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랑'은 2학년 6반 반장이며 전교1등이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학교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공부도 열심히하고 자기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선생님들은 따로 불러 격려하기도 하고 문제집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등이라는 우월감으로 친구들을 무시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가지,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인지 아랑의 엄마는 아랑의 학업에 큰 관심이 없다. 엄마는 성적보다 인성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 고단한 노동에 아랑을 끌어들인다. 고모가 아파서 고모 가게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데 니가 당분간 좀 봐줘, 하는데 아랑은 좀 속상하다. 내년에 고3인데 나한테 가게를 보라고? 엄마가 고모한테 돈을 빌리지 않았으면 나한테 이걸 부탁했을까? 게다가 학교 진학상담에도 엄마는 오지 않겠다고 한다. 아랑일 믿으니까, 너가 알아서 잘하니까, 엄마는 굳이 아랑이 어떤 대학을 가면 좋을지 어떤 전공을 선택하면 좋을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겠다는 것. 아랑은 당연히 서운하다. 딸의 미래를 함께 걱정해주면 안되나. 오히려 엄마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일찍 취업해 돈을 버는 친구 딸에 대해 기특하게 생각한다. 돈이 없기 때문에 돈에 집착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도 못한 미성년자에게 학업보다 취업을 얘기하는 건 나로서는 개인적으로 아주 많이 속상했다. 나 역시 그런 취급을 받았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내게는 롤모델이 없었다. 어떤 어른을 보면서 저런 어른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본보기 삼을만한 어른이 내게는 없었다. 나는 그저 모든걸 스스로 깨쳐나가야 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설사 좋은 어른들이 주변에 많았다 하더라도 나라는 인간 자체의 성격이 롤모델 따위는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라고 누군가를 롤모델 삼은 적이 없으니까. (안젤리나 졸리가 멋지다는 것만 한결같이 생각하고 있다.)
막연하게 중학생 때는 서울대연고대 갈거라고 생각했다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점 현실에 눈을 떴고, 아 서강대나 한양대 정도를 가야겠다 했다가 고2 되고 나서부터 시발 대학은 갈 수 있나... 이렇게 되어버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내가 고등학생일 때 그리고 수능을 앞두고 있을 때, 아빠가 제일 부러워한 사람은 딸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해 돈 벌어다 주는 아빠 친구였다. 아빠는 나도 그러길 바랐고 그래서 은근히 그런 이야기를 흘리곤 했다. 만약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에게 엄마가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아빠가 바라는 아빠의 착한딸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해서 아빠에게 돈을 가져다주는 삶..을 나는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게 일찍 취업해서 월급을 아빠에게 주는 삶을 살았다면, 아마도 (도피하고자) 일찍 결혼해서 벌써 아이 엄마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가끔 그런 시절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엄마, 만약 엄마가 강하게 내 대학 교육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아빠가 바라는대로 내가 공장에 취직해(아빠는 내가 수능을 망쳤다는 걸 알고는 공장에 취직하기를 직접적으로 권유하셨다) 돈을 벌었다면 지금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사실 경험해본 적도 없으면서 간혹 그렇게 과거를 생각하며 나의 불행해졌을지도 모를 미래에 대해 묻노라면 엄마는 이렇게 답해주셨다.
"너는 어딜 가서 뭘했든 니가 살 길 찾아서 지금처럼 똑똑하고 행복하게 됐을거야."
한글을 스스로 깨우친 것은 우리 엄마 아빠의 큰 자랑이고 아직까지도 여전히, 계속 언급하신다. 나는 스스로 깨우치는 사람이었다. 그게 뭐든 스스로 깨우쳤는데, 그렇다면 천재냐, 라고 한다면.
그 게 아 니 다.
누구의 도움 없이 깨우친다는 것은 그만큼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글은 일찍 알았을지언정, 나는 삶의 모든 것에 대해 느렸다. 나는 늦된 사람이었다. 느려서, 그 느림이 나는 나의 어떤 성공을 막았다고 생각한다. 막았다는 것은 좀 부적절한 표현이고, '더 성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고집스레 스스로 깨우치고자 함이었고, 그렇기에 남들보다 속도가 늦어버렸다. 어떻게 하는게 나에게 잘 맞는 공부법인지를 대학 졸업때 알았고, 그래서 나에게는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는 과거가 남아있다. 물론 성인이 되고 어느 시점부터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다는 것이 꼭 똑똑하거나 지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좋은 대학교를 나왔어도, 장학금을 받았어도 똥멍충이로 살면서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는 정말 아주 많이 현실에서 목격하고 마주쳤다. 불쑥불쑥 '너 장학금 받았었다며?' 라고 말하고 싶어질 때도 있을만큼 학창시절 우수한 성적이 지혜로움을 의미하는 건 아니더라. 그렇다해도 나에게 그런 과거가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여전히 아쉬워한다. "전교1등 한적도 있었지, 그런데 누구나 다 한번씩 해보는 거 잖아." 이런거 말하고 싶은데, 누가 전공이 뭐냐, 어느 학교 나왔냐고 물어보면 "하버드 법대 나왔어요." 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싶은데, 그런 이력을 갖지 못했다는 게 그게 좀 서운하다. 장학금 받아 대학 다녀보는게 어떤 기분일까 싶어서 방통대 편입했다가 거기서도 성적 안좋아 한학기 다니고 자퇴한 나란 사람... 아, 장학금 이란건 내 인생에 없구나, 학교 교육은 역시 나를 건드리지 못하는구나 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연애도 늦게 시작했고 사랑은 더 늦게 시작했다. 나는 다 늦었다. 그리고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공부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건, 더 늦게 알았다. 누가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알았지만, 그래서 느렸고, 그럴때마다 '나는 왜 느린가'를 좀 답답해해야 했다.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하고. 어쩌면 이렇게 늦된건 내가 고집스러운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롤모델로 삼을 사람이 내 어린 시절 주변에 있었더라면, 내 진로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더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를 종종 생각하고, 그런 사람을 가진 청소년들을 보면 부러워진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세번째 이야기에서 라라 진이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네가 가고자 하는 곳 말고 이런 곳도 있어, 거기는 이런 장점이 있지'라고 말해주는 언니가 있다는 게 진짜 너무 부러웠다. 이제 대학생활을 앞두고 있다는 것도 부러웠고, 라라 진에게 다른 선택이 가능함을 알려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도 부러웠다.
아랑이는 진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다. 그런 아랑에게 친구 연두는 변호사인 사촌 언니와 만남을 주선해주고자 한다.
'권연두'는 아랑의 친구고 아직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선생님들은 연두를 볼 때마다 '너도 일등 한 번 해봐야지' 라고 말해서 연두의 스트레스를 자극한다. 연두는 우리가 학창시절 흔히 보던, 바로 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나는 공부 안하는데 이정도의 성적이 나와'를 과시하는 그런 친구. 나 어제 놀았어 그런데 국사 시험 백점 이런 친구들 있지 않나. 학창시절 '어휴 어제도 공부하려다가 자버렸어' 하는 친구들은 많았다. 아직도 기억나는게 유독 그런 친구가 고등학교 때 있었는데, 나를 포함 다른 아이들도 다 그러했지만 한 친구가 그게 유독 심했다. 그 친구는 반에서 상위권에 드는 정도의 성적을 가진 친구였는데, 잠깐이라도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친구들에겐 가서 '너가 너무 열심히 공부해서 네 머리에 냄비 올리면 라면도 끓겠다'고 하면서 남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걸 얘기했고, 그러면서 '나는 진짜 공부 안했는데 대단해, 다들 대단해, 나는 진짜 안했는데' 하곤 했던 거다. 그런데 시험 결과 나오면 각 과목 선생님들이 들어와서 백점 맞은 사람 호명할 때 암기 과목에 꼭 그 친구가 있었던 거다. 이게 반복되니 나중엔 백점자에 그 친구 이름이 불렸을 때 아이들이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냈다. 암기과목은 백점 맞지만 다른 과목은 아니었던 걸 보면, 한 번도 일등을 해본 적은 없었던 걸 보면, 그 친구는 암기는 잘하지만 이해는 잘 못해던 건 아닐까, 지금 잠깐 혼자 생각을 해본다.
연두는 어제 드라마 본 얘기를 친구들에게 재미있게 전달하고, 아이들과 미팅도 주선한다. 다른 친구들은 '넌 어떻게 그렇게 마음 편하냐'는 말을 한다. 다른 아이들에게 공부 안하는 아이로 보이고 싶은거다. 왜? 1등이 아니니까. 1등도 못하면서 공부한다고 말하는게 연두에겐 수치다. 그러나 연두는 열심히 공부를 하는 아이였고 드라마는 동생에게 보라고 시켜서 동생으로부터 실감나게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보지 않은 걸 봤다고 말하는, 그래서 공부하지 않았다고 거짓말 하지만 사실은 공부를 하는 아이였던 거다. 이건 아주 오래전에 고소영이 주연했던 영화 <비트>에서 바로 고소영의 역할이었다. 고소영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야구장에 가서 어떤 야구 경기를 보았는지 반 아이들에게 실감나게 말해주는 아이었고, 아이들은 그런 고소영에게 '너는 어떻게 즐길거 다 즐기면서 그렇게 공부도 잘하냐'는 말을 듣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고소영은 그 역할을 즐겼다. 놀거 다 놀면서 공부도 잘하는 아이. 그러나 그런 사람이 되기는 얼마나 힘든가. 영화속에서 묵묵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고소영만큼 잘해내지 못했던 학교 친구가 들어오는 지하철에 몸을 던지는 장면이 있었고 고소영은 그걸 목격하고 충격받는다. 그 뒤로 고소영은 달라졌던 걸로 기억한다.
연두는 집안 형편도 넉넉하고 아버지와 사이도 좋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노는 아이로 보이고 싶었지만, 그렇지만 사실 계속 1등하는 친구가 신경쓰인다. 쿨한척 했지만 선생님이 아랑에게 줬다는 그 문제집도 신경쓰인다.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를 안했다고 재차 얘기하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것은 연두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부를 했지만 1등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기변명이기도 할 것이고,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이정도는 된다는 본인의 머리좋음에 대한 과시이기도 할 것이고. 나 역시 그런 학창시절을 보냈었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 노력했어'라는 친구를 만났을 때 정말 신선했다.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인데 4개국어를 하는 친구인거다. 아마 지금은 그보다 더 늘었을 거라 짐작한다. 4개국어는 다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 친구였는데, 그 친구에게 하루는 '어떻게 그렇게 외국어를 다 잘하게 됐어?' 라고 물었더니 "죽어라 공부했지" 라고 말하는 거다.
아!
너무 신선한 태도였고 너무 마땅한 대답이었다. 그래 4개국어를 자기 언어처럼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었다.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말하는게 너무 멋진거다. 당연하잖아. 남들처럼 놀거 다 놀면서 4개국어를 그렇게 다 할 순 없는거잖아. 그 친구는 한참 후에도 그랬더랬다. 나는 아직도 영어 사전을 들여다봐, 라고. 내가 모르는 뜻이 혹시 더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면 아는 단어 boy 라도 사전을 찾아본다고 했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잘하는 이유가 있는 거였다. 그 친구가 미친듯이 외우고 공부했다고 했을 때 그 대답을 듣고 내가 한 생각은 '그렇게 노력해야 가능했다니 머리가 좋진 않군' 이었을까? 전혀 아니었다. 마땅했다, 당연하다 였다. 잘하기 위해 노력한 것을 감출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잘하는 건 내가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는 것은 드러내도 되는 것이었다.
아랑이를 보는데 안타까웠다. 알아서 잘하는 아이에게 어른의 관심이 있었다면 그 미래는 얼마나 더 커지고 얼마나 더 풍요로워질까 싶어서. 나에게도 인생의 중요한 시간마다 관심을 가지고 함께 의논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내가 늦된사람에서 벗어날 수 있진 않았을까. 스스로 해내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랑이와 내가 겹쳐 안타까웠지만, 그런데 아랑이는 전교 1등이고 나는.... 그만두자, 이런 얘긴.
<룩 백>도 <반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와 겹친다. 학창시절의 두 친구가 나오는데 한 명은 노력하지 않아도 그림을 잘 그리는 걸로 보이고 싶어하고 한 명은 방안에 콕 박혀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그런 두 친구가 만나 만화를 함께 그리면서 성공하는 것 같은 이야기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도끼 살인마 나와서 좀 멍해졌다. 현실이 잔인한건 사실이지만 왜 도끼 살인마.. 너무 당황스러웠다.
와칸다라는 가상의 아프리카 나라는 자원도 풍부하고 과학기술도 겁나 발전했다. 완전 이상향의 나라랄까. 선진국들이 그런 와칸다를 노리지만 와칸다는 굴하지 않긔!!
내용 자체가 나쁘진 않았는데, 이 그래픽 노블은 성인용이구나 싶다. 역시 나는 그래픽 노블은 재미가 없어 몇 번이나 그만 볼까 생각하지만 간신히 끝까지 보기는 했는데, 중간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그래서 너희 프랑스 빠다 놈들이 나치한테 가랑이를 벌린 걸 우리가 구해 줬지."
"그건 너희가 독립 형명 때 입은 은혜를 갚은 거야, 멍청아."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나는 작가가 여성혐오를 하기 위해 이 그래픽 노블을 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저 표현은 정말 너무 구리다. 저 표현이 그런데 작가가 창조한 표현이 아니라는게 문제다. 작가는 그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남자들이 대화를 할 때를 그저 그대로 표현했을 뿐이다. 사실 그런 표현을 굳이 책에 넣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현실 반영이라고 해도 굳이 이런 표현을 써서 또 전달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은 거다. 프랑스 빠다 놈들이 나치한테 가랑이를 벌린... 후아. 너무 한심하다. 저런 표현을 쓰는 사람을 실제로 만난다면 너무 징그럽고 짜증날 것 같다. 친한 사람이라면 표현이 그게 뭐냐 천박하게, 라고 말할 것 같은데 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친해지게 될 것 같진 않다. 가랑이를 벌리다니, 너무 역하다 진짜. 상대를 모욕하기 위해 성별이 남자인 어른 둘이 하는 말이 국가를 가랑이 벌린 여성으로 표현하는 거, 진짜 너무 구리지 않나. 어떤 걸 좋아하느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지만, 어떤 욕을 쓰느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거 너무 구리다.
사실 마블 영화 좋아하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조카 아이 주려고 샀고, 그래서 주기 전에 내가 한 번 본건데 안주려고 마음 먹었다. 초반에 성매매업소 가서 여자 선택하는 거 나오는데 그 때도 '내 친구가 많이 굶어서' 라고 표현 한다. 뒤에는 '그 여자의 남편을 구해주고 그 여자에게 잠자리로 감사 인사를 받을 거잖아' 라는 표현도 나온다. 아 너무 구려... 내가 지금 이런거 안준다고 해서 그런 표현들로부터 내 조카가 이 한남민국에서 자유로워질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급적 늦게 알았으면 좋겠고, 아예 이런 표현에 대해 몰랐으면 좋겠다.
만화를 보고 내용을 알게 되니 영화가 보고 싶어져서 블랙팬서 영화도 봤다.
영화에는 장점이 많다. 무엇보다 블랙 팬서로 변신하면 멋져.. 그리고 와칸다의 장군들이 다 여성들인데, 근육이 엄청나다! 그렇지만 가해자의 서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가해자는 사실 피해자였고 그러니 이런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 인간의 삶이라는 게 명징하게 선과 악으로 나눠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해도 이 영화는 나에게 윤리적으로 명쾌하진 않았다. 그래도 재미있게 보아서 그 다음 시리즈를 보려 했는데, 그 다음편이 이번에 개봉한 <와칸다 포에버>더라.
주말에 초등학생 조카 만나 블랙 팬서 얘기하니 자기도 재미있게 봤고, 주연배우가 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에 울었다고 했다. 얼핏 그런 얘길 들은것 같았었는데, 그 때는 그저 하나의 소식이었다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조금 더 가깝게 느껴져서 나도 '이 사람이 사망했다니' 하면서 안타깝고 아픈 마음이 되더라.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최재천의 말이 또 생각났다. 사랑까지 가는게 아니어도, 우리는 관계를 맺는 순간 상대를 미워할 순 없는 것 같다. 욕하고 미워하는 건 몰라서 그런것 같다.
페이퍼가 너무 길어졌으니 그만 써야 하는데, 그래도 월요일이니까 책탑 사진을 투척하자.
룩백과 블랙 팬서는 빠진 사진이다.
페이퍼가 너무 길어졌으니 이 책들을 왜 샀는지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