리성의 원칙으로서의 노동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Baudrillard 1975, 141) 이런 면에서 ˝해방된 노동은 곧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Negri 1991, 165)- P161

˝노동 거부는 활동을 소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지배에서 벗어난 인간 활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Berardi 2009, 60)- P167

뮤어헤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두 가지 측면, 즉 노동의 내재적 가치를 긍정하는 것과 그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어긋나 버릴 수 있다고 인정한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뮤어헤드는 세 번째 요소를 더한다. 일이, 심지어 좋은 일이라도, 그 자리에 붙들어 둠으로써 삶 전체를 잠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 P174

더 나은 일에 대한 요구는 더 적은 일에 대한 주장을 손쉽게 압도해 버린다. 그리하여 내가 짚어 두려는 두 번째 주장은, 노동윤리의 수정된 버전을 내놓기보다는 이 윤리를 비판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더 적은 일에 대한 투쟁에 성공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P175

가족 제도는 임금을 버는 이들의 임금을 벌지 않는 이들에 대한 사회관계로서(12) ˝실업자, 노인, 병자, 아이, 그리고 주부들˝을 포함하는 포괄적 범주이다.(James 1976, 7)이런 면에서 가족은 분배 기제로 작동하는데, 가족을 통해 임금이 임금을 벌지 않는 자, 임금을 적게 버는 자, 임금을 아직 못 버는 자, 임금을 더 이상 벌지 않는 자로 가닿는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은 사회적 재생산의 사유화된 장치로서 기능한다. 가족이 이처럼 기능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개인들은 가정 내에서 생산되는 재화나 서비스를 상품화된 등가물을 통해 확보하거나 임금노동을 하고도 시간이 충분해 그런 재화나 서비스를 직접 생산할 것이다. 이 경우 임금은 더 높아야 하고 노동시간은 더 짧아야 할 것이다. - P192

이렇게 가족은 임금 시스템에 계속해서 결정적 요소로 기능하지만 여전히 숨어 있는 파트너로 남아 있으며, 가족 제도를 자연화하고 낭만화하며 사유화하고 탈정치화하는 모든 담론들이 그 역할을 은폐한다.- P193

델라 코스타는 가족을 임금 시스템과 연결 지어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이루는 한 축으로 설명함으로써(Dalla Costa and James 1973, 33)가족 제도가 노동 가격 인하를 흡수하며, 저렴하고 더 유연한 여성화된 노동 형태를 제공하도록 도울 뿐 아니라, 국가와 자본에게 사회적 재생산 비용의 책임을 상당부분 면제해 주는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P193

임금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권력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요소 중 하나이자, 그 조건을 놓고 벌어지는 투쟁의 가장 구체적인 대상 중 하나다. 가사임금을 옹호하는 두 학자 니콜 콕스Nicole Cox와 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가 설명하다시피 ˝임금에는 언제나 두 편이 있다. 자본의 편은 임금을 올릴 때마다 생산성이 올라가게끔 하려고 노력하면서 노동계급을 조종하는 데 임금을 사용한다. 노동계급의 편은 더 많은 돈, 더 많은 권력, 더 적은 일을 위해 점점 열띤 투쟁을 벌인다.˝(1976.11) 임금은 자본의 축적, 그리고 노동자가 잠재적으로 지닌 자율적 필요와 열망의 확대 양쪽을 모두 촉진할 수 있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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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1-2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1장까지 읽었어요. 서문은 정말 어려워서 읽은 부분 다시 읽기를 몇번이나... 이론서를 오랫만에 읽으니 책 읽기의 색다른 경험이네요.

다락방 2020-01-29 07:55   좋아요 0 | URL
트윗 보니까 2장까지 다 읽으셨던데, 유부만두님. 이 책은 3장,4장이 특히나 재미있어요. 막 빨려들어가서 읽게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요. 밑줄 그을 준비도 하셔야 할거에요.

전 너무 짜릿했어요. 선배 학자들의 말을 가져와서 인용을 하고 또 어떤 건 비판을 하고 그 위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는게요. 너무 짜릿해서 더 많은 학자들이 말하고 연구하고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무쪼록 기쁘게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5장은 어렵지만.....킁킁.

단발머리 2020-01-28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제일 앞서가다가 이제부터 서두르고 있는 단발머리입니다. 저도 <제5장>이 저한테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답은 기본소득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새롭게 더 배워갔으면 해요.

상상한다는 것에 대한 문단 특히 좋아요. 여자가 재산을 갖는다는 것, 가정을 가진 상태에서 자신의 일을 계속한다는 것, 혼자 여행한다는 것. 모두 예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더 나은 세상을 같이 상상해 봐요. 수고했어요, 다락방님! (찡긋)

다락방 2020-01-29 07:57   좋아요 0 | URL
5장 때문에 당황했네요. 선명하게 잡히진 않았는데 응 뭔지 알겠다, 이러면서 읽다가, 제현주 님의 옮긴이의 말로 한 방에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단발머리님, 상상이라는 것도 그러나 자기 자본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아요. 자기 경험, 자기 생각, 자기 지식이요. 이게 충분해야 상상도 더 멀리, 넓게 뻗어나가는 것 같아요. 답은, 공부라고 또 생각했어요. 늘 하는 말이지만, 계속해서 뭐가 됐든 읽고 쓰는 게 아주 중요한 자기 자본이 될 것 같아요. 우리 서로 격려하며 함께 나아갑시다!

공쟝쟝 2020-01-28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기본소득넘나 요구하는 저는 이렇게 한명의 동지를 얻은 것 같아 기쁩니다! 핫핫

다락방 2020-01-29 07:57   좋아요 0 | URL
나는 공쟝쟝님의 동지 ♡

공쟝쟝님, 일단 이를 악물고 2장까지는 읽어내봐요. 3장부터는 소리 지르면서 읽게 될 거에요. 후훗.

syo 2020-01-28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을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저는 많이 늦었지만 이번 달을 넘겨서라도 한 챕터 한 챕터 읽으면서 꼼꼼하게 읽으면서 페이퍼 남겨야겠어요.
으쌰으쌰

다락방 2020-01-29 07:58   좋아요 0 | URL
쇼님이 한 챕터 한 챕터 꼼꼼하게 읽는다면 정말이지 좋은 페이퍼가 나올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쇼님 안에는 많은 지식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으니, 이 책과 만난다면 완전 근사한 페이퍼를 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