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과 인연
어제 구매한 전기 오븐이 도착했다.
직원이 설치해준다고 했는데 기존 전자렌지 놓여있던 자리에 놓아달라하니 안된다고 했단다. 좁다고.. 그래서 베란다 선반에
놓아달라 했더니 그 선반은 약하다고 했단다. 일단 베란다에 있는 선반용 식탁 위에 놓아두었고, 잠시후 직원은 돌아가고 남동생이
왔을 때 아무래도 저기 될 것 같은데, 하고 엄마는 전자렌지 있던 자리에 전자렌지를 빼고 넣어달라 했단다. 남동생이 넣어보니 완전
안성맞춤 이었다고 엄마가 기뻐하며 전화하셨다.
어제 퇴근 후에 엄마는 안계셨고 어머 정말 쏙
들어가네, 하고 나도 좋아하던 터라, 설명서를 읽어보는데 일단 처음 샀을 때 사용전에 15분정도 빈 상태로 돌려봐야 한단다.
그래서 그렇게 작동시켜두고 설명서를 다시 읽는데, 아아... 오븐은 그렇게 맞춤하게 선반에 넣으면 안된다고 설명서에 써있다. 위로
20cm, 좌우로 10cm 정도의 공간이 여유가 있어야 하고 뒤에도 마찬가지. 아아... 그 직원분이 좁다고 말한 건 그런
의미였구나 싶은거다. 그래, 다 이유가 있었겠지... 그러자 저렇게 좁은 공간에서 뜨겁게 돌아가고 있는게 좀 무서워졌다. 15분이
지나 열을 잠시 식힌 후, 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혼자 들 수 있나, 하고 들어보니 무겁지만 들어지기는 해. 나는 베란다로
향하는 문을 열어두고 베란다에 불을 켜고 식탁 위에 자리를 만든 뒤에 멀티탭을 찾아 이케이케 부엌에서 연결하고, 그 뒤에 오븐을
들고 영차영차 가는데, 아아, 베란다로 가는 문 앞에서 턱 막힌다. 왼쪽 손은 오븐의 왼쪽을 들고 있었는데, 그 모두가 함께
문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걸리는 거다. 아뿔싸..나는 다시 돌아가 오븐을 식탁 위에 올려둔 뒤에, 왼쪽 손으로 상단을 잡자, 했더니
아직 좀 뜨거워서 위험하게 느껴졌다. 이걸 어쩐담..반죽해둔 빵은 발효중인데... 이렇게 시간을 계속 끌면 안되는데..
자, 방법을 찾자.
그렇게
나는 오븐을 일단 식탁 의자 위로 옮겨서 의자를 베란다 문 앞까지 가져가고, 그리고 내가 먼저 베란다로 나간 다음에 위를 들어서
끙차끙차 옮겨 베란다 식탁위에 놓아두었다. 만세! 그리고 코드를 멀티탭에 꽂아가지고 똭 했더니 전원도 들어왔어. 나이쓰.
해냈다! 짱이야, 난 멋져!!
나는 해낼 수 있어!!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발효빵이라 어림잡아 세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나는 어제 퇴근 후에 그냥 도착한 오븐을 보면
만족하고 그쳐야 할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 그렇게 반죽을 시작하고 발효를 체크하고... 그런데 뭐가
잘못된건지 내가 보았던 영상속 레서피 만큼 부풀지 않아서 더 기다려야 했던걸까, 싶었지만....시간은 한정적이고 나는 잠을 자야
해, 시키는대로 한시간 발효 했잖아, 하고 채 부풀지 않은 반죽을 다시 공기 빼가며 치대고 또 발효하고...아무튼 시키는대로 다
해서 세시간 이상이 걸려 발효빵을 만들었다.


딱히 성공이라 볼 순 없었다. 제대로 발효가 되지 않은 탓인지 사이즈가 너무 작았고 겉이 너무 딱딱해서 칼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힘을 엄청 줘야했다. 내가 물을 적게 넣어 애초에 반죽 자체에서부터 어긋난걸까...
게다가 세시간 이상 걸려 만든건데 고작 이런 빵이라니, 쳐다보면서 내가 뭘한걸까 싶었다. 퇴근후에 내가 지친 몸을 이끌고 꼭 이렇게 해야했나? 돈 주고 사먹는 게 맛도 좋고 가성비도 훨씬 좋은 것 같았다. 내가..무슨 짓을 한걸까? 퇴근 후에 세시간 이상 걸려 만든게 왜 이렇게 작고 ... 하아.
그래도 토요일엔 식빵에 도전해볼까 싶다. 다음주에 조카들 오면 해줘야지.
조카들이 이모가 만든 빵을 좋아해줘야 할텐데..그러려면 내가 맛있게 만들어야겠지.
여러가지를 도전할 생각은 없고 밋밋한 빵들을 잘 만들어보도록 하는 걸로... 아아, 이게 다 진 필립스의 우물과 탄광 때문이다. ㅠㅠ 세상에.. 책 읽고 오븐 사서 빵 만드는 여자가 어디있지요? 여기 있다, 왜!!!!!!!!!!!!!!!! (자세한 건 페이퍼 상단 먼댓글 링크를 따라가면 됨)
그래서 어제 책을 하나도 안읽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도 구매한 책들은 자꾸 도착한다.


리베카 솔닛의 신간은 아일랜드 여행기라고 하니 너무 기대가 된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는 스피박의 글이 실려있다 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그레이스는 언제나 숨겨진 소설들까지 찾아내어 리뷰 쓰시는 F 님의 리뷰를 읽고 .. 이래서 알라딘 서재의 글을 읽는 것은 좋으면서 싫다. 자꾸 살 책이 많아지니까... 하아. 유혹하는 글쓰기는 오만년전에 구판으로 읽었었는데-처음 쓴 문장이 가장 좋다고 했던 스티븐 킹의 말은 내게 정말로 딱 들어맞는 말이다, 처음 그 단어와 그 문장이 괜히 생각난 게 아니라니까?!-,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개정판을 샀다. 힐빌리의 노래는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영화 보기 전에는 원작이지! 하고 구매하였고, 저기 뜬금없는 할리퀸 발레리나를 사랑한 남자...는, 발레리노와 노발레리나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은데 도무지 그런걸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대신 골라본 책이다. 그런 한편, 최근에 할리퀸 읽고 뭔가 쌍욕 나와서 아아, 나는 이제 할리퀸을 읽을 수 없는 몸이 되었구나, 했던 기억 때문에... 저걸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여튼, 발레리노와 노발레리나의 사랑 이야기 너무 궁금하다. 사실 뭐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만나 사랑하는게 발레리나 라는 직업 때문에 더 특별해지는 건 아니고, 그 개인 때문에 특별해지는 것이긴 하겠지만.... 그런 거 보고 싶어. 발레리노가 항상 발레리나들 번쩍 번쩍 들어서 위로 올리다가, 노발레리나, 이를테면 나같은 여성 만나 가지고 별 생각없이, 늘 하던대로 번쩍 들어올리려다가, 땅에서 들어올려지지 않아 개당황하는......
마침 며칠전에 본 영화, 《먼 훗날 우리》에서 남주가 여주 안고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장면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평생 저럴 일은 없겠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 내가 혼자 걸어갈 수 있지마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뚜벅뚜벅 내가 내 다리로 올라가면 되니까 괜찮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왜... 영화에 가끔 남자들이 여자 안고 계단 오르는 장면이 나오는걸까? 뭘 위해서? 나는 계단이라고 하면, 스티븐 킹의 소설 중에(스포일러가 될테니 어떤 소설인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유혹적인 아내에게 다가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남자를 계단 위에서 밀어가지고 그 남자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었던, 그 장면이 생각난다.... 킁킁.
아무튼 열심히 플랭크해서 전신 운동해서 강해져야지. 아주아주 나이 들어서도 계단은 나 혼자 씩씩하게 오르는 스트롱하고 파워풀한 여인이 되겠다. 스쿼트해서 허벅지에 졸라 큰 근육도 만들어야겠다. 여자들은 나이들수록 근육운동을 해야하고 특히나 하반신 근육이 중요하다더라. 요즘 요가도 영 손 놓고 있는데 다시 으쌰으쌰 해야겠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여!!
그럼 이만..