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글, 김수정 의 <ASMR, 지디털 문화 시대의 감각화된 친밀성: 감각, 정동, 젠저/섹슈얼리티> 를 읽었다. 지금 네 번째 글까지 읽고 있는 중인데 사실 김수정의 이 글이 시작은 가장 지루했다. 그렇다해도 놀랄만한 글이었는데, 이 글에서야말로 내가 관심도 없었던 그리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사유들이 주루룩 펼쳐졌기 때문이다. 내가 워낙에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 아니어서 ASMR 이 어떤 뜻인지도 몰랐고, 어렴풋이 '먹방에서 먹는 소리를 그대로 들려준다는 거구나' 정도로만 인식했다. 그러나 ASMR 은 먹방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던 것이고 먹방은 그 후에 그중에 하나로 파생된 걸로 보면 되겠다. 우선, 나같은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르니까 ASMR 의 풀이를 책에서 인용하자면,
'자율감각쾌락반응' 이라 번역되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은 특정 소리 자극에 대해 느끼는, 머리에서 등줄기로 이어지는 기분 좋은 찌릿한tingling 감각 경험을 가리킨다. -p.87
그래서 나는 이 글이 먹방에 대한 건줄 알았다. 그러나 그 전에 정말로 이 반응을 일으키는 다른 영상들이 있었던 거다.
속삭임, 귀 파는 소리ear cleaning(뭐, 이런게 있어?!), 바삭한 음식 씹는 소리, 요리할 때 생기는 소리, 입으로 내는 소리, 손톱으로 무엇을 긁거나 톡톡 치는 소리, 손이나 브러시로 쓰다듬는 소리, 종이 구기는 소리, 사각대는 글 쓰는 소리 등 다양한 미세한 소리들이 팅글을 야기하는 자극물, 즉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다. -p.87
이 영상의 창작자들은 역할극을 한다거나 해서 다양한 소리들을 들려주고 또 작은 목소리로 속삭임으로써 청취자에게 위안과 위로를 준다는 거다. 나는 경험한 바가 없어서 그런줄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국내의 창작자가 세계적으로도 인기 있다는데, 이름도 처음 들어봐서 도대체 어떤 영상을 찍는 사람이야? 하고 검색해 보았다. 본인의 얼굴은 드러내지 않는채로 다양한 소리들을 들려주는 창작자인가 본데, 나는 영상을 보진 않았고 인터뷰를 잠깐 읽었는데, 자신의 영상중에 귀 파는 게 제일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걸 보여주고 들려줄 생각을 하고 또 그걸 들으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일단 나에게는 너무나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저런 소리들을 보여주고 들려줄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이걸 들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훨씬 더 많겠지만, 이 영역 역시 내가 전혀 모르던 일들로 가득했다. 숙면을 취하고 싶을 때, 위로가 필요할 때 사람들은 이런 영상을 시청하는가 보았다.
김수정의 글을 놀라운 점은, 이런 것들을 알려주어서가 아니라, 이런 영상들과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연관성을 생각해보고 또 우리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에서도 연구한 바가 있는데, 이런 ASMR 영상 창작자들은 특히 여성이 많고 구독자들은 거기에서 위안을 얻음으로써 돌봄의 기능을 수행하는 여성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거다. 게다가 처음에는 이런 영상들이 성적인 함의를 포함하지 않았다해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더 잘 팔리기 위해서는 더 많이 드러나야 하니 차츰 성적인 메세지를 넣기도 한다는 것. 그렇게 섹슈얼리티가 포함되는 것에 대한 연구와 비판이 이 글에 다 있는 거다.
그러니까 ASMR 에 대해서 젠더화된 수행이 맞다는 연구가 나오고 침실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 촬영하기도 하면서 성적인 메세지를 가지고 있는게 맞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영상들을 어떤 시선으로 봐야할까. 그러나 곧이어 이런 영상들에 대한 다른 시선을 가진 연구에 대해 밝혀준다. 즉 ASMR 은 '이성애 규범을 넘어선 대안적 쾌락' 이라는 것. 무슨 말이냐하면, 이성애 그리고 섹스는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둘만 있을 때 해오던 사적인 것이었는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보여줌으로 인해서 비규범적이 된다는 거다. 아니,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그리고 이내 여기에 다른 연구자의 연구가 덧붙여진다. 이성애 섹스라는 것을 너의 몸과 나의 몸이 하는것이었다는 걸 넘어서 이런 공개적인 영상에는 여러 테크놀로지들이 결합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의 성적 개념과 차이를 가진다는 것이고 규범적 이성애 섹스에 분열을 일으킨다는 거다.
아니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아 뭐야 진짜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걸 사람들이 연구하고 나는 이렇게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연구한 걸 알게 되다니. 너무 짜릿하지 않나. 그러니까 이런 흐름인거다.
ASMR은 사람들을 잠들게 함으로써 친밀감을 주지 → 그렇지만 창작자 대부분이 여성이란 걸 감안하면 다분히 젠더롤 규정이 되지 → 특정한 신체부위나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성적인 영상이기도 해 → 아니야 보는 사람들도 그걸 기대하고 보는게 아니라 위로를 받으려고 보는걸 → 그래 맞아, 처음엔 성적인 영상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만들고 또 시청하다보니 성적인 영상들이 생겨나 → 그렇지만 그런 영상들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이성애 성적 규범을 파괴하지, 그 사이에는 너와 내가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테크놀로지가 매개하잖아, 우리는 다른 세상을 사는거야!
와 너무 재미있지 않나. 나는 세상에는 학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하나하나 그 과정에서 단순했던 것들을, 심지어 창작자나 시청자가 미처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들을, 연구자들은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결론으로 도출해내는 거다. 물론 거기에서 끌어오는 결론들이 모두 맞는 것도 정확한 것도 아니지만, 이런 연구 결과들을 읽어봄으로써 어떤 지점들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지 않나. 진짜 연구 만세, 학자 만세, 공부 만세만세 만만세다! 처음엔 도대체 뭐여, ASMR 이 먹방이 아니었어? 뽀모.. 라는 사람이 인기가 많아? 지루했다가 읽을수록 너무 씐나는거다.
물론 나는 이 연구자가 보여준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 그리고 주장에 대해서 오 그렇구나, 그럴 수 있겠네,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적인 함의를 담은 영상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성애 규범을 전복 시킨다거나 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나는 사실 그보다는 좀 더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는 한데, 성적인 메세지들이 공공연하게 자꾸만 드러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내가 성적 보수주의자여서 인가? 내가 꼰대여서인가? 이건 내 스스로 언어나 문장을 만들어낼 때를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김수정은 자신의 글을 통해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를 보여줌으로써 그러나 우리가 아직 이 영상들이 어떤 것이라고 예단하기에는 이르다고 밝힌다. 분명 다양한 소리들로 친밀감을 주는 것은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고 이것은 다른 연구자의 주장처럼 그동안 성적 문화에 대한 어떤 도전이나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좀 더 들여다보고 고찰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에는 다른 사유들을 자극할 수 있도록 이 글을 썼다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나에게는 저자의 의도가 완전히 와닿은 글이었다.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주제를 다루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나는 먹방에 대해 관심이 많고 여기에 대해 정리를 한 번 해보고 싶다. 일전에도 친구에게 먹방은 포르노랑 다를 바가 없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직 날카롭게 거기에 맞는 문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건, 먹방에서 보여주는 자극적임,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지는 것은, 내게는 '그래서는 안된다'로 연결되어지는 거다. 굳이 썰지 않은 커다란 고기덩어리를 들고뜯는 일이, 굳이 라면을 몇 개나 끓여서 한 번에 먹는 일이 보여져야 할 일인가. 사람들은 거기에서부터 무엇을 얻는가. 나는 이게 포르노랑 되게 비슷하다고 보여지는거다. 이런 영상들은 나에게 어떤 유익함을 가져다주거나 하질 않는다. 나는 유튜브로 먹방을 보지는 않는데,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1분짜리 먹방을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 그걸 중도에 멈추지 않고 그대로 보고 그 다음 영상도 연관되어 나왔을 때 별 생각 없이 들여다봤던 거다. 그런 후에 어떤 일이 생기냐면, 갑자기 영상속에서 창작자가 먹었던 빨간 냉면이 먹고 싶어지고, 그것을 후루룩 먹고 싶어지는 거다. 나는 그동안 먹방을 봐왔던 사람이 아니고 또 내가 먹는 양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한 끼에 두 메뉴를 놓고 먹는다해도, 먹방 창작자들처럼 라면을 한꺼번에 네 개씩 먹고 그러지는 못한다는 거다. 게다가 라면 하나가 1인용이라고 했을 때,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먹는 1인분이라는 용량이 정해진 것들이 있는데, 굳이 그대로 먹는게 아니라 해도, 도대체, 어째서, 왜, 한 사람이 치킨과떡볶이를 시켜두고 또 라면까지 네 개 끓여가면서 먹어야 하냐는 거다. 왜 그래야 하는걸까. 그리고 그걸 왜 보는걸까, 그리고 보는 사람들은 왜 계속 보는걸까. 그걸 볼 때 시청자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드는가. 매운 고추를 잔뜩 썰어넣고 커다란 그릇에 도무지 한 사람의 양이라 볼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밥을 담아 먹는 걸 보여주는 건, 창작자와 시청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왜 굳이 그래야 하는가. 왜. 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을 부러 함으로써 자극을 주고, 그래서 보는 사람들도 그 자극을 맛보고 싶게 만들고, 그리고 그 자극을 줌으로써 창작자는 돈을 벌어간다. 이거 너무 포르노스럽지 않나. 이걸 어떻게 잘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래서 나는 누가 이미 정리해두었길 바라고, 그런 글을 읽고 싶다. 이 책에는 먹방이 아니라 먹스타그램이 있던데, 그 글은 내가 알고자 하는 바를 충족시켜주는 글인걸까?
사실, 나야말로 연구자가 되었어야 하는걸까?
아무튼 이 책 너무 좋고 매 글마다 생각하게 해서 진짜 짜릿하다. 너무 좋네요 ㅠㅠ
그나저나 다음은 웹툰인데, 나는 또 웹툰도 안봐가지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