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인만큼 스포일러 1도 없음을 밝힙니다.)
'앤 래드클리프'의 《숲속의 로맨스》는 1791년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에는 '고딕 소설' , '초자연적 현상'이라는 것이 등장해서 읽기 전 나는 폭풍의 언덕 같은 것을 기대했다. 어떤 무서움이 나를 잠못들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면서 동시에 빨려들어가는 신비한 힘.. 같은 것을 기대한 거다. 게다가 '숲속'의 로맨스라니. 도대체 숲속에서 무슨 로맨스가 벌어진단 말인가. 숲에 뭐가 있다고. 숲속에서 온 몸에 풀과 벌레 묻혀가면서 뒹구는건가. 외딴 성에서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인간인지 유령인지 모를 초잘생긴 남자랑 사랑에 빠지는건가. 그것은 지독하게 에로틱한가? 뭐 그런 생각을 한거다. 초자연적인 섹스란 어떤것일까? 하늘을 날면서 하는걸까? 일전에 '여자가 섹스를 하는 437 가지 이유' 라는 책에서(저 숫자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오르가슴을 느끼면 신을 만나고 온 기분이라고 누군가 말했던데, 뭐 그런 기분을 느끼는 애욕이... 닥치자.
나는 시대적 배경이 아주 옛날일 경우 어쩔 수 없이 '내가 그 때에 태어났다면'을 자꾸 상상해보게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 1791년에 쓰여진 이 소설의 주인공 '아들린'은 아직 십대 후반이다. 그런데 지성이 뛰어나고 타고나길 우아하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버려 수녀원에 감금되다시피 살았는데도 그 교양과 지식은 어떻게 그 나이에 충분하게 습득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자비롭고 다정하며 게다가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남다르다. 고작 십대 후반인데 그렇다. 나는 이십대에도 만화방에 처박혀 라면 끓여달라고 하면서 <반항하지마> 같은거 읽고 있었는데, 아들린은 어쩌면 이렇게 고상하고 우아하고 막 그럴까? 게다가 미모도 엄청나서 처음 본 사람들은 단번에 호감을 가지게 되고 또 남자들은 사랑에 빠지곤 한다. 여하튼 숲속의 로맨스라고 하니 나는 일단 로맨스를 기대하고 읽는데 100쪽이 넘어가도록 아직 사랑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흥청망청 빚을 지고 도망가는 중이던 '라 모트'가 아들린을 도중에 데리고 가게 되면서 구해주게 되는데, 라 모트는 일단 나이든 남자고 아들린과의 사이에서는 부녀같은 애정, 고마운 인간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이 존재한다. 물론 라 모트의 아내는 아들린과 남편 사이를 의심하긴 하지만, 독자가 보기에는 이들이 사랑하지 않음을 안다. 그러니 나는 궁금하다. 아들린, 당신은 과연 어떤 사랑을 할것이고 그렇다면 누구랑 사랑하냐. 도망치다가 아주 깊은 숲 속의 거의 버려지다시피한 낡은 수도원에 정착하고 살면서, 그렇다면 라 모트의 하인과 사랑하는가? 그렇다하면 신분의 벽을 뛰어 넘는 나름대로 자극적인 사랑 이야기 됐겠지만 하인과 아들린은 하인과 아들린일 뿐이다. 도대체 아들린, 당신이 사랑할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나요? 왜 백쪽이 넘어가도록 안나오나요? 당신, 사랑을 하긴 하는건가요? 느즈막히 등장하는 남자(혹은 여자)와 짧은 순간 뜨거운 불같은....
도대체 누가 아들린이 사랑할 사람이냐고!
존 비가 부릅니다. somenon to love....
그러다가 젊은 남자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 수도원의 주인도, 그 주인의 기사도, 자길 구해준 라 모트의 아들도.. 모두 아들린을 사랑해. 그 중에 한 명 '테오도르'에 대한 설명을 잠깐 보자.
테오도르의 이미지가 그녀의 방까지 따라 들어왔다. 아들린은 그와의 대화 하나하나 모두 정확히 기억에 담았다. 그의 감수성은 그녀와 일치했고 태도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얼굴은 매우 생기가 넘쳤으며 품성은 꾸밈없고 고결했으며 남자다운 품위가 자애로운 다정함과 조화를 이뤘다. -p.154
아들린은 십대 후반이고 테오도르는 고작 아들린보다 몇 살 더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 이 모든 장점들을 가진 사람이라니, 아니 그런 남자가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건가. 게다가 그걸 가졌다해도 그걸 알아보는 사람이라니. 나는 위의 인용문을 읽으면서 이런 남자가 세상에 어딨냐, 역시 소설이구먼... 했다. 만약 현실이라면 저 중에 몇 개는 아들린 눈에 콩깍지, 내 귀에 캔디.. 그렇지만 저 순간 마음에 드는 남자가 저렇게 보였다는 것, 또 어쩌면 정말 그런 사람이라는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며 또 아름다운 일 아닌가.
그리고 아들린을 사랑하는 또다른 남자 '루이'를 좀 보자. 그는 아들린을 사랑하지만 아들린의 사랑이 자신을 향해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안다. 끊임없이 질투에 불타오르지만 그러나 그 질투를 스스로 잘 다스린다. 그것을 다른 형태의 애정, 즉 우정으로 바꾸기 위해서 애를 쓴다. 이 젊은 남자가 그렇게 한다. 아주 바람직한 자세가 아닌가. 무릇, 내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상대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 잃고 싶지 않다면, 그렇다면 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랑을 다스려서 우리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게 아닌가. 현실에서는 왜 나랑 안사귀어주냐, 왜 나랑 안만나주냐, 왜 나를 사랑안해주냐, 왜 나를 보지 않냐, 왜 나랑 헤어지려고 하냐.. 라면서 집착에 쩔고 열등감에 푹 담궈진 채로 상대에게 해를 입히는 남성들이 수두룩해 매일 기사에 나지 않는가. 어린 놈이든 늙은 놈이든 짝사랑하던 여자, 애인, 아내, 전애인 까지 스토킹하고 강간하고 죽이고 난리인데. 루이의 품성은 정말이지 고결하다. 사실은 루이의 품성이 고결한게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제심인데 그런데 열등감에 찌들은 개못난 남자들은 왜 내 마음대로 안되는거냐면서 징징대고 상대에게 해를 입히고 폭력을 쓴다. 나는 앤 래드클리프의 로맨스 소설을 읽으려고 기대하고 펼쳤다가 뜻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랑에 가슴 아파하면서 질투와 고통을 다스리려고 자꾸 자기를 다독이는 남자를 본다. 이 남자가 자신의 의지로 그게 잘 될 것 같지 않자, 그러자 매력적인 아들린의 곁을 차라리 떠나고자 한다.
루이는 아들린의 매력으로부터 어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같은 날 부대로 복귀했다. -p.559
곁에 있으면 자기 마음 다스리기가 너무 힘드니까, 아들린의 매력 차고 넘치니까, 거기에서 벗어나야겠다 복귀하는 것.. 넘나 멋지지 않은가. 그렇지만 저건 치명적 약점도 가지고 있다. 만약 다시 만난다면 그 매력에 굴복할 것 아닌가. 혹시 '아 역시 널 못잊겠어' 하고 찌질하게 나오면 어떡하지? 세상에 찌질한 남자가 너무 많아서 1791년에 쓰여진 작품 속 남자도 저러다가 찌질하게 돌변하는 건 아닐까 무섭다. 그런데 말입니다,
갑자기... 누군가 생각났다. 혹시... 내 매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너 그렇게 멀리 갔니? 멀리 갔더니.. 내 매력이 잊혀지니? 그거... 되든? 안되지 않든?
뭐, 그렇다는 거다. 내 매력은 태평양도 지중해도 건너 뛰어버렷.
죄송합니다..
아무튼 아들린은 우아하고 지적이고 무엇보다 자연의 빛깔, 모습에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깊은 숲속, 사람이라고는 이 수도원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라 해도 아들린은 그걸 우울해하고 답답해하기보다는 숲을 산책하고 숲의 냄새나 색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거다. 나는 이게 되는 아들린이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앤 래드클리프가 이런걸 묘사해줘서 너무 좋았다. 작가인 앤 래드클리프가 이런 지점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모르는 것에 대해 쓸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쓸 수 없다. 아들린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걸 쓴 작가가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고, 최소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제대로 감동하는 사람, 스스로 감동할 줄 아는 사람들을 보면 궁극의 행복을 느낀다. 영화 <타인의 삶>에서도 예술가 가족을 감시하던 비밀경찰이, 예술가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그 장면이 그렇게나 좋았더랬다. 그게 뭐가 됐든 어떤 것에 대해 감동할 수 있다는 것, 거기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고유한 능력이며 축복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볼 때 너무 행복하다. 아들린이 그런 사람이었고 그리고 크리스토퍼가 그런 사람이었다. 아니 갑자기 크리스토퍼.. 갑분크리스..라서 분위기 너무 바뀌어버리는데, 그러니까 내가 어제 크리스토퍼의 공연 영상을 또 본거다. 원래는 어제 술 마시고 친구들이 재미있다던 삼프로 안철수 편을 보려고 했는데, 안철수 봐야지, 라고 머릿속에서 생각하면서 내 손꾸락은 크리스토퍼 눌러버림.. 아무튼 그래서 봤는데, 아, 이 남자 진짜 내가 잘생겨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요, 사람들이 자기 노래 따라불러주니까 정말 감동을 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너무 좋아서 활짝 웃는게 보이는거야. 나는 그걸 보고 또 엄마미소.. 큰누나 미소.. 이모 미소.. 고모 미소.. 짓게 됩니다. 아오, 제대로 감동할 줄 아네, 그래그래, 그 순간을 제대로 느끼렴, 하면서 그걸 보는 내가 행복해지는 거다. 진짜 크리스토퍼 잘생겨서 좋아하는 거 아니라니깐요. 제대로 감동할 줄 알아서 좋아하는 겁니다. 그런데 잘생겼지만.. 뭐 아무튼 그런거 보면 나는 너무 좋아. 나는 내가 상대를 행복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욕심은 별로 없고 상대가 내게 그걸 바라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각자 자신만의 이유로 감동하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 그게 너무 좋다. 그게 바로 내 행복의 길. 내가 이래서 내 친구에게 '역시 나는 종교인이 되어야 하는걸까?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 라고 하니, '아니 그건 종교인이 아니라 정치인 마인드야' 라고 해서 나 사실은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건가.. 하다가 삼프로 윤석열, 심상정 이십분씩 보고난 뒤에 생각한 건, 나는 대통령은 안되겠다, 하는 것이었다. 다들 너무 똑똑해버려. 어떻게 그렇게 똑똑해지나. 나는 못해. 나는 대통령은 안하는 걸로..
다시 아들린 얘기로 돌아가자면, 아들린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정하고 배려심있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분위기 파악도 잘하고 책 많이 읽고 지성을 갖추었으면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다잡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다. 상대를 사랑하지만 지금 결혼하자는 제안에는 아니 그건 답이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위엄을 갖춘 여성이고 그런건 다 좋은데 어째서 왜 때문에 자꾸만 기절하고 정신을 잃는건지.. 뭐 당황하면 기절해대는 통에 짜증이 났다. 건강을 더 챙겨요, 아들린. 대체 그런 성격을 가진 당신이 왜 자꾸 툭하면 기절하나요? 아들린 너무 기절해대서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음. 휴...
자, 이제 좀 다른 얘기를 해보자면,
아들린은 귀족 출신이다. 1791년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노동하는 계층이 아니라는 거다. 비록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았을지언정 그녀는 노동하는 계급이 아니다. 십대 후반에 라 모트의 손에 구출되었고 라 모트 일가를 따라가지만, 그렇다고 라 모트를 모시는 하인들과 같이 일하는 게 아니라 하인들의 시중을 '받는' 사람이다.
그 숲에서 도망쳐 다른 나라에 갔을 때에도 몸져 누워 끙끙 앓고 있을 때에는 그 마을의 가장 어른인 목사 가족의 집으로 옮겨진다. 거기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 처음 앓고 있을 때 침대를 내어준 노동자계층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아들린과 목사의 딸이 하는 일이라고는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다. 그래도 먹는 일에 부족함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챙겨줄 수 없다. 아들린을 처음 재워준 노동자 가족은 계속 노동하고 또 노동해도 그래도 결코 목사 가족처럼 부유해질 수 없다. 아들린이 만약 구애하는 후작을 받아들였다면 그건 또 그대로 부유한 삶이 약속되었을 것이다. 후작의 아내가 됐다면 또 하인을 부리면서 악기를 연주하고 산책을 하고 아아 자연은 아름다워, 사슴의 눈망울은 아름답지, 책이나 읽어볼까, 하였을 것이다.
나는 부자가 아닌 집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 때부터 노동을 했다.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때도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엄마가 부르짖지 않았다면 나는 대학 진학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어오길 바라셨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고 쉼없이 지금까지 달려왔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내가 내 필요에 의해 노동을 해야 했다. 나는 밥을 먹어야 했고 옷을 사입어야 했고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책도 사야 했고 기타 등등. 어쨌든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아주 오래전, 아마도 2013년 경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좋다는 추천을 받고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을 읽기 시작했다. 책 속 주인공은 노동하지 않는다. 그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저축해두고 거기에서 자동적으로 불어나는 이자로 살아가는게 가능한 사람이다. 그는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하고 뭔가 더 공부하고 싶어져서 더 공부할 수 있고 세상을 배우고 싶어서 여행하고 여행하다 찾게 되는 부잣집에 머무르면서 손님 대접을 공손히 받는다. 그러다가 그 집 주인이 자신의 땅을 구경시켜주면서 '저기서부터 또 저기까지가 내 땅이네' 하는 걸 들으면서 집 주인의 땅을 구경한다. 그리고 집에 오면 계속 돈 있어서 공부를 또 할 수 가 있다. 이게 1권에 나오는 내용이고, 2권은 그 집주인의 본격적 과거 사랑이야기 라고 하는데, 나는 1권을 읽고 2권 읽기를 멈췄다. 나는 이런 걸 읽으면 너무 화가 나. 왜 노동하지 않는데 노동하는 사람보다 더 부자인건지, 그걸 견딜 수가 없다 진짜. 왜 공부하고 싶은거 하고 여행하고 싶은거 하는데, 그런데 노동하지 않으면서 그게 되는지. 그게 너무 미치게 화가 난다. 이것은 나의 열등감인가, 라는 생각을 줄곧 해오고 있다. 왜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밤까지 허리가 휘도록 일해도 가난하고 어떤 사람은 넓은 산과 들을 산책하다가 졸리면 낮잠자고 그러다 방에서 책 읽는데도 저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다 내 땅이라네, 할 수 있는걸까?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나? 나는 이거 이상하다. 이거 너무 싫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싫다.
나는 이정도의 사람이고 내 친구들도 다 이정도의 사람이라, 나는 물론이고 내 친구중 누구도 나를 데리고 땅 구경 시켜주면서 '저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내 땅이야'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락방아, 전세 계약이 끝났는데 이 전세금으로 다시 전세를 얻기가 힘들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내 친구들이다. 쉬바.. 노동해도 부자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내 친구들이다. 겨우 집 한 칸 전세 얻어도 2년후에는 그 돈으로 이사가기가 힘든게 내 친구들이다.
좀 엇나가긴 했지만, 잠깐 이 책 좀 인용해보겠다. 갑자기 생각이나서 말이다.
한국에서 제1의 억만장자는 이건희입니다. 그는 삼성의 소유주이고 스티브 잡스에게는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세금을 탈루하고 노동자들을 끔찍한 환경에서 일하게 한 죄로, 지옥에서 삼성 갤럭시를 수리하는 형을 받았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한국 국내총생산의 4분의 1이 삼성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세 명의 자식이 있네요. 싱글들에게는 희소식이죠!
자, 한국의 억만장자 2위는 그의 아들 이재용입니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와 결혼한다면 이들의 재산은 180억 달러가 되겟네요. 하지만 영화 <당나귀 가죽>에서 카트린 드뇌브가 말했듯이 아들이 자기 아버지와 결혼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9위 이부진은 1위의 딸이고 한국의 억만장자 순위에 첫 번째로 오른 여자입니다.
10위 이재현은 9위의 사촌이고 삼성 설립자의 손자, 그러니까 1위의 조카입니다. 가계도를 만든다면 이 모든 관계를 한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11위 이서현 역시 1위의 딸이고 2위와 9위의 동생이며 또한 어김없이 10위의 사촌입니다.
여기서 약간 건너뛰어서 16위 이화경으로 곧바로 가겠습니다. 오리온의 부회장이죠. 왜 초코파이는 프랑스에는 없는 걸까요? 맛있어 보이는데요. 그녀는 초코파이를 먹으면서 볼 영화도 제작합니다.
18위 홍라희는 1위의 부인이고 2위와 9위 그리고 11위의 어머니이며 또 10위의 숙모입니다.
20위 이명희는 1위의 여동생이고 18위의 시누이이자 2위, 9위, 11위 그리고 10위의 고모입니다. 아, 이제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하네요. - 《그래서 나는 억만장자와 결혼했다》, 오드레 베르농, 책속에서
아무튼 늦여름에게는 미안하게 됐다. 내가 제목을 너무 좋아해서 읽으려고 한건데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분노를 터뜨리는 바람에 1권 읽고 중지한 나의 늦여름. 그렇지만 2권까지는 사뒀어.. 내가 마음이 더 넓어지면 다시 시도하도록 하마. 기다려라, 늦여름. 나는 일단 여름 들어가면 무조건 좋아하는데, 왜 노동하지 않아서 날 힘들게 했니?
앤 래드클리프 에게도 미안하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노동하지 않는 거에 불을 뿜어서 미안하다.. 제가 화가 많아요...
아무튼 잘 쓰여진 소설이었다. 문장도 좋았고 섬세한 감정도 잘 담아냈다. 이야기로도 좋았다. 얼마 읽지 않고도 아, 강화길이 쓰고 싶었던 게 이런거였구나, 했다. 문장도 좋고 재미도 있었고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는데 앤 래드클리프의 작품을 부러 또 찾아읽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이만 총총.
아, 창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고딕소설은 샤론 볼턴이 잘 쓴다.
진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