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David! (Paperback) - 『안돼, 데이빗』원서
데이빗 섀논 지음 / Scholastic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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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5만원이상 구매하며 마일리지 2천점을 받기 위해서는 국내도서가 아닌 품목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대체적으로 그냥 무시하고 2천점을 포기하지만, 가끔 눈에 띄는 중고서적이 있으면 그걸 추가하곤 했다. 그러다가 외서를 넣자! 라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고, 나는 영어 공부 하고 싶으니까 외서가 넘나 좋은 선택이라고 스스로 기특해했던 거다. 그렇지만 나는 영어 병신이니 소설책 같은 거 사지말고, 그림책으로 시작하자. 지난번에 청소년도서를 샀는데 그것도 못읽겠더라, 그러니까, 그림책을 사자! 그림책은, 내 생각에는, 아마도 중학교 1-2학년 교과서의 영어가 실린 게 아닐까, 그렇게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자, 생각했던 것. 그러면서도 가격은 저렴할 것! 이 책, 《No, David!》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조건에 맞아 보였다. 그림책이고 가격도 5천원이 안됐던 것. 그런데, 


아아, 나는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면서 당황했다.
이 책에 나오는 영어를 내가 죄다 써보겠다. 순서대로.


No, David!
No, David, no!
No! No! No!
Come back here, David!
David! Be Quiet!
Don't play with your food!
That's enough, David!
Go to your room!
Settle Down!
Stop that this instant!
Put your toys away!
Not in the house, David!
I said no, David!
Davey, come here.
Yes, David... I love you.


이게 다예요.
...................

아....
영어로 써있어도 백프로 이해되는 책이다. 그리고..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멘붕.............................
다음에도 나는 또 외서를 넣고 싶은데, 그림책이면서 저것보다는 '약간' 수준 높은 영어가 적혀 있는 걸로 선택하고 싶다. 

어린 아가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읽어주기에는 맞춤한 책이겠지만, 성인이 영어 공부하기에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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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7-1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책을... 그러니까 저 책 전문을 한 백번은 읽은 것 같아요. 다락방님 7살 조카는 좋아하지 않을 테구요. 3살이던가요. 그 조카는 좋아할 수도 있어요.
저희집 어린이는 아.... 데이빗의 저 장난들... 나도 다 실천해보고 싶다~~ 라는 표정으로 저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더랬죠^^
다락방님 읽기에는... 넘나 쉽지요잉~~~

다락방 2016-07-13 11:15   좋아요 0 | URL
우리 조카 줘야겠네요 ㅎㅎㅎ 그런데 네살조카는 아직 영어를 모르는데...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뭐 어쨌든 저는 봤으니까요 아하하하하하하하.
아니 그냥 중고로 팔아버릴까...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단발머리 2016-07-13 11:17   좋아요 0 | URL
영어 몰라도 다 이해되는... 그 어떤.... 놀라운 그림책^^
네살 조카 장난꾸러기인가요? 가끔 실생활에서 적용하기도 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ㅎㅎㅎ

다락방 2016-07-13 11:19   좋아요 0 | URL
네살 조카는 장난꾸러기라기 보다는 애교쟁이에요 ㅋㅋㅋ 얼마나 예쁘게 웃으면서 예쁘게 말하는지, 심장이 다 녹아버리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뻐 미치겠어요. 히히히히히. (결국 기승전조카자랑 ㅋㅋ)

단발머리 2016-07-13 11:23   좋아요 0 | URL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
막내들은 몸에 애교를 장착하고 태어납니다. 몸 곳곳에 귀여움을 묻히고 얼굴, 특히 이마에 깜찍함을 써붙이고 태어나죠.
역시나 다락방님 4살 조카도 그러하군요.
기승전막내가젤귀여워^^

다락방 2016-07-13 11:25   좋아요 2 | URL
아 이 아이는 지가 사랑받을 거 지가 가지고 태어났구나 싶더라고요. 진짜 쓰러져요 쓰러져 ㅋㅋㅋㅋㅋㅋㅋ
반면 첫째로 태어난 저는....음.............음..............음...........



의젓합니다.
킁킁.

단발머리 2016-07-13 11:34   좋아요 0 | URL
첫째인 다락방님은...
의젓하고 배려심 넘치고...

그리고 이쁘죠~~~~~~*^^*

귀여움은 4살 조카에게 양보하심이~~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6-07-13 11:37   좋아요 0 | URL
음.. 아무래도 그렇죠? 예쁘면서 귀여움까지 가지려고 하면 너무 욕심이 많은거죠? 조카에게 귀여움은 양보해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 잘 듣는 착한 다락방입니다. ㅋㅋ

시이소오 2016-07-13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이 말씀하셨던 나름대로의 영어공부였던‥ ㅋㅋ ㅋ ㅋ

저는 다락방님 글을 읽으면 왜 이리웃긴건지.

고마워요. 웃음을 주셔서 ^^

다락방 2016-07-14 10:04   좋아요 0 | URL
저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영어 그림책 한 권 읽었어요. ㅎㅎㅎ
나름의 공부~
그나저나 스크린회화 책도 사놨는데 저건 통 볼 생각을 않고 있네요. -0-

건조기후 2016-07-14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나중에 여행지에서나 어디에서든 데이빗이라는 사람을 만난다면 이 이야기를 꼭 해봐요 ㅎㅎㅎㅎㅎ 다락방님도 나도 화이팅팅 ㅎ

다락방 2016-07-14 10:40   좋아요 0 | URL
오, 그러게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겠네요. 이젠 여행지에서 데이빗 만나기를 바라야겠어요. ㅋㅋㅋㅋㅋ 공부합시다. 영어도, 페미니즘도 죄다!!
 
토스트 Toast - 완벽하게 모던한 사계절 토스트 50
라켈 펠젤 지음, 나윤희 옮김 / 이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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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을 보는게 즐겁다.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예쁜 그릇에 담겨 있는 걸 보는 것도 너무 좋다. 보기만해도 그 맛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푸짐한 음식들을 보는 것은 행복하다. 쉽게 말해 나는, 음식 사진을 보는 게 무척 좋다. 알라딘에도 그렇지만 SNS 에서도 가끔 자신들의 앞에 있는 밥상을 사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사진들을 보는게 참 좋다. 특히나 그 상차림의 주인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 좋다. 내가 좋아하는 건 단순히 음식 사진인걸까, 곰곰 생각해봤는데, 음식 사진을 본다고 내가 또 다 좋아하지도 않고, 음식 사진을 보면서 내 마음대로 이건 누구랑 어디서 이런 얘기 하면서 먹으면 좋겠다, 하고 마음껏 상상을 해대니, 어쩌면 나는 음식 사진을 보며 하는 상상을 즐긴다고 할 수도 있겠다.


몇개월전에 유튭에서 어떤 영상을 검색하려다가 우연히 '먹방'이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됐다. 그런 사람들을 뭐라고 하지?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라면 세개(어쩌면 네 개 혹은 다섯 개)와 치킨 두 마리, 튀김까지, 여러명이 함께 모여 먹을 음식을 앞에 두고는 혼자서 다 먹는 걸 보여주더라. 그 밑에는 댓글도 많이 달려있었다. 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렸다. 그냥.. 그냥 그 많은 음식들을 먹기만 하면서 방송이 진행되는 것 같던데, 그걸 보고 나는 진짜 이런 기분이었다.



?????????????????????????????????????????????????????????????????????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냥 한 사람이 일인분 이상의 음식을 계속 먹고 또 먹기만 하는 방송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음식 사진 보는 걸 좋아하니, 그 방송을 하고 또 즐겨 보는 사람들도, 내가 음식 사진 보고 좋아하는 것처럼, 타인이 먹는 걸 보는 게 너무나 좋은걸까? 잘 모르겠다. 

나는 나의 조카가 내 앞에서 무언가 먹는 걸 보면 너무 예뻐서 미치겠는데, 어떤 사람들은 타인이 먹는 걸 봐도 예뻐서 미치겠는걸까?? 음.. 잘 모르겠다.



이 책, 《토스트 TOAST》는 제목 그대로 토스트 사진이 가득하다. 그래서 너무 좋다. 토스트가 다 너무 먹음직스럽고 예쁘다. 게다가 만드는 방법까지 나와있다. 진짜 너무너무 내 스타일의 책인 것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책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만드는 방법이 나와있다한들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재료부터 다 멘붕.... 게다가 식빵 사서 하는데도 오븐이 필요할 때가 숱하게 나오는데, 아아, 간단히 먹는 토스트를 만드는 것이 뭐 이다지 어렵단 말인가! 난 심지어 요리바보이기까지 한데.... 물론 단순히 '보면서' 즐기려고 이 책을 갖고 싶었지만, 그래도 '볼 수밖에'없다는 건 초큼 슬프다... 일단, 이 책이 얼마나 무서운(!!) 책인지 목차를 보자.




어떤가. 정말이지 


'………………………………………………………'


이렇게 되지 않는가. 만체고 치즈와 향신료에 볶은 피칸을 곁들이고 사이더를 발라 구운 스쿼시 토스트 ...는 뭐란 말인가. 데브 페럴먼의 맥주를 넣은 콜리플라워 레어빗 토스트는 또 뭐고... 히융...  목차에 큰 의미를 두지말고, 자, 아름다운 토스트 사진을 보기 위해 책장을 넘기자!



이건 그냥 토스터에 식빵 넣고 구워서 크림을 바르는 간단한 것이렸다? 그렇다면 이건 너무나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겠지. 자, 그 재료와 방법을 보자.



이름하여 <마카다미아 카다멈 버터 토스트>란다. 음.. 이 책의 저자는 글쓰는 솜씨도 뛰어나서, '카다멈은 나의 마음과 상상력을모두 빼앗아버리는 향신료다' 같은 문장으로 이 요리법을 시작한다. 저 문장이 너무 좋아서 들여다보며 으음, 나도 언젠가 이 문장을 꼭 써먹어야지 생각했다. 이를테면, 음, 칠봉이는 나의 마음과 상상력을 모두 빼앗아버리는 남자''다, 같은 걸로 응용 가능하겠다. 소주는 나의 마음과 상상력을 모두 빼앗아버리는 술이다, 같은 걸로도 가능하고. 아,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이 빵 위에 바르는 저 버터도 오븐을 예열해서 어쩌고 해가지고 만들어야 한단다. 게다가 재료좀 봐, 카다멈 파우더는 뭐고 굵은 코셔 소금은 뭐야...그나마 이게 가장 간단한 재료에 속한다. 다른 토스트들로 넘어가면 아주 난리가 난다.





크, 여기서도 예의 멋진 문장이 나온다. '나는 당신의 세상을 바꿀 두 단어를 알고 있다.' 이것 역시 너무나 응용하고 싶어진다. '나는 당신의 세상을 바꿀 한 남자를 알고 있다' 같은 걸로...아..근사해..... 마지막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토마토 소스를 풍성하고 극적인 뉘앙스를 가진 라구 소스로 만들어줄 것이다' 라는데, 아, 또 응용의 욕구가 생기지 않는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를 풍성하고 극적인 뉘앙스를 가진 여자로 만들어줄 것이다' 라고. 누가? 당신이. 크- 좋구먼... 이것은 단순 요리책이 아녀....빵 책이 아녀.... 예술인 것이여.....


어쨌든 들어가는 재료는 굉장히 적어보이고 만들어진 토스트도 간단해 보이지만, 스모크 파프리카 파우더와 페드 페퍼 플레이크..같은 것이 필요하단다. 뭔 말이여... 패쓰하자. 





자, 이름도 어려운 <만체고 치즈와 향신료에 볶은 피칸을 곁들이고 사이더를 발라 구운 스쿼시 토스트>의 재료를 보자. 아주 난리가 났다. 아이싱 슈거, 가람 마살라, 카옌 페퍼 파우더, 곱게 다진 신선한 로즈마리, 깍둑 썬 버터넛 스쿼시.... 이거슨 외계어인가... 너무나 낯설다. 아니, 이 재료들을 대한민국에서 구할 수 있는 겁니까? 나는 요리바보라 이런 재료를 아예 처음 들어 보는데, 요리를 좀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흔하게 쓰이는 뭐 그런 재료들인건가? 나는 이 토스트 사진을 보고 너무나 아름다워 한참이나 가만히 들여다보지만, 역시나 고개를 젓는다. 음, 만들 순 없어. 그렇지만 나는 보는 걸로도 충분히 행복해!





아, 이 사진을 좀 봐.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썰어 먹으면서 와인을 혹은 커피를 마시면 너무나 좋을 것 같다. 위에도 말했지만, 이런 것들의 사진을 보면 나는 단순히 이 사진을 보는 것에 멈추는 게 아니라, 아주 있는 힘껏 상상을 한다. 이건 이렇게 먹으면 좋겠지, 앞에 이 사람을 앉혀두고 같이 먹으면 좋을거야, 먹다가 깔깔대고 웃겠지, 와인 잔을 부딪히며 건배도 하고... 아, 너무나 행복하다. 나는 수시로 맛있다고 좋아하겠지. 음.. 하면서 감탄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건 진짜 너무 좋잖아! 그래도 체통을 지켜야지. 빵을 다 먹은 다음에 접시 바닥에 남은 소스를 핥진 말아야지. 우아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이 책에 실린 모든 토스트들의 특징은, 토스트의 기본이 되는 '빵' 없이도 너무나 맛있을 수 있다는 것. 사실 내 입장에선 빵 없이 먹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잘 믿지 못하지만, 나는 빵을 딱히 좋아하진 않거든. 정말이다. 특히나 바로 위의 <봄베이 버블 & 스퀴크 토스트>는, 진짜 빵 없이도 너무나 맛있을 것 같다. (미안하다, 스쿼트 토스트라고 처음에 읽었다, 그것도 여러차례) 토스트란 대체적으로 간단한 아침식사 대용일텐데, 나는 어째 죄다 술안주로 보여...





책에 실린 모든 토스트들이 굉장히 우아해 보이는데, 특히 <스파이시 랍스터 발차오 토스트>는 더하다. 이건 간혹 길에서 내가 사먹곤 하는 토스트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토스트가 아닌가. 무려 랍!스!터! 란다. 아니, 랍스터는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그냥 먹어도 누구랑 나눠먹기 싫은데, 왜 그것을 빵 위에 얹는건가.... 이 책에는 스테이크를 얹은 토스트도 나오는데, 어쨌든 이렇게 우아한 토스트를 잔뜩 준비해서는, 다정한 사람 몇 명을 불러놓고 파티를 하면 좋겠다. 조용한 음악을 틀어놔도 좋을테고. 다정한 사람과 함께 맛있는 걸 먹는 건, 진짜 살면서 그리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닌가. 이것만큼은 내가 손에서 놓지 않은채로 살고 싶다. 오래오래, 다정한 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피클피클한 에그 샐러드 토스트>는 내가 한 번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욕심내봤다. 달걀을 삶을 줄 알고, 마뇨에즈 사면 되고, 피클 사면 되고... 셀러리나 장식용 샐러드 같은 건..패쓰해도 되니까. 이건..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건 내가 언제고 도전해볼 참이다. 나는 요리 블로거니까... (응?)





<장미향을 가미한 리코타 치즈와 구운 딸기를 올린 토스트>는 진짜 너무 예쁜데, 이건 간단해 보이지만 무려 딸기를 오븐에 구우란다. 패쓰. 그렇지만 이 토스트, '라우라 에스키벨'의 《탈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생각나게 한다. 그 책속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담아 준 장미꽃잎으로 만든 요리를 먹고(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여자의 언니인 '헤르트루디스'가 사랑의 열정에 휩싸이게 되는 거다. 온 몸이 뜨거워지게 된 것. 결국 그녀는 발가벗고 춤을 추게 되고, 그 장면을 본 한 남자가 그녀를 말에 태워서.....


헤르트루디스는 그가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보고 달리던 걸음을 멈추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강렬하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허리춤까지 늘어뜨린 헤르트루디스는 천사와 악마를 반반씩 섞어놓은 모습이었다. 가녀린 얼굴과 순결한 처녀의 육체는 눈과 땀구멍에서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는 열정이나 관능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오랫동안 산에서 싸우며 억눌러왔던 후안의 욕정과 맞물리면서 크나큰 장관을 이루었다.

후안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말을 멈추지 않은 채로 몸을 숙이더니 헤르트루디스의 허리를 낚아채서 자기 앞에 앉혔다. 하지만 자신과 마주보도록 앉힌 채로 함께 말을 타고 갔다. 겉으로 보기에 말은 주인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듯했다. 후안이 헤르트루디스를 열정적으로 껴안고 키스하느라 말고삐를 놓았지만 말은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확실하게 아는 것처럼 계속 질주했다. 전력 질주하면서 어렵사리 첫 번째 결합을 이루었을 때는 말의 움직임과 그 둘의 움직임이 하나가 되어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후안이 너무 빨리 달렸기 때문에 뒤를 따르던 혁명군 부하들은 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실의에 빠진 대원들은 포기하고 돌아갔다. 나중에 그들은 대장이 전투 중에 갑자기 미쳐서 부대를 이탈했다고 보고했다.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中, p.63


내가 이 <장미향을 가미한 리코타 치즈와 구운 딸기를 올린 토스트> 만드는 법을 반드시 익혀서(!!),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타나면 집으로 초대해 반드시 대접해야겠다. 그날의 나는 헤르트루디스가 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꺅 >.<

나는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대, 말을 타고 달려 내게로 와요!




나는 음식 사진을 보는 게 너무나 즐겁다. 음식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상상을 하게 되니까. 이건 이럴 때 먹으면 좋겠지, 이건 이렇게 먹으면서 이런 얘기를 하면 좋겠다, 우리는 함께 웃겠지, 우리는 정말 즐거울거야, 같은 것들. 음식 사진은 나를 상상하게 해주기 때문에 너무나 좋다. 그러고보면 내가 음식 사진을 사랑하는 이유도 언제까지나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고, 인간을 좋아하고, 그리고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내가 다정하게 대하는 모든 이들을 좋아한다. 그들과 함께 오래오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가장 좋은 수단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잘 먹는 걸 보는 게 너무 즐겁고, 누군가 먹는 걸 보며 기뻐할 때마다 내 안에 샘솟는 사랑을 느낀다. 나는 당신이 먹는 걸 보는 게 좋아, 그런걸 보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게 틀림없어.


그래서 만들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토스트 사진들로 가득한 이 책이 너무나 좋다. 가끔 나는 내가 먼 나라로 이사를 가는 상상을 하는데, 그럴 때 내가 가진 책들의 대부분을 정리하고 가야할거라고 혼자 생각한다. 소중한 몇 권의 책은 내가 어디로 거주지를 옮기든 가져갈텐데, 그때 이 토스트 책은 넣고싶다. 어느 깊고 외로운 밤, 잠도 오지 않는다면,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마음껏 상상할 수 있으니까.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내게는 공감능력도 있지만 상상력도 있다. 내 상상력은 비록 2020년의 지구를 상상할 순 없지만, 더 나은 기술개발을 상상할순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지낼까, 무슨 얘기를 할까, 어떤 관계가 될까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상상한다. 너무나 좋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즐겁고 위로가 되고 마음껏 상상하게 만들고 또 그런 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이 책은, 오빠가 선물해줬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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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7-08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토스트들은 토스트인데도, 웬지 근사하고, 영양적으로도 우수할 것 같아요. 너무 뽀대나요.
나는 프렌치 토스트를 해 먹어요. 달걀물과 식빵, 버터가 없을 때는 올리브오일로 ㅠㅠ
그래도 맛있다고... 우리집 어린것들은.... 우적우적....

단발머리님, 이거 먹어봐요~ 하면서,
다락방님이 내 접시에 올려줬던 두껍디 두껍던 계란말이가 생각나네요.
맛난 계란말이, 좋은 사람들, 좋은 기억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6-07-08 12:41   좋아요 0 | URL
그치요? 너무나 근사한 토스트이지요? 토스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맛있을 것 같고 와인이나 커피와 함께해도 너무나 좋을것 같아요. 프렌치 토스트, 저도 좋아해요! 식빵 자체를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토스트에 딱히 매력을 느끼지 못하긴하는데, 여기 나온 토스트는 빵을 빼고 다른 재료들이 너무나 고급져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좋아요. 특히나 비쥬얼도 근사한 딸기 토스트, 진짜 한 번 만들어서 남자를 초대해 대접하고 싶어요. 불타는 밤을 보내자꾸나!!! 하면서요. 아하하하핫.

제가 계란말이를 단발머리님 접시에 올려드렸던가요? 오, 그렇다면 저는 단발머리님을 좋아하는가 봅니다!!

라영 2016-07-08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저는 그냥 영원한 눈팅족으로 남고 싶었는데에.... ㅎㅎㅎ
희망을 드리자면, 인용하신 대부분의 재료는 심지어 마트에서도 구입이 가능해요. 약간 레벨업된 재료들은 조금의 손품(?)을 팔면 구할 수 있구요. 한 번 시도해 보시면 어떨지.. :)

다락방 2016-07-08 12:42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커밍아웃 하셨군요. 반갑습니다, 눈팅족이셨던 여름빛하루님!

아, 저게 다 마트에서 구입이 가능한 것들이군요. 다 어려운 이름들인데... 저도 한두가지쯤은 언젠가 반드시 시도해보리라 마음먹고 있어요. 특히 잘 만드는 토스트가 있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함께 먹어도 좋을테니까요. 히힛.

레와 2016-07-0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의 유일한(??) 옵빠(!!)가 올리는 스테이키 사진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오늘 불금이니 올리실라나...ㅎㅎ ㅎㅎㅎㅎ


올려준 사진들을 보니 저런 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토스트전문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되도록 우리집 가까운 곳에. 와인이나 맥주도 팔고.
아.. 근사하다!!! +_+



다락방 2016-07-08 12:43   좋아요 0 | URL
우리 오빠가 올리는 스테이크 사진은 진짜 최고죠! 제가 따라갈 수가 없어요. 레알 스테이크인 것입니다. ㅎㅎㅎ 그러게요, 오늘 불금인데 올리시려나.. 애피타이저는 뭘 드시려나... 와인은 어떤 걸 드시려나... ㅋㅋ

그러게. 저런 토스트전문점이 있으면 수시로 가서 먹을 것 같아요. 와인도 함께 팔면 진짜 좋겠다. 천국일거야 ㅠㅠ

moonnight 2016-07-08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빠?@_@;;;;;;



어쨌든^^;
토스트나 샌드위치류를 좋아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ㅜㅜ 저역시 만들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음식사진 가득한 책 보는거 참 좋아하지요^^

다락방 2016-07-08 12:45   좋아요 0 | URL
아 ㅋ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디너가 이 책을 선물주셨는데, 그 분이 책을 사주시며, 고마우면 오빠로 불러도 된다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저의 하나뿐인 오빠가 되셨지요.

저는 샌드위치 좋아해요! 햄버거보다는 샌드위치 쪽입니다. 샌드위치 맛있어요 ㅠㅠ
문나잇님도 음식 사진 보는 거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문나잇님이 올리시는 술사진도 진짜 좋아합니다!! >.<

시이소오 2016-07-08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스키벨의 인용하신 문장은 실로 작두탄 문장이 아닐런아닐런지요.읽을때마다 절로 탄성을 내뱉게 되네요. 다락방님이 요리 블로거이신줄은 미처 몰랐어요. 응?에서 뿜고 가요 ㅋ ㅋ ㅋ ㅋ ㅋ ㅋ ㅋ

다락방 2016-07-08 15:13   좋아요 0 | URL
진짜 저 문장 좋지요? 저 이야기가 좋아요. 막 열정에 가득차고 저쪽에서 남자가 말을 타고 달려오고...크- 너무나 관능적이에요. ㅎㅎㅎㅎ 자유로운 영혼과 뜨거운 열정, 관증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문장인 것입니다!!

제가 요리 블로거인것, 아직 모르셨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ellas 2016-07-0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재료와 제조법을 보니 아 몰랑이 되네요 ㅋㅋㅋㅋ 코셔 소금이라..... 아몰랑. 이렇게요 ㅋㅋ 사진은 너무나 아름다우나 멀고멀어서 전 제가 할수 있는 범위의 음식책이 좋은가봐요:)

다락방 2016-07-11 08:4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실용성은 떨어지지만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ㅎㅎㅎㅎㅎ 재료와 제조법을 보면 진짜 저도 읭?????????????????하게 되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저는 요리 바보라...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외계어같아요, 외계어.....
 
시사IN 제459호 2016.07.02
시사IN 편집부 엮음 / 참언론(잡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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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시사인은 읽을 거리가 아주 많았다. 특히나 과학책 번역가 김명남의 글은 더 좋았다.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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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 우리 시대 여성을 만든 에멀린 팽크허스트 자서전
에멀린 팽크허스트 지음, 김진아.권승혁 옮김 / 현실문화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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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전에 나는 서프러제트가 단순히 자신이 가져야할 '투표권'을 주장한다고만 생각했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인간이니, 우리에게도 투표권을 줘야한다!'라고만 생각한 거다. 그러나 아, 진짜, 이 여자들이란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가. 그들은 '참정권'을 주장한다. 참정권을 주장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자신들의 권리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빈곤한 사람들을 비롯한 어린아이들, 가족을 부양하는 여자들까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스템이 너무나 엉망진창이라, 그동안 남자들이 보지 못했던 곳까지 곳곳에 배려어린 시선으로 다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정치에 개입을 해야만 그동안 남자 정치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불평등하며 부조리한 것들을 고쳐나갈 수 있으니까. 책을 얼마 읽지도 않아 이런 게 드러나는데, 그러자 진짜 울컥 감정이 벅차올랐다. 이 여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도 그것이 순전히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다, 약자를 위한 선택이다. 게다가 그 참정권을 갖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육체적 학대를 감수한다. 콧구멍에 호수를 꽂아서 음식을 강제투입하는 고통까지 견뎌내며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꺾지 않는다. 


올해 읽은 소설들 중에 되게 인상깊었던 게, '로런 뷰커스'의 [샤이닝 걸스]와, '스티븐 킹'의 [별도 없는 한밤에] 였다. 두 소설에서 모두, 자신이 당할(한) 고통 앞에 여자들이 '다른 존재-다른 여자, 자식, 혹은 개-'의 안전을 걱정하는 부분들이 언급된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이 위험한데, 자신들이 당한 고통도 극심한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존재의 안전을 먼저 걱정하는가. 그 부분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놀랍고 대단한거다. 읽으면서도 알 수 있지만, 이는 단순히 소설속의 캐릭터여서만이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여자들이 이럴 것이다. [서프러제트]의 여자들이 투표권을 주장하는 이유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은 더 약한 곳에 위치한 사람들을 좀 더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러나 정치권에 있는 남자들-을 포함해 정치권에 있지 않은 남자들조차-은 끊임없이 그들을 방해한다. 방해하고 고문하고 학대한다. 어찌나 잔인하고 치사한지 읽다가 화딱지가 난다. 자기들이 당연히 누리고 있던 것들을 달라고 하는 여자들에게 왜그렇게 모질게 대하는가. 왜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주기를 그렇게나 반대한단 말인가.. 휴....... 서프러제트들의 그 기나긴 싸움이 있어서 종국에는 여성에게 참정권이 생긴다. 마땅히 진작에 이뤄졌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담보로 한 뒤에 실행되었다.



어휴, 이 여자들은 진짜. 너무 좋다.

여자들이 너무 좋아서 너무 좋다 ㅠㅠ

여자들 너무 멋지다 ㅠㅠㅠ

좋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젯밤에 트윗에서 영화 [서프러제트]를 보던 중에 한 남성이 옆자리 여성을 폭행했다는 소식을 보게됐다. 그 남자가 애초에 여성에게 폭력을 가할 목적으로 극장에 간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구멍 두 개인 것들'이라고 욕을 하며 그녀를 때렸다고 했다. 그것은 여성혐오가 맞다. 내가 책 [서프러제트]를 다 읽고난 뒤에 접한 소식이었다. 서프러제트들이 참정권을 주장할 때 남자 정치인들이 그들을 반대했고 그들에게 음식물 강제투입을 허했다. 경찰들은 폭력으로 그들의 시위를 막으려 했고. 그렇게 힘들게 참정권을 얻었지만, 지금 여기에서도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일이 일어난다. 참정권을 주장했던 여자들이 경찰에 잡혀가 감옥에 갇히면 다른 많은 여성들이 항의를 하고 시위를 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트윗에서는 극장에서의 폭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항의하고 요구하고 따지고 있다. 여자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할까. 언제까지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에 대해 요구하고 항의하고 따지고 그 과정에서 폭력을 당해야 하는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걸까.





빈민구제원이 되고 나서 깨달은 것은 현행 빈민법은 그 법의 원래 목적을 실행할 수 없게 만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를 위한 조항에서도 이 법은 문제가 많았다. 그 법의 목적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나 여성이 투표권을 가질 때까지는 새로운 법률을 만들기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위원회에서 일할 당시에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전국의 여성 후원자들이 여러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p.51)

아이들이 자라면서 우리는 참정권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고, 이 운동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청년들의 자신감에 나는 다소 겁이 나기도 했다. 어느 날 크리스타벨은 "엄마 같은 여성들이 얼마나 오래 투표권을 얻으려고 애써온 건가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권을 얻을 작정이에요"라고 말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p.62)

그때부터 자유당 정부의 유력한 의원이 연설을 하려고 일어설 때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는 깃발을 흔들기로 했고, 그들이 여성들의 질문에 대답할 때까지 한순간도 평화롭게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새 정부가 자신들을 자유당이라고 부르지만 여성 문제에 관해서는 보수반동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들이 여성 참정권에 대해서 적대적이므로 그들이 항복하거나 혹은 정권에서 물러날 때까지 싸워야 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p.80)

우리는 참정권에 관한 팸플릿을 많이 준비했고, 회원들은 매일 거리 집회를 열었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으면 한 사람은 종을 울려대고, 다른 사람은 의자를 연단 삼아 연설을 했다.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캠페인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후부터는 종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이 마법처럼 모여들었다. 사방에서 "서프러제트가 왔다! 어서 나와봐!"라는 외침이 들렸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런던을 누볐다. 청중은 늘 있었다. 무엇보다 여성 참정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청중도 많이 모여들어서, 우리는 대중들의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가며 그들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거리 집회뿐 아니라 공화당이나 응접실에서도 모임을 자주 가지며 언론에도 많이 노출되었는데, 이는 여태까지의 참정권 운동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p.95)

연설이 끝날 무렵 나는 일어나서 의장에게 말했다. "애스퀴스 씨에게 교육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의장은 애스퀴스 씨를 보았고,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애스퀴스 씨는 부모가 아이들 교육 문제에 의견을 낼 권리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종교 교육 같은 문제에 관해서요. 애스퀴스 씨는 여성이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투표를 통해서 아이들의 교육에 영향력을 행사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이렇게 말하자 관리인이 내 팔과 어깨를 잡고 나가라고 재촉했다. 내가 곧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자 그드은 나를 문간으로 질질 끌고 가 건물 밖으로 던져버렸다. (p.102-103)

런던에서의 첫 번째 해에는 멋진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회원이 많지 않았지만-신문은 우리를 `가족당`이라며 조롱했다- 이제는 전국에 지부를 결성하고, 스트랜드 가의 클레멘츠 인에 본부를 둔 강한 조직으로 변했다. 우리는 넉넉한 재정 지원도 받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하원에 참정권위원회를 발족시키는 수확을 거뒀다. (p.114)

나는 남성들이 여성의 도움 없이 여성과 어린이의 보호를 위해 제정한 법률에 대해 특히 반감을 갖고 있다. 빈민구호법 후원자로서, 그리고 출생과 사망 등기사무소의 사무관으로서 경험을 거쳐보니, 이런 법률들이 얼마나 심하게 우스울 정도로, 아니 비극적일 정도로 여성과 어린이를 보호하지 못하는지 알 수 있었다. (p.247-248)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 서프러제트가 유일하게 함부로 다루는 목숨은 자시늬 목숨 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의 정책은 결코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위태롭게 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우리의 적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은 전쟁을 벌이는 남성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런 일은 여성들이 취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대중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투쟁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사람의 삶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재산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산을 통해서 적을 공격할 것입니다. (p.342-343)

우리는 옳건 그르건 현재의 투쟁 방식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을 바꿀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며칠 전 런던의 어떤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에 따르면 그의 교구에 사는 결혼한 여성의 60퍼센트가 아이뿐 아니라 남편도 먹여 살려야 하는 부양자랍니다. 여성들이 도대체 얼마를 버는지, 그리고 이런 일이 우리나라 아동의 미래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심각하게 고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아침에서야 제게 도착한 공증된 진술서에는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런던에서 성인 여성뿐 아니라 어린 아동도 빈번히 인신매매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매되고, 함정에 빠져서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사회적 지위로 보아 남보다 더 모범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의 부도덕한 쾌락에 봉사하도록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우리 여성들이 나서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맞저 싸워 이런 일을 끝장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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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6-06-2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이야기를 보고 듣고 경험하더라도, 그걸 공감하는 능력(이라고 칭하고 싶습니다)은 여자가 월등한것 같아요.
그리고 공감하는걸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여자들, 깊이 존경합니다.

다시한번 내자리에서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높여야겠단 다짐을 해보아요.

우리 모두 견딥시다. 아자!!!!!


다락방 2016-06-27 10:42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능력, 공감하고자 하는 의지 모두 애써서 생긴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야겠다고, 그렇게 해보자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심했고 훈련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애초에 공감능력 없어` 라고 포기해버리면 정말 그냥 공감능력 없는 사람밖에 안되는 것 같아요. 지식이란 게, 공감이나 배려없이 얼마나 무용한가를 요즘에 많이 생각합니다.

우리 계속 으르렁 거리면서 살아요!

에이바 2016-06-27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프러제트 영화가 반영한 당시 상황에 비하면 과격하다는 페맨도 넘나 온건한 것... 저도 그 트위터 봤는데 굳이 개봉관도 적은 영화, 여성 참정권이라는 주제를 다룬 영화 `관`에 들어와 그런 행동을... 이젠 영화 보는 것도 힘들어요...

다락방 2016-06-27 11:45   좋아요 0 | URL
저도 책 읽으면서 놀란게, 이 여성들이 전혀 과격하지 않았더라고요. 오히려 경찰들과 정치인들에게 당한 폭력이 너무나 끔직했고요. 서프러제트는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요,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지죠. 어휴..

굳이 거길 들어와서 왜 굳이 여자를 때려야만 했을까요? 너무 짜증나서 머리가 다 아파요, 에이바님 ㅠㅠ

rosa 2016-06-27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영화관 목격자들이 많았고 피해자는 절대로 합의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이번에는 제발 한국 경찰들이 합의 종용하며 가해자 가족에게 피해자 주소 알려주는 일 없었으면 합니다.

다락방 2016-06-27 14:4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피해자 트윗 보고 있는데요, 진단서 떼서 광진경찰서 제출할 예정이라고요. 아니, 명백히 목격자들이 존재하는데 폭행 `의혹`이라는 기사는 또 뭡니까. 너무 병신같은 기사 제목들 때문에 여러차례 화가 나네요. 휴..

건조기후 2016-06-27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멍이 두 개인 것을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게 좀 짠하더라고요... 배워처먹지못함의 수준이 놀라울 정도예요. 세상에 어쩜 이렇게 그지깽깽이들이 많은지 행태도 날로 진화해서 눈이 다 부시네요 ㅡㅡ

다락방 2016-06-27 16:3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구멍이 두 개라는 욕을 하다니, 그걸 욕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여성의 성 자체를 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대체 저런 생각은 어디에서 온걸까 싶더라고요.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건조기후 2016-06-27 16:49   좋아요 0 | URL
어쩌다 여자인 것 자체를 욕으로 생각하는 지경이 됐는지, 나이가 40대라던데 그러면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고 이러다 더 큰 일 나는 거 아닌가 싶고... 그래요.

다락방 2016-06-27 16:56   좋아요 0 | URL
뭐랄까, 저 사람을 바꿀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재교육을 한다해도 전혀 귀에 닿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냥 지금도 `여자들은 역시 재수없어`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주먹질보다 더한 폭력을 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건조기후님과 제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네요 ㅠㅠ

블랙겟타 2016-06-2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서프러제트` 영화 볼려고 하는데 개봉하는데가 많이 없더라구요. 그래도 시간내서 한번 볼 생각이에요 ㅎㅎㅎ 그리고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도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이 영화 보면서 그런사건이 일어나다니..그리고 원래 알고 있었긴 하지만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도 참.. 00녀라던가 논란이라 하질 않나.. 영화속 영국이 아닌 오늘날 한국에서도 갈길이 머네요, ㅜㅜ

다락방 2016-06-28 12:14   좋아요 0 | URL
서프러제트는 아마도 씨지븨 단독상영일 거에요. 그래서 다른 극장에서는 상영을 안할거라능 ㅠㅠ

폭력을 휘두른 남성관객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아직 뭐가 잘못됐는지, 왜 잘못됐는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갈 길이 아주 멀다고 느껴져요. 멀긴 멀되, 도달하긴 할까요...저는 조금이라도 이전보다 나아지긴 한건지..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ㅜㅜ

Mina77 2016-07-0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여성들이 있었기에 정말 지금의 여성이 있지않았나 생각이드네요. 육체적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억압과 차별, 각종 폭력, 많은 권리를 박탈당했지만 저런 여성들로 인해 조금씩 여성들이 권리를 찾고있는거같아요. 그리고 정말 불리한 상황에서 이제는 여성지도자가 주목을 받고, 각종 시험에서 여성이 두각을 보이고, 전세계적으로 여성학력이 갈수록 높아지는걸보면 저희 여자들 정말 대단한거같어요. 앞으로는 능력에서 여성우위현상이 더 심화될텐데 그러면 여혐현상이 더 심해지겠지만 여성분들이 이제는 참지말고 맞서 목소리를 내야한다 생각합니다. 여자들 파이팅!

다락방 2016-07-11 10:5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여자들이 이제 참는 걸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애시당초 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오래 그렇게 지내와서 이걸 바꾸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거에요. 그래도 지치지 말고 계속 시끄럽게 소리질러야죠. 그래야 제 조카가 사는 세상은 조금 나아지겠죠.. 여자들이 진짜 멋져요! >.<
 
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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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때 내 머릿속에는 페미니스트는 특정한 부류의 여성들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확한 신화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전투적이고 정치적이며 인간으로서 완벽하고 남자를 증오하고 유머가 없는 사람들. 이러한 신화에 속았다. 나는 이런 신화에 속지 않을 만큼 똑똑한 사람이기에 이런 과거가 자랑스럽지 않고 더 이상은 속지 않으려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다. (p.375)


나는 페미니즘을 부인했다. 이 운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를 들으면 이런 말로 들렸다. "너는 성깔 있고 섹스 싫어하고 남성 혐오에 찌든, 여자 같지 않은 여자 사람이야."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는 페미니즘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 페미니즘이 성공하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과거에 사람들 앞에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절대 아니라고 했을 때를 떠올리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떠올라 부끄러울 뿐이다. 그때 느꼈던 두려움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생각하면 또다시 부끄럽다. 결국 내가 외면받을 것이란 두려움이었고, 내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문제나 일으키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란 두려움이었으며, 이런 나를 이 사회나 친구들이 받아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이었다. (p.15)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며 가장 고마웠던 점은, 나(독자)에게 '잘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몇해전만 해도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다. 당시만해도 내게 페미니스트란 '과격하고 공격적인'여자였으니까.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해 알면알수록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고, 그러자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일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부끄럽다면, 내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 과거였다. 아무것도 모를때는 선입견이나 편견만으로 '난 싫어!'하고 말할 수 있지만, 신기하게도 알면 알수록 내가 얼마나 몰랐던 게 많은지, 그리고 얼마나 모르는 게 많은지를 알게 된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책을 쓴 록산 게이마저도 페미니스트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고, 이런 과거를 자랑스럽지 않게 여겼다 고백했으니, 나도 고백한다. 나 역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 이라고 생각하고 말했던 나의 과거가 자랑스럽지 않다. 나 역시 정중하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거절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해 알면알수록 내 자신안의 모순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 연애중에는 더했는데,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칭하고, 애인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애인 역시 나로 인해 페미니스트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순간순간 애인에게 수동적인 여자가 되고, '예쁨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지고, '말 잘듣고 싶다'는 어찌보면 강아지같은 욕망이 생기기도 하는 거다. 이래도 되는걸까, 내가 지금 이렇게 이 남자를 떠받들어도 되는걸까, 페미니스트가 그래도 되는걸까, 하는 내적갈등 때문에, 아, 그냥 페미니즘에 아예 관심 갖지 말고 살까, 하는 생각도 수차례 했었다. 무엇보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니니, 그에 맞게 '제대로된', '귀감이 되는', '언행이 일치하는', 그런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거다. 또한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는, 아, 동성을 사귀는 것이 모순되지 않는 페미니즘을 실행하는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남자가 좋아 ㅠㅠ 남자의 큰 손이 좋고, 단단한 팔과 가슴이 좋고, 포옥 안기는 게 좋아 ㅠㅠㅠ 가끔 마초가 되어 나를 뒤흔들때는 가슴이 떨리기도 해. 어떡하지 ㅠㅠㅠㅠㅠㅠㅠ 아 힘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지만 역시 페미니즘을 더 공부하고 알게 되면서 나야말로 페미니즘에 대해서 어느 하나만의 정답을 정해두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누구의 책이었지? 그런 구절이 나오더라. 정확한 워딩은 아니겠지만, '철학에 대해서도 수많은 철학자들이 다른 얘기를 하는데, 왜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뉘앙스의 구절이었다. 그러게. 게다가 왜 내가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규정한거지? 왜 내가 나를 가둔거지? 얼마전에는 친구가 새로운 페미니즘 언어를 배웠다며 내게 이렇게 얘기해주었다.


'당신에게는 대답할 의무가 없다'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오해나 무개념인 말과 글을 접할때마다 '그게 아니다'라고 대응하는 건 몹시도 피곤한 일인데, 페미니스트라면 일일이 대꾸해야 하는 게 아닌가, 했던 내게 정말이지 신세계로 이끌어주는 언어였다. 그러게. 내가 왜 다 대답하려 했을까. 나는 이렇게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해방을 맞이하는데, 록산 게이의 이 책은 그 해방감에 쐐기를 박아주었다. 내 자신을 더 놓으라고, 더 자유로워지라고,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 존재라고. 아아, 고마워요, 록산 게이! 나는 이제 해방감을 느낍니다. ㅠㅠ



페미니즘이 결함이 있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이 만든 운동이고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페미니즘에 비이성적으로 높은 기준을 세워 놓고 페미니즘에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 달라고, 혹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내려 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만 같다. 페미니즘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치면 페미니즘 이라는 이름 아래 행동하는 인간들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정죄한다. (p.12-13)



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완벽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전부 옳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고, 이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내 글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핑크색을 사랑하고 섹스를 좋아하고 가끔은 여성을 끔찍하게 표현한 노래에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고 때로는 정비공이나 수리 기사에게 마초 대접을 해주면 내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더 멍청한 척을 하는 이런 여자로 남고 싶을 뿐이다. (p.14)



굳이 모델을 찾지 말고 각자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보고 싶은 페미니스트가 되어 보면 어떨까? (p.18)



일전에도 말했지만,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좋은건, 그동안 내가 되어보지 못했던 소수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는 거였다. 또한 내가 무지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런 작가가 있어서 고맙다, 라고 생각했던 '캐서린 스토킷'의 『헬프』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진짜 얼굴이 화끈거렸다. 록산 게이는 그 책과 영화속에서 흑인 여성들은 백인들을 돕는 조력자로만 나왔음을 지적한다. 흑인 인권운동의 중심은 흑인이었는데, 이 책속에서는 백인이 그 역할을 하고 흑인이 도와주는 걸로만 나온다고. 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동안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영화는 재미없었지만, 그건 그냥 재미 없어서 재미 없었던 거였지, 그 이유가 '흑인이 조력자로 나와서'가 아니었던 거다, 내게는. 내가 그 영화를 보는 시선이, 록산 게이가 보는 시선과는 달랐다. 록산 게이는 영화  『헬프』를, '우주를 그리고 있는 공상 과학 영화'(p.294)라 칭한다. 그리고 '마르타 사우스게이트'라는 사람의 리뷰를 인용한다.


"사실 역사의 중심은 흑인이고 백인이 '도우미'였다. 흑인 인권 운동의 기획자, 지도자, 운동가, 가장 밑바닥에서 활동한 노동자는 백인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메리칸이었다." (p.294)


간혹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훈계하고 조언하는 남자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한 번도 여자로 살아본 적이 없으면서, 거리를 걷거나 택시를 탈 때, 밤늦게 집에 돌아갈 때나 만원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으면서, 내 돈 주고 내가 사는 것들에 대해 김치녀나 된장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 페미니즘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똑바로 하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하는 남자들조차도 그렇다. 열린 사고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남자들도 그렇다. 그럴 때 나는 그 똑똑한 남자들의 한계를 느꼈다. 록산 게이가 책과 영화로 『헬프』를 만났을 때, 그때 느꼈던 감정이 아마도 조언하는 남자-엠마 왓슨에게 편지쓰는 고종석이라든지-를 만나는 여자의 느낌과 비슷했을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진보적이고 마음이 열린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치우친 부분이 있을 것이고 《헬프》를 읽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었는지 아프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는 《헬프》가 백인 여성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이었다. 시나리오는 백인 남성들이 썼고 백인 남성이 연출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난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p.302)


록산 게이의 내적 갈등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도 감독도 연출도, 흑인과 그들의 인권에 '호.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호의적인' 시선은 한계가 있다. 그런 시선으로 책과 영화를 썼어도, 흑인 인권운동에 중심에 백인을 두었으니까. 


나는 어떤 남성들은 페미니스트들을 지지한다는 것을 안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도. 진심으로 그 입장이 되어보려고 노력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로 백인들 중에서도 흑인의 인권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많이 깨지고 부딪치면서, 넘어지면서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듯이, 그들도 그럴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제대로된 길이란 게 있다면, 그 길로 가기만 한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싸우기도 하고 혼나기도 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록산 게이의 이 책은 나를 다독이기도 했지만, 가끔은 혼나는 기분이 들게도 했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아, 이렇게 또 하나 배우네, 하는 기분이었다.



별을 하나 뺀건, 비만한 사람에 대해 차별적인 시선을 갖는 게 나쁘다는 얘기를 하면서, 뭐랄까, 비만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처럼 말한 게 좀 걸려서다. 물론 어떤 내면적인 상처로 식욕을 멈출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냥 먹는 게 좋아서 먹는다. 맛있어서 먹는다. 매 끼니가 매우 소중하다. 먹으면 행복해서 먹는다. 뭐, 그렇다는 거다.




좋은 독서였다. 이 책을 끝내고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를 시작했는데, 이건 얼마 읽지도 않고 또 울컥울컥 했다. 좋은 독서가 될 것 같다. 아 진짜 책 읽는 거 너무나 좋다! 내가 몰랐다는 걸,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너무 좋다!!



얼마전에 트윗에서 누군가 '아니, 박유천인데 그게 무슨 강간이냐' 라는 뉘앙스의 글을 봤더랬다. 잘생긴 유명 연예인인데 땡큐지, 뭐 이런 뜻이 읽혔는데, 휴, 마지막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이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우리 문화가 너무나 오랫동안 여성을 함부로 다루어 온 나머지 유명 연예인의 관심을 얻기만 한다면 학대를 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 이 현실에 눈물이 난다. 우리 사회가 당신을 망쳐놓은 것이다. 전적으로 그렇다.

우리가 당신을 망쳐 놓았다. 크리스 브라운이 여자 친구를 죽기전까지 때리고도 고작 집행유예를 받고 2012년 그래미 무대에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올라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가 그 시상식에서 올해의 베스트 R&B 앨범 상을 받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에게 재기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나쁜 남자 페르소나를 자랑스럽게 게시했고 대중들을 비웃었다. 그는 언제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팝 음악계 악동이다. 그에게는 그것이 변명이 아니라 설명이다.

우리가 당신을 망쳐 놓았다. 찰리 쉰이 켈리 프레스톤에게 '실수로' 총을 쏘고, 섹스를 거부한 UCLA 학생의 머리를 때리고, 전 아내 데니스 리처드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전 아내 브룩 뮐러에게 칼을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영화에 출연시키고 텔레비전 쇼에 출연시켜 돈을 찍어 내게 만들어서 그렇게 되었다. 우리가 당신을 망쳐 놓았다. 범죄를 저질러 30년 이상 미국 입국이 금지된 로만 폴란스키에게 아카데미 상을 두 번이나 주었기 때문이다(13세 소녀에게 술과 약물을 먹여 성관계를 함). 우리가 당신을 망쳐 놓았다. 마돈나를 폭행하고도 계속해서 비평가들의 극찬 속에 영화를 찍고 두 번이나 아카데미 상을 받은 숀 펜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유명한) 남자가 여자를 함부로 대하고도 법적, 직업적, 개인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살도록 내버려 두면서 당신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버렸다. 

남자들이 그럴 수도 있다고 한 번도 아니라 여러 번 우리는 당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유명한 남자건, 악명 높은 남자건, 전혀 유명하지 않은 남자건 남성이 여성을 학대할 수 있다고 믿게 내버려 두었다.(p.45-46)








이 책의 제목 `나쁜 페미니스트Bad Feminist`의 `bad`는 나쁘지 않다. 여기서 `나쁜`은 도덕적 의미가 아니라 `부족한`, `못 미치는`, `완벽하게 훌륭하지는 못한`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나는 부족한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자신을 상대화하는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대한 저항이자, `우리`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페미니즘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고, 동시에 규범화된 페미니즘은 불현하지만 자기만의 신념은 숨기지 않겠다는 `나의 페미니즘 My feminism`이다. (추천사, 정희진, p.6)

나는 언제나 모범생이었다. 성적표에는 항상 A가 직혀 있었고 반에서 늘 1등이었다. 숭종적인 아이였다. 어른들에게 공손했고 동생들에게도 착한 누나였고 주일 학교에도 다녔다. 이런 내가 뒤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도 우리 가족을 속이고 모든 사람을 속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착한 사람이 되는 건 나쁜 짓을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p.62)

어떤 일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p.64)

2011년 아이오와 의회에서 레즈비언 커플의 아들 자크 왈스는 두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야기했다. 이 19세의 똑똑한 남학생은 아이오와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하기 위해 연설했다. 그의 태도는 열정적이었고 연설에는 호소력이 있었으며 이 두 어머니에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을지 눈에 선했다. 이 동영상이 전국적으로 퍼졌고 화제가 되었다. 그 영상을 볼 때마다 감동하지만 화도 난다. 왜 퀴어들은 남들은 당연하게 갖는 권리를 위해 항상 이렇게 온몸을 내던져 싸워야 하나? 이성애자 부모의 자녀 중 어느 누구도 법원에 가서 자기의 부모들이 훌륭한 시민이었다고 설득할 필요는 없다. (p.161)

Qui tacet consentire videtur. 라틴어로 "침묵은 동의를 의미한다." 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무 말을 하지 않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나를 향한 이런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 된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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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6-2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한혜정교수님의 ˝자기발화는 자기해방이다˝말이 생각납니다.그래서 락방님 글 늘 기다려요^^고맙습니다.

다락방 2016-06-23 11:28   좋아요 1 | URL
우앙. 제 글을 늘 기다리신다니, 고맙습니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쓸게요.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할게요. 우리 계속계속 오래오래 만나요! :)

루쉰P 2016-06-23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여자를 정말 사랑해요 보면 아름답고 지켜주고 싶어요 아껴주고 싶고요 전 사랑하는 여자의 하인으로 평생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사건이 나오면 정말 울컥해요 여자는 정말 사랑스러워요

다락방 2016-06-23 11:31   좋아요 0 | URL
루쉰님, 궁극적으로는 루쉰님이 지켜주려고 하지 않아도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 루쉰님 글 읽으면서 루쉰님은 자신의 어떤 과거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또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하지 않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도록 해요.

2016-06-23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6-23 15:22   좋아요 0 | URL
뭐가 그리 좋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다니깐 좋네요. 좋다고 해서 다시 읽어봤는데 그냥 뭐 평소와 다름없는 글이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ellas 2016-06-23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을 꺼내자면 끝도 없고 골치아픈데다 괜히 나만 전투적인 여자가 되는 것 같아 참고 참고 또 참고 무시하고 무시하던 지난 일들이 떠오르네요. 예쁨받고 모나게 보이지 않을려던 어린 나를 돌이켜 생각할때마다 더 화가 나기도 합니다. 언젠가부터 골치가 아프더라도 남들이 날 쌈닭으로 몰아부치더라도 할말하고 들이받고 그렇게 살았더니 피곤은 해도 비참하거나 불행하진 않습니다. 더 이야기하고 더 행동해야지 후진적 남성중심문화가 개선되겠죠. 이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요즘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책이 많아져서 너무 좋아요:)

다락방 2016-06-23 17:56   좋아요 1 | URL
아, 헬라스님. 제가 리뷰 내내 `과격한`으로 사용했지만 `이게 아닌데, 이거 말고 다른 표현 있을텐데` 싶었는데, `전투적`이란 단어가 그거네요. 네, 저는 전투이기만 한걸로 페미니즘을 오해해서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제가 무지했던 시절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ㅠㅠ

저는 원래 좀 잘 으르렁 대는 스타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일이 지적하고 따지고 하는 건 정말 피곤하더라고요. 그렇지만 헬라스님 말처럼, 더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 이야기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더 공부도 해야겠고요. 페미니즘 책을 읽는 일은 그래서 정말 즐거워요. 아,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싶어서 너무 좋아요. 자꾸자꾸 페미니즘 책 나오는 것도 너무나 좋고요. 계속 계속 읽고 쓸거에요. 우리 함께합시다!

hanalei 2016-06-24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안 보셨다면 제인 프리드먼의 ˝페미니즘˝을 추천하고 싶군요.
비투비21 에서 번역판 나와 있습니다.
이 계통에서는 basic으로 통하는가 봅니다.

다락방 2016-06-24 09:37   좋아요 0 | URL
오, 추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 절판.. 이네요. 음... 이렇다고 가만있을 제가 또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출판사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이 책을 니가 좀 어떻게 해봐라, 재출간 진행해다오, 요구해놨습니다. 으하하하핫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ㅜㅜ

2016-06-24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7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