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은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책이다. 나는 미래 배경,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상, 판타지적 설정에 대해서 딱히 재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흥행 대박친 해리 포터도 재미없어서 2권 까지밖에 못읽었던 터라 헝거게임도 내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되자 그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고, 그렇다면 헝거게임을 먼저 읽는게 순서일 것 같았다. 그렇게 어젯밤, 아아, 그러면 안되는거였는데, 내가 그 때는 몰랐지, 일요일밤에 미스테리 소설 시작하지 않기로 나는 나에게 원칙을 정해두었는데 그것은 다음이 궁금해져 다 읽고 자려고 하기 때문 이었고, 그러면 월요일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었고, 그런데 헝거게임은 미스테리가 아니니까... 하고 시작했다가 또 눈알 빠지게 읽어버리고 만것이다. 아아, 나여..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미래의 '판엠'이란 나라가 배경이다. 판엠은 캐피톨이 중심이고 그 주위를 열세 개 구역이 둘러싸고 있는데 판엠에 맞서 반란을 읽으켰다가 캐피톨에게 패배하고 열세번째 구역은 아예 사라졌다. 주인공인 '캣니스'는 12구역에 사는데 12구역에서도 경계에 살아 짐작할 수 있듯이 매일 힘겹게 먹을걸 구하러 다녀야 한다. 굶어 죽는 사람도 허다하고 허락된 것들도 많지 않아 불법인데도 숲에 들어가 사냥으로 그날 먹을 걸 구해야 하는거다. 12구역 안에서도 빵집을 운영한다든가 시장이라는 직위를 가진다든가 하면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게 살긴 하지만, 그래도 1,2구역의 사람들과는 빈부의 격차가 상당히 심하게 존재한다.
이 판엠은 매해 '헝거게임'이라는 것을 개최한다. 과거 12개구역이 반란을 일으켰던 것에 대해 벌을 주는 의미로 각 구역에서 남녀 한명씩을 선출해 한 공간에 밀어놓고 한 사람만 남을때까지 죽이게 하는거다. 남아있는 한 사람은 최후의 승자가 되고 그 모든 과정은 모든 구역에서 모든 사람들이 티비로 시청 가능하다. 시청하면서 사람들은 살아남고자 하는 '조공인'들에게 후원을 할 수가 있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여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거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구경하는 와중에.
주인공 캣니스는 조공인이 될 확률이 더 높다. 12세 가 되는 순간 헝거게임 참가자로 뽑힐 수 있도록 자신의 이름을 쓴 쪽지가 커다란 공에 들어가는데, 한 해 한 해 쪽지가 한 장씩 더해지지만, 먹을게 없이 배급표를 받아 먹을 걸 마련하려면 자기 이름을 쓴 쪽지와 교환해야 하는거다. 그렇게 해 한 해에 네 개의 쪽지를 더 넣기도 했던 캣니스라 헝거게임의 조공인이 될 확률이 남들보다 높다. 물론 캣니스보다 더 형편이 어려운 게일 같은 친구들은 딸린 식구가 더 많은 터라 18세인 현재 자기 이름이 적힌 쪽지 42개가 제출되어 있는 상태다. 시장의 딸인 경우에는 매해 하나의 쪽지만 들어가고. 쉽게 말해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이 죽을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다.
이번 해에는 캣니스의 동생인 프림의 이름도 처음으로 적혀 들어갔다. 그리고 헝거 게임 참가자의 이름을 뽑는 날, 하나의 쪽지가 들어간 프림이 뽑히고, 그 전장에 가면 살아돌아오기 어렵다는 걸 아는 캣니스는 동생대신 자원한다. 내가 갈게요, 내가 싸울게요! 그렇게 캣니스는 '피타'와 함께 12구역의 조공인이 되어 캐피톨로 향한다. 캐피톨에서는 각 구역에서 뽑혀온 조공인들에게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고 질 좋은 음식도 제공하며 그동안 입어 보지 못했던 옷들도 제공한다. 여기서 먹고 마시고 자고 훈련을 받고 그리고 전장에 투입! 죽으러 가기 전에 모든걸 최상으로 누리게 해준달까.
굶어 죽을지도 모를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이렇게든 저렇게든 죽을 확률이 높았던 캣니스는 캐피톨에서 버튼 하나로도 양질의 음식이 눈앞에 제공되는 걸 보며 씁쓸해진다.
버튼만 누르면 음식이 나타나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음식이 이렇게 흔하다면, 내가 먹고 살겠답시고 숲을 뒤지고 다니는 그 시간을 대체 어디에 쓸까? 캐피톨에 사는 이 사람들은 몸을 꾸미고, 새로운 조공인들이 불려와 자기들의 오락을 위해 죽어가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매일매일 하루 종일 뭘 하고 사는 걸까? -p.68
굳이 판엠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설정하지 않아도, 캐피톨과 12구역이라고 설정하지 않았어도 될만큼, 헝거 게임의 세계는 지금의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제 때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힘겹고 누군가는 한 끼에 몇백만원 짜리 식사를 하기도 하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에 대해 의문을 갖고 나 역시 책을 읽기도 하고 또 내 삶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설정해야 할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캣니스의 의문에 나도 궁금해졌다. 그러게 말이다.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한 문제여서 식량을 찾아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내가 있는데, 그런데 만약 그렇게 내가 애쓰지 않아도 식량이 마련된다면, 그렇다면 내가 식량 마련에 쏟던 시간과 에너지는 대체 어디에 쓰게 될까? 나 역시 궁금해지는거다. 캣니스가 숲에 가 사냥을 하고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집해올 때, 버튼 하나로 먹을게 마련되는 당신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나 역시 궁금한거다. 누군가 몇 시간을 쏟아 해야하는 일을 이미 쉽게 하고 있다면, 그 시간은 그들에게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걸까? 밥을 마련하는 대신 뭘 할까?
캣니스의 아버지는 광부였는데 캣니스가 열한살 때 돌아가셨고 그 후에 캣니스는 엄마와 동생을 돌보는 가장이 되어야 했다. 마땅히 자식들을 돌보았어야 할 엄마는 아빠를 잃은 상실감에 무기력해 있었던 것. 하는수없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캣니스는 그 때의 엄마를 기억하고 원망하고 있으며 그래서 엄마와의 관계에도 거리가 있다.
나는 엄마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내 안의 뒤틀린 작은 부분은 엄마의 나약함, 엄마로서의 직무유기, 몇달 동안 우리를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엄마를 미워했다. 프림은 엄마를 용서했지만 나는 엄마에게서 한 발 물러섰다. 엄마를 필요로 하게 되지 않도록, 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벽을 쌓았다. 그 뒤로 나와 엄마 사이는 예전 같아지지 못했다.
이제 그걸 바로잡지도 못하고 죽겠구나. 오늘 법원 건물에서 엄마에게 소리 질렀던 일을 생각해 본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도 했었지. 그걸로 균형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p.56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상실감은 정말 컸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고 자기 자신이고 다 뒤에 남겨둔 채 그저 멍하니 자신을 잃고 누워있을 수 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나이트 인 로댄스>에서도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잃은 상실감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그녀와 사이가 안좋았던 십대의 딸은 그런 엄마를 돌보아주고 동생을 챙기고 학교에 보낸다. 누군가를 잃고 상실감에 무기력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캣니스는 그 때 십대 초반이었다. 아직 아이였다. 아빠를 잃은 상실감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아이가 보호를 받지 못해 직접 식량을 구하러 다녔어야 했던 시간은 그 아이에게 도대체 어떻게 남게 될까. 좀 더 나이가 들고 그 때의 엄마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러나 그때 자신이 보냈던 시간은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캣니스에게 고통과 괴로움과 아픔일 것이다. 일찍 철드는 아이는 너무 아프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는 일찍 철이 든다. 캣니스에게 어린 동생이 없었다면 어쩌면 일은 좀 더 쉬워졌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 몫만 챙기는 것은 좀 더 쉽다, 다른 사람까지 더 챙겨야 하는 것보다는.
이제 캐피톨로 들어가 죽을지도 모를 싸움을 앞두고 있는 캣니스와 엄마는 작별인사를 한다. 캣니스는 엄마에게 예전처럼 그러면 안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신 차려서 동생과 엄마 자신을 돌보라고 말한다. 엄마는 그 때 아팠던거고 이젠 안그런다, 지금처럼 약이 있었으면 그 때도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캣니스는 그런 엄마에게 그렇다면 약을 먹고 버텨내라고, 티비에서 나를 보더라도 나에겐 신경쓰지 말고 엄마와 동생을 챙기라고 말한다.
어린아이었던 캣니스는 지금도 고작 열엿섯 살이지만, 자기가 자기 자신을 챙겨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생존에 대한 기술을 어릴 때부터 스스로 습득하고 있다. 캣니스가 앞으로 살면서 일정 부분 엄마를 미워한다고 해도, 그건 별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시절이 되어서 용서가 가능해지기도 하겠지만 그 때까지는 미워해도 원망해도 괜찮지 않은가. 어쩌면 엄마의 나이쯤이 되었을 때 비로소 엄마를 용서할 마음이 생길런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 나이에 우리 엄마는 그런 상실감을 겪었던거네,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하고.
자기 구역에서 살아 있으려면 숲에 사냥을 다녀 먹을걸 챙겨야 했고 그러다가도 헝거게임의 조공인이 되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시간과 공간에 살면서 당연히 캣니스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절대 이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으니,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있다. 우승자가 된다 해도 절대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은 아이의 안전이다. 내 아이들의 이름도 다른 아이들 이름과 함께 그 추첨 공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리라. -p.311
각 구역에서 뽑힌 총 스물네명의 아이들을 한자리에 풀어두고 서로 싸우게 하는 시간이 왔다. 1,2,3,4 구역의 아이들은 이 때를 대비해 각자 훈련을 하고 이걸 게임처럼 참가하기도 한다. 돈이 있는 아이들은 맞서 싸울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고 훈련도 할 수 있었다. 그런 아이들과 이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무기 쟁탈전이 벌어진다. 저기 한 공간에 있는 무기들 중 각자가 필요한 걸 잽싸게 차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이미 몇 명은 죽어나간다. 활쏘기에 자신 있던 캣니스는 활을 노리지만, 그러나 이미 1~4 구역의 뛰어난 조공인들이 무기를 차지하고 접근하는 다른 아이들을 죽이기도 해서 별 쓸모도 없어 보이는 것들만 챙긴뒤 잽싸게 그 자리를 피해 도망친다. 그렇게 가까스로 혼자 살아남기에 최선을 다하던 캣니스는 드디어 활과 화살을 손에 쥐게 된다.
무기가 생기고 나니 헝거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상대해야 할 남은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도망치고 숨어야 하고, 절박한 수단을 선택해야 하는 먹잇감만은 아니다. 만약 지금 당장 카토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다면, 난 도망치지 않고 활을 쏠 것이다. 내가 실제로 그 순간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p.200
나는 무기를 손에 쥐고 나자 게임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던 이 장면이 너무 좋았다. 무기를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은 이렇게나 다르다. 이 삶이 전쟁터라면 도망치는 것보다는 나 역시 무기를 가진게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그 무기는 캣니스에겐 활과 화살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무기가 필요할 것이었다. 헝거게임의 전장이 아닌 지금 이곳에서는 그것은 돈이기도 할 것이고, 체력이기도 할 것이고, 지식이기도 할 것이다. 무기가 있다면 게임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게임을 다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무기를 가져야 한다. 무기는 많을수록 좋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는 것 모두 무기를 갖는 일일 터.
나는 수시로 캣니스의 생각을 읽게 되는 게 좋았다. 왜 나는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는데 너는 버튼 하나로 밥을 먹을 수 있지? 왜 엄마는 직무유기로 나를 가장으로 만들었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네가 가진 기술을 내게 알려줘, 이 상황에 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을 할까, 무기가 힘을 준다 등등. 책을 읽는 순간순간들의 캣니스의 생각은 곧 내 생각이 되고 캣니스의 질문은 내 질문이 된다. 그런데,
《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의 부제는 <순수 저항 비판> 이라고 되어있다. 나는 캣니스의 지금까지의 삶의 과정이 모두 철학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순수 저항 비판 이라는 부제는 앞으로의 캣니스의 삶에 더 집중하는 게 아닐까 싶다. 캣니스는 이미 저항하는 사람이었다. 자, 캐피톨의 관람객들, 그러니까 우리의 치열한 생존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그러니까 나는 죽어라 싸우는데 그걸 보고 즐기고 돈을 거는 사람들, 이것을 좀 더 자극적인 쇼로 만들려는 사람들을 엿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캣니스는 생각하고 그렇게 캐피톨이 싫어할만한 행동을 한다. 그 일은 당연히 캐피톨을 자극했고 대통령을 자극했다. 헝거 게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되었고, 이제 남은건 당연하게도 그녀의 영광이겠지만, 그러나 앞으로 그녀의 삶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캐피톨의 분위기로 대통령의 눈빛으로 알 수 있다. 조심해, 캐피톨이 너를 싫어해. 자신이 살던 12구역으로 돌아가 평온하게 지내고 싶었던 캣니스에게는 아마 그 삶이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헝거게임>의 마지막에 캣니스는 헝거게임의 승자가 되어 12구역으로 돌아가지만, 그러나 캐피톨의 사나운 눈빛을 받아야만 했다. 아마도 그 다음 시리즈인 《캣칭파이어》에서는 본격적인 저항이 시작되지 않을까. 저항과 반란.
캐피톨이 원하는대로 진행되지 않고자, 그 안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자 피타가 고민하는 걸 보고 캣니스는 당장 삶과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 팔자 좋다고 생각했다가, 그 전장 안에서 자신과 동맹을 맺었던 '루'의 죽음을 보고 비로소 존엄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존중에 대해 생각한다. 캐피톨이 나를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도록, 내가 나 자신일 수 있도록, 루가 루일 수 있도록, 우리가 캐피톨이 원하는대로만 하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게, 피타가 말했던 바로 그것이구나.
캣니스는 결과적으로 깨닫는 사람이고 배우는 사람이었다.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깨닫기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리라. 묻고 답하는 과정이 캣니스에게 있고, 나는 묻는 사람은 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묻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캣니스는 내 자신을 잃지 않는 것에 대해 피타보다 늦게 생각했지만 그러나 깨닫게 됐다.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마아도 캣니스는 저항할 수 있는게 아닐까. 헝거게임만 읽고 바로 헝거게임으로 철학하기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캣칭파이어와 모킹제이까지 읽고난 후에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로맨스가 들어간 건 너무 쓰잘데기 없지 않나 싶지만, 그러나 작가가 이미 쓰잘데기 없는 로맨스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쓸데없는 로맨스가 들어가줘야 사람들이 좋아해, 라고 작가는 이미 말하고 있다. ㅎㅎ
아 괜히 일요일밤에 시작해가지고 읽고 자느라 늦게 잤네 또... 뒤에 조금 남겨두고 '내일 출근할 때 읽자' 하느라 넘나 힘들었다. 휴..
책을 산 페이퍼까지 쓰면 너무 길어지니까 그건 다음페이퍼로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