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주일이 지옥같이 흐르고 있다.
많이 바쁘다.
계속 보고할 자료 만드느라 정신이 없고 그 와중에 원래 내가 하던 일도 해야 한다.
지금은 버티는 게 답이라고, 나도 생각하지만 내 주변도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특별히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전문직도 아닌 중년의 화이트칼라 여성이 이대로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그 뒤에 일어날 일은 아마 다들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내가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 점심을 먹기 위해서든 혹은 퇴근을 하기 위해서든 걸으면, 길에서 마주치는 젊은 직원들이 고개 숙이며 인사해준다. 내 직함을 부르며 반갑게 달려오기도 한다. 나는 이들에게 상사이기에 이들은 길에서 마주치는 내게 예의바르고 반갑게 대하지만, 만약 내가 여기에 속해있지 않다면, 아무런 직함도 달고 있지 않은 나는 그저 지나가는 중년여성1 일 것이다. 나는 가끔 직장 생활로부터 만족을 얻기도 한다. 물론 통장에 매달 어김없이 찍히는 월급으로부터도 만족을 얻지만, 드물게는 내가 해놓은 일의 결과물을 보고 좋아할 때도 있다. ㅋ ㅑ ~ 나니까 이걸 이렇게 했다, 라는 내 뽕이 차오른달까.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든 마주친다는 것이 내게는 좋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있고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억지로 웃어줘야 할 때도 있고 화를 낼 때도 있고 분노를 표출할 때도 있지만, 내가 여기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거다.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이는 일은 스트레스지만, 그러나 그런 상황에 놓여보았기 때문에 사회생활이라는 건 내가 원하는 것만 취할 순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지금의 회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너무 커지고 있고, 그런데 커지면서 생겨나는 일들이 내 몫이 되었고, 그걸 해내면서 나는 매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인생의 이 시점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낮에는 정신없이 일하는 삶, 그 외에는 늙고 병든 아빠와 외할머니를 마주하는 삶, 그리고 직접적으로 돌봄노동하는 엄마를 들여다보는 삶.
얼마전 투비에 여행기를 올리는데 여행기를 읽은 친구가 엄마 모시고 여행 다녀오느라 고생 많았다고, 잘 다녀와 다행이라고 포인트 만원을 쏴줬다.(포인트 만 원 처음 받아봐요 ㅠㅠ 포인트 만원이란게 있군요 ㅠㅠㅠ)
한 친구는 내 알라딘 글을 읽고 엄마를 모시고 여행하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내가 네덜란드에 있는데 세상에, 십만원을 송금해줬다. 엄마 이모, 내 친구가 십만원이나 보내줬어 맛있는 것 먹으래.
엄마랑 이모는 내 말에 "그거 잊지 말고 꼭 그 친구에게 좋은 일 생겼을 때 보답해." 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친구도 있고 나보다 나이 적은 친구도 있고 성별이 다른 친구들도 있고, 그렇게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당연히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르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고 얻어가는 것도 많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확실히 내 또래가 줄 수 있는 고유의 위로라는게 있는 것 같다.
아빠의 계속 거듭되는 수술과 재활 그리고 엄마의 돌봄노동까지, 내 또래의 친구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걱정해주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나는 감사하다. 사실 요즘에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라서, 내 성격이 이래서, 어디서든 뭐가 됐든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서 행복을 찾는다. 오늘 아침에도 며칠 전 조카의 눈을 바라보았던 일, 우리가 손뼉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 하며 소리를 질렀던 일등을 떠올리며 웃음이 났다.
어제도 좀 야근을 했다. 그런데 와인을 너무 마시고 싶었다. 집에는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스파게티를 사둔 게 있었다. 나는 와인을 마시고 스파게티를 먹고 그러다 이것저것 다 꺼내먹고 <다시 갈 지도> 보면서 스페인에 가야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술을 마시고 마시고 계속 마셨다. 그런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책을 샀다.
책을 사고 나는 장렬히 전사한 것이다!!
오늘 출근한 뒤에 '아 맞다 어제 책 샀지, 뭐 샀지?' 하고 들여다보니, 내 주문 내역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아니, 왜 아무에게도 땡투를 안한거죠? 왜죠? 저 깨끗함 뭐죠? 빨간 하트 있어야 되는데?
나는 얼른 주문 취소하고 재주문을 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상품출고중이라 취소가 안된다. 《생물학적 풍요》같은 거, 땡투 적립금 3백원이나 될텐데. 아까버 ….
그리고 나는 다른 계정에 들어가서도 책을 샀고 예스에서도 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술 마시는 것 말려라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사로 책 사는 여자 어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생물학적 풍요 표지 너무 시르다 …. (왜 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