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에서 한시간쯤을 보낼 것 같고, 돌아오는 길에는 책을 읽을 정신이 아닐 것 같고, 그럴 때 선택할 수 있는 건 어떤 책일까 하고 고민하다보니 시집 이었다. 시집은 사두고서도 제대로 읽지를 못하는데, 그렇다면 지하철안에서 다시 읽어볼까, 라고 생각하고 책장 앞에 가 선다. 참..내가 나한테 놀랐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시집이 꽂혀있다. 분명 내가 산건데. 나는 이걸 산 기억이 없어. 게다가 문태준의 시집, 김행숙의 시집은 두권씩이다. 나는 두 시인의 시중 어느것 하나 외우고 있는것도 없는데 왜 두권씩이나 나의 책장에 꽂혀있는걸까? 이 세상은 미스테리의 연속이다. 그리고 나는 문태준의 시집, 『그늘의 발달』을 꺼내든다. 아, 분명히 밝혀두자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박연준이고 시집은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이다.
문태준의 시집을 펼쳐 들며, 여기 어딘가에 이별한 후에 조개를 씻는, 그런 시가 있었는데. 그거 보고 싶은데. 찾았다.
이별이 오면
문태준
이별이 오면 누구든 나에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후련하게 들려주었으면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
바지락과 바지락을 맞비벼 치대듯이 우악스럽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면
그러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틀어막고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
가장 아픈 데가 깔깔하고 깔깔한 그 바지락 씻는 소리를 마지막까지 듣겠지
오늘은 누가 나에게 이별이 되고 나는 또 개흙눈이 되어서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틀어막고
구석구석 안 아픈데가 없겠지
가장 아픈 데가 바지락 씻는 소리를 마지막까지 듣겠지, 깔깔하고 깔깔한 그 바지락 씻는 소리.
바지락 씻는 소리가 언젠가는, 결국, 들리지 않는 날이 올까?
오겠지,
언젠가는.
시간이 아주 한참 흐른 후에. 그러니까 오래고 오랜 시간 후에.
가시가 박혔다고 우는 아이
문태준
가시가 박혔다고 우는 아이에게
새끼 오리 떼가 줄지어 가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요한 연못을 보여주었다
휘파람으로 비행기를 불러주었다
손나팔을 불어주었다
쌍가락지를 기워주었다
붉은 앵두를 한 줌 따다 주었다
나비춤을 마루에서 추어주었다
마루 끝까지 가도록 가도록 오늘은 그냥 두었다
가다 돌아서며 불쑥 울음을 터뜨렸다
운김에 눈물까지.
눈물에 대하여
문태준
어디서 고부라져 있던 몸인지 모르겠다
골목을 돌아나오다 덜컥 누군가를 만난 것 같이
목하 내 얼굴을 턱 아래까지 쓸어내리는 이 큰 손바닥
나는 나에게 너는 너에게
서로서로 차마 무슨 일을 했던가
시절 없이
점점 물렁물렁해져
오늘은 더 두서가 없다
더 좋은 내일이 있다는 말은 못하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대체 무슨일을 한걸까. 무슨말을 한걸까. 나는 더 좋은 내일이 없을 것 같아 두렵다. 매일매일을 더 두서가 없는 날을 살게 되면, 그러면, 이를 어쩌나.
며칠전부터 빌딩에 에어컨을 틀어주고 있다. 나는 에어컨 바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눈이 아프고 목구멍도 아파온다. 젠장. 얼마전에 친구가 입술에 물집 잡히지 말라며 보내준 비타민을 챙겨먹을 예정이다. 사실 이렇게 몸에 좋은 약은 나는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생기는 족족 엄마한테 갖다 주곤 하는데, 이번 비타민은 내가 좀 먹어야겠다. 하루에 두알씩. 꼭꼭 챙겨먹을 예정이다. 내가 비타민이라는 걸 먹게 되다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미래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오늘 아침 여섯시 십칠분에는 제이슨 므라즈의 럭키가 라디오에서 나왔다. 열시반쯤 나는 쵸코하임을 두개 먹었다. 커피와 함께. 아, 진짜 열나 맛있어. 쵸코 하임이 원래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쵸코 하임 완전 맛있다고 여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그럼, 하는 답장이 왔다.
그리고,
머리를 이렇게 해볼까 한다. 탕웨이. 그러니까 나는 얼굴은 탕웨이랑 별다를 바 없으니까, 머리만 이렇게 해주면 바로 그 순간 탕웨이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미용실에 탕웨이 사진을 들고 가서 이렇게 해주세요, 머리요, 라고 말해봐야지. 탕웨이로 거듭나겠어!
바지락과 쵸코 하임과 탕웨이의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