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다.
매우 많이 피곤하다.
그러니까 사연은 이렇다.
나는 토요일 아침 창원에 친구들을 보러 내려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인만큼 파김치를 꼭 맛보여주고 싶어, 나는 금요일 퇴근 후에 부랴부랴 파김치를 담갔더랬다. 파김치 담그고 노곤한 몸을 쉬어주고자 또(!) 편육을 먹었다. 마침 내게는 친구들로부터 받은 접시 셋트가 있었고, 내가 이 접시 셋트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보여줘야지, 하고 예쁘게 편육을 담은 터였다.

그렇게 일찍 KTX 를 타고 대전에 내려 환승하기 전 어묵꼬치를 사먹고 어묵 국물도 한사발 들이켜고 다시 KTX 를 타고 친구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친구들은 내가 오기 며칠전부터 이미 나를 기다리느라 기분이 좋아있었다며 반가이 맞아주었다. 친구들의 집에 도착해 짐을 풀어두고 내가 준비해온 간식들과 파김치를 내밀었다. 친구들은 꺅꺅 소리를 지르며 파김치를 먹어보더니 너무 맛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김치도 다른 음식들처럼 입맛 타는 거라 걱정된 참이었다. 일전에 김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너무 내 취향 아니라 난처했던 적이 있어 어쩌면 내 김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단 말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친구들은 정말 맛있다고 했다. 후훗.
그렇게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여러분 들어는 봤니, 아구 불고기? 우리는 대낮에 아구 불고기를 시켜서 소주도 함께 주문해 낮술을 마셨다.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산책을 하고 커피와 간식을 먹고 낮잠을 잔 뒤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친구들이 예약해둔 레스토랑이었다. 이곳은 분위기도 좋고 음식 맛도 너무 좋은데 심지어 콜키지가 무료이다. 내가 가져간 와인 한 병과 친구들이 준비한 와인 한 병 해서 두 병을 가지고 우리는 레스토랑에 가 스테이크와 파스타 그리고 뽈뽀(문어!)를 맛있게 먹고 또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친구들의 집에 돌아와 차를 마시고 늦은 밤 잠을 이루었다. 다음 날 아침 친구들이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고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친구들은 기차역에서 나를 배웅해주었고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기차 안에서 책을 읽다가 졸다가 하는데, 서울에 있는 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야, 도대체 우리 언제 만나?"
안그래도 조만간 이 친구 만나야지 생각하던 참이라 반가이 연락을 받고는 곰곰 언제 만날지를 떠올려보는데, 회식에 약속에 좀처럼 짬을 낼 수 없을 것 같고, 내가 탄 기차는 열두시면 수서역에 도착하고... 나는 친구에게 답을 보냈다.
"점심을 조금 늦게 먹어도 괜찮다면 오늘 어때?"
친구는 물론 괜찮다고 했다. 급약속이 이루어져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풀고 손을 씻고 금요일에 담근 파김치를 또 새로운 그릇에 좀 덜어냈다. 내가 파김치를 담글 때는 이 친구를 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거든. 그리고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우리는 맛있고 배부르게 밥을 먹고, 아아, 그동안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나의 아지트 까페로 나는 친구를 데려갔다. 여기 왜 나의 아지트냐면, 이 동네 까페 죄다 사람 많은데, 여긴 사람이 없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가 커피 뭐 마실래, 해서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라고 하고 친구도 뜨거운 아메리카노! 했는데, 두 잔에 사천원하는 가성비 까페이다. 여긴 화장실도 좋아. 주말에는 종종 여기 나와 책을 읽곤 한단 말이지. ㅋㅋ 손님 아무도 없을거야, 하고 데려갔는데 손님 조금 있어서 당황했지만, 여하튼 친구를 만나서 까페에서도 또 밀린 이야기를 실컷 나누고 나의 파김치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다섯시가 안된 시각. 나는 도서관에 12/10 까지 반납해야 하는 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부랴부랴 그 책을 들고 다시 나간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향해 반납을 하고 시장에서 엄마를 만나 시금치를 샀다. 엄마 시금치 사야 해, 베이컨 시금치 볶음 할거야, 라고 했다. 그렇게 엄마랑 시금치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세상에, 전날 아침에 집을 나와 다음날 오후 다섯시까지 집의 침대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하는 거람? 나는 아빠의 저녁으로 이연복 짜장을 끓여드리고 얼른 내가 먹을 안주를 준비했다. 쨘 -

와인은 창원에 사는 친구들이 선물해준 내츄럴 와인. 안주는 베이컨과 시금치를 볶아낸 것. 중간에 파김치도 꺼내와서 맛있게 먹었다. 창원에 사는 친구들은 내가 가고난 뒤 점심을 먹고 한숨 잤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 하나도 쉬지를 못하고 강철 체력으로 다니고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하튼 그래서 밤에 자지 뭐, 했는데, 밤에 잠이 잘 안와가지고 내가 좀 고생스러웠고,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커피를 퍼마시고 있는데, 그래도 개피곤하다!! 개피곤해!!!!! 개피곤하다!!!!!
어제 그 피곤한 와중에 알라딘에서 도착한 박스 세개의 포장을 풀고(아 어찌나 귀찮던지) 월요일 루틴을 시작하기 위한 사진을 찍었다. 책탑!!

《장수탕 선녀님》은 아가 조카를 위해 준비했다. 아가 조카 요즘 책에 무섭게 집중해서, 야 한글 가르쳐라 그러면 한글 일찍 깨친 리틀 다락방 되는거야, 했더니 그 말 듣고 있던 여동생이 말했다.
"그게 좋은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생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간의 마음 뭔지 모르겠다. 북플에서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존재를 알게 되고 오 책 설명이나 한 번 볼까, 하고 들어갔더니 품절인거다. 얼라리여? 품절이여? 검색해보니 중고로 나와 있어서 부랴부랴 샀다. 왜때문에 품절이라니까 급박해지는거지.. 급박해진 나의 구매욕..
《페일 블루 아이》,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은 아마도 트윗에서 보고 담아둔 것 같은데 이제는 왜 샀는지 잘 모르겠다. 인간이여...
《사강의 말》은 사강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렇게 널리 읽히고 인기 있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한 번 읽어보려고 샀다. 사실 이거 읽는다고 사강을 좋아할 것 같진 않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래서 알랭 드 보통 여섯권인가,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읽었지만 끝내 보통을 좋아하게 되진 않았지.. 아무튼 그래서 사강 왜, 뭐, 하고 읽어봐야지 하고 샀다. 그렇지만 나는 알 수 있다. 내가 좋아하진 않을 거야. 그래도 나랑 완전히 다른 결의 사람을 한 번 들여다보자.
다른 책들을 산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마음대로 짐작해보도록 하자. 쓰기가 너무 귀찮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리고 내가 지난주에 장바구니에 넣었던 책중에는 이 책이 있단 말야?
정희진 오디오 매거진 듣고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오오 스캇 펙의 이런 책이 있네? 나는 아직도 안간길인가 먼길인가 그 책 있는데, 오오 이 책 무섭지만 읽어보고 싶다, 하고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를 하려는데, 내가 이미 2023년 11월 3일에 결제한 책이라고 나오는거에요. 네??????????????????????????
얼른 주문내역 조회해보니 내가 이미 이거 산 부분... 그런데 너무나 새롭게 이번에 또 '오 스캇 펙의 이런 책이 있어?' 하고 사려고 했어. 세상에..

하아. <산책> 앱에 바로바로 정리 해뒀어야 하는데 이젠 그 앱 열어보지도 않아... (시무룩)
빡빡한 주말 일정으로 지금 너무 피곤한 상태이지만, 그러나 기분은 좋다.
지난 주 잠자냥 님의 페이퍼에 댓글로도 달았지만, 내게는 몇가지 이론이 있다. 내가 살면서 스스로 터득하고 만들어낸 이론인데, 그중 하나는 댓글로도 달았던 '좋은 어른을 만난 아이가 좋은 어른이 될 확률이 크다' 이다. 좋은 어른을 만났다고 반드시 좋은 어른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좋은 어른을 만나면 좋은 어른이 될 확률이 높다. 보고 배울만한 어른이 없는데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에너지도 너무 많이 든다. 그리고 자꾸 잘못된 길로 갈 확률도 높다.
주말에 친구들 만나면서 다른 이론들 몇 개에 확신을 더했다.
하나는, '나를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잘못된 길로 갈 확률은 적다' 이다. 못된 마음이나 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도 친구들이 그거 아니야, 그러지마, 라고 말해주면 아이쿠 이런, 하고 다시 돌아올 수가 있다. 내 친구들이 나를 아끼는 것을 내가 알지 못했다면 내가 내 마음을 얘기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 말에 친구들은 따뜻한 조언으로 응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살면 내가 잘못된 길을 가려고 방향 잡았다가도 이내 돌아올 수 있겠구나, 했다.
또 하나는, '나를 보여주는 건 나의 말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다' 라는 것.
나를 오래 봐온 사람이고 나에 대해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굳이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알아채준다. 그동안의 행동으로 나를 파악하는게 가능해지는 것. 어제 만난 친구와 밀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고 다른 친구의 나에 대한 생각도 전해 들으면서, 나 말하지 않았는데 친구들이 다 알고 있었네, 하고 살짝 울 뻔 했다. 뭔가 다 괜찮아지는 마음이었고, 눈물을 참았다. 그래서 육체는 무척이나 피로하지만, 내가 주말 동안 만난 여사친들과 남사친 덕에 마음이 평온해지고 또 다잡기도 하고 그랬다. 어제 친구와 헤어지면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살아야 하는거야, 얘기도 했다.
정말 정말 좋은 주말이었다.
그렇지만 너무나 피곤해서 코피가 터질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