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박연준
천 날의 밤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밤이었다
그가 내게 이유를 물었다
구두굽으로 그저 모래를 콕콕 찍었다
모기 한 마리가 내 슬픔을 염탐하듯
발목에 슬쩍 달라붙었다
갑자기 머리 위로 비가 쏟아졌다
키 작은 나무들이 금세 흠뻑 젖었다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내 이름을 부르는 다급한 소리가 발밑으로 툭,
떨어졌다
흐느적흐느적 빗속을 걸었다
나무들이 일렁이며 저희들끼리 수군댔다
이별을 한것도 아닌데-이별 할 일도 없었고-그저 그냥, 이 시에 꽂혔다. 꽂히고 나니 자제할 수가 없어서, 근무시간인데도 친구에게 보라색 펜으로 엽서를 썼다. 이 시를 적었다. 우표를 붙였다. 퇴근하는길에 우체통에 넣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