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무라 미나에'의 《어머니의 유산》을 읽고 있다.
여러가지로 지금의 나와 상황이 겹쳐서 답답하고 공감하다가 안타까워하다가 한다.
주인공 미쓰키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 유산을 언니 나쓰키와 나눠 가진 걸로 소설은 시작한다. 갑자기 갖게 된 큰 돈을 가지고 어떻게 쓸까, 하는 대화를 자매가 하는 거다. 계산해보니 우리 돈으로 4억쯤 되는 돈을 자매가 각각 갖게 된 것 같다. 미쓰키야 딱히 여유롭게 살고 있진 않았지만 나쓰키는 부유한 집으로 시집가 여유롭게 살고 있었는데 그래도 자신 소유의 돈이 생기니 흥분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엄마의 젊은 시절과 그리고 자매들을 키우면서의 이야기들이 보여지는 거다. 미쓰키의 엄마는 헌신적이거나 희생적인 엄마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엄마였고, 그런 점에서 다소 엄마에게 불만을 품기도 했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감사하기도 했고 또 자매에게 애착을 갖기도 한-때로는 질투하기도 한- 그런 엄마였다. 아마 딸들이 대부분 엄마에게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
나의 외할머니가 지난주 응급실에 실려가시기 전 걸음을 걷지 못하셔서 요양보호사 님이 기저귀팬티를 채워주셨더랬다. 그런데 할머니는 한사코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시겠다는 거다. 걷다가 넘어지면 큰일난다고, 기저귀 했으니 그냥 소변 보시라고 엄마와 내가 큰 소리로 몇 번이나 얘기해도 할머니는 기어코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셨다. 하는수없이 엄마와 부축해 변기 위에 옷을 벗기고 앉혀드렸는데 볼일을 다 보신 할머니는 평소처럼, 그 힘이 없는데도, 뒷처리까지 깔끔하게 하셨다.
아무리 몸의 기력이 떨어져도 뒷처리까지 깔끔하게 하는 할머니에게 '그냥 기저귀에 하시라'는 말은 얼마나 비참했을까. 아마 도무지 용납이 안되는 말이 아니었을까. 119에 실려가시기 직전에도 다시 한 번 화장실을 요청하셨고 그렇게 화장실을 모시고 다녀오면서, 엄마, 그 몸에도 뒷처리까지 깔끔하시네, 라고 말씀드렸다. 정신이 말짱한데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의 마음이란 것은 어떤 걸까.
미쓰키의 엄마도 자전거 사고가 나고 몸도 약해지면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고 결국 요양병원과 실버타운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다리를 쓰지 못해 이동식 변기를 집 안에 두어야 했다. 그런것들을 감당하는 일을 내 정신이 멀쩡한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은 도대체 어떤 걸까. 이건 소설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일텐데. 소변이 마렵다는 나의 본능과 그런데 나는 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끌고갈 수 없다는 앎은 소변을 기저귀에 보게 하는 결과로 나와야 할텐데,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중에는 영양분 주입을 코에 관을 꽂거나 위에 꽂거나 해서 연명해야 한다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나 영생, 영생을 주장해 왔는데 최근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걸 받아들여야 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생각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내 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인지하는 시점에 죽는게 더 나은 거 아닐까, 하는. 몸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 삶을 이어나가는 것, 그런 영생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것은 말 그대로 고통이 아닌가. '윌'이 이것이 내 삶이 아님을, 이 삶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루이자를 사랑하지만 그것만으로 이어가기엔 부족함을 말하는 것이, 지금은 더 잘 이해된다. 나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삶이란 무엇일까.
그런 엄마를 매일 들여다보고 돌보아야 하는 건 미쓰키의 몫이다. 어릴 적 장녀인 나쓰키에게 엄마는 기대를 걸었지만 엄마와 어느 틈에 소원해져 지금 엄마는 전적으로 미쓰키에게 의존한다. 더 연약해진 후에 장녀 나쓰키도 함께 돌봄 노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간신히 생명줄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그냥 돌아가시는 게 더 나을거란 생각을 자매들도 하고 있다. 그렇게 쨍쨍하게 자기 삶을 이어나가고 자기 자신을 사랑했던 엄마의 누워있기만 하는 힘없는 육체를 보는 일은, 자매에게도 복잡한 마음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런데,
늙고 병든 엄마를 돌보는 일 만으로도 인생이 뭔가 싶고 육체가 피로한데, 그런 오십대의 미쓰키에게는 이 즈음에 다른 고민도 있었으니, 그것은 남편 데쓰오의 바람이었다. 우연히 남편 데쓰오가 삼십대 후반의 여자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거다. 어머니 간호 때문에 베트남 장기출장에 따라가지 않는걸 선택하면서 미쓰키는 남편에게 여자가 있음을, 그 여자가 베트남에서 남편을 만날 것임을, 그리고 그 둘은 결혼할 것임을 다 알게 되면서, 또 자신의 사진까지 그 여성에게 보여준 것도 알게 되면서 미쓰키는 절망한다. 아직 남편에게 내가 너의 바람을 안다, 는 것을 말하지 않고 엄마의 안부를 주고 받고 있기는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나자 미쓰키는 베트남에 있는 데쓰오에게도 그리고 데쓰오의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받은 유산을 가지고 자신을 위로할 겸 생각할 겸 그리고 휴식할 겸, 일전에 엄마와 간 적 있던 호텔로 향한다. 그곳에서 미쓰키는 조용히 남편을 생각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은 사실 남편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둘다 공부하다 만난 파리의 다락방에서 청혼하고 청혼받던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 남편과 미쓰키 사이에는 점차 위화감이 조성되고 그 사이에 남편은 바람을 피고 또 피고 그러다 또 피고 … 나는 사랑받지 못했어, 라는 걸 최종 확인하는 일은 괴롭지만, 그러나 미쓰키는 깨닫는 거다.
"나는 내가 바랐던 것처럼 사랑받지는 못했다." -p.330
처음 남편의 불륜이 들키고 싸우고 울면서 화해하고 했던 시간들까지 돌이켜보다, 미쓰키는 그 날의 냄새도 떠올리게 된다.
"끝내자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침대에 누운 미쓰키의 마음이 진정되자 데쓰오의 변명이 시작되었다. 미쓰키가 감기에 들지 않도록 깃이불을 덮어주고 자신은 옆에서 머리 위로 손깍지를 낀 채 이불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머리 위로 손깍지를 끼고 있으니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올라온다. 미쓰키가 파리에서 좋아하게 된 어딘가 야성적인 데가 있는, 코를 찌르는 달콤한 냄새였다. -p.353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내가 진짜 오늘 아침 지하철 안에서 이 부분 읽다가 넘나 대충격 받아버림. 아니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 사람은 모두 다 각자의 취향이란 것이 있다. 유독 냄새에 민감한 사람이 있고 유독 시각적인 것에 약할 수도 있고, 그렇게 유독 민감하고 예민한 부분이 있는 것처럼, 또 사람마다 저마다의 흠뻑 반하게 되는 지점, 남들은 아니라지만 나는 반하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게 페티쉬로 나올 수도 있고, 내 경우엔 누누이 말해왔지만, 전완근과 등근육에 뒤로 자빠져버리는데, 누군가는 식스팩에 맛이 갈 수도 있고, 뭐 여자들 다리나 발목에 뻑가는 남자들도 많지 않나. 오래전 본 드라마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코에 반했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반하는 지점이 다를 거라는 것을 나도 안다. 전완근과 등근육에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은 몹시 흔들흔들. 누가 푸쉬업 한다는 말만 들어도 아찔해지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겨드랑이를, 그리고 겨드랑이의 냄새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을 안다. 아는데, 그래도 너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어떻게 겨내가 '야성적인 데가 있는', 아니, 그래, 야성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몸에서 나는 그대로의 체취 아닌가. 아직 씻지 않았으니, 그래 그걸 야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 오케이. '코를 찌르는' 그래, 그것도 알겠다. 맞지. 코를 찌르지. 내가 이 더운 여름에 왜 마스크를 계속 하고 다니는데? 퇴근 길 지하철 냄새가 너무 싫어서 나는 마스크를 하고 다닌다. 더워 죽겠는데 내게는 더위보다 이 냄새가 더 환장하는 지점인거다. 사람들 본연의 체취는 나에게 너무나 지독하다. 코를 찌르는 겨내 … 나는 그걸 맡고 싶지 않다. 여름의 퇴근길 지하철에 타보셨나요. 곶통 …
그런데 이렇게 '야성적' 이고 '코를 찌르는' 겨내를, 아니 '달콤한 냄새' 라고 하다니, 나는 돌아버리겠는 거다. 아, 누군가는 그걸 '달콤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거구나!
아니, 내가 아무리 한 사람을 사랑해도 그 사람의 똥은 더럽지 않나요?
아니, 내가 아무리 한 사람을 사랑해도 그 사람의 똥냄새는 싫지 않나요?
뭐 똥냄새랑 겨냄새는 좀 다르긴 하지만 …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 여자친구중 한 사람은 퇴근후 애인 만났더니 '네 정수리 냄새도 좋다'고 말했었다는 걸 들려준 적이 있다. 퇴근 후에 정수리 냄새가 날까봐 걱정했는데, 애인은 그런 나의 친구에게 '너가 오늘 하루종일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잖아, 난 좋은데?' 했다는 것. 어쩌면 당신의 겨드랑이 냄새를 달콤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당신의 정수리 냄새를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냄새에 담긴 사연을 읽을 수 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더우니까, 열심히 일했으니까, 땀흘렸으니까, 당신에게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바로 그 흔적이지, 아 달콤해 …
라지만, 나는 안되겠어요. 겨드랑이 닦고 나를 만나도록 하세요. 겨드랑이도 닦고 손도 닦고 발도 닦고 양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똥꼬도 박박 닦고 귀 뒤도 닦고 다 닦고 나를 만나자. 나는 겨드랑이의 달콤한 냄새 같은 거에 반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나는 그보다는 향수 뿌린 사람에게 더 반하는 쪽이다. 길을 걷다가도 지나가는 여자사람이나 남자사람으로부터 향수 냄새나면 음 좋아~ 하는 사람이 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당신의 겨드랑이 냄새 달콤해' 한 적 없고, 앞으로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사랑 안하고 말지, 겨드랑이 냄새 달콤해하면서 옆에 누워 자기는 싫다. 그런데 상대가 만약 내 겨내를 달콤하게 생각한다면 … 아 모르겠다. 용납이 잘 안될라고 해. 겨내를 좋아한 건 아니지만 겨드랑이를 좋아했던 남자는 있었는데 … 나는 당신의 전완근을 좋아했어. 당신이 사진을 찍어 전송해주면 일단 전완근 먼저 봤지. 손하고.
눈 코 입 날 만지던 네 손길 작은 손톱까지 다 여전히 널 느낄 수 잇지만
그러고보니 미쓰키가 과거를 떠올리면서 남편으로부터 위화감을 느꼈던 것중에 하나로 자신이 노래부르던 중에 저 멀리로 가버린, 노래 부르는 걸 한 번도 들어준 적 없었던 것도 떠올리는데, 음 … 나는 늘 노래부르는 사람인데 … 그래서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좋아?'를 늘 묻곤 하는데, 난 뭐가 좋아서 부른 건 아니고 그냥 부른다. 남동생도 그런다. 일어나면 일단 노래부터 부르고 화장실 가도 부르고 나도 아무때나 맨날 흥얼거려서 ㅋㅋㅋ 회사에서도 그래가지고 ㅋㅋㅋㅋ 어느날 올케가 주변에 노래 부르는 사람이 딱 두 명있는데 그게 자기 신랑하고 나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뭐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너무 웃긴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아가 조카, 즉 내 남동생의 딸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말도 하기 전부터 노래를 부르고 다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울집 와서 화분에 분무기로 물주면서 흥얼거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귀여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 이야기가 왜 여기로 …
미쓰키가 사랑받지 못했다는 걸 자각할 때 나는 반대로 사랑받았음을 자각했다. 내가 사랑 받고 '아 나 사랑받고 있어' 를 깨달았던 순간들이 눈앞에 스쳐지나갔다. 조카들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어서 내가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준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이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사랑이 나를 아주 크게 어루만져준다고 깨달았던 순간들이 있었던 거다. 그렇게 내가 사랑받았던, 내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어떤 사랑을 내가 받았다고 확실히 느꼈던 순간들이 눈앞에 떠오르면서 마음이 따뜻해진거다. 난 받았어, 사랑. 난 받았었지. 사랑은 모든 일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러나 사랑받은 경험과 기억은 인생에 아주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은 확실히, 있는 게 낫다. 원헌드레드펄센트 장담한다.
자, 다시 미쓰키 얘기로 돌아가자.
"끝내자고 말할 때마다 마구 울어서 끊을 수가 없었어."
미쓰키는 코를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도 있을 것이다. 데쓰오는 자상해서 헤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전화할 때의 유쾌한 목소리가 귓가에 남이 있는데도 미쓰키는 데쓰오의 변명에 자진해서 납득했다. -p.353
네? 자상해서 … 헤어지기 힘들었을 거라고요? 불륜인데요? 바람핀건데요? 헤어지지 않고 양쪽 다 만나면 둘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일인데, '자상해서' 라고요? 미쓰키도 인지하다시피 이건 데쓰오의 변명을 대신해주고 납득하는 것이다. 왜? 그렇지 않고 사실 그대로 직시하면 자신이 상처받을 테니까. 사실은, 데쓰오는 자상한 게 아니라 겁쟁이에 게으른거다. 헤어지자고 말함으로써 겪게 될 그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거다. 그렇게 이 여자 만나고 저 여자 만나면서 자신은 자신대로 만족하고 그런 한편 힘들고 괴로운 일로부터는 도망치고, 그렇게 도망치면 상대가 더 괴로워하는데도 그걸 선택한 거다. 순전히 자기 자신만 생각한거다. 자상해서 라니. 자상하다면 바람을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 자상하다면 아내 외에 다가오는 여자를 밀어냈을 것이다. 혹여 그 여자가 내 인생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면, 아내보다 늦게 만난게 한스러웠다면, 그렇다면 아내에게 그만을 말했을테고. 이도저도 아니고 여기저기 다 만나는 것, 저 여자 만나면서 아내 옆에 잠드는 것은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자상한건가? 게으르고 비겁한 놈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게으르고 비겁한 놈'하고 같이 사는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미쓰키는 남편을 '자상하다'고 포장한다. 미쓰키는 게으르고 비겁한 놈과 사는게 사실인데, 자상한 놈과 같이 사는 걸로 포장한다. 게으르고 비겁한 놈과 함께 사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싫으니까. 누구나 내 남자가 좋은 남자이길 바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보이길 바라니까. 그래서 괴로움을 참고 사는 걸 선택해버리는 거다.
나는 그런 괴로움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으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나를 괴롭게 하는 상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인데, 그런데 사람들이 다 나같지 않다는 것을 안다. 거기엔 자기만의 고유한 사정과 상황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살아온 환경과 이력과 역사가 비참해도 사랑을 붙들고 있게 하려는, 사랑이 아님에도 사랑이라고 끈덕지게 가장하려는 습성을 갖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다른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것들도 '그러지마' 라고 해서 그러지 않는 건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하지 않는한, 다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아프지만 미쓰키는 이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나는 남편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는 것을. 그 바람을 피고도 남편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를 대신히 그녀가 변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직도 읽는 중이니 그 후에 아마도 미쓰키가 홀로 서는 걸 나는 읽게 되지 않을까. 오십대의 미쓰키가 홀로 서는 일, 그것을 기대하며 이 책을 계속 읽어볼 것이다.
아니, 그런데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는데.
엊그제 왓츠앱을 통해 전화가 걸려왔는데 +91 로 표기가 되어 있는 숫자가 뜨는 거다.
나는 91로 시작하는 나라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래서 일단 받지 않고 국가번호 검색해보니 인도라는 거다.
인도? 나는 인도에 가본 적도 없고 인도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 설마, 내가 아는 누군가가 인도에 가서 전화했나?
궁금해서 왓츠앱으로 검색해보니 그 번호를 가진 사람의 사진이 뜨는데 … 인도 남자 … 인 것 같다.
나한테 전화 왜했어요? 나한테 하려면 국제전화였을텐데, 이 번호를 어떻게 알고 했어요?
제기랄. 호텔이며 택시며 예약한 것들이 내 번호를 이제 전 세계에 퍼뜨린건가? 한국으로도 부족해서 전 세계에 퍼져버린거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위 아 더 월드.
피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