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도대체 언제적 얘기여) 연구하고 수업듣고 논문쓰고 하던 시절 경험이라는 게 아주 핫한 키워드여서 여기에서도 경험 블라블라하면 오오-, 저기에서도 경험 블라블라하면 아하, 끄덕끄덕, 이랬던 때가 있었다(한마디로 이현령비현령...). 그래서, 그놈의 정체가 뭐냐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있었는가하면 내가 워낙 어렸 -_- 어서 그런 생각따윈 싹을 내릴 여지가 없었는데 새삼 궁금해지긴 한다. 네 놈은 뭐냐, 아니 당신은 누구십니까. 



특정 출판사를 편애하는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연속 글항아리 책... ㅎㅎ

이런 덕후느낌 충만한 책은 재미없는 경우가 몹시 드물다. 관심 있으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남들한테도 신명나게 얘기하게 되고 거기에 전문적인 지식까지 더하면 무적이랄까. 원래 덕후기질 있는 인간이라 심지어 옛날엔 튀김의 기술이었나, 꽤나 고가인 책을 사서 독파한 적도 있는데 그래서 튀김을 잘 하게 되었는가하면 네 그렇습니다. 실제로 튀김 기술이 눈부시게 향상되어 동네 아줌마 레베루는 확실히 뛰어넘었지 싶은 자뻑도 종종 했다. 다만 기름 냄새 질색하는 동거인덕분에, 쩜쩜쩜. 



저자가 밝히길, 스스로는 페미니스트 소설을 쓸 생각이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이것은 페미니스트 소설이 되어야만 한다고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번역은 아직 안 된 듯한데, 전작 Boys Don't Knit에 이은 후속작이라는 걸 보니 대강 어떤 흐름을 갖고 기획된 이야기인지 감이 온다. 누구라도 그럴 듯. 주인공 여자아이임에 분명한 표지 소녀의 표정이 압권이다. 



뭘까... 이 책, 감이 안 잡힌다 (설정이 너무 미스터리판타스틱한 미궁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 학교 일진들한테 개기다 몸이 두조각 나서 영육이 분리된 채 어쩔 줄 모르던 주인공이 호그와트보다 더 알 수 없는 요상한 학원에 살게 된다... 는 설정인데 세팅부터 드라마틱하네.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이슈 때문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이 조그만 별 공간을 나눠 쓰는 피차 세입자 입장에서, 좀 더 사이좋게, 폐 끼치지 말고 양보 좀 하면서 공존하면 좋지 않을까.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다 쓸려 쫓겨나갈 입장인데 말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한 쪽은 일방적으로 참고 양보 당하기만 하는 입장이라, 누군가가 나서서 써 준 이런 책들을 보면 반갑고 고마운데 과연 얼마나 이런 책들을 '읽어줄지'는 약간 의문이다.



나 하나 믿어서 뭐가 될까 회의적이지만, 어쨌든, 나 혼자 잘났다고 잘사는 시기는 점점 저물어가는 게 확실하다. 다 같이 잘 살아야 결국 나도 잘 산다. 



유현준 교수의 책들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도시 공간을 이루는 요소들과 공간의 역할에 대해 다루는 책들에 관심이 좀 많아져서 이런저런 책들을 살펴보는데, 좋은 책이 또 한 권 나온 듯.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꼭 보고 싶은 사진집!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더라. 



여자친구는 사라지고, 아버지는 암 선고를 받고,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급사하고. 불행의 한가운데서 주인공을 대경실색케 하는 물건이 발견되었으니 그것은 누군가가 실제로 저지른 듯한 살인을 고백하는 노트였다. 와우, 정말이지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고 머리 위로 흙을 덮는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이 맞닥뜨리게 되는 진실은 뭘까?



남미계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흐르는 뭔가가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게 뭔지는 모른다. 질기고 끈끈한 것, 격하고 폭발적인 것인데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것. 라틴 아메리카엔 뭐가 있어서 그럴까? 그게 그들의 어떤 성향을 강화시키고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걸까?



사실 이미 나는 멋진 구름 사전 한 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또 웬 구름 사진집이냐고? 그러게 말입니다. (멍...)



정인이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인데 책도... 음... 그런데 고통스러워도 알아야 할 것들이 있긴 있다. 오지라퍼라고 눈총을 맞더래도, 주위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참견하고 간섭하고...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모두가. 



이 책을 신간목록에서 발견하기 바로 하루 전날 윌슨 교수를 입에 올릴 일이 있었는데 바로 신간을 발견하고 헙... 했다. 조만간 지갑을 털어... 아니 지갑은 이미 텅텅 비었고 카드를 털어 사야겠다. 몇 년을 얼굴을 보고 지내 낯익은 택배기사님이 뭔 맨날 알라딘 택배상자만 오냐며... ㅎㅎㅎ 그러게요. 좀 팔기도 해야 하는데.


읽을 책은 쌓여만 가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헉헉헉 

2021년도 잘 사 보겠습니다(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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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리뷰를 쓴 적이 있어 그걸로 책 소개는 대신... ▶

잠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착각과 신화와 기타 등등을 일거에 과학적인 근거들로 쓸어버리는 소름돋는 책. 읽고 나면 더 이상 잠을 일상에서 가능한 한 쫓아내려는 시도를 할 의욕을 잃게 된다고나 할까요. 


2.


이 책을 읽으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여성/아동을 대상으로 삼는 범죄에 관련된 용어와 거기에 얽힌 (유쾌할 리 없는) 역사를 배울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윤리 후진국이었어? 라는 실망과 대빡침이다. 이 책을 (꼭, 사서) 읽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이 어떻게 범죄를 이해interpret해야하는지를 알리려 하고, 이 곳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힘을 쏟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나 마찬가지겠다. 


3.


토드 로즈 교수에게 관심이 많다보니 그의 저작은 손 닿는대로 읽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모두가 공식을 넘어서 진리인양 받아들이는 표준적인 사회적 성공 양식이랄지, 사다리랄지... 그것을 호쾌하게 걷어차버리는 그들의 연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결국 이건 개인적인 신념이 저자들의 신념과 일치하는가 불일치하는가가 호불호를 가른다는 뜻).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갔거나 걷고 있어 이미 반들반들하게 닦여버린 그 길은 그냥 잊어버리고, 당신이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겨지는 그 길을 선택해라! 거칠게 말하면 그 정도의 자기계발서같이 보일 수도 있는데, 적어도 작년 한 해 읽어봤던 자기계발서 중에서는 군계일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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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세 권 :) 


3. 


책 좀 읽는다는 지인들이 빠트리지 않고 꼭 추천했던 작가가 루이즈 페니인데.... 되도 않는 곤조를 부리느라 그런 것은 아니고 어쩌다보니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작년에 아주 상태가 좋은 가마슈 경감 시리즈를 중고로 내놓은 분이 계셔서, 시리즈를 전부 갖추게 된 김에 읽기 시작. 나 왜 이거 진작 안 읽었던 걸까... 

스리 파인즈라는 캐나다의 어떤 시골 마을이 있다. 모두가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아주 가깝게 지내는, 작고도 작은 마을인데 여기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가마슈라는 이름의 경감이 이곳에 파견되어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려 한다. 그런데 이 캐릭터가 몹시 독특해서 일반적인 경찰 또는 탐정에 익숙한 미스터리 독자에게는 이질감까지 선사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수사를 한다. 최대한 객관적인 것만을 수용하려 하고 섣부른 판단과 추론을 끝까지 경계한다. 현실에선 굉장히 희귀한 타입이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인물이지만 그래서 나는 그를 더 응원하게 된다. 당신의 신념이 끝까지 승리하기를. 


"나는 지켜보네. 관찰해서 뭔가 알아차리는 걸 아주 잘하지. 그리고 들어. 귀담아듣는 거야. 사람들이 어떤 낱말과 어떤 목소리를 택해서 무얼 말하는지, 혹은 무얼 말하지 않는지. 그리고 이게 핵심이야, 니콜 형사. 바로, 선택이지."

"선택이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선택해. 지각 대상도 선택하지. 태도도 선택하고.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네.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지. 그 증거를 숱하게 보았거든. 매번. 통곡할 일에서든, 환호작약할 일에서든. 결국은 선택 문제야." -113쪽


4. 


엘리너 올리펀트는 평범하지 않게 평범한 사람이다. 타인들은 평범하지 않다고 그녀를 평가하고, 자신은 가장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엘리너는 정말로 평범하려고 힘껏 노력하는데 사람들은 종종 엘리너가 들을 줄 알면서도 그녀가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비웃는다. 평범하려는 그 노력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면 그렇게 하지는 못할 거다. 그리고, 나는 안다. 세상엔 엘리너가 엄청나게 많다는 걸. 어디선가 툭 부딪히며 튀어나온 엘리너들이 내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사회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일단은 눈썹을 둥글게 휜 채로, 저 사람 도대체 뭔가 문제야, 왜 저래? 라고 혼잣속으로 생각할 거다. 그들 안에 어떤 우물이 있는지 모르면서, 알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이 좀 나온다. 잔뜩 나온다고는 못 하겠는데, 조금 나오지만 한 열 명쯤의 좋은 사람 몫을 합한 것 같은 좋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엘리너를 알아보고 살짝 뒤에 서 있다가, 조금 기다려서 옆자리로 옮겨 함께 걷는다. 그런 대목들이 굉장히 좋다. 세상에 이렇게 심성이 따뜻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좋아진다. 없었더라도 이런 소설을 읽으면 조금 별나 보였던 사람들을 보는 눈이 예전과는 좀 다를 거다. 


레이먼드가 빠르게 걸었고, 나는 새 부츠 때문에 그와 보조를 맞추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 걷는 속도를 늦춰 보폭을 맞추었고 나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런 작은 제스처 - 그의 어머니가 식사 후 차를 내올 때 내게 물어보지 않고도 내가 설탕을 넣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한 것, 로라가 미용실에서 내게 커피를 가져다줄 때 접시에 작은 비스킷 두 개를 올린 것 - 가 아주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런 단순한 일을 해주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241쪽


5.


2020 탑픽5에서 꼽은 책들 중에서 가장 쉽게 읽힐 책이라면 주저없이 이 책을 먼저 추천하겠다. 가장 공감하기 쉬운 감정과 상황을 그리고 있으니까. 그리스의 한 섬에 휴양차 여행을 온, 아무 연고도 없던 관광객들이 우연히도 동시에 비극적인 해상 사고를 목격한다. 현재진행형으로. 그 사건은 그들에게 공통의 트라우마 비슷한 낙인을 찍고 그들을 한데 묶어버린다. 관광만 하고 떠나려던 섬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은 그들에게 정신적인 상처만 남긴 게 아니라 인생의 방향키를 크게 틀어버리는 역할을 하는데... 라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얼개이고, 사실 이야기의 전부라고 과장할 수도 있지만 구조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을 촘촘히 메우는 이야기의 질감과 무늬가 사실 중요한 거니까. 

불행 앞에서의 사람들의 연대감이라든가, 사람은 누구든 자기 일만큼은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든가, 아무리 남의 조언이 중요해도 결국 결정은 본인이 하는 거라든가...일반적인 이야기들이 엄청 많이 들어가 있어서 공감하면서 읽기에 더없이 좋다. 쉽게 읽히면서 재미있고 그런데 팔랑팔랑하니 가볍지 않게 쓰고 예쁘게 마무리 매듭까지 잘 감추는 게 이 작가의 장점인 것 같다(고 하기엔 이 책밖에 읽어본 게 없어서 말하기 어렵...). 


2020년도 재미난 소설들과 - 유난히 소설을 많이 읽은 해였다 - 다이내믹하게 보낸, 감정적으로는 다이내믹했는데 실제 현실은 맨날 집순이... -. 올해는 사정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몰라도 역시 많은 이야기들을 읽고 쌓고 그리고 또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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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 아니라 재작년처럼 월별로 읽었던 책들 정리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른 방식의 연말결산(?)을 찾아봤다. 나의 최애 bookblog MMD에서 Anne이 쓰는 것처럼 분야별로 탑 몇권만 뽑아보기로. 


소설은 93권을 읽었다. 이건 내가 아는 사람들한테는 전부 알려야 해, 싶게 혼자 알기는 너무 아까운 좋은 이야기들도 있었고 이거 읽느라 쓴 내 돈도 돈이지만 시간부터 돌려내라고팠던 책들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 정말정말정말 좋았던 책을 순전히 개인적 순위를 매긴다. 


1. 이거 진짜 고민했는데, 둘 중의 뭘 첫째로 올릴까를... 결국 이 책에 손을 들어줬다.



배크만의 소설을 이전에도 몇 권 읽었는데, 『오베라는 남자』는 굉장히 좋았었고,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살짝 내 기대에 못미쳤던지라 만약 한국에 있었을 때라면 과연 찾아 읽었을까 의문이 들었더랬다. 한 권의 책과 만나는 인연도 사람 못지않게 보통 연은 아닌 거다. 동네 도서관의 그닥 크지 않은 한국 책 서가에서, 그나마 낯익은 작가의 이름을 만났을 때 나는 너무 반가워서, 너무 신간이라 대출시스템에 제대로 찍히지도 않는 이 책을 사서에게 첵아웃해달라고 들고 갔고, 사서는 누구 책이야? 물어봤다. 배크만! 제목은... 어... 모르겠는데... 뭐... you and us 그럴 거 같은데? 라고 하니 멋쟁이 사서는 윙크를 날리며 인조이!를 외치고 책을 내주었던, 그런 추억이 있다.


아니야 이건 인조이할 수 있는 책이 아니야, 아니라구. 울컥하는 마음이,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해서 얼마나 읽기가 힘들었는지. 누가 앞에서 공연한 것도 아닌데, 책을 덮고 기립박수를 쳐 주고 싶은 그런 책이 얼마나 될까. 


하키말고는 별볼일 없는 쬐그만 마을이 있다. 그런데 이 하키 팀의 주전 선수가 강간을 저질러 팀원들이 떠나고 팀은 해체 위기를 맞는다. 팀이 분열 직전에 이르자 사람들은 범죄를 저질러 모든 것을 망친 가해자보다, 생존하려 애쓰는 피해자를 입 모아 비난하기 시작한다. 너 때문에 우리 마을이, 모든 게 다 망하게 생겼다고(이거 어디서 되게 많이 본 상황 아닌가?)

단장은 어떻게든 팀을 살려보려 동분서주하고, 타인의 위기를 자기의 기회로 이용하고자 하는(이런 인간도 되게 많다)이도 나타난다. 누군가가 어디에서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우리와 당신들로 패가 갈라진다. 정말, 정말 이거 너무 익숙하지 않나. 


그런데 이 소설의 훌륭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내가 가장 감탄한 훌륭함은 작가의 목소리와 눈높이에 있다. 배크만은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펼쳐보이고 시종일관 담담건조하다. 피해자를 지나치게 동정하게 하지 않고 가해자를 죽일 놈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깃발을 어디에 꽂느냐에 따라 우리는 또 언제든 우리와 당신들로 끝없이 나뉠 수 있다. 너와 나를 분간하는 벽은 누가 세우는 것이고 누가 지탱하는 걸까. 무릎을 구부려 앉는 걸로도 모자라 납작하니 엎드려 약자를 보듬는 문장과 이야기를 쓰는 이 작가를 정말 사랑하지 않기는 힘들다. 


인생은 우라지게 희한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가며 인생의 여러 가지 측면을 관리하려고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규정한다. -595쪽


2. 


불치병이 걸린 어린 아들이 있는 아버지가 있다. 그는 용병으로 일하고 있는데, 휴가를 나가기 바로 전날 무시할 수 없는 대가를 제시하는 어떤 임무를 제안받는다. 그 임무란 콩고에 잠입해서 어떤 인류학자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보자마자 이것이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어떤 미지의 생명체를 사살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서 아닌 유서를 따라 행동을 개시하면서 쫓기는 처지가 되어버린 어느 일본인 약대생의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숨쉴 틈도 없이 마구 굴러가기 시작한다. 책의 중반쯤 가다보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멈출 수도 없게 되어버리는데, 무사히 콩고에 들어간 예거 일행과 미지의 생물이 조우하는 순간에 이르면 급정거당해 정신이 튀어올라 혼미해져버린다. 이게, 이런 걸 묻는 이야기였어? 


대개의 경우 어떤 소설을 읽고 나면 그냥 재미있었다, 에서 끝나기도 하고 '...'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엔 머릿속이 뒤흔들리기도 하는데 이 소설이 그렇다. 사람이란 게 나름의 틀이라고 할까, 어떤 모양이건 간에 제가끔 사고의 프레임이라는 걸 갖고 있게 마련인데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머리가 너덜너덜해지는게 강제로 기존의 틀을 철거당한 그런 느낌이 든다. 시대가 바뀌었고, 바뀌고 있고, 케케묵은 옛날식 사고구조로는 이제 이런 이슈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없는 거야. 생각이 들어앉는 머리통 자체를 리노베이션을 하라고. 정도의 선언문적인 이야기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굉장히 재미있으면서 골이 띵하면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런 책이다. 


"남은 90퍼센트의 병사를 살인자로 만드는 것도 사실 간단하다는 사실이 알려졌어. 일단은 권위자에 대한 복종이나 소속 집단에 대한 동일화 등으로 개개인의 주체성을 빼앗았지. 그리고 또 하나, 죽일 상대의 거리를 멀리 두는 것이 중요해."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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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훤히 다 꿰어 기억하리라는 기대 같은 건 애저녁에 접어 넣었고, 하다못해 제목이라도 제대로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하는 일들. 그러다 조금 힘이 남아돌면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두어줄만 더 적어놓고. 이 정도가 연초의 계획이었는데 연말 책결산하기 전에 요것부터 결산(?)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요 정도 갯수의 노트가 있다.



다 펼쳐놓고 찍어보니 되게 빽빽해 보이는 것이 뭔가 엄청 열심히 한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고...



드디어 한 권을 다 채운 QUOTE 노트. 읽은 책들을 다 리뷰를 적어두는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는 부지런함을 떨치는 분들도 계시긴 하지만 아이 셋을 거둬먹이는 아줌마는 그렇게까지 할 여력이 없그든요... 감상문 적어둘 여력은 없지만 괜찮았던 책들은 딱 하나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을 선별해서 이렇게 베껴둔다. 나름의 요약(책 전반에서 느낀 것을 포함해서) 해시태그를 세 개로 압축해서 달아두고.



이건 어쩌면 제대로 길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를 책들. 말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담고 있는데 잊어버리면 손해니까 일단 열심히 튀어올랐던 생각들을 두서없이 손에 잡히는대로 펜으로 뱉어놓고 보는 노트라서 이름도 그냥 reading log v.2다. 버전 원은... 뭘까... 왜 2라고 붙였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 



이건 log v.2보다는 좀 더 길고 자세하고... 요약도 들어가 있고 인용문도 나름 충실하게 베껴(두려고 노력하...)진 리뷰노트. 근데 확실히 좀 성의있게 기록해놔야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 아닌가 싶다) 하는 노트라 그런지 좀 덜 쓰게 되는 예상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이런 도전 과제!! 도 종종 들어가 있어서 쓰는 재미가 있는 노트



그리고 이건 아이들에게도 종종 쓰기를 강요하는 리딩로그

각자 따로 쓰라고 하면 절대 안 쓸 것이 너무나 뻔하므로. 그냥 늬들 가끔 생각나면 적어줘, 라고 처음엔 좋게 말했지만 요즘은 종종 강요조로 말한다. 자율적으로 안 해주면 강제로 다 각자 따로 만들어주고 쓰게 시킬거야. 그러면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아 엄마~~~!! 부르짖는다. 왜, 뭐. 왜! 



형식은 자유라고 했더니 이러는 놈도 있다.



공개할까말까 했는데 혼자 보기 너무 아까운 둘째 아이의 드로잉북(그림리뷰). 

그림책이나 그래픽 노블은 등장 캐릭터들을 따와서 재구성해 그리는 경우도 있고 일반 소설은 자기가 상상해서 그릴 때도 있고. 표지의 그림을 응용해 그릴 때도 있다. 



형식이 뭐가 됐든... 아웃풋은 진짜 중요하다는 거. 시간이 빨리 가는 건 정말 너무 아쉬운데, 시간이 흘러간 흔적을 어떻게든 이렇게 쌓아 만지고 넘겨볼 수 있는 형태를 지닌 것들로 남겨놓을 수 있는 건 참 좋다. 마음을 채워준 이야기들이 어떻게 내게 남아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물로 남는 것은 더 좋다. 그러니까 읽고 뭐라도 쓰고 (그리고)... 그러면 좋지 않을까요, 소심한 제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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