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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랜드 ㅣ 열다 페미니즘 총서 5
게일 다인스 지음, 신혜빈 옮김 / 열다북스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저자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 연구를 30년간 해왔고 그에 따른 연구를 비롯 학생들과 상담도 해왔다.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부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그 숱한 폭력적 영상들을 보고 또 그 영상에 대한 후기까지 읽으면서 어떻게 건강한 멘탈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한편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가 분명 영향을 미치는 성범죄 사실까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나 남자들 역시도 포르노의 피해자라는 시선을 버리지 않는다. 포르노라는 거대한 산업에 노출되었고 그 세계를 살고 그러다보니 자극에 무뎌지고 범죄에 영향도 받는. 지금의 포르노는 기성세대가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포르노와는 그 내용이라든가(없지만) 영상이 더 폭력적이지만 그러니 그걸 보는 남자들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런데 그건 누가 만들었냐 이 사회가 만들었다, 이익을 보기 위한 포르노 산업은 거대한 손길을 여기저기 뻗치고 있다고 밝히는 거다. 그렇게나 폭력적인 영상과 여성을 물화시키는 후기까지 접하면서도 진짜 문제가 뭔지 보려고 하고 그래서 해결하고 싶어하는 데에서는 정말이지 그 정신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일 다인스, 아주 강한 사람이구나 하는.
일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포르노에 대해서는 페미니스트들 조차 의견이 갈린다. 표현의 자유로 허락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고 그것이 여성들에게도 성적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거다. 우에노 치즈코도 자신의 책을 통해 포르노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단, 아동 포르노는 안된다'고 했던 적이 있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포르노 자체가 허락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동 포르노는 안된다는 전제는 그렇다면 그 아동은 몇 살부터 몇 살까지를 말하는 걸까? 18세는 안되지만 19세는 되는 걸까? 그 둘은 한 살 차이인데? 30세지만 아동처럼 차려입고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아동을 연상시키는 외모와 포즈로 찍는 영상은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아동을 출연시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은가? 아동 포르노는 안된다는 것의 명확한 선을 어떻게 정할 것이며 그 선의 바로 옆에 있는 선은 그렇다면 아주 작은 차이로 되는 것으로 넘어가버린다면, 결국 그 경계는 불분명해지지 않을까. 게일 다인스가 밝히는 이 거대한 포르노 산업에서도 '아동 포르노는 안된다'는 것은 모두에게 공통적 전제다. 하다 못해 허슬러 잡지를 만든 래리 플린트 조차도 아동 포르노는 안된다는 편에 서있단 말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동을 성적대상화 시켜버린 엔번방 이고, 아동을 성애화 시킨 성인용 옷이며, 성인을 아동처럼 꾸민 옷차림들이다.
이 책의 결말에 가까워지면 아주 중요한 단어가 나온다. 스펙트럼.
이같이 성인 포르노에서 아동 포르노로 넘어가는 현상은 기존의 통념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사람들은 흔히 아동을 보고 성적으로 흥분하는 남자들이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과 행동을 보이며, 다른 남자들과는 별개의 집단을 형성하는 소아성도착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다이애나 러셀Diana Russell과 내털리 J. 퍼셀Natalie J. Purcell 의 철저한 실증적 문헌 분석 결과, 소아성도착자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집단 모델이 두 가지(소아성도착자와 비소아성도착자)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그보다는 스펙트럼의 형태로 존재한다. 일부 남자는 확실히 한 쪽 극단에 위치하지만, 다른 이들은 다양한 지점에 분포되어 있다. 게다가 이 스펙트럼상에서 남자의 위치는 바뀔 수 있는 데, 특정 시점에 그의 삶의 경험이 어떻게 조합을 이루는지에 따라 이동한다. 러셀과 퍼셀에 따르면, 과거에는 연구자들이 특수한 삶의 경험, 예를 들면 배우자의 상실, 약물 남용, 실직 등을 관련 요인으로 꼽았다면, 최근 연구는 지속적 포르노 이용이 스펙트럼상의 이동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p.313~314
소아성도착 포르노를 보고 소아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모두 소아성도착 증상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었다. 나는 살면서 소아대상 포르노면 볼거야, 나는 그게 취향이야, 그거 보고 아동 대상 성범죄를 저질러야지, 나는 그렇게 태어났어, 가 아니란 말이다. 아동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중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야 그건 아니지'를 생각했던 남자들이라는 거다. 주류 포르노를 보다가 자극에 무뎌지니 곤조 포르노로 옮겨가면서, 처음에는 곤조 포르노의 폭력적인 영상(학대 및 구토)을 보고 뭐야, 이런 걸 왜 봐, 했던 남자들이 결국 곤조 포르노를 보고 흥분했다는 후기를 남기고, 그 자극에도 무뎌지다 보면 '야 아무리 포르노를 좋아해도 아동 포르노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지!' 라고 했던 남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 포르노를 소비하고 만드는 남자들이 되는거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분명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그리고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가 나타난다. 게일 다인스도 조심스레 말하고 있지만, '모든 포르노 이용자가 반드시 성범죄자가 된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성범죄자와 대화를 해보면 그들이 성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포르노가 있었음이 밝혀지는 거다. 포르노를 보고 흥분을 하고 포르노를 보면서 강간에 더 힘을 싣는 거다. 나는 그런 포르노 유저들과 달라, 나는 도덕적이며 경계를 분명히 해, 라고 자신하는 남자들이라 하더라도 러셀과 퍼셀이 말하는 바로 그 스펙트럼 내에 있는 남자들이다. '절대 그러지 않을거야'라는 양극단의 끝쪽에 있는게 아니라, 그러지 않는 남자와 성범죄를 저지르는 남자를 끝에 두고 그 사이에 스펙트럼처럼 분포해있는 그 어느 한 지점, 포르노를 보는 당신은 지금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스펙트럼 내에서 당신은 자칫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명 '이건 아니지'라고 생각했다가, 감옥에 가는 범죄자가 된다.
나는 그간 이성애 연애를 해오면서 내 연애 상대들이 그 모두가 포르노를 봤다는 것을 확신한다. 나에게 '포르노를 봤다'고 말해서가 아니라, 내게 했던 말과 행동들 그리고 어떤 요구들은, 내가 그 때 말하지 않았어도 '이 새끼 포르노 보는구나'를 생각하게 했다. 그 당시 생각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도 이 책을 읽다가 여러차례 떠오르면서 '그 새끼도 포르노 본거였네'라는 생각을 했고. 그랬더니 어떤 결론이 내려졌냐면,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이 포르노를 본거였다. 섹스를 잘했던 놈이나 못했던 놈, 근육이 있거나 살만 피둥피둥하게 있던 놈, 그 모두가 포르노를 보았고 가끔 나와 혹은 나에게 그 영상들 중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어했다. 그중에는 '이래도 되는걸까'를 순간 생각하게 할만한 요구들이 있었고, 지금은 나에게 가장 끔찍하게 생각되는 어떤 놈에 대해서는 일부 멘탈이 찢어져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그들 모두가, 백프로가 보았다는 거였고, 나는 그런 포르노를 본 적 없었으나, 그들과 함께 포르노 세상에 살고 있었다는 거다. 물론,
연애하지 않아도 살고 있고.
'데릭 젠슨'은 자신의 책 《문명과 혐오》에서 자신이 포르노를 잠깐 보고난 후 여자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얘기했더랬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음모 색깔에 대해 상상하는 자신이 싫어서 어서 빨리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고백을 했더랬는데, 그 자각이 과연 포르노를 보는 남자들 중에 몇 프로에게나 찾아들까. 이 책에서도 숱하게 언급되지만 남자들이 자신이 끔찍하게 생각했던 성학대 포르노나 아동 포르노를 보면서 '이걸 보는 내가 싫다'고 생각하다가,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안봐' 했다가 결국에 또 보고야 마는 사람이 되어가는데, 그렇게나 인간은 약하고 약한 존재인데, 도대체 그 지독한 포르노를 보면서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얼마만큼이나 타당한 것일까. 그동안 읽어온 책에서 포르노 편에 드는 사람들은 반포르노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성엄숙주의자 나 성보수주의자라고, 성적 자유를 옹호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욕을 한다. 나는 그런 주장들에 '나는 성엄숙주의자가 아니야'라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이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부르는 걸로 내가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깨달은 게 있다면, 나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를 혐오자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라.
나를 성엄숙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라.
나를 고루한 사람, 고지식한 사람, 꽉 막힌 사람, 성적 자유에 반대하는 사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부르면 된다. 그건 내게 아무런 영향도 없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만큼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는 내가 아는 내가 옳으며, 나는 내 편이 될 것이다. 나는 내가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보면서 갈것이다. 포르노가 표현의 자유이고 그걸 보는 것은 성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야말로 성적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게 옳다고 믿는다면, 그러면 계속 포르노 보고 살면 된다. 포르노 보는 자신 자랑스러워하면서, 그런 자신을 사랑하면서, 포르노 보고 행복해하면서, 포르노 보고 정액 싸대면서, 그러면서 살면 된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내가 옳다고 믿는 바대로 행할 것이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스펙트럼 내에 존재할텐데, 포르노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을 양끝으로 놓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이에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면, 나는 어쨌든 그 스펙트럼에서 반대하는 사람들 쪽으로 사람을 더 끌어오기 위해서 책을 읽을 것이고 글을 쓸것이다. 특히나 젊은 여성들을 위해서 그렇게 할것이다. 지금의 나는 힘이 세지만, 아직 나이도 어리고 사회적 지위도 제대로 얻지 못한 여성들이 강간 문화속에 살고 있는 거 너무 싫어서, 그게 왜 안되는건지 계속 말하고 쓸것이다. 다소 속도가 느려도, 결국은 그렇게 되지 못할지라도, 포르노 멸망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