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호실> 에서 잭 리처는 자신의 아버지가 살았던 곳에 가 그곳을 둘러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준 여성에게 저녁을 먹자고 하는데, 그 여성은 이미 다른 남성과 선약이 있다면서 거절한다. 잭 리처는 여기에 대해 미련을 갖지도 않고 또한 그 여성과 남성의 새로 시작되는 로맨스를 응원해준다.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는 그들의 선함이 자신에게 합석을 권유할까봐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햇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즐겁게 식사를 같이 한다.
나는 잭 리처 시리즈를 좋아하고 그건 잭 리처의 성격에서 오는 부분이 크다. 나쁜 놈들을 용서하지 않으려고 하고 특히나 어린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놈들에 있어서는 절대 그냥 놔두려하지 않는 그의 성격이 좋다. 읽다보면 잭 리처라는 캐릭터는 판타지로 구성된 인물에 다름아닌데, 그러니까 운동하지 않아도 근육을 타고난 지점 이라든가, 두건을 씌워도 사격을 명중할 수 있다거나.. 뭐 아무튼 그래서 순 뻥이잖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좋아하는 건, 그에게는 열등감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오늘은 들었다. 만약 위에 언급한, 이 책에서 가볍게 지나가는 일화에서, 그가 열등감에 가득 찬 남자였다면, '내가 밥 먹자고 했는데 왜 거절해!' 하고 그는 온갖 찌질이같은 행동을 했을테니까. 왜 나는 안돼? 하며 그녀를 찾아가고 조르고 하는 등의 행동, 혹은 협박하고 위협하는 행동들을 했을테니까. 그러나 잭 리처는 오 그래? 오케이, 한다. 아, 그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더니 잘 되었네, 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이런 찌질하지 않음이 좋다. 열등감이 없는 남자라는 게 좋다. 그래, 열등감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 자신이 이미 강한 남자인데 열등감이 잇을게 무어람. 그는 열등감이 없기 때문에 상대의 거절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상대가 나를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할 수 있다. 상대가 나를 거절했다는 것이 나의 어떤 약점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는 인지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좋아할 수도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면 물론 너무 좋겠지만 그런 일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비극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게 인생이다. 그게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내가 좋아한다고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세상 못난이 세상 찌질이가 되어 온갖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거다.
얼마전 읽은 <낫씽맨>에서는 연쇄살인범들이 얼마나 실패자인지에 대해 수차례 얘기한다. 사람들을 죽여야만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열등감에 가득한 인물들. 다른 걸로는 딱히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애정을 받지도 못하는 사람들.
<10호실>을 읽으면서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다. 그들이 머리가 나쁘다는 것, 멍청하다는 것, 생각이 깊지 못하다는 것.
10호실에는 인간을 사냥하는 것을 게임으로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기꺼이 거기에 돈을 쓰려고 하는 자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일에 말려들어갔는지도 모른채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를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들은 일단 그래서 자신들을 죽이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도망쳐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조건이 죽이고자 하는 이들에게 훨씬 유리하다. 그러니 이들은 어떻게해도 지는 싸움이 되는 것에 어쩔 수 없이 뛰어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냥 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다. 누가봐도 옳지 못하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해자들도 안다. 그래서 철저히 비밀로 하려고 한다. 등록되지 않는 차량을 탄다거나 위장된 차량을 탄다거나 어떻게든 자신들이 이 일에 연관되어 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그리고 또 그만큼 큰 돈을 들인다. 이번 사냥에 대해서도 그들은 온 몸에 흥분을 가득 채운채로 또 가방에 현금을 가득 채운 채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들은 돈을 지불했고 이제 민간인들, 자신들이 왜 이 일의 피해자가 됐는지도 모를 사람들을 사냥할 것이다. 처음 피해자들이 영문 모를 일로 갇혔을 때부터 신경줄이 팽팽해지다가 결국 그런 일들로 진행되어 갈 때 아주 스트레스가 커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계속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에 잭 리처가 등장한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잭 리처 시리즈이고, 잭 리처는 여기 어디 근처에 있고, 결국 이 일은 잭 리처에게 발각될 것이며, 이들은 무사할 것이다, 라는 믿음이 내게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잭 리처는 드디어 이 일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고 인간 사냥에 열중하던 한 명을 잡아낸다. 도대체 너가 뭐하는 것이야, 누구를 사냥하고 있는 것이야, 어떻게 된 일이냐, 가해자중 한 명에게 묻는다.
리처는 더 힘주어 밀었다.
그가 속삭였다. "누구를 사냥하고 있는 거야?"
놈은 한숨을 쉬듯 숨을 내쉬었는데, 현재의 긴장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 소리는 해결하려면 엄청난 학식과 치열한 논쟁이 필요할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화두를 막 받아들고는 깊은 생각에 잠기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놈이 자기 견해의 서두를 열 문장을 속으로 리허설하는 동안, 뒤에 서 있는 리처조차 놈의 입술이, 부분적으로는 잠재의식에 의해, 들썩이고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놈의 호흡은 한동안 패닉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러고는 결심을 굳힌 듯했다. 무엇인가를 받아들였다는 듯이. 리처가 놈의 패닉이 극도로 복잡한 사안에서 비롯됐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참이었다. 놈이 고민한 대상에는 출동한 경찰과 FBI 와 케이블 TV, 세기의 재판,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기괴한 프릭 쇼(기형인 사람이나 동물을 보여주는 쇼), 수치시과 굴욕감과 민망함과 혐오감이 포함돼 있었다. 확실하게 선고될 종신형도.
그가 받아들인 건 이제부터 하려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관련자 모두를 위한 최선의 행동.
놈은 무릎 아래에 있는 두 발을 불가사리처럼, 항공기 출입구에서 뛰어내리는 낙하산 부대원처럼 뒤집었다. 그러고는 놈은 앞으로 돌진하면서 쓰러지는 무게 전체를 턱 아래에 있는 화살의 뾰족한 끝에 실었다. 화살 끝은 살을 헤집고 그의 입으로 들어와 혀를 궤뚫고 입천장을 궤뚫고 비강을 궤뚫고 뇌로 들어갔다.
리처는 놈을 놔줬다. - p.462~463
그러니까 가해자인 사냥꾼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들키면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세상이 알면 벌받을 짓이라는 것을. 자신이 한 짓이 드러나면 세상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짓을 저질렀고, 그리고 들킬 위험에 처하게 되자 머릿속으로 저울질을 했고, 살아서 그 모든 수치심과 혐오감을 자기것으로 하느니 그저 죽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해 죽어버리는 거다.
너무 바보같지 않은가? 대체 들키면 죽을 일을 왜 하는 걸까? 나는 그들의 그 멍청함이 너무 소름끼치게 싫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 그 일을 스스로 종결코자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러면 세상은 피해자에게 잘못된 비난을 던지기도 한다. 너가 피해를 얘기하는 바람에 가해자가 목숨을 끊어야 했잖아! 그러나 그게 피해자의 탓인가? 그런 일, 그런 범죄, 그런 가해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인 것이다. 그런 가해가 없었다면 그 범죄가 없었다면, 그 범죄는 세상에 드러날 일도 없는 것이다. 그 범죄가 드러났다는 것은 그 범죄가 존재한다는 걸 뜻한다. 세상이 알면 부끄러울 일, 손가락질을 당할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일을 저지르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멍청해야 가능한 것인가. 들킬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저질렀다면 그건 너무나 오만하다고 본다. 내가 하는 이 나쁜 짓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거야. 아니 대체 왜? 그것은 정말이지 지나치게 오만하다. 세상이 자기 생각대로 굴러갈거라 생각하는 그 오만함은 멍청함의 다른 이름이다. 너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한 사람일 뿐이다. 돈이 더 많을 수도 있고 힘이 좀 더 셀 수도 있지만, 그렇다해도 너는 그저 다른 사람들과 같은 그저 다른 한사람일 뿐이다. 네가 저지른 잘못이 들통날 수도 있다는 것이 진리다. 어떤 것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오늘 10호실의 저 사냥꾼이 죽어버리는 장면에서 도대체 들키면 쪽팔릴 짓을 왜 하는걸까,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낫씽맨에서는 그들 모두를 실패자라고 보았는데, 그들은 멍청한 실패자들이구나.
매 시리즈마다 잭 리처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나오는데 ㅋㅋ 이번 책에서도 그랬다. ㅋㅋ 레슬러를 만나서 싸우게 된 잭 리처, 그는 레슬러의 공격에 땅바닥에 쓰러지는데, 싸움에서는 잽싸게 일어나야 한다는 원칙을 가진 잭 리처인만큼,
'리처는 얼굴이 땅을 향할 때까지 몸을 굴린 다음, 푸쉬업 50회를 한 후에도 여전한 기력을 뽐내는 헬스장 죽돌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p.347)
ㅋㅋㅋㅋㅋㅋㅋㅋㅋ푸쉬업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운동인데, 그러니까 나는 못하지만 남들이 하는 거 보는거 너무 좋아하는 그런 운동인데, 푸쉬업 영상이면 나는 금세 홀딱 반해버리는데, 아니 우리 잭 리처, 헬스장 죽돌이처럼, 푸쉬업 50회 후에도 여전한 기력을 뽐내는 것처럼 벌떡 일어났대. 아니, 내가 어떻게 잭 리처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잭 리처, 죽지 말고 영생하자!!
일전에 트윗에서 김현진이 자신의 글 구독 서비스를 하겠다 했을때 신청자들이 엄청 늘어나는 것을 보았더랬다. 와, 김현진이 팬이 진짜 많구나, 그때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나도 김현진의 책이 처음은 아니다.
이 책은 김현진의 에세이다. 자신의 어린시절과 그리고 자신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또 자신의 아팠던 일들과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여준 사람들에 대한 것까지 기록되어 있고, 거기에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학대의 기록도 있어 읽기가 너무 힘들고 아팠다. 더 힘든건,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스무살이 넘어서까지도 당했으면서도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하는 김현진이 읽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괴롭힌 사람, 학대한 사람을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랑하는 그 마음은 뭘까. 어떤걸까.
김현진의 아버지는 목사였다고 한다. 목사였고 다른 노동을 해본적이 없던 그는, 무남독녀 외동딸에게 자신이 다단계 때문에 진 빚을 갚게 한다. 없는 돈으로 교회를 지을 때는 그 돈 역시 힘들게 벌어온 김현진에게 의지한다. 그러나 감사하기는 커녕 이 일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갚아야 할 빚이 많고 또 그것이 자신 혼자서 하기에는 힘들었던 김현진은 아버지에게 경비라도 하시는 게 어떻겠냐 말해보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레위인이라며 그것을 거절한다.
당시 나는 영화 시나리오 입봉을 앞두고 있었고, 졸업과 함께 본격적이고 열정적으로 이 세계에 뛰어들리라고 굳게 다짐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쭈뼛쭈뼛 내게 털어놓은 부채는, 내가 어디 월급 꼬박꼬박 주는 직장에 취직해서 한 달에 최소 50만원 씩 3년은 송금해야 채워질까 말까 한 액수였다. 당시 아버지는 교회라는 게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 아니다 보니, 동사무소의 헬스장을 알뜰하게 이용하고 동네 목사님들과 낮 시간에 볼링을 즐기는 강건한 몸을 지니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목사직은 새벽기도 때와 수요일, 일요일에만 바쁘니 어디 경비원으로라도 취직할 수 없겠냐고 애걸복걸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팔장을 낀 채 눈을 굳게 감고는 무겁게 말했다. "나는 ……레위인이다!" -p.86
아, 나는 정말이지 김현진의 손을 잡고 도망치고 싶었다. 당신 혼자 부모님을 책임지는 일, 그것 그만하라고 말리고 싶었다.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육체적으로 맞기도 했지만 네살 때 산타는 없다 우리가 믿는 건 예수님 뿐이다, 라는 말로 동심을 파괴하고, 아이 앞에서 케익을 던져 부숴버리는 일 같은 것을 하는 아버지의 빚을, 왜 당신이 갚아야 하냐고, 그래서 데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 부모란 무엇일까. 인간이란 무엇일까.
목사였던 아버지는 교인들을 지도하기 위한 역량에 필요하다며 상담심리를 전공했고, 만만치 않던 대학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암보험을 깼다. 모든 것은 주님이 알아서 채워주신다며 암보험을 깬 다음, 암으로 돌아가셨으니 웃을 수도 없고 그저 기만 막혔다. -p.138
교인들을 위한 역량에 필요하다며 상담심리를 전공했지만, 아이가 성인이 될때까지 매로 훈육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라니, 발로 차는 아버지라니, 어린 아이의 버릇을 고친다고 아이 생일 케익을 던져버리는 아버지라니, 그런데 교인들과 상담하는 목사이고... 한 사람에게는 수많은 성격과 모습들이 있지만 나는 이런 것들이 너무나 괴롭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교회를 지었던 돈도 돌려받을 수 없고 교회 건물에서 나가야 할 때는 김현진이 용역 깡패를 만나게 된다.
남자는 어디서 나왔다는 건지 알 수 없게 발음을 대강 뭉개 말했다. 30대 초중반 정도일까. 다부진 체격에 매서운 눈빛을 한 이 남자는 뭔가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확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가 당장 갈 데가 없어서 일단 계속 뻗대고 살고 있는 이 교회 건물이 부동산 경매에서 또 다른 교회에 낙찰되었는데, 이 남자는 그 교회가 리모델링 시공을 맡긴 회사에서 고용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즉 '용역깡패'였다. 교회에서 고용한 용역깡패라 …… -p.153
목사였던 아버지에게 폭행과 학대를 당했고 다른 교회에서는 용역 깡패를 보내고.. 그 용역깡패를 만나는 게 젊은 김현진이 했던 일이다. 돈을 벌어 아버지의 빚을 갚는 일,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용역 깡패를 만나는 일. 일전에 읽었던 책 <화차> 생각도 나고, 화차 다시 읽어볼라고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다시 못읽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사기가 망설여진다.
시골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지 않게 공부했고, 목회자로서만 평생을 보냈다. 그는 일생에 노동자였던 적이 없었다. 어린 자식 저금통에 민망하게 손 내미는 아버지였던 것보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훨씬 더 큰 불행이었지 싶다. 나가서 뭐라도 했다면, 일을 했다면, 자신을 좀 더 좋아하게 됐을지도 모를 텐데. 땀의 맛과 그 정직성을 그가 맛보았더라면 그의 세계도 넓어졌을 텐데. 저축을 몽땅 털리는 생활은 이후 내게 20년간 계속되었고 그에 대해서는 별 유감이 없으나, 자기 손으로 정직하게 돈 버는 노동의 맛을 몰랐던 아버지의 생이 이제야 안쓰럽다. 노동의 맛을 모르면 겁쟁이가 되고, 겁이 많으면 자연스레 나약해지기 마련이니까. -p.196
그러나 김현진은 이런 일들을 이야기하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표현하는게 아니다. 김현진은 아버지를 사랑했다.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다. 읽으면서 내내 정말이지 부모와 자식이란 무엇인가 싶었다. 나는 물론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엄마가 내게 준 사랑보다 더 큰 것을 내가 엄마에게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내 조카를 사랑하는 그 크기만큼 조카가 나를 사랑할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식은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를 사랑하기 위해 살았고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부모밖에 없었다. 부모를 바라보며 살아야 했고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살아야 했다. 부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은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최초의 기쁨이며 또 가장 이루고자 한 것이었을 거다. 아이들은 부모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나 사랑받고 싶어한 아이에게 가혹하게 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버리고 돌아서지 못하는 자식을 보는 것은 너무 아픈 일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아파하는 건 김현진에게 실례인걸까?
또, 신앙이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내겐 도망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말로 우울증이 깊으면 숨 쉴 힘도 남지 않게 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죽을 힘밖에 안 남게 된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것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내가 과거의 문제, 현재의 문제 등 온갖 짐을 끌어안고 괴로워하는 걸 볼 때마다 "신앙 안에 바로 서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라며 어머니는 안타까워하셨는데, 거기에다 대고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머니가 원하는 얌전하고 조신한 기독 처자가 될 수도 없었다. -p.206
그래도 김현진의 글을 읽고 김현진을 사랑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김현진을 물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그녀 앞에 나타났고, 그래서 그녀는 깊은 우울에서 차츰차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김현진이 알게된 그 부부는 아마 다른 사람들은 평생 가야 만나볼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굉장한 친절과 다정함 그리고 애정을 베풀고 그녀를 지원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그녀가 가장 필요했던 때 가장 필요한 애정을 받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세상의 공평한 대우인건지도 모르겠다. 김현진이 힘을 내서 열심히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다른 얘긴데, 김현진은 여러 직업을 가졌었고 까페에서 일햇던 경험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시 나는 상수동에 있는 어느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붙박이로 가게를 지키며 일한다는 것은 지겹고 약간의 폐소공포증을 유발한다는 것 외에도 내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를 보러 왔을 때 피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p.125
나는 한때 북카페를 해볼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있었고 지금도 결국은 내 사업을 하는게 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어떤 식의 가게를 오픈해서 장사를 하는 건 내 삶에서 하지 말자고 결론내렸다. 바로 김현진이 언급한 저 이유 때문이다. 내가 내 가게를 오픈했다면 나는 그것을 알리고 싶을 것이고, 더 장사가 잘되도록 하기 위해 내 성격상 끊임없이 언급을 할것이었다. 그러다보면 가끔 내가 하는 일을 돕겠다는 선한 의도로 고마운 사람들이 찾기도 할것이고 나는 그럴때마다 반갑게 그들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엔 그러나 치명적으로 내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방문이 따라올 것이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다. 나는 그런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가게를 오픈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늘 외국에서 일어난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가게를 오픈하고 돈을 버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어서는 안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원치 않는 사람의 방문이 있을까봐 그것이 너무 두렵고,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를 보러 왔을 때 피할 수 없는 그 치명적인 단점의 상황속으로 나를 밀어넣지 않겠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제 노트북을 끄고 침대로 가야겠다. 목요일과 금요일엔 정신없이 바쁘게 그리고 늦게까지 일했다.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월요일이 이제 몇 시간 후다. 일 자체도 싫지 않고 때로는 일을 해서 성과를 내고 또 그것으로 인해 돈이 들어오는 게 기쁘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가 일을 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의 저금통을 몰래 훔치거나 다른 사람의 방을 몰래 뒤지는 일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내가 돈을 많이 벌지도 않기 때문에 자극적인 삶을 위해 들키면 큰일날 짓에 돈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돈 있다고 다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남동생이 몇 번이나 내게 말햇던 것처럼, 나는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최선을 살고 있는걸지도 모르겠다.
음 그리고 잭 리처 정말 좋다. 뭐가 좋냐면, 읽으면서 어떤 두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그래도 잭 리처가 다 해줄거야, 라는 믿음을 주는 게 너무 좋다. 푸쉬업 50회 같은 건 정말이지 자지러지게 좋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