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는 선거 운동이다. 모든 정치적 행위는 다 선거운동이다. 오늘 심상정은 필리버스터에서 그렇게 얘기했다. 그 말은 옳다. 필리버스터가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해 한 행위이긴 하지만, 그 필리버스터를 봄으로써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아 이렇게 유능한 정치인들이 있었어' 라고 생각했고, 그들의 정치에 힘을 실어주자고 생각했다. 보면서 희망적이라 느꼈던 것은 필리버스터가 테러방지법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이런 정치인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행동하고 있으니 앞으로를 기대해도 좋겠다는 희망이었던 거다. 나는 총선을 기대해도 좋겠다고 생각했고 나아가 앞으로가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저렇게 유능한 정치인들, 이름을 기억하고 싶은 정치인들이 있었다니! 얼마나 벅찬 일인가 말이다.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다니, 이 얼마나 희망적인 일인가. 그러니 필리버스터가 결과적으로 선거 운동이라는 심상정의 말은 옳다. 그러나,
그렇게 자연스레 표심을 움직였던 행위를 박영선은, 순식간에 '표를 모으기 위한 행동'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인 국회의원이 박영선이 처음도 아니었고 유일한 것도 아니었지만, 박영선의 오열은 그 자리에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왜 결국 그렇게 함으로써 '그럼 그렇지' 라고 체념하게 만들었나. 어차피 박근혜 지지층 40프로는 무슨짓을 해도 돌아서지 않는다. 귀를 막아놓고 있다. 그러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운동해야 한다. 나는 정권을 바꾸는 게 탄탄한 지지층이 하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관심도 없고 행하지도 않았던, 침묵하는 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일전에 페미니즘에 관련된 페이퍼를 쓸 때도 인용한 적 있었는데, 198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셀'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편을 드세요. 중립은 피해자가 아니라 압제자를 도와줍니다. 침묵은 괴롭히는 사람을 격려하지 결코 거기에 시달리는 사람을 격려하지 않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침묵하는 자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나부터도 희망을 가졌고 이런 식이라면 정치에 관심없었던 사람들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건만. 하아- 많이 속상하다. 나름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한다. 그래, 유능한 국회의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잖아, 그래 몰랐던 것들도 알게 됐지, 조금 더 관심이 생겼잖아, 이 일로 친구들과 이야기한 것도 좋은 시간이었고...... 라고 쓰지만 그래도 기운이 빠진다. 어쩜 그래...어쩜...어쩜 거기서 ... 하아-
지난 주말에는 내 방의 책장들을 옮겼다. 좁은 책장 한 줄을 다른 데로 옮기자 싶어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남동생은 집에 없었고, 나는 충분히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리고 내 방이고 내 책, 내 책장이니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단 좁은 책장의 책들을 쭉 빼놓고 낑낑대며 책장을 다른 자리로 옮겼다. 세우는 것보다 눕히는 건 어떻겠냐는 엄마의 말씀에 그렇게 했더니 나름 괜찮더라. 힘들었지만 좋군, 했는데 책장 한 줄을 또 옮겨야 하는 거다. 사실 한 벽면을 채운 책장들 때문에 방문이 활짝 열리지 않았던 터라, 방문을 열기 위해 좁은 책장 한 줄을 옮긴 거였다. 그런데도 간발의 차로 활짝 열리질 않아. 아, 좁은 책장 한 줄을 또 옮겨야겠다, 그래야 방문이 활짝 열리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의 좁은 책장을 빼낸다면 그 자리에 넓은 책장을 다시 밀어 넣어야 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책장 세 줄을 더 옮겨야 했고, 책장 세 줄의 책을 모두 빼야하는 걸 의미했다. 너무 힘들것 같아서 망설였지만,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자 싶어서 작은 책장의 책들을 모두 빼내 옮기고, 넓은 책장 두 줄의 책도 모두 빼내어 옮기고 다시 책들을 다 꽂았다가 아아, 책장이 모자라,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다시 책들을 빼내고 다시 정리하고... 그날 하루 나는 얼마나 힘들었냐면, 술도 안마시고 잘 지경이었다. 토요일인데!! 술도 안마시고!! 그냥 쓰러져버렸어!! 어쨌든 결과물은 이렇다.
다른 쪽 벽으로 옮긴 두 줄의 책장이다. 으하하핫. 문동 전집을 올려두니 뽀대난다. 저 뽀대 나게 하려고 원래 꽂아두었던 책들을 다 빼고 다시 꽂았다. 아하하하하. 문동 고전 밑으로는 창비 고전과 창비 단편전집, 그리고 민음사 모던 클래식이 보인다. 으하하하하.
월요일에는 멀리서, 아주 멀리서 소포가 왔다. 으응? 하고 뜯어보니 맙소사, 이건 무슨 크리스마스냐 ㅋㅋㅋㅋㅋㅋㅋ 완전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 먹을 거 주는 거 짱좋지만, 아니, 줌파 라히리의 새 책 원서라니. 꺅 >.<
나의 친구들은 나의 취향을 너무나 잘 알고 제대로 저격한다.
사실 이렇게 회사로 친구들이 간식을 보내주면 그자리에서 개봉하고 직원들과 나누어먹곤 하는데, 이 간식들을 보니 진짜 1도 나누어먹고 싶지가 않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특히나 이 앞쪽의 초콜릿! 이건 포장지에 맛이 써있는데 죄다 다른맛이다. 대체 누구한테 무슨 맛을 준단 말야? 결과적으로 내가 다 먹기로 했다!
제일 처음 먹어본 초콜릿은 '바질' 맛이었는데, 우앙, 신기하다, 바질 초콜릿에서는 바질 맛이나요... 신기..
아아, 어쨌든 이렇게 친구가 멀리서 보내준 술안주 덕에, 할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정말 의도치 않았지만, 술을 마시기로 했다. 그래서 친구가 준 안주들만을 접시에 예쁘게 놓아보았다.
맨 앞에 저건 대추인가? noor 이렇게 써있던데 이걸 찾아보니 노르웨이 사전으로 노르웨이 사람이라고 나온다...음... 다른 단어들 옆에 꺼랑 같이 찾아봐도 단어가 안나와..그냥 대추인가보다...하다가 혹시? 하고 pitted dates 를 찾아보니 '대추야자'라고 나온다. 앗싸~ 대추야자였어! 암튼 설탕함유량이 0이라는데 겁나 달다. 어쨌든 초콜릿이 완전 맛있는데, 와사비 아몬드도 맛있고, 육포는 원래 내가 좋아하고, 근데 예상외로 진짜 겁나 맛있었던 게 저 고구마 튀긴 거다. 튀겨서 말린 과자 같은 건데 와 진짜 핵좋은맛. 저기에 호박도 있고 당근도 있는데, 와, 너무 맛있어. 앉은 자리에서 그냥 다 먹을 수도 있겠더라. 그렇지만 나는 다이어트 중이니까 앉은 자리에서 저거 한 케이스를 다 먹진 않았다. 조금 남겨두었다.
그나저나, 이 책은.. 어쩌지... 친구는 색칠공부 책도 보내줬는데, 색연필 있으니까 그걸 칠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고, 이 원서...
왼쪽에는 이탈리아어로 쓰여져 있고 오른쪽에는 영어로 쓰여져 있다. 나는 읽지 않아도 일단 줌파의 원서를 사는 사람이니까 이게 참 좋은데...읽어.....................볼까? 근데 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원서도 설 전에 읽겠다고 사두고 그냥 꽂아뒀는데? 아..............뭔가 읽고싶은 욕망이 불끈불끈 솟는다... 능력없음은 저만치 밀어두고.... 내가 회사만 안다녔어도 벌써 읽었을텐데. 회사 때문에 책도 못읽고 이게 뭐여... (정말?)
오늘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면서, 그러니까 시끄럽게 울어대는 알람을 끄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알람이 울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출근해야 하니,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이 아니라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람을 맞춰주어야 한다. 알람을 끌 때 한 번도 으응, 상쾌해, 좋은 기상이다, 오늘도 좋은 출근, 이런 생각은 한 적이 없다. 늘 아..조금만 더 자고 싶다..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알람이 울리지 않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 거다. 내가 얼마나 더 회사를 다녀야 알람이 울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