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시에 꽂혀서..
바지락 씻는 소리는 듣지 맙시다.
밤 열한시 이십분에 누군가 좋아진다면 대체 뭘 어째야 하는거야.
나는 당신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아직.
부재하지 말아요, 다음생에 또 만나요.
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면, 날 가져요.
당신이 나를 마중나온다면 나는 내 바닥을 보여드릴게요.
소이진님. 시집 추천을 해달라고 하셨는데, 제가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죠? 사무실에서 추천하고 싶었지만 저는 외우는 시는 하나도 없구요, 오늘 일이 폭발해서 ㅠㅠ 머리가 빙빙 돌 정도로 일했어요. ㅜㅜ 집으로 돌아와 일단 제 방 책장에서 시집 몇 권 꺼내어 훓어보았어요. 저는 시를 잘 못읽고(;;) 가지고 있는 시집도 몇 권 되질 않아서 추천하자니 데이터가 몹시도 빈약하지만, 이 시들은 어떨까, 해서 몇 개 소개해 드릴게요. 다 기록하기는 어려우니(저 야근하고 좀전에 와서 눈알이 빠질것 같아요. 일 너무 많아서 밥도 5분만에 흡입 ㅠㅠ) 일전에 썼던 페이퍼들을 먼댓글로 첨부하도록 할게요. 그것도 참고하세요.
일단, 어제 올렸던 김사인의 시집이에요.
제가 어제 올린 그 조용한 시 말고, 저는 이 시에도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네요.
때늦은 사랑
내 하늘 한켠에 오래 머물다
새 하나
떠난다
힘없이 구부려 모았을
붉은 발가락들
흰 이마
세상 떠난 이가 남기고 간
단정한 글씨 같다
하늘이 휑뎅그렁 비었구나
뒤축 무너진 헌 구두나 끌고
나는 또 쓸데없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늙어가겠지
시가 참 쓸쓸하고 좋은데, 소이진님 같은 피끓는 청년이 읽기에는 너무 성숙했나요? 자, 그럼 같은 시집의 이 시는 어떨까요?
봄바다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 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연왕모의 『비탈의 사과』에서는 이 시가 눈에 띄어요.
오후
빗줄기에서 떨어져
멀어져 ‥‥‥‥가는
가는,
햇살
그렇지만 이 시집의 다른 시들은 제게는 좀 어려워서 딱히 더 눈에 띄는 건 없네요. 따로 메모해둔 시도 더는 없구요.
아마도 박성우 시인의 이 시집, 『가뜬한 잠』이 소이진님 취향에 가장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시집에서 제일로 예쁜 시를 한 편 옮겨볼게요. 아주 짧아요. 저는 대체적으로 짧은 시를 좋아해요. 짧은 시가 이해하기 쉽더라구요. 길면 당최 뭔말이지를 모르겠어서... 이제 옮길 시는 짧은 시의 최고봉, 으뜸이에요!
삼학년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이 시는 정말 예쁘죠? ㅎㅎ 이 시를 옮기노라니, 몇년전, 미국으로 오랜기간 공부하러 떠난 친구에게 미숫가루를 보내줬던 일이 생각났어요. 미숫가루 먹고 싶네요. 우유에다가 걸쭉하게 타서 말이죠.
아, 난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졸려서 자야겠어요.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가 있기를 바라요. 굳이 하나 꼽으라면 저는 '소이진'님께는 '박성우'가 제일 좋을것 같아요. 먼댓글로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시집도 첨부할거에요. 박연준의 시집이죠.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