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까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한 시간 일찍 도착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자! 하고는 책장 앞에 섰다. 자, 어떤 책을 가져갈까? 그런데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심지어 지난 주에 도착한 책 꾸러미에도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분명 으앗 당장 읽고싶다! 해서 산것들인데, 아무것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침대 헤드에 있는 소설 책 한권을 가방에 챙겨넣고 집을 나섰다.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어야지~ 생각하며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를 향해 가고 있는데, 방송에서 이번에 내릴 역은 <올림픽 공원 장미정원> 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뭐? 장미 정원? 장미 정원이라고?
올림픽공원에 장미 정원 있다는 건 내가 모르는 게 아니었는데, 몇해전에도 조카 데리고 놀러온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귀에 꽂혀버린 올림픽공원 장미 정원. 그러고보니 가을 올림픽 공원은 진짜 좋지.. 일전에도 가을에 올림픽공원 혼자 걸으면서 아 너무 좋아 사진 수십번 찍었던 기억이 났다. 장미 정원에 지금 장미는 없겠지만, 내리는거야, 장미 정원에! 나는 충동적으로 올림픽공원 장미 정원에 내렸고, 그렇게 장미 정원엘 갔는데, 장미가 있었다. 정말로, 장미가, 있었다, 장미 정원에!!





아니, 이게 다 뭐야? 장미가 지금 있는게 맞아? 나는 너무 좋고 씐나서, 아아, 내리길 잘했다, 스스로를 쓰다듬어 주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나온 거였다면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없었겠지만, 나는 책 읽을라고 한 시간이나 미리 나섰다니까? 야.. 사람이.. 이렇게 미리미리 준비하니까 예정에 없던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된다. 내가 잘한다 진짜.. 사람이 참.. 잘해, 뭐든.. 짱이야.
그렇다면 약속장소까지 걷자, 나는 오늘 책대신 장미를 택했다, 아아, 장미정원이라는 안내 멘트에 충동적으로 내리다니, 낭만을 아는 여자.. 나는 낭만을 아는 사람...낭만을 아는 다락방. 두둥- 샤라라라랑-
그렇게 걷기 시작한다. 나뭇잎들의 색깔이 변하고 있구나, 새삼 실감했다.



이 강아지를 찍으려던 게 아니라 낙엽을 찍으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찰칵, 버튼을 막 누르는데, 그 때 마침 이 강아지가 여길로 훅- 들어와버렸다. 덕분에 아름다운 사진이 되었어..고마워, 개야!
아, 좋구먼.. 가을은 이런게 좋구나... 하면서 걷는데, 장미랑 헤어지니, 눈앞에 코스모스 밭이 펼쳐지더라고요... 예.....


너무 좋구나... 그렇게 올림픽공원을 통과하며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약속시간보다 십오분 쯤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아아, 나는 오늘 책을 읽을 수 없겠구나, 그렇지만 친구들 오기 전까지 한 장이라도 읽어볼까, 가지고 나온 성의가 있지, 하고 책을 꺼내서 똭- 펼치자마자 친구가 도착했다. 책을 다시 넣었다. 하하하하. 괜찮다, 나는 낭만을 아는 다락방이니까.
지난 주가 내게는 너무 힘든 한 주였다. 덕분에 지난주 일주일간 닷새는 술을 퍼마셨다. 목요일은 술을 많이 마시고 피곤해서 금요일에 일찍 잤는데, 덕분에 토요일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났고(왜...) 나는 일어나서 치아바타를 구웠다. 친구들을 만나 내가 만든 치아바타를 선물했는데, 친구들은 다음날 치아바타를 잘라서 커피랑 함께 마시고 있다고 인증해주었다. 맛있다고 잘 먹었어. 고마운 사람들..
친구들 만나서 내가 힘들었던 얘기를 하고, 친구들이 같이 화내주고 들어주고 또 그렇게 친구들의 고민을 듣고 하노라니 시간이 훌쩍 갔다. 술을 많이 마셨다. 그리고 집에 갔는데,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아침 일곱시에 벌떡 일어나버렸다. 왜.. 왜 주말인데 늦잠을 못자 ㅠㅠ 나는 또다시 치아바타를 구웠다. 일요일에 남동생네가 와서 자고 가기로 했는데, 그래서 남동생 줄 치아바타를 굽자 했던 것. 게다가 이모도 들르기로 했다. 마침 이모가 도착했을 때는 막 구워진 치아바타가 나왔고, 이모는 점심을 먹고난 직후에도 막 먹으면서 맛있다고, 아이고 얼른 일어나야지 안되겠다, 계속 앉아 있으면 계속 먹겠어, 하면서 힘겹게 일어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남동생은 오후 늦게 와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던 바, 그래 그렇다면 저녁 메뉴는 잡채를 하고 감바스를 하자, 그러면 한 시간이면 된다, 하고는 오랜만에 거실에 요가매트를 깔았다. 그간 요가 너무 소홀했는데 마침 집에 혼자 있었고, 거실에 볕이 들어오고 있어서 좋았다.

사실 매트 깔아놓고 수분간 갈등했다.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걍 멍하니 앉아서 볕이나 감상하면 안될까... 하다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가지고(그러면 한 명은 져버린겨... 내가 나한테 진겨... 내가 나한테 이겼으니까.....무승부여.....) 그렇게 되어버려가지고 한시간 베이직 요가를 했는데, 하고 나니 배가 고파서, 사바아사나 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비빔국수를 해먹자, 생각하게 되었고, 사바아사나 끝나자마자 매트도 접지 않고 국수 삶을 물을 올려두고 양념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개맛있으니까 양념장 레서피 공유한다.
고추가루 1: 설탕1: 다진마늘1: 간장1: 보리고추장 1.5-2 +종종 썰은 김치+참기름
이렇게 해서 비비면 진짜 .. 나 너모 맛있어서 혼자 해먹을 때는 비빔 국수 1.5인분 해먹는데, 또 후루룩 다먹었다.
어제는 야, 진짜 맛있다, 나는 이제 비빔국수 장인이여..하면서 사진 찍는 걸 깜빡 해버려가지고, 지지난주였나 찍었던 사진을 올려둔다.

야 뭐 이렇게 뚝딱뚝딱 잘만들어... 아무튼, 동생이랑 올케가 도착했고, 나는 내가 만든 치아바타를 줬는데, 올케가 맛있다고 잘 먹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장난아니쥬?
저녁에 감바스 해줄게 치아바타 찍어먹어~ 했더니 너무 좋다고 하면서 그 다음 대화할 때는 감바스랑 치아바타 먹을 생각밖에 안난다고 하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저녁에 감바스랑 치아바타를 딱 냈는데!! (먹다가 사진 찍음)

올케가 감바스 숟가락으로 퍼서 치아바타에 요케요케 올려가지고 한 입 먹더니 음~~ 하면서 행복해했다. 그리고 계속 먹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동생도 먹으면서 맛있다고 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나는 감바스 하기 전에 잡채 까지 하느라 계속 서있었더니 넘나 피곤...

남동생이 잡채도 맛있다고, 누나 요리 실력이 엄청 향상됐다고 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이제 집에 손님이 오면 치아바타도 구워 낼 수 있고, 감바스도 낼 수 있고, 잡채도 낼 수 있다. 나 좀 출출한데? 라고 말한다면 후딱 비빔국수도 할 수 있어. 비빔국수 장인이 되었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고보니 내가 여기에 <오늘의 요리> 올리면서 늘상,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요리가 하나라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해왔고,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접대할 수 있는, 접대 받는다는 느낌이 있는 음식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지겹도록 얘기해왔는데, 지금 이렇게 쓰면서 보니 그런 게 정말로 생겨버리고 말았다. 의지의 다락방, 의지의 다락방이며 동시에 낭만을 아는 다락방인 것이다.
이모랑 엄마는 치아바타에 다른 걸 넣어봐, 카스테라를 좀 해봐 .. 라고 하는데, 나는 놉!! 했다. 블랙올리브 치아바타만 평생 구울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른 건 또 생각하기 싫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어제 남동생은 백세주 먹고 나는 소주 먹다가 다 마셔서 소주를 더 마실까, 와인을 마실까, 하다가 냉장고에서 지난 번 먹다 남은 와인을 꺼냈더니, 남동생이 왜 거기에 넣어두었냐 와인냉장고 냅두고, 라고 물었다. 아, 이거 먹다 남은 거라서.
"먹다 남은 건 와인 냉장고에 넣으면 안돼?"
"아니.. 와인 냉장고에 와인 꽉 차있어서 자리가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어제도 소주랑 와인을 실컷 마신 내가 지금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다.......... 푸코 언제 읽을 수 있을까...... 인생은 뭘까..................아무튼 나는 올케랑 같은 회사를 다니기 땜시롱 올케가 나 태우고 왔다....................올케 빵 하나 챙겨줬고, 오늘 이모 다시 올건데 가져가라고 빵 하나 챙겨두고 왔다 ...............................근데 빵을 구우니까..정작 나는 안먹게 돼..................
여동생은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다. 우리 삼남매 중에서 제일 잘했다. 전교 1등도 하고 그래서 중학교때는 등록금을 안내고 학교를 다녔다. 삼남매 중에서 내가 제일 공부를 못했는데, 나는 공부를 잘하는 여동생이 그렇게나 자랑스러웠더랬다. 그 때 여동생은 나에게 "나도 언니를 자랑스러워하고 싶어" 라고 했었는데, 그로부터 벌써 한 이십년 이상이 지났나... 어느 순간부터 여동생은 나를 자랑하고 다닌다. 토욜에도 새로 알게 된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언니 자랑 실컷 하고 왔어' 라고 내게 말했다. 아이참, 내 자랑할게 뭐 있다고... 했더니 요래죠래 막 얘기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릴 때, 나도 자랑스런 언니(누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동생들이 나를 자랑스러워 해주고 있다.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조카들도.
되게 힘들어서 글 썼는데, 글 쓰다보니까 좋은 것들이 막 생각나네. 역시 글을 쓰는 건 좋다. 특히나 내게는 글 쓰는게 정말 좋은 치유가 된다. 글을 등록하기 버튼 누르기까지 내가 뭘 쓸지 나도 몰라.... 손이 글을 쓴다 손이.. 내 손이.. 치아바타 만들고 비빔국수 만드는 이 손.....
아침에 잠깐 꿈 꿨는데, 내가 무슨 에프비아이 요원인가 막 그랬고 그런데 함정수사로 범인을 잡을라고 해가지고 막 속옷만 입고 유혹하고 그랬는데, 나랑 같이 홀딱 벗고 있던 남자친구가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삐져가지고 침대에 앉아서 나한테 등을 돌렸고... 나는 화내지마, 이러면서 뒤에서 남자친구를 끌어안았다. 홀딱 벗고....... 이게 뭐여................ 그리고 출근했는데 동료들이 나 없는 사이 범인 잡아놔서 또 내가 개빡쳤네......................... 흐음...... 친구들은 내게 영화도 그만보고 책도 그만보라고 늘 말했었어...........
그럼 이만...
아무튼 오늘은 오늘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