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동네에 같은반 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자연스레 우리는 등하교를 같이 하게 됐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교복을 갈아입고 그 친구네 집으로 가면 그 친구가 나랑 함께 학교에 가는 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좀 준비가 빠른 편이고 학교든 회사든 일찍 가는 축에 속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그리고 3학년때도 학교 같이 가는 친구들 집에 가면 내가 항상 기다려야 했다. 이 친구도 마찬가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ㅊ 네 집에 학교 가자고 찾아가면, 친구는 항상 다다다닥 준비를 했고 나는 친구의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한 번도 어김없이 늘 그랬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내가 등교를 혼자 하게 된 건, 그것이 친구들에게 민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늘 친구네 집에 가 친구를 기다리고 학교로 가는 것은 기다리는 내게도 스트레스였지만-더 빨리 갈 수 있었는데!- 기다리게 하는 친구와 친구 엄마에게도 스트레스일 터였다. 결국 고등학교때는 혼자 등교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늘 친구랑 같이 학교가던 아이가 어느 틈에 등굣길에 누군가를 만날까봐 신경 쓰이는 애가 되어 있었다. 날 내버려둬, 아는척 하지마, 음악들으며 걷는 나를 방해하지마! 모드로 되어버렸다. 이것이 십대 사춘기란 것인가.. 아무튼,
ㅊ 네 집은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었다. 3층집이어서 계단을 올라야 했다.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대학생 언니도(도대체 어떻게 친해진건지 모르겠는데 그 집에 놀러다니고 그 집 언니가 선물 사주고 그랬음) 그 집에 살았는데, ㅊ 가 3층 이었는지 그 언니가 3층 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침에 학교에 가자고 ㅊ 네 집에 들어가면, 집 안 가득 아주 좋은 냄새가 퍼졌다. 맛있고 따뜻한 냄새였고 먹고싶어지는 냄새였다. 그리고 부자의 냄새였다. 그 때까지 한 번도 내가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는데, 그래서 항상 '이게 도대체 뭘까' 궁금해했지만, 차마 '너 아침에 대체 뭘 먹는거야?' 라고 묻지는 못했다. 아침 식사인 것 같은데 밥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도대체 뭘까. 내가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 맛있고 따뜻하고 먹고 싶고 부자의 냄새. 정말 그랬다. 맛있는 냄새이기도 했고 먹어보고 싶은 냄새이기도 했고 그것은 따뜻했고, 그리고 부자의 냄새였다. 왜 그런 느낌을 주는지 모르겠는데 '부자의 냄새', '얘네 집은 부자다' 라는 생각을 당시에 했더랬다.
그 음식의 정체를 알게된 건 어른이 되고나서도 한참 후였다. 어느날 집에서 버터에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다가, 그 때 알게 됐다.
'아 이거였구나!'
그렇다. 친구가 아침으로 먹었던 건 프렌치 토스트 였던거다. 그것도 버터에 구운!!
프렌치 토스트라면 어릴 때에도 먹어본 적은 있었다. 그것의 이름이 프렌치 토스트라는 건 모르고 살았지만 종종 해먹었더랬다. 부모님이 모두 일하러 나가시고 동생들을 챙기는 건 항상 내 몫이었는데, 밥통에서 밥과 반찬을 주기도 했고 떡볶이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슈퍼에서 식빵을 사서 계란후라이를 식빵 사이에 넣고 케첩을 뿌려주기도 했다. 라면을 끓여주기도 했고. 사실 더 할 수 있는 건 없어서 이것들을 자주 먹곤 했는데, 어느날 친구네 집에 다녀왔던 여동생이 언니, 오늘 맛있는 걸 먹었는데, 하면서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거다. 어릴적부터 똑똑했던 동생은 그걸 어떻게 하는지 보고 온건지 아니면 음식을 보고 알게된건지 모르겠는데, 계란을 풀어서 식빵을 담갔다가 프라이팬에 굽고 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린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해보았더니 하염없이 먹을 수 있는 맛잇는 음식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주 자주 동생들에게 해주고 먹었더랬다. 이게 국민학교 때의 일인데 중학시절의 ㅊ 의 집에서 나는 냄새와 매치시키지 못했던 건, 내가 했던 계란물 입힌 식빵은 식용유에 구웠기 때문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훌쩍 어른이 된 다음에야 그것이 '프렌치 토스트'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됐고, 그리고 빵은 맛있게 버터에 굽자고 내 돈 주고 산 버터에 구웠다가 '아 그 때 ㅊ 가 늘 아침으로 먹었던 게 이거였구나!' 하고 알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쉬는 날이었고, 엄마는 내게 약속이 있는지 물으셨다. 아빠 때문에 계속 집에 계셔야 했던 엄마는 내가 집에 있다면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고 싶다 하셨다. 나는 집에 있을테니 걱정말고 다녀오시라고, 아빠 밥은 내가 챙기겠다고 했다. 아빠의 점심으로 바지락칼국수(밀키트)를 끓여드리고 식탁 위에 식빵이 보여서 프렌치 토스트를 했다. 달군 프라이팬에 버터를 올리고 계란물 입힌 식빵을 올리는데, 집 안 가득 냄새가 퍼졌다. 자연스레 도대체 이게 뭘까, 했던 중학교 1학년의 그 때가 떠올랐다. 그건 버터로 구운 프렌치토스트였다.

메이플 시럽이 있다면 좀 더 뽀대가 났겠지만, 메이플 시럽 같은 거 없는 사람 ㅋㅋㅋㅋㅋㅋㅋ 슈가 파우더 같은 것도 없는 사람. 난 왜 뭘 해도 이렇게 생기고 담는 것도 이렇게 담는걸까. 플레이팅 이따위라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제 그 음식의 정체를 알고 만들어먹기도 하는 사람이고 사실 예쁜 프렌치 토스트를 사먹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런 어른이 되었다.

위의 사진은 홍콩 여행중 <2046> 에서의 프렌치 토스트. 화양연화의 그 레스토랑인데 가서 밀크티랑 프렌치토스트 먹었더랬다.

위의 사진은 뉴욕에 여행갔을 때 머물렀던 호텔 레스토랑의 프렌치토스트. 뉴욕은 참 양이 많다. ㅋㅋㅋㅋㅋㅋㅋ

이건 강동구 천호동 <교보문고 천호> 옆 까페의 프렌치 토스트. 예쁘고 포근한 프렌치 토스트. 내가 이렇게 예쁜거 먹었다고 감탄하고 사진에 올리니까, 그걸 보고 친구가 너 안되겠다 하더니 불러내서 며칠 후에 서초에서 프렌치 토스트를 사주었더랬다. ㅋㅋ
오므라이스 얘기도 할 게 있지만 페이퍼가 너무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ㅋㅋㅋㅋㅋ
쉬는 날 저녁에는 추리나 미스테리 장르 소설을 읽지 말자고 늘 다짐하지만 그러나 '읽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하면서 꼭 이렇게 꺼내 읽고야 만다. 'C. J. 튜더' 의 《불타는 소녀들》은 아마 최근 읽은 장르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어디, 조금만 읽어볼까, 하고 펼쳤다가 다 읽고야 말았다. 한 번 펼치면 놓을 수가 없어. 중간에 자야된다 그만 읽자 생각했지만 한장만 더, 한장만 더 .. 하다가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노팅엄의 신부로 재직하던 '잭'은 동네에서 일어난 아동살해 사건에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있기도 한터라 외딴 마을로 전근 보내지게 된다. 십대의 딸과 그 마을에 도착해서 적응하고 일을 하려다가 누구인지 모를 마을 주민에게 협박을 받게 되고 또 교회의 지하에 납골당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마을의 비밀이 드러나는 이야기. 재미있고 의미도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던 책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도 소녀들을 괴롭히는 아저씨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소녀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걸 언급한다.
나는 여자아이들 꿈을 꾸고 있다. 항상 여자아이들이다. 팔다리가 잘리고, 학대와 고문과 죽임을 당한. 나는 그들의 얼굴을 본다.
서글프게 망가진 그들의 몸을 본다. 왜 우리는 그들의 비명으로 역사가 메아리치고, 묘비도 없는 그들의 무덤으로 땅이 뒤덮일 정도로 그들을 미워하는 걸까? -P.438
프렌치 토스트를 해먹고 책을 새벽까지 읽었고 졸린 채로 출근했는데, 그런데 목요일이라니 너무 좋다.
꿈에 잔나비가 나왔는데 나와서 나랑 뭘 했는지를 모르겠다. 덕분에 출근길에 잔나비 노래를 들었다.
신앙은 그걸 이해하거나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어린 나이에 일방적으로 주입받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은 가보처럼 대대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다. 만질 수도 없고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심지어 성직자에게도 그렇다. 결혼생활이나육아처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분양하는 기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질 때도 있다.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왜 그렇게 못됐는지궁금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실 안 좋은 일이 신 때문에 벌어지는 건 아니다. 신은 트루먼 쇼」에 천상의 존재로 등장한 에드 해리스처럼 천국의 조정실에 앉아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할 방법을고민하지 않는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인생이 예측할 수 없는 무작위적인 사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건들을 헤쳐나가는 동안에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 하지만 신은 너그럽다. 적어도 내가 바라기로는 그렇다. - P50
나는 곰곰이 따져본다. 교회는 아직도 다른 기관들에 비해 정신질환을 인정하는 데 느린 편이다. 그런 부분을 쉬쉬하는 이유도 사제들이 대부분 남자다 보니 그걸 일종의 실패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기도는 정신을 집중하는 데 유용한 도구다. 하지만 마법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느님은 심리치료사도 정신과 의사도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고 가끔은 그게 전문가일 때도 있다. 나는 남편이 좀 더 일찍 도움을 구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지 궁금할 때가 많다. - P119
얼마 전에 가장을 잃은 교구 신도가 그녀를 무너뜨린 건 장례식이나 경야나 남편이 죽었다는 전갈이 아니라 그가 아마존에 사전 주문한 책들이 배송됐을 때라고 했던게 기억난다. ‘이 책들을 그렇게 읽고 싶어 했는데 이제는 절대 읽을 일이 없게 됐구나.‘ 손때가 묻지 않은, 아주 깨끗한 책장. 그녀는 울부짖으며 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미래를 위해 소소한 투자를 한다. 콘서트 티켓, 저녁 예약, 휴가지 예약. 그날이 됐을 때 우리는 여기 없을지 모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임의의 사건이나 만남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내일에 도박을 건다. 하루하루가 믿음의 도약이고 심연을 건너는 큰 걸음인데도 말이다. - P163
"매튜는 당신을 보호하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동성애가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지만." "죄악이죠."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동성애를 죄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없어요." "구약에서는-" "구약은 쓰레기예요. 여성혐오, 고문, 모순으로 도배되어 있는, 예수님은 사랑을 설교하셨어요. 모든 종류의 사랑을."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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