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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다리 2
줄리 오린저 지음, 박아람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재작년 여름휴가는 슬로베니아로 가려고 비행기표를 진작 예매해 두었었다. 환갑이 넘은 엄마와 또 이모와 함께 갈 예정이었고 그렇게 우리 셋은 편한 여행을 위해 진작부터 여행비를 모아두었더랬다. 그러나 봄이 되기 전 전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나는 봄에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하였고 좀 더 후에는 여름의 여행도 취소해야 했다. 다른 생활패턴을 가진 사람들이 스케쥴을 맞추고 미리 돈을 모아두어 이제 준비가 되었다 하였는데, 우리 의지가 아닌 다른 무엇이 우리에게 끼어들었고, 그것은 우리의 여행을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하게 했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매순간 깨닫게 되지만 이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차마 생각하지도 못했던 걸로 우리의 계획을 취소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셋의 의지가 아니었다.
언드러시는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재능을 눈여겨 본 누군가로 인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게 된다.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던 미혼모인 클러러를 만나 사람들이 반대하는 사랑을 이뤄냈는데, 히틀러가 유대인 압박을 시작했다. 분명히 아직 비자 유효기간이 남았지만 불법거주자 신세가 되어 헝가리로 돌아가야 했고 그렇게 헝가리로 돌아갔지만 계획대로 비자를 받을 수는 없어 다시는 파리로 갈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언드러시랑 헤어질 수 없었던 클러러는 자신이 밟아서는 안되는, 자신에게 너무나 위험한 땅 헝가리로 돌아오게 되고 그들은 헝가리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행복하게 사는가 싶었는데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가족들에게 말하지도 못하게 갑자기 노무부대로 끌려가게 된 언드러시는 어린 아들의 소식이 궁금하고 아내의 소식도 궁금하다. 노무부대에서 이렇게나 고생을 하며 살고 있지만 도대체 남편이, 아들이 어디로 갔는지 살아있기는 한건지 궁금해 할 가족들에게 어떻게든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다. 전쟁이 일어나고 노무부대에 끌려가고 제대를 하고 또다시 징집영장이 오고 굶주리고 고생하고 다시 가족을 만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언드러시와 그의 가족들은 가진 재산도 잃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잃게 된다. 독일이 패배하고 히틀러가 죽었지만 이제 언드러시 주변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는 얼마 남아 있지 않았고 큰 상실감이 언드러시를 후려친다.
언드러시가 그 시간에 그리고 그 장소에 태어나 살게 된것은 언드러시의 의지가 아니었다. 언드러시는 그저 자신에게 삶이 주어졌고 그래서 주어진 삶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만 할 수 있었다. 비자를 갱신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공부를 계속하고자 하는 것이 언드러시가 계획한 일이고 바람이었지만, 세상은 언드러시의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을 놓아두지 않았다. 언드러시의 의지가 아닌 전쟁은 언드러시의 삶을 바꿔 놓았고 고통을 안겨 주었다.
전쟁은 인간의 삶을 바꿔놓기에 지나치게 큰 일이어서 그 안에서 함께 있는 인간들은 본인의 의지로 살아왔던 삶의 형태도 바꾸게 되지만 주변을 보는 눈과 관점도 바꾸게 된다. 성실했던 언드러시도 도무지 성실이라곤 몰랐던 요제프도 같은 공간에서 사람이 피흘리고 죽어가는 걸 보면서, 이렇게나 다른 우리 둘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유대감이 생기고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붙들어주는 끈이 되었다. 지독하게 미웠던 누군가가 그 안에서 동지가 되고 알지 못했던 이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도 한다. 가끔씩 들려오는 부대 바깥의 소식에,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에, 부모님이 형제 자매가 무사한지 알 수 없어 발을 구르고 안타까워하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전쟁이 끝난 후 그들 모두는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만약 내가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지에 대해 자꾸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내 의지로 사는 일을, 내 계획대로 사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 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이라면, 그러니까 내가 유대인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일단 태어났으니 살아갈 뿐인데, 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멸시를 당해야 하는거라면, 갇혀야 한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주변을 어떤 눈으로 보게 될까. 내가 내 의지로 사는 일을, 내 계획대로 사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 전쟁 때문이라면, 전쟁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지도 못하고 생사 여부도 알 수 없다면. 그 때의 나는 어떤 생각으로 삶을 지속시킬까. 아니, 지속시킬 수는 있을까?
나는 대체적으로 인간에게 일어난 작고 사소한 일들부터 큰 일들까지, 내게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전쟁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말하는 바가 무엇이라는 것을 내가 깨닫는다고 한들, 나는 세상의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인가.
언드러시는 그 때에 그 장소에서 태어나 살기를 원한게 아니었으나 그렇게 태어났고,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으로 인해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사는 것에 방해를 받았다. 인간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없지만 인간은 이 세상에서 동떨어져 살아갈 수도 없다. 전쟁이 일어나 내가 그 전쟁에서 무기를 들고 참여하는 게 아니어도, 부상자를 간호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어도, 어떤식으로든 그것은 영향을 미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드러시는 고통을 겪었고 상실을 겪었다. 그 전쟁을 언드러시가 일으킨 게 아닌데도, 한번도 그런 걸 바란 적 없는데도 언드러시의 삶이 저 밑바닥으로 나락으로 추락했다. 그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다치고 이별을 겪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전쟁을 한 순간도 원한 적 없었을 것이다.
1권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 죄다 비호감이라 심드렁했는데, 2권을 읽으면서는 내가 비호감이라고 생각한 것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졌다. 전쟁을 겪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들이 달라지는 인물들을 보면서, 인간이란 태어나면서 본디 가지고 있는 성향이란 게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그렇다면 내가 비호감이라고 보든 호감이라고 보든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됐을 때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일단 한 개인이 어떤 선택하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난 뒤에 역사적 사건 속에 휘말리는 걸 보여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개인의 입장이 되어 그 고통을 함께 겪는다. 그 때 당시에는 유대인이었지만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내가 핍박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단지 이렇게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혹독한 시간을 겪는 등장인물들 보면서 아 다 비호감이야, 했던 1권 읽던 시간들이 좀 미안해졌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작가의 할아버지가 겪었던 일이었다고 한다.
이 책의 1권에서 한 개인이 다른 사람과 세상에 섞여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2권에서는 그 세상에서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면서 자신을 내치는 세상에서 버티는 걸 보여준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나부터 역시 인간을 구원해주는 것은 인간이다, 까지.
이런 흐름은 기존에 ‘알베르 코엔’의 《주군의 여인》에서 만난 적 있다. 1권에서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섞여 살아가다가 2권에서 유대인이란 이유로 내쳐지며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쏠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도 쏠랄이 겪는 혹독함에 내 감정이 같이 너덜너덜해졌는데 이번엔 언드러시가 그렇게 한다.
(아무도 안물어봤지만 그러나 이 두 소설 중에 어떤 게 더 좋으냐 물어보면, 나는 주군의 여인의 손을 들어주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전염병이 발병한 세상, 내 의지가 아니었고 내가 바란 적도 없지만 내 계획을 망쳐버린 일에, 정말 나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최재천 박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진 것은 '우리가 전례 없이 야생동물들을 건드려대기 때문' 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나 역시 인간이 아니던가. 나는 ‘야생동물을 건드린 적 없다’고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그 존재 이유로, 태어난 모습으로 핍박할 때, 나는 내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완전히 무관할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쉼보르스카의 시를 옮겨둔다.
무작위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일어날 수도 있었어.
일어날 수밖에 없었어.
그 전에 일어났어. 그 후에도 일어났어.
바로 옆에서도, 저 멀리서도,
일어났어. 다만 너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뿐.
첫 번째라서 살아남았어.
마지막이라서 살아남았어.
혼자라서.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왼쪽에 있어서. 오른쪽에 있어서.
비가 내리고 있어서. 햇볕이 내리쬐고 있어서.
그늘이 져서.
운 좋게도 숲이 있었지.
운 좋게도 나무가 없었지.
운 좋게도 철로가, 갈고리가, 들보가, 브레이크가 있었지.
문틀이, 모퉁이가, 1센티미터가, 1초가 있었지..
운 좋게도 지푸라기 하나가 수면을 떠다니고 있었지.
그 덕분에,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랬는데도.
손 하나만 움직였어도, 다리 하나만 움직였어도 어떻게 됐을지 몰라.
한 걸음만 움직였어도, 실오라기 같은 틈만 있었어도 어떻게 됐을지 몰라.
그래서 여기 있는 거니? 지금도 정지돼 있는 그 순간에서 빠져나온 거니?
그 촘촘한 그물에서 빠져나온 거니? 그 그물을 통과한 거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들어 봐.
내 안에서 너의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