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함께 영어책 읽기 하면서 영어책을 현재 열 권 넘게 읽었고 그래서 나는 나 혼자서도 읽게될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친구들과 함께 읽기로 약속하는게 아니라면 나는 영어책을 읽을 수 없는 몸.. 이다. 리 차일드의 메이크 미 영어책으로 읽어보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한지 일년이 된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앞부분 읽고만 터라 뒷부분이 너무 궁금하기도 했고, 최근에 투비에 글 옮기면서 갑자기 근육남에 대한 애정이 뿜뿜해진지라 잭 리처를 읽고 싶어졌다. 메이크 미 번역본은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아 이 리 차일드 너무나 영리한 작가. 그러니까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어떤 궁지에 몰린 케이스를 언급한단 말이야? 이거 아니면 이거일것이다, 라고 악당들이 생각하고 나 역시 '그러게 이거 아니면 이거일텐데 어떡한담?' 하고 있는데, 잭 리처는 '이거 아니면 이거라고 생각할거고 우린 선택해야 하오' 이래놓고 갑자기 투두두두두두두두 할 때 흥분으로 가슴이 터져버려. 와 리 차일드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리하다. 영리한 작가야. 독자를 완전 쥐락펴락한다.
일단 이번편에서는 잭 리처 만큼이나 덩치가 큰 남자가 시체로 땅에 묻히면서 시작한다. 잭 리처는 '마더스 레스트' 라는 지역명이 궁금해져 지나가던 기차에서 우연히 그 마을에 내렸는데, 자신의 동료를 기다리던 전직 FBI 요원 '장'을 마주치게 되고, 그녀가 동료를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과 또 그녀 앞에 주어진 사건을 놓고 같이 풀어나가게 된 것. 도대체 어떤 이야기의 흐름으로 가려는가 싶었는데 무려 다크웹버다 진화한 버전 '디프웹'이 나온다.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검색 사이트, 아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은밀한 사이트, 그리고 그 사이트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
내가 잭 리처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그가 '이건 아닌것 같다'는 어떤 윤리적 감각 혹은 경계에 대해 인지하고 그 선을 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리즈 어떤 것에서였는지,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여군이 나오는 이야기의 흐름이 있었고 그 여자랑 같이 일을 처리하게 되는 이야기에서, '잭 리처 시리즈에서 항상 여자들 만나고 호감 느끼고 섹스하는 거 알지만, 어쩐지 이 여자랑 하면 진짜 너무 좆같을 것 같다' 생각했는데, 그 편에서 그 여자와 성적인 긴장감을 만들지 않는다. 나는 그게 좋았다. 마땅한데 좋았다. 그는 유머감각이 있고 온 몸이 근육 뿜뿜해. 세상에 근육 뿜뿜한 유머감각.. 넘나 좋지 않나요? 그리고 외국어도 하고 머리도 기가 막히게 잘쓴단 말야? 싸움은 또 얼마나 잘하게요? 주머니에 칫솔 가지고 다니면서 양치하는 남자(중요!) 이다. 그는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를 못견뎌하고 약자의 편을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처음 잭 리처 시리즈 읽었을 때 잭 리처 좋아서 다 읽어야지 하게된 것도, 그게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덩치큰 성인남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당연한 것에 나는 매우 끌려버리는 것. 그런 그가 범죄자 혹은 악에 대해서라면 아주 그냥 자비없이 폭력을 휘두르는데, 이번에 메이크미 읽으면서 나는 잭 리처가 나의 길티 플레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다크웹보다 진화한 버젼 디프웹.. 이라니. 이미 얼마나 잔혹한 것이 나올지, 그러니까 뭔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끔찍한 것이 거기 있을 거라고 충분히 짐작가능하지 않은가. 그렇다. 그런 잔혹한 범죄가 나오고 우리의 잭 리처는 참지 않긔! 범죄자들을 소탕하는데 경찰에 신고해서 감옥 살게 한다거나 뭐 이런게 아니고요, 죽여버린다. 아주 그냥 죽여버린다.사람을 죽이거나 강간하거나 하는 놈들이야? 죽여버렷!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다.
보통 사적 복수가 옳은가 아닌가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하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일 권리가 어디 있느냐는 얘기도 많이 하고 그래서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찬성과 폐지 얘기도 많이 오고간다. 도덕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리고 사적복수가 궁극적인 답은 아닐 것이라고 나 역시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범죄자나 가해자들을 보게 되면 '사형이 있어야 되지 않나', '죽여야 되지 않나'라는 감정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왜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의 《터미네이터 2》를 보면, '존 코너'를 지키기 위해 지구에 왔고 그래서 존 코너를 무찌르려는 놈들 다 죽일 기세로 아놀드가 나서지만, '존 코너'가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고 해서 그 뒤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상대가 죽지 않게끔 다리를 향해 총을 쏜다. 죽이진마,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짓이야.
사람을 죽이는 건 해서는 안될짓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물론 사람을 죽이는 건 해서는 안될짓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제다. 그러나 어떤 순간, 우리는 저 새끼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 같은거 품지 않나.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해 개인적으로 '죽었으면'하는 마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런 일은 사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딱히 품고살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람은 살아가기 힘들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우린 엔번방 사건을 비롯한 다크웹의 아동대상 폭력을 가해하는 남자들에 대한 뉴스 같은 것들을 보게 된다. 뭐 사건을 다 나열하진 않겠다. 그런 사건을 보면 그런 생각하지 않나? 저런 새끼는 세상을 왜 사나. 사형시켜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 않나. 그런데,
잭 리처가 죽여버린다.
잭 리처가 죽여버리는거다.
앞으로 남은 삶은 회개하며 살라고 종아리를 겨냥하고 쏜다던가 하는 자비로움 같은게 그에게 없다. 쏜다. 죽는다.
윽- 그래도 그렇게 죽이기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거기에 대해 내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가만 눈을 감고 책을 재미있게 끝까지 읽는 것. 아, 이것이야 말로 나의 길티 플레져가 아닌가. 잭 리처는 참지 않긔!! 나쁜 새끼들 죽여버리긔!!
아아, 나는 이대로 좋은가. 나는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아직 안읽은 잭 리처가 있길래 두 권 주문했다. 오늘 도착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