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는 가족 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점심에 여동생네와 남동생네 모두 와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고 저녁엔 남동생네 집에 가서 하룻밤 자기로 했기 때문에 주말에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고, 8월까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다 읽기로 했던 나는 그래서 주중에 미친듯이 열심히 읽고 있었다. 이 책 다 읽으신 분들 진짜 존경... 너무너무 어렵다. 그러니까 뭐라는거야? 괜찮다는거야 나쁘다는거야 하는 생각을 수차례 했고, 갑자기 에드워드 사이드가 '줄곧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왔다' 라고 하면, '어?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 글자를 보되 이해는 못하고 있구먼... 하며 어렵게 읽어나가다가 자, 토요일엔 하루종일 못읽고 이제 100페이지 남짓 남겨둔 상황, 그렇다면 일요일 오후에 몰아치자, 하고는 책을 덮은게 금요일 밤.
토요일 오전 일어나 빵을 좀 만들고 샤워를 하고 약속 시간이 되어가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데, 함께 읽기로 한 친구로부터 톡이 왔다. 아침에 달리고 이제 오리엔탈리즘 읽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나는 오늘은 못읽어 ㅠㅠ 내일 읽어야돼, 하고 걷다가 갑자기, 문득, 불쑥, 불현듯! 아????
8월은 오늘까지네??
일요일은 9월이네??
하는 깨달음이 찾아왔고, 그러자 찾아온
아뿔싸..... 나 다 못읽겠구나....
나는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는데 친구는 내 말에 놀라서, '앗 나도 당연히 일요일까지인줄 알았어!' 라고 깜짝 놀랐고, 그 때부터 친구는 토요일 하루종일을 오리엔탈리즘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친구는 뒤에 200여페이지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친구는 읽고 있지만 나는 읽을 수 없는 상황. 결국 밤 아홉시를 조금 넘겨 친구는 이제 다 읽었다고 족발 먹을거라고 했다.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고. 어휴.. 나는 옥의 티네.. 이렇게 시간 안지키는 독서는 처음이네 ㅠㅠ 하면서 일요일로 미루었고, 일요일에 집으로 돌아가다가 까페에 들러 남은 부분을 다 읽었다. 아아, 9월 1일에 완독한 나의 오리엔탈리즘이여...
책이 어렵기도 했지만 오타도 수두룩했다.
어휴 이건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지 싶은데 그런다고 내용 이해가 되려나 싶기도 하고...
토요일 점심은 다같이 뷔페에서 먹는데 타미랑 조카2가 네살 조카3 을 너무나 예뻐하며 잘 챙겼다. 손 잡고 데리고가서 아이스크림도 퍼주고 의자에 앉혀주기도 하고 그랬다. 옆에서 계속 쫑알쫑알 말걸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게 너무 좋았다. 와, 그 어렸던 아이들이 이제 어느정도 커서 더 어린 아이를 돌봐주고 예뻐하다니. 그걸 보는게 진짜 자지러지게 좋아서 극강의 행복을 느꼈는데, 그 날 아빠도 '오늘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하셨다. 아빠 앞에서 어린 손주들 셋이 함께 웃고 이야기하는 걸 보는게 너무 좋았다고. 나도 그걸 보는게 너무 좋았는데, 새삼 내가 참 나이가 많이 들었나보구나 싶었다. 나는 살면서 내가 이런 식의, 이런 종류의 행복을 느낄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는데. 어린 아이들로 인해 행복을 느끼다니. 나는 나이 먹었구나, 하게 된거다.
그리고 나는 남동생네 집으로 함께 가서 조카3과 함께 놀았다. 네살 조카는 내게 하룻밤 자고 갈거냐고 묻고 그렇다 했더니 또 자고 또 자고 다섯밤 자고 가라는거다. 안된다고, 회사 가야한다고 하면서 조카랑 신나게 놀았다. 조카는 많이 웃었고 너무 예뻤다! 다같이 저녁을 먹으러 양꼬치 집에 갔는데, 아아 나의 네 살조카.. 양꼬치 너무 잘먹어! 진짜 누구 조카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양꼬치 잘 먹을 줄 몰랐어.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자고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들어갔는데, 문 열자마자 튀어 들어가서 의자 위에 올라가기!!
아 진짜 저 종아리 ㅋㅋㅋ 어쩔 ㅋㅋㅋㅋㅋㅋ 내 친구가 저 사진 보고 애기 운동 시키냐고 물었다. 아니, 네 살짜리가 무슨 운동이야 ㅋㅋㅋ 쟤 아가때부터 종아리가 저랬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조카, 무슨일이죠? 종아리 근육 뭐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아가가... 종아리 알 있어도 괜찮은건가..........?? 이거 .. 혹시 걱정해야 하는건가..??
다음날 다같이 아침 먹고나서 설거지 하고 있는데 조카가 '큰고모랑 놀고 싶어' 했다. ㅋㅋㅋ 설거지 마치고 놀자~ 금방 다해~ 하는데 옆에 계속 왔다갔다 거리다가 내가 다 해서 이제 같이 놀기 시작했다. 작은 상을 펴두고 그 위에 새로 산 아이스크림 가게 장난감을 두고 함께 놀다가, 여동생이 이제 집에 가자고 해서 그래, 하고는 네살 조카에게
"고모 이제 옷갈아입고 집에 가야해."
했는데, 하아- 나 미치겠네 진짜.. 그 말 들은 조카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는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내 마음 찢어져.
"고모 지금 갔다가 다음에 또 올게!"
했더니 고개 숙인 상태에서 끄덕끄덕 하는거다.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미치겠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런 조카를 보는데 내가 막 울 것 같은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빠이빠이 하고 헤어져서 집에 돌아가는데, 아, 조카1과 조카3은 얼마나 다른 아이들인가 싶었다.
타미의 경우,
네 살 즈음 나랑 헤어지기 싫으면 헤어지기 싫다고 울고 식탁 밑으로 들어가서 '집에 안가, 이모랑 살거야!' 했더랬다. 그런데 조카3은 그런 말을 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푹 숙이는거다. 어휴 ㅠㅠ 평소 조카3은 자신을 '부끄핑' 이라고 했더랬다. 사람들 만나면 부끄럽다고 부끄부끄핑이라고.. 타미는 지나가다가 누가 예쁘다고 하면 으쓱하는 타입이었는데, 조카3은 지나가다가 누가 예쁘다고 하면 제 엄마 품을 파고든다. 친한 가족들에게만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이인 것인다. 지극히 내성적인 아이랄까. 내가 간다는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만 끄덕이는 조카를 보는데 와- 내 마음 ㅠㅠ
나의 조카는 아직 한글을 익히지 못했는데 ㅋㅋㅋ 이번에 갔더니 지난번에 준 츠츠츠츠 읽어달라고 해서 읽어줄라고 펼쳤는데, 펼치자마자 그 안에 있는 글자 다 이미 외워서 자기가 말해버리는거다. ㅋㅋㅋㅋㅋㅋ 읽은게 아니라 걍 뭔지 외워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 글자 몇 개 안되긴 하지만 그게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빵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 몇 권 더 사뒀는데 이번에 남동생이 차를 안가져오는 바람에 가져가지 못했다. 네 살조카가 우리집에 들었을 때 책들을 보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어디있지? 물었는데 내가 응 고모집에 있어, 다음에 아빠가 가져온대, 라고 말해주었다. 어휴 진짜 세상 귀요미.
아이스크림 먹는 하츄핑들 ㅋㅋㅋ 욕실에는 이거보다 몇 배 많은 하츄핑들이 있다. 돌아버리겠네 ㅋㅋㅋ 아무튼 내 핸드폰에도 하츄핑 스티커 붙여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귀여워.
야 진짜 미래는 예측불허다. 내가 아이들 예뻐서 이렇게 행복해할 줄은 진짜 몰랐지... 이런 날이 내게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어.
나는 일전에 데이트 상대에게도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나는 지금 내 동생들하고 조카 사랑하고 사랑받는 걸로 너무 충만해서 다른 사랑은 더 필요가 없어" 라고. 의도가 있는 말이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더랬다. 이거면 되고 다른게 더 필요없는, 이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만한 사랑이 가득해버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사랑이 존재할까 싶은거다. 내 눈앞에서 웃고 이야기하는 조카들 보면 가슴 가득 차오르는 사랑과 행복.. 이제 나보다 키가 커버린 타미는 나랑 함께 걸을 때 어깨동무를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타미는 내 어깨동무를 하고 나는 타미의 허리를 감싼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번에 조카3 집에 간다고 했더니 타미가 째려보면서 이모 어이없다... 라고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자기랑 올리브영 갈 줄 알았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살조카는 내가 만든 치아바타를 잘 먹는다. 이번에 먹으면서
"고모는 왜이렇게 빵을 잘 만들어?"
라고 묻길래,
"그건 고모가 엄청 많이많이 만들어서 그래. 반복하고 또 반복했거든. 그러면 잘하게 돼."
했더니,
"고모도 애기때는 빵 못만들었어?"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응 못만들었지~ 했다.
와... 요리에 젬병인 내가 어린 조카에게 빵 어떻게 잘 만드느냐는 말을 듣고 ㅠㅠ 인생 뭐냐 진짜루 ㅠㅠ 알 수 없는 것이 인생 ㅠㅠㅠ
타미한테도, 타미야 이모 치아바타 만들었는데 가져갈래? 물었더니, 응! 하면서 "이모 근데 토마토 스프는?" 하고 묻는다. ㅋ ㅑ~ 내가 오래전에 한 책을 읽고나서 사랑하는 사람이 오면 내어줄 수 있는 요리 하나는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쓴 적 있었는데, 지금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다. 흑흑 ㅠㅠ 사랑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상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조카들로 인해 예전보다 더 많은 걸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조카들 때문에 시작한 건 아니었어도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것 같다. 코끝이 찡허구먼 ㅠㅠ
밤에는 삼남매가 도란도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한 남동생 때문에 우리 삼남매는 모두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고, 그렇게 달리기 이야기도 오래 나누었다. 나는 내 허벅지 들이밀며 만져봐, 만져봐, 근육 장난 아니지, 했고 동생들은 어휴... 대답해주자 하는 마음으로 그래그래 했다.
남동생은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됐는데 달리기 좋다고 했다. 평소 웨이트만 했고 유산소는 부족한 편이었는데 달리기가 그걸 채워주고 있다고. 그러면서 이어지는 대화.
남동생: 나는 달리기 하기 전에 내 몸이 예쁘다고 생각했거든.
다락방: 근데? 달리기하니까 못생겨졌어?
남동생: 달리기하고나니까 몸이 더 예뻐졌어.
다락방&여동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우리 가족은 어떢하냐 진짜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아- 답없이 자뻑 충만 우리가족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책을 샀다.
책탑 사진은 못찍었다. 너무 힘들었다. 어제 오리엔탈리즘 다 읽고나서 올림픽공원 가서 달리고 와가지고 치킨 시켜 먹고 하이볼 마신다음에 소화도 못시키고 기절해버림.. 사진을 못찍었다. 그렇지만 별로 아쉬울 게 없는 것이, 책 두 권 밖에 안샀지롱~ ㅋㅋㅋㅋㅋ
책탑 사진은 다음주에 찾아뵙겠습니다. 두둥-
동료가 사다 준 소금빵 먹어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