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모 같은 소리
레나트 클라인 지음, 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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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책 읽기를 거듭할수록 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내가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고 느낀다. 어쨌든 가야할 방향은 그곳이구나,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닿아야 여성의 권리를 위한 것이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도덕 코르셋'을 벗어야 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성애부부의 의뢰인 여성, 난자 공여자, 생모에 이르기까지 세 여성 모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침해와 해를 입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하는 대리모를 없애자는 '레나트 클라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있다. 그러나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많은 여성들이 '불쌍한 게이남성들에게 안된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리모 반대 보다는 규제 쪽의 손을 들어준다.



나는 2014년 대리모 우호 회담의 티타임에서 대리모로 인해 여성과 아동에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동의했지만 착석 종이 울릴 때쯤 곧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엾은 게이 남성들이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해치는 데 대한 긴장감과 겁, 특히 이 경우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 두려움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겁은 많은 사회 정의 쟁점들과 결부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용감하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p.116)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그것이 부적절한 것이라면 안된다고 말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게이에게 향한 것일 경우, '게이 혐오'로 비춰질까 우려되어 차마 안된다는 말을 하지도 못한다. 레나트 클라인은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겁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리모가 해외나 국내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이것이 얼마나 잘 혹은 잘못 진행되는, 확실한 것은 대리모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를 어른의 재산으로 상정해서 사고판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한다는 것이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 프레이저, 대리모 연구 조사 보고서, 2016, p.3)



대리모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시종일관 강한 어조로 얘기해주는 것이 나는 무척 좋았다. 자연스레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 생각도 났다(이 책에서도 몇 번 드워킨을 언급한다). 여성의 몸을, 정신을, 다시말해 여성의 인권 자체를 침해하려는 시도에 대해 안된다는 말을 할 때는 그것이 착할 필요도 없고 부드러울 필요도 없다. 나는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이 강한 어조로 포르노를 반대했듯, 레나트 클라인이 강한 어조로 대리모를 반대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결국 여성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은 이런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강한 목소리가 아닌가 싶다.




대리모라는 부적절한 이름으로 칭해지는 이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 아홉달 동안 아이를 품고 낳는다. 상업적 대리모에서 생모는 의뢰인 부부보다 항상 더 낮은 사호경제적 계층에 위치하고 또한 대게 더 ‘낮은‘ 인종적 위계상에 위치한다. 인종과 계급 문제가 한데 얽힌 것이다. 우리는 (흰 피부의) 최고경영자가 (어두운 피부를 가진)청소부의 아이를 낳아주는 경우를 아직 보지 못했다. - P20

‘선택‘은 내가 (그럴 힘만 있다면) 기꺼이 금지하고 싶은 단어다. 나는 선택이란 말은 두 가지 좋은 것 가운데서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로는 "초콜릿 케이크와 레몬 타르트중에 뭐 먹을래?"가 있다. 이렇게 쓸 때에만 양 선택지의 결과가 모두 끔찍한 상황에서 선택이라는 단어를 즉시 제거할 수 있다. 코카인에 심하게 중독된 상태에서 돈이 절실하고 집이 없으며 지지를 구할 만한 곳도 막막한 가운데 성매매를 계속하기로 ‘선택하는‘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는 가장 어렵고 불운한 결정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을 포함한 당신의 가족이 불임이라는 이유로 당신을 비난하고 따돌리는 가운데 여성을 대리모로 착취하기를 ‘선택하는‘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 역시 가장 어렵고 불운한 결정이다. - P31

우리는 이런 결정을 내린 여성들을 절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다만 여성이 결정을 내리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선택‘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한다. 이 결정 이후 일어나는 일들로 대부분의 여성은 심각한 해를 입게 되지만, 그것으로 탐욕적인 성착취 및 재생산 산업은 반드시 제 배를 채운다. - P32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직 모체로부터만 유전된다. 매들린 비크먼이 말했다시피, "당신이 받는 미토콘드리아는 모체로부터만 올 수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리모에 대입했을 때 이 때의 ‘어머니‘는 난자 ‘공여자‘이고 ‘모체‘는 이 세포를 발달시키는 생모다. 정자 공여자들은 착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당신의 중요성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몸을 부정하고 유전자만 찾아대는 이들을 한 번 더 입다물게 할 증거는 인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리모 연구자 실라 사라바난에 따르면, 고대 인도 아유르베다 문화에서 "출산과 수유는 어머니에서 아이로 핏줄을 이어주는 행위로서, 아이들은 이에 빚을 지고 있는 자신의 삶 내내 어머니를 보살피고 존경을 표해야 한다"(pers.com. June 2017). - P37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으려는 이들이 ‘절박하게‘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며 아이를 향한 그들의 갈망이 ‘자연적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가슴 아픈‘ 현실에 대해서만 끝도 없이 이야기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이가 용인하고 때로 지지하는 것은 아이를 선불 상품으로 상정한 작본일 뿐이고 이를 가질 자격은 그만큼 부유한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 신생아는 말이 없다. 이들의 삶은 제왕절개를 거쳐 ‘인큐베이터‘와 같은 포궁에서 꺼내지고 난 뒤부터 시작되는 빈 서판과도 같다. 이를 어린이로 그리고 어른으로 길러낼 이들은 의뢰인 부부다.
부끄럽게도 이는 성인 혹은 모부 중신적 관점으로, 신생아의 기본 인권을 무시한다. 대리모는 단순히 순진한 신자유주의적 환상일뿐 아니라 누군가의 배아를 임신하는 문제를 ‘일‘로 바라보는 것이다. - P49

대리모가 해외나 국내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이것이 얼마나 잘 혹은 잘못 진행되는, 확실한 것은 대리모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를 어른의 재산으로 상정해서 사고판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한다는 것이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 프레이저, 대리모 연구 조사 보고서, 2016, p.3) - P52

"내가 나를 위해서 이걸 선택하겠는가? 당신이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그저 부끄러움을 모르는 수표 덩어리라면 분명 당신도 모욕적이라 느낄 것이다." (대리모를 통해 출생한 ‘제시카 컨‘, 뉴욕포스트) - P55

"그렇다. 나는 화가 났고,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이는 수치이며 끔찍한 경험이다. 우리 모두에게 엄청나게 더러운 짓이다. 자신을 정확히 어딘가로 보내버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 것 같나? 당신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의견을 갖게 되리라는 걸 알아야 한다." (대리모를 통해 출생한 ‘브라이언‘) - P55

‘선택‘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사회 전체가 자신의 안녕을 해쳐서라도 타인을 우선시하는 여성을 대우한다면 이것을 ‘선택‘, 자유 의지, ‘행위자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 P70

모든 종류의 경제적, 사회적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권리가 박탈되고 문맹인 수많은 여성의 어깨에 얹힌 빈곤이 덜어져야 하지만 이는 대리모나 성매매와 같이 여성의 신체를 팔거나 대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아기의 인신매매 혹은 판매가 소수의 여성과 그 가족을 빈곤으로부터 끌어낼 윤리적인 방법이 되어서도 안 된다. - P74

대리모가 윤리적일 수 있다는 주장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임신 내내 관여하는 우생학의 존재다.
영국 맨체스터의 프리메이사 헬스 사에서 발명한 IONA테스트 혹은 스위스 게노마 사가 개발한 트랜퀼리티 같은 비침습적 산전 검사(NIPTs)의 활용이 늘어나면서부터, 모든 임신부는 다운증후군이나 다른 염색체 이상뿐 아니라 태아 성 감별 검사도 함께 받았다. 산전 검사는 임신 10주까지 가능하다. 유전자 이상이 감지되었을 때 진행되는 유일한 ‘해법‘은 임신중단인데, 국제 메타 분석이 경고하기로 이 중 92.2퍼센트가 여아를 대상으로 ‘선택‘된다(Achtelik 2015, p.58)
심지어 대리모가 되는 데 동의한 여성들은 이 문제에서 ‘선택‘을 더 적게 한다. 아이 구입자들은 ‘완벽한‘ 아이를 원하고, 이미 정자와 ‘공여된‘혹은 구입된 난자들은 유전자 결함을 진단받는다(허용된 곳에서는 성별도). - P84

그리고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어 수정란이 만들어지면 배아로부터 세포 하나를 떼어내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D)을 시행해 ‘품질 검사‘를 실시한다. ‘결함 없는‘ 배아만 대리모의 포궁으로 주입될 수 있다. 산전 검사나 초음파는 몇 번이고 계속되고 임신중단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면 임신부는 이에 따라아먄 한다. 계약이 이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강압이라고 부른다. 대리모를 윤리적이라고 부를 여지를 박탈하기 위함이다. - P85

대리모를 통해서 태어난 이들이 자신의 연원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가 연구된 바 없다. - P105

어떤 부유한 개인들이 어째서 다른 가난한 이들-그리고 오로지 여성들-에게 사랑이나 돈을 이유로 아이를 기르고 낳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느냐는 것이다. - P115

나는 2014년 대리모 우호 회담의 티타임에서 대리모로 인해 여성과 아동에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동의했지만 착석 종이 울릴 때쯤 곧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엾은 게이 남성들이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해치는 데 대한 긴장감과 겁, 특히 이 경우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 두려움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겁은 많은 사회 정의 쟁점들과 결부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용감하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 P116

대리모 폐지를 위한 국제협약이라는 아이디어는 정말이지 신나는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전 세계 페미니스트 개인과 집단이 대리모라는 폭력으로부터 여성과 아이의 인권과 존엄을 지키고자 함께 움직이리라는 데 엄청난 희망을 갖는다. - P120

대리모였던 알레한드라 무뇨스와 퍼트리샤 포스터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번식자 여성이라는 계급이 있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여자아이에게 최선인가? 이는 여자아이의 자존감에 얼마큼 해로운가? 만약 해롭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인가? (…) 재생산을 산업화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자본주의라는 물레방아는 정말로 모든 것을 가루 낼 수 있는 것인가? 무엇을 팔고 혹은 살 수 있는지에 어떤 제한이란 것이 과연 존재는 하는가?" - P139

대리모는 아이를 사랑 혹은 돈을 이유로 그를 기른 생모로부터 떼어놓는 행위이며 어떤 ‘동의‘나 ‘선택‘을 들먹인다 해도 이것은 여성의 신체완전성에 대한 침해다. - P155

우리는 법적 분쟁이나 의료 비용을 치르는 과정에서 아기 구입자들이 항상 대리모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P168

(로마에서 열린 국제)회의 때 읽은 결의안에서 서명인들은 다음을 지적했다.


"우리는 ‘삶이라는 경이로운 선물‘과 개인의 자유라는 수사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자 한다. 대리모는 사실상 희생과 유기를 만들어내며 어머니와 아이를 비인간화한다. 모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여성의 신체에 통제를 가하고 그 결과로서 아이의 생명을 사적 재산으로 만드는 개인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로 이어질 수 없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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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0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불쌍하기에 다른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 그들 몸의 일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 가능하군요.
더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 뿐이에요 ㅠㅠ

다락방 2020-01-08 16:25   좋아요 0 | URL
‘내가 강하게 원하기 때문에‘, ‘저사람이 원하기 때문에‘로 여성의 몸을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 끔찍하죠. 그러면서 그것이 대리모 여성들의 ‘선택‘이었다고 말해요. ‘선택‘이란 단어는 여기에서 저자가 지적했듯이 이럴 때 쓰는 용어가 아닌데 말예요. 이 ‘선택‘이란 단어 때문에 [페이드 포]도 생각났어요. 우리의 처지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결정하게 된 것에 과연 ‘선택‘이란 단어가 적합한것일까요?

역시나 좋은 독서였습니다, 단발머리님.

Jeanne_Hebuterne 2020-01-12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원하는 게이 남성들은 가엽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자들은 가엽지 않다는 말인지, 제발 돈으로 이것저것 다 사재기 좀 그만 했음 좋겠어요.

다락방 2020-01-13 09:20   좋아요 0 | URL
‘게이 혐오‘란 말을 듣기 싫어서 그러는 것도 큰 것 같아요. 혐오자 낙인 찍히기 싫어 여성의 몸을 팔아대는 꼴이죠. 아 정말 너무 끔찍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