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연애를 할 수도 있고 연애를 하지만 사랑하지 않을수도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와 여자가 반드시 사랑하기 때문에 연애하고 연애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있는것은 아니다. 사랑은 머리로도 하고 가슴으로도 한다. 이 남자에겐 속절없이 빠져들어가기도 하고 저남자에겐 그를 둘러싼 후광 때문에 접근하고 싶을때도 있다. 때로는 상대의 어떤 의도가 확연히 드러날 때도 있다. 그것이 드러난다고 꺼지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는 모두 외롭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사랑하고 사랑받고 혹은 그것을 흉내내고 싶은걸지도.
처음 몇장을 읽었을 때는 꽤 당혹스러웠다. 그저 뻔한 불륜남녀에 대한 이야기인가, 이것은. 뭐야 색다를 것도 없잖아. 그러나 사실 이 세상의 삶이 뻔하지 않은적이 있었던가. 그래, 뻔하다. 뻔한 이야기다. 가난한 사람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돈을 착취당하고, 아내도 착취당한다. 이미 가진자는 또 누군가의 노동력을 돈을 아내를 빼앗는다. 그것을 빼앗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부조리하다. 빼앗기를 원하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있었다면, 이미 가진자가 다른것을 '더' 갖는것은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한쪽은 사랑을 말하고 다른 한쪽은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연애중인 두 남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보기에 부적절한 그 모든 관계속에는 그 둘만의 내밀한 사연이 있다. 내연의 여자를 위해 아파트를 마련해주고 그녀를 마치 아내인 듯 대하다가 그녀를 떠나고 집에서 쫓아내고 하는 이 모든 행위들을 바깥에서 본 사람들이라면 쳐죽일 놈이 될 수 밖에 없지만, 여자는 그를 이해하기도 한다. 그를 증오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한다. 어쩌면 이렇게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신이 피폐해지고 황무지가 되어가면서도. 연애란, 아니 모름지기 자신이 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랑'이란 것은 스스로가 부여한 정의와 합리성에 갇혀버린다. 거기에서 상대는 충분히 무죄일 수 있다. 그가 무죄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를 무죄라고 판결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후반부로 가면서 자칫하면 이 소설은 후져질 수 있었는데, 그것이 두려워서 끝을 읽기가 망설여졌는데, 그런데 괜찮다. 끝까지 다 읽고나면, 이 이야기는 여전히 뻔하지만 그러나 괜찮은 것이 되고만다. 뻔하고 지루하고 한심한 일상에 보태어질 그런것들을 다시 말하고 있지만, 그런데 그것이 정말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니까 어쩔 수 없다. 체념하면서 마지막 책장을 덮어버리게 된다. 사람들은 참, 이상도 하지. 다치고 상처받고 울고 찢어지면서, 피를 흘리면서, 대체 그놈의 연애를 왜 또다시 시작하느냔 말이야. 죄다 빵꾸똥꾸들, 어리석다니깐.
그건그렇고, 첫 부분에 등장하는 놀이터.
오후의 햇살이 게으르게 미끄럼틀을 흘러내리는 텅 빈 놀이터에 두부 트럭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p.7)
이 부분을 읽노라니 최근 며칠간 반복해 들었던 Feel 의 [취중고백]이라는 유치한 노래가 떠올랐다.
뭐하고 있었니 늦었지만 잠시 나올래
너의 집 골목에 있는 놀이터에 앉아 있어
친구들 만나서 오랜만에 술을 좀 했는데 자꾸만
니 얼굴 떠올라 무작정 달려왔어
이 맘 모르겠니
요즘 난 미친 사람처럼 너만 생각해 대책 없이 니가 점점 좋아져
아냐. 안 취했어. 진짜야 널 정말 사랑해 눈물이 날 만큼 원하고 있어
정말로 몰랐니
가끔 전화해 장난치듯 주말엔 뭐할 거냐며 너의 관심 끌던 나
그리고 한번씩 누나 주려 샀는데 너 그냥 준다고 생색낸 선물도
너 때문에 산거야
이 맘 모르겠니
요즘 난 사람처럼 너만 생각해 대책 없이 니가 점점 좋아져
아냐, 안 취했어. 진짜야 널 정말 사랑해 진심이야, 믿어줘
갑자기 이런 말 놀랐다면 미안해
부담이 되는 게 당연해 이해해 널
하지만 내 고백도 이해해 주겠니
지금 당장 대답하진 마 나와 일주일만 사귀어 줄래 후회 없이 잘해주고 싶은데..
그 후에도 니가 싫다면 나 그땐 포기할게 귀찮게 안할게. 혼자 아플게
진심이야 너를..(취해서 이러는거 아니야.. 사랑한다...)사랑하고 있어
잘못들은게 아니다. 도입부의 i love you so much 라는 나래이션은 진짜다. 맙소사. 이렇게 오글오글할 수 있다니.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사랑고백 분위기라고 할까. 놀이터에서의 고백이라니. 노래를 듣다가 이 녀석의 고백에 애틋해지기는 커녕 자꾸만 피식피식 웃게된다. 술마시고 고백하려고 여자의 집앞 놀이터에 찾아와 전화하는 남자라니. 하하하하. 어쩐지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찾아왔을 것 같다. 그네에 앉아 운동화 신은 발로 모래바닥을 퉁퉁 치면서. 하하하하.
이 꼬꼬마 녀석아, 누나가 충고 하나 할게. 술 먹고 술기운에 고백하지마. 딱 질색팔색이야.
토요일에는 비가 왔다. 제법 많이 왔다. 우산을 들고 걷는 건 내가 진짜 싫어하는 일중의 하나라서, 아무데나 빨리 들어가자 싶어서 무작정 들어간 곳은 뽈살과 돼지껍데기를 파는 곳이었다. 뽈살도 돼지껍데기도 내가 별로 좋아할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굽다보니 뽈살이 마치 스테이크처럼 맛있게 생겼길래 기대를 했는데, 오, 웬걸, 돼지껍데기가 맛있었다. 이십대 중반에 먹고서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싹 무시하고 지냈는데 십년쯤 지나 다시 먹는 돼지껍데기는 압권이구나. 고소해..십년전쯤 늘 좋은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녀석이 돼지껍데기는 소주도둑이라고 말했었는데, 오, 그 말의 의미를 나는 이제야 아는구나. 그러니까 돼지껍데기는 어떤 맛이냐 하면, 우연히 한국에 몇달간 체류하던 키가 크고 잘생기고 젊은 금발의 외국 재벌청년과 함께 돼지껍데기를 먹는다면 맙소사 이건 무슨 맛이냐, 판타스틱하구나, 하면서 앞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나와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그런 맛. 이것이 한국의 보통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니, 너는 이런 음식을 먹고 있니, 나는 이곳을 사랑하게 될 것 같구나, 하게 될 그런 맛. 그래서 그는 나와 사랑에 빠지고, 우리는 비가 오면 정해진 코스대로 돼지껍데기를 먹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재벌의 금발남자 나는 재벌이 아닌 검은머리 여자.. 시간이 흘러 헤어지고 그는 그가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그는 자신의 나라에서 비가 오면 창밖을 보며 돼지껍데기와, 돼지껍데기를 함께 먹던 나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돼지껍데기도 나도 없다. 시간은 또 흐르고 흘러 그는 잠시 한국에 들른다. 그리고 마침 비가왔고, 그래서 그는 돼지껍데기를 먹으러 간다. 혼자서 소주를 시켜서 돼지껍데기를 구워먹는데, 그것은 이제 예전에 그가 먹던 그 맛이 아니다. 한편 나는, 그와 헤어진 후로는 다시는 돼지껍데기를 먹지 않는다. 그것은 금발의 재벌남에 대한 나의 무언의 예의같은 것.
어쨌든 현실의 나는 평범한 검은머리 남자와 돼지껍데기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